이대호/선수 경력/NPB
1. 개요
이대호의 일본 시절을 다룬 문서이다.
2. 상세
9경기 연속 홈런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011년 시즌을 소화할 경우 FA 신청이 가능했으며, 즉 2012시즌에 해외 진출이 가능했다. 해외 진출에 대해 체력과 수비 문제 때문에 미국보다는 일본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솔직히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 쪽은 기대치가 높았던 김태균의 거한 삽질로 학을 떼고 있었고, 센트럴 리그 쪽 큰 손들은 수비가 결점인 용병타자를 영입할 여력이 안 되었다. 또 추신수와의 인터뷰를 보면 본인 역시 해외진출을 내켜하지는 않는 듯 했다. 다르빗슈와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국내에 남을 경우 롯데 잔류와 이적 여부는 2011년 연봉협상 이후로 결정나게 될 만큼 미묘해졌다. 그전까지는 롯데의 아이콘적인 존재이므로 어디 가면 큰일나며 롯데 구단 역시 확실한 대우로 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연봉협상에서 보여준 태도 때문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대호가 의리로 남을 명분 자체가 없어졌다 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이대호가 2007년에 역대 최고 대우를 받을 때와 비견되어 이상구단장이 칭송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1년 7월, 한신 타이거스에서 이대호의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 또 2011년 포스트시즌 종료 이후 일본의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2년간 5억엔(당시 한화로 약 75억 원 정도)의 조건으로 영입준비 중이라는 기사도 뜬 상황이었다. 오릭스는 금액 부분은 부인했지만 팀내에서 타격을 보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따라서 이대호가 FA 신청시 그를 영입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진 듯했다.#물론 롯데는 무조건 잡는다고 말했지만 자금력이나 연봉협상의 문제 등의 문제가 있고 이대호가 '''롯데 우승 빼고'''[1] 한국에서 타자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큰 무대인 일본에 진출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단 변수라면 이승엽이나 김태균 같은 뛰어난 타자들이 대지진, 원자력 사고 이후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점. 이대호 입장에서는 2012년에 아이를 얻기 때문에 이점이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1,2
결국 2011시즌 종료 후 이대호는 FA를 선언하였고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인 11월 19일까지도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해외 진출이 유력해졌다."100억원도 NO" 이대호, 롯데와 FA 협상 결렬
우선협상 기간 동안에 이대호가 사인하지 않고 해외진출에 무게를 둔 것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한 쪽은 "100억도 안 되면 어쩌라는 거냐"고 말하는 롯데 잔류 지지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롯데 구단 믿지 말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 때 나갔다 와라"고 말하는 해외 진출 지지파. 잔류를 지지했던 팬들은 원래 예상했던 4년에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선 4년간 연봉 80억에 옵션 20억이 통 큰 베팅임을 강조한다.[2] 또한 롯데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나 팀을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강조했던 이대호이기에 팬들이 잔류를 기대했다는 점 또한 강했다. 이게 반대로 해외진출로 무게가 실리자 배신감을 느낌 팬들이 지금까지의 인터뷰 등이 거짓이며 언플이라고 비난을 했던 것.
반대로 해외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팬들은 위에서 설명되었던 2011시즌 연봉 협상을 기억하는 쪽이었다. 타자로서 그야말로 따라올 자가 없을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그를 7000만 원 아끼자고 연봉조정신청까지 가게 한 팀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야구팀을 그저 돈 벌이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구단에 끌려다닐 필요 없이 야구선수로서 더 넓은 무대로 도전해보라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이대호가 그야말로 전성기라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 제대로 성공한 타자를 보고 싶어하는 열망도 이에 포함되었다. 또한 이러한 팬들은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섰다"는 수식어에 비교적 덤덤한데, 이는 저 60억이라는 액수 자체가 2004년 심정수가 가진 기록이며 다시 말해 7년 전의 액수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과 커져가는 야구판을 생각했을 때, 80억+20억이 7년 전의 FA 최고 대우였던 60억 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2004년 심정수의 60억중 옵션과 계약금을 제외한 금액은 40억 원이다. 옵션이 20억이었다는 말이다. 순수 연봉이 7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대호에게 제안한 연봉 10억원은 롯데가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였을 것이다.
물론 '''물가 상승률이 6년간 50%씩, 100%씩 뛰진 않는다'''. [3] 당시 심정수의 60억은 돈성이라 불리는 삼성이 어마어마하게 거품을 뿌린 금액이었다. 생활물가지수 상승폭인 28%로 심정수의 연봉을 기준으로 FA 이대호의 소위 '적정가'를 환산한다면 약 77억 가량이 된다. 때문에 한해 1개 야구단의 운영비가 300억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프로야구의 규모상 연봉 10억, 총액 100억이라는 액수는 구단 입장에선 충분히 무리한 수준이며, '''롯데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라고 봐야 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팬 커뮤니티에서는 '''대체 얼마를 더 주어야 자존심을 세워 줄 수 있느냐'''고 이대호를 깠다. 해도 너무했다는 것. 사실 돈과 더 큰 꿈을 위해서 해외진출을 하겠다고 이대호가 공언한 상태였다면 100억이든 뭐든 롯데팬들은 배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대호는 당시까지 어느 인터뷰든 소위 말하는 '성골' 부산 토박이 경남고 출신 롯데맨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협상 최종일까지 모든 롯데 팬들은 대충 롯데는 65억 + @를 내놓을 것이고 이대호의 요구선은 80억이라고 생각했다. 80억 초과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결국 롯데는 지를 FA는 지른다는 전례대로 100억의 그야말로 더 이상 해줄 수가 없는 최고의 대우를 했다. 허나 이대호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 팬들에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당시 겨울 SK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발표했던 정대현이 이대호와 비교되면서 롯데가 이대호의 FA에 신경쓰느냐고 다른 선수들을 신경쓰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던 상태라 비난이 거세졌다.
물론 그동안의 롯데가 보여줬던 행보 때문에, '''롯데는 처음부터 이대호를 잡을 생각도 없었고, 저 80억+20억이란 제시금액도 실제로 줄려는 돈이 아니라 욕먹지 않기 위해 언론에 공개하기 위한 언플용 수치'''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대호의 인터뷰 기사에서 100억을 제시했다는것이 확인되는 것으로 종결. 그것도 첫 만남에선 식사만, '''둘째 만남에서 바로 100억을 제시했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음모론'''이 헛소리라는걸 말해주는 것. 이대호와 짜고 치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이대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불리해질 언플에 협조해주는게 말이 되는가? 100억 찼다고 욕을 먹고 있는 마당에 본인 입장에선 사실대로(사실은 아니지만)70억 제시했다고 하는게 여론에도 좋았을 것이다.
이대호의 인터뷰 : 맨 밑에서 2번째 질문
일본 스포츠호치에서 오릭스가 이대호에게 최대 3년간 8억 5천만 엔, 우리돈으로 129억 정도 되는 액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롯데가 제시한 최고대우를 넘어서는 수치였다.[4]
어쨌든, 언론에서는 롯데도 이대호도 딱히 욕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롯데로서는 할 만큼 제안을 했다고 보고, 이대호도 역시 일본 제안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외국 진출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 의사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 이대호 본인도 FA협상 과정에서 구단이 보여준 성의에 감사한다고 직접 언론에 밝혔으니 만큼 롯데의 제안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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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릭스 버팔로즈'''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 원)에 계약을 매듭지었다.[5]
3. 오릭스 버팔로즈
3.1. 2012 시즌
NPB 무대 데뷔 시즌부터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전 경기 출장에 리그 OPS 1위를 달성했다.
이대호/2012년 참조.
3.2. 2013 시즌
이대호/2013년으로.
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3년 12월 2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3년 19억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정도의 계약 규모라면 대박 계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추신수가 한발 앞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천만 달러에 부분적인 트레이드 거부권 옵션이라는 계약을 맺어버린지라 묻히는 감이 있다. 그리고 호크스와의 계약 과정에서 나온 언플들이 매끄럽지 않아[6] 팬들의 여론이 꽤나 냉담하다는 것이다.
4.1. 2014 시즌
이대호/2014년 문서로.
4.2. 2015 시즌
이대호/2015년 문서로.
5. 일본 시절의 기록 정리
ㅡ2012~2014년까지의 기록 정리ㅡ
원글 링크 요약하면 퍼시픽리그 3년 통산 '''타석 1위, 타율 5위, 홈런 2위, 안타 2위, 타점 1위, OPS 2위(출루율 4위, 장타율 1위), wOBA 2위, WRC+ 2위, OPS+ 2위'''. 퍼시픽리그 No.1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정상급 타자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적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보면 각각의 시즌으로 따졌을때는 이대호 위에 놓을 수 있는 타자들이 있어 '해당 시즌 리그를 씹어먹었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4년 동안 부상 없이 꾸준히 출장하며 일관적으로 A급 성적을 찍었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대호의 일본 시절 동안 단일 시즌 기록으로는 이대호보다 더 뛰어난 타자들도 있었지만 이대호의 경우 4년간 꾸준히 정상급 타자로 활약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일본 시절 wRC+는 151로 리그 평균보다 약 50% 정도더 나은 타격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다만 통산 WAR은 17.1로 연평균 4정도 된다. 보통 각팀의 주전 타자들의 WAR이 2~3 정도인걸 고려해보면 생각보다 그다지 높은 수치는 아니다. wRC+가 리그 평균보다 50 이상 높은 강타자였는데도 이런 수치가 나온건 공격으로 벌어들인 승리기여도를 수비랑 주루에서 뭉텅뭉텅 까먹었기 때문. WAR 외에 wRC+도 주루가 들어가는 스탯이라 전술한 151도 어느정도 깎아먹은 결과물이다.
ㅡ2015~2016년까지의 기록ㅡ
델타의 NPB 기록사이트에서 뽑은 이대호 성적 참조. 원링크는 델타 사이트
통산 득점권 / 비득점권 스플릿을 포함한 통산 스플릿은 이대호 일본프로야구 성적 스플릿 참조.
[1] 실제로 그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고민도 "개인적으로 상은 많이 탔는데 팀이 우승을 못 한다"였다.[2] 그러나 이 금액은 훗날 최형우가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받게 된다.[3] 애초에 물가 상승률만 가지고 선수 연봉의 인상폭을 계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약 3%였지만 생활물가지수는 2004년 대비 28% 상승, 주택매매가는 동기간에 40%가 상승했다.[4] 이대호는 돈보다 롯데가 제시한 4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부담됐다고 한다. 2009년쯤 인터뷰와 달리 이때 이대호는 해외진출에 대한 열망이 몹시 컸던 것 같다.[5] 하지만 아베의 아베노믹스 때문에 환율이 급락해버려 졸지에 연봉이 깎인 셈이 되었다.[6] 특히 야후 돔은 장타자보다는 교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다-우치카와는 2011년 양대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2013년 하세가와도 타격왕에 오르며 198안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