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고등학교 야구부
1. 소개
부산광역시 서구 소재 경남고등학교에 위치한 야구부.
'''청룡기 최다 우승팀'''. '''황금사자기 유일한 3연패를 달성한 팀'''. 그리고 경북고에 이어 광주일고와 함께 전국대회 우승 횟수 역대 2위. 부산 야구의 자존심으로 군림하며 꾸준히 한 시대를 지배한 팀.
2. 연혁
2.1. 태양을 던지는 남자, 장태영
1945년에 창단한 이후 1946년 청룡기 1회 대회 결승전에 진출하였지만, 아쉽게도 이 해는 부산상업중학에게 패하면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7년에는 2회 청룡기와 1회 황금사장기를 동시에 우승했고 1948년에는 3회 청룡기와 2회 황금사자기를 동시에 우승, 1949년에는 4회 청룡기, 3회 황금사자기, 1회 화랑대기를 우승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창단이후 4년간 우승한 횟수는 무려 7회에 달했다.
이 우승을 일군 사람이 해방 이후 고교야구를 풍미한 전설적인 대투수 장태영. 1946년 중학교 3학년[6] 이던 시절 유격수로 첫 전국대회 결승을 밟은 이후,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동하며, 투수로 던지던 내내 단 한 번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동 시대 무수한 라이벌들의 피눈물을 만들어 낸 원조 괴물투수의 활약 속에 초창기 고교야구 무대에서 경남고는 완벽한 강호로 군림했다. 그들이 진 단 한 경기는 장태영이 졌던 단 한 경기로 광주서중의 김양중과의 처절한 연장 12회 완투대결에서 실책이 빌미가 되어 결승점을 내준 것 하나 뿐이었다.
2.2. 과도기
이후 경남고는 1955년 황금사자기 우승 외에는 한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 우승과는 살짝 거리가 멀었지만, 1967년 허구연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랜 우승의 갈증을 해결했다.
그리고 1973년 청룡기에서 김용희와 천창호의 활약 속에 다시 우승을 차지했고, 1974년에는 다시 차동열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우승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비단 우승만이 아니라 경남고는 꾸준히 대표 선수를 배출하고 있었고, 8강 이상의 성적은 꾸준하게 기록하면서 강호로 인정받았다.
2.3. 슈퍼스타 최동원의 등장
1975년 이미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로 불리던 최동원은 동시대 동갑내기 개띠 3총사로 불린 김시진, 김용남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76년 고교야구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청룡기 결승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한 군산상고를 상대로 승자 결승에서 삼진 20개를 잡으면서 그야말로 군산상고 타선을 농락한 것. 최종 결승에서 다시 올라온 군산상고 상대로 다시 삼진 12개를 잡으며 완봉승을 거두면서 최동원은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투수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 경남고의 야수 전력은 그리 강한 것은 아니라서 이 청룡기 우승만이 최동원이 내세울 수 있는 고교 무대 주된 경력이 되고 말았다.
이 때의 경기는 35년 뒤인 2011년 고교야구 전설의 리매치 경남고 vs 군산상고의 모티브가 된 경기였는데, 최동원이 생전에 모습을 보인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점 이후 양상문의 부산고에게 부산 야구의 패권을 내주면서 한 동안 침체에 들어갔다.
2.4. 영광의 지속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고교야구 무대가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된 탓에 경남고는 우승을 쉽게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 명문의 위상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하나의 에이스에 의존하기보다는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한 위상이 강력했지만, 동시에 고교무대에서 특급 에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본다면, 아깝게 우승을 놓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1984년 두 차례 준우승과 1987년 두 차례 준우승이 그 증거일텐데, 특히 1987년에는 경험으로 보면 우위에 있던 대전고와의 청룡기 대회에서는 구대성이라는 특급 에이스에 막히면서 지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1984년 서울고와의 대통령배 결승에서 3:1로 앞서다가 당한 대역전패로 대통령배 우승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아쉬운 우승과의 인연은 1990년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탄 박현승을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깨끗하게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손인호가 뛰던 1992년 다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강호로서의 위상을 이어갔다.
2.5. 송승준의 시대
1997년 두 차례 4강을 달성했던 경남고의 주역은 예의 그 탄탄한 선수층에 더해 2학년이었던 에이스 송승준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송승준이 3학년이 된 1998년 경남고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화려하게 비상했다. 비록 첫 대회인 대통령배 결승에서는 경남상고 상대로 연장 12회 한 점차로 앞서다가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지는 바람에 대회 첫 우승에 또 실패했지만송승준의 추억, 나머지 청룡기와 봉황대기에서는 다른 팀들을 압도하면서 우승에 성공하며, 1998년을 경남고의 한 해로 만들었다.
송승준은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그 외 우승에 기여했던 2학년 강민영이나 타자 신민기, 김진욱, 서정호 같은 선수들은 프로에서 대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아쉬운 세대이기도 했다.
2.6. 2000년대
2000년 대통령배 1회전에서 덕수고(당시 덕수정보고) 2학년 류제국과 대결하여 3대2로 패했다. 류제국은 15탈삼진 완투승, 이대호는 8탈삼진 완투패를 당했다.[7] 같은 해 이대호와 장민석(舊 장기영)의 활약으로 부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8] 에서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채태인 - 이우민(舊 이승화)의 개성고(舊 부산상고)에 패배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1년 대회에서는 1학년 장원준이 등장한 영원한 라이벌 부산고에게 극적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경남고 야구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학부모와 코치진과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우수한 선수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2003년에는 집단으로 전학을 가면서 단 한 차례도 전국무대에 서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 대표적으로 이 무렵에 경남고를 떠나 신일고로 전학을 간 선수가 서동환이다.[9][10] 이런 사태로 경남고의 전력은 약화된 채로 2003년 봉황대기에 참가했는데 정연회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종운 감독이 팀을 추스렸고 누구나 참가에 의의를 둔 줄 알았던 경남고 야구부는 2학년으로 유격수에서 투수로 급히 전향한 김상록[11] 의 전경기 완투쇼에 힘입어 중앙고를 꺾고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하면서 팀의 위기를 넘겼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6년 이상화 - 이재곤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결승전 연장 16회 접전끝에 광주진흥고에 승리하며 청룡기 우승, 2007년에는 하준호 - 장성우 배터리를 앞세워 결승전까지 달려온 강릉고의 돌풍을 잠재우고 다시 청룡기 우승, 2008년에는 박민규의 활약으로 청룡기 3연패를 노렸지만 대구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2.7. 2010년대
하지만 2010년 다시 심창민 - 한현희 원투펀치를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강호로서의 입지는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2010년대 접어들면서 팀의 전력이 약간 하향세인 점은 아쉬운 부분. 2010년 이후 2014년 협회장기 4강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16년 봉황대기에서 모처럼 4강에 올랐으나 군산상고에게 막혀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7년 황금사자기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전년도 준우승 팀 용마고에게 1점 차로 패했다. 청룡기에서는 서울고에 져 초반에 탈락했고, 이어진 대통령배에서 19년 만에 결승에 진출(전국대회 통틀어서는 2010년 청룡기 우승 이후 7년 만)했으나 다시 만난 서울고를 상대로 9-13으로 패하며 대통령배의 한을 풀지 못했다. 2018년 황금사자기에서 다시 4강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광주일고에게 패했다.
2019년에는 부산고가 두 차례나 4강(청룡기, 대통령배)에 오르고, 개성고도 오랜만에 4강(청룡기)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으나 경남고 또한 봉황대기 8강에서 유신고를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강릉고와의 준결승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연장 11회초에 대거 11실점을 하면서 무너졌다.
2.8. 2020년대
2020년 황금사자기 2회전(1회전 부전승) 경기상고와의 경기에서는 상위 지명이 유력한 김창훈의 역투에도 0-2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같은 해 대통령배 8강에 진출하여 우승후보인 강릉고와 만난다.그러나 0:7 7회 콜드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3. 야구대제전
'''야구대제전 첫 2연패를 달성한 팀.'''
- 역대전적 : 12승 3패(부전승 1승 포함)
- 최고기록 : 우승(제1회 야구대제전, 제2회 야구대제전)
3.1. 1회 야구대제전
1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회전에서 휘문고등학교와 만나 4:3 신승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임호균을 앞세운 인천고등학교를 만났지만 최동원를 앞세워 3:0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후 8강전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꺾고 올라온 배문고등학교와의 격돌했지만 우경하(1회 솔로), 박순철(2회 솔로), 김용희(3회 솔로)의 홈런등으로 8:0으로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 4강에서 지역 라이벌 부산고등학교와 마주하게 되었다.
부산고등학교는 양상문을 선발로, 경남고등학교는 휘문고, 배문고전때 위장선발로 투입되었던 박정후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라이벌전은 양상문이 4회에 우경하-김용희-차동열에게 3연타자 홈런을 얻어맞으며 3실점을 했고 4회에 3:0로 앞서나가자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4회 말에 투입했고 최동원은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며 경남고의 결승진출에 일조했다. 양상문은 선발투수로써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좌익수로 투입되었던 8회에 송구실책으로 1실점을 내주며 4실점 모두 본인이 기록하는 등 최악의 경기를 치뤘다.
결승전에서는 이만수-장효조-우용득이 버티던 대구상업고등학교를 꺾고 올라온 선린상업고등학교와 맞붙게 되었는데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선발로, 선린상업고등학교는 이길환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남고가 3번타자 우경하가 솔로홈런을 치면서 앞서나갔으나 곧이어 선린상고가 4번타자 김우열이 볼넷으로 출루한후 도루한 상황에서 5번타자 정종연이 안타를 치며 김우열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1:1의 균형을 맞추었다. 5회초 경남고는 4번타자 김용희가 적시타로 1득점, 6회초 우경하가 솔로홈런으로 3:1을 만들며 경남고가 앞서나갔다. 선린상고는 6회말 이해창이 최동원에게 솔로홈런을 치며 3:2로 따라붙었고 팽팽한 접전을 유지했으나 6회초에 교체투입된 투수 유남호가 7회초에 김성관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9회말에 홈런을 맞으며 6:3으로 경남고가 승리하게 되었다. 이날 최동원은 9이닝 4피안타 3실점 완투승을 기록하며 승리에 일조했고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김용희는 최우수선수(MVP)를 수상, 결승전에서 2홈런을 기록한 우경하는 수훈상을 받았다.
3.2. 2회 야구대제전
전년도 우승팀이었던 경남고는 배문고와의 1회전 경기에서 에이스 최동원을 투입하지도 않고 7:2로 승리, 2회전에서 1회 대회 결승전 상대였던 선린상고를 만나서 위장선발로 사용한 박정후가 1회를 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최동원과 교체되었고 김용희의 홈런과 우경하의 2루타등으로 5:2 승리를 거두었다.
8강전에서 동산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천창호가 역투를 펼치며 6:3으로 승리를 하며 4강에 진출했고 4강전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지역 라이벌인 부산고등학교와 2년 연속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경남고는 1회에는 천창호를 올렸고 2회에는 최동원을 올리며 팀 승리에 전력을 다했고 부산고도 김재열과 안창완을 투입하며 지난해 패배를 설욕하고자 했다. 그러나 투수전이 될 것이라는 모든이의 예상을 깨고 2회부터 2:2로 타격전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김용희가 3회에 투런홈런을 기록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부산고는 최동원에게 3점을 더 뽑아냈지만 막강한 경남고의 타선을 넘지 못하고 8:5로 2년연속 4강에서 라이벌인 부산고를 격파했다.
결승전에서는 군산상업고등학교를 꺾고[12] 올라온 중앙고등학교와 경기를 가졌다. 경남고는 최동원을, 중앙고는 계형철을 선발로 내세웠는데 계형철의 폭투와 실책으로 경남고가 2:0으로 앞서나가던 4회, 최동원을 상대로 운몽룡의 번트를 경남고 내야수가 실책을 기록하며 2실점하며 2:2 동점. 그후 중앙고는 윤몽룡을 구원투수로 올렸고 최동원과 윤몽룡의 투수전이 이어졌다.
팽팽하던 투수전이 깨진건 8회에 경남고 우경하가 1타점을 기록했고 최동원이 9회말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3:2로 대회 첫 2연패를 달성했다. 최동원은 2년연속 최우수 투수상, 김용희는 2년연속 최우수선수(MVP), 우경하는 2년연속 수훈상을 기록했다.
3.3. 3회 야구대제전
3회 대회때는 1981년 코리안시리즈 중이라 코시진출팀 롯데 자이언트 소속이었던 최동원은 참가하지 못했지만 황규봉, 이선희가 불참한 경북고를 상대로 김용희의 만루홈런등을 포함해 7:4 역전승으로 2회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2회전에서 만난 동대문상고의 선발투수 강철원을 공략하지 못했고 오히려 윤동균, 이광국의 홈런으로 7:4 패배를 기록하며 경남고의 야구대제전 연승행진은 멈추게 된다.[13]
3.4. 2013년 야구대제전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전주고를 만나 1회전 조별 탈락을 기록했다.
3.5. 2014년 야구대제전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광주 동성고를 만나서 1회전 조별 탈락을 했다.
3.6. 2015년 야구대제전
2015 야구대제전은 결승전에서 북일고를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4. 이야깃거리
4.1. 부산고등학교와의 라이벌리
지역 라이벌로는 부산고등학교가 있다. 경남고 부산고는 전통적으로 상대 학교보다 그 무엇이든 간에 잘해야 하는데 야구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기사[14]
경남고의 에이스였던 이대호가 말하길 "정기전은 없지만 지역예선에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으며 이들의 라이벌리를 이용한 이벤트 경기가 2011년에 열리기도 했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경남고등학교가 부산고등학교에 비해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2. 파벌 싸움의 메카
바로 윗 문단과 연계되는 특징으로, 학벌, 파벌 의식이 강한 롯데 자이언츠의 성골 학벌이다. 라이벌 부산고는 진골. 이 성골&진골 따지는 게 어느 정도냐면 제주도 출생에 포항제철고 출신 강민호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 리그 최고의 포수로 자리잡은 2011년 이후 쭉 갈매기 마당 같은 일부 강성 롯데팬들한테서 경남고 출신 포수들과 비교당하며 욕을 먹었다. 장성우가 있을때는 곧잘 비교당하며 수비 못한다는 지적을 들었고 장성우가 kt로 떠난 이후론 애송이 김준태보다 포수 리드가 구리다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15]
이후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는 야구 잘하면 그게 바로 성골이라는 입장이지만 갈매기 마당은 여전히 고향이 어딘지 어느고교를 나왔는지를 따지며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4.3. 그 외
- 역사가 오래된 명문 학교다보니 가족 단위로 경남고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아서, 가족인 동시에 선후배라는 기묘한 관계인 선수들도 많다. 비교적 나이 차가 적은 형제 관계로는 김주형&김찬형 형제나 이주찬&이주형 형제가 있으며[16] , 부자 관계로는 임경완과 아들 임정형[17] 등이 전부 경남고 출신이다.
5. 출신 선수[18]
6. 관련 문서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1954년 대회 우승팀으로 1950~53년 대회는 6.25 전쟁으로 취소[3] 1957년 우승팀으로 1956년 대회는 운동장 보수 관계로 취소[4]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 순.[5] 해당사진은 육군 야구단소속 당시 찍은 사진.[6] 당시에는 6-3-3 학제가 아니라 중학교가 고등학교와 합해서 6년제이던 시절이다.[7] 부산고는 추신수, 정근우, 김백만의 활약으로 1999~2000년 대통령배 2연패에 성공했다.[8] 2000년 결승전은 부산 구덕야구장이 아닌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개최됐고, 지방대회 결승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KBS에서 중계를 해줬다.[9] 경남고에서 같이 신일고로 이동한 김현우는 당시 신일고 감독 장호연이 연루된 메이저리그 진출 관련 추문이 일어난 후 중앙고로 또 이동했다. 경남고에서 서울고, 한서고로 이동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롯데 코치에서 물러난 이종운이 감독으로 부임하였다.[10] 여담으로, 경남고 - 부산고 총동창회간 선수 스카우트 관련 묵약이 있었다고 한다. 연계 학교인 경남중과 부산중 선수를 부산고와 경남고에서는 스카우트 하지 않는 것. 그러나 이것이 깨진 사례는 서동환. 부산중의 서동환은 개성중으로 전학 후 경남고에 진학했다. 그 다음해, 부산고에서는 경남중 에이스 이상화를 스카우트하려 했으나 이상화는 경남고로 진학하였다. 2019년에 경남중 선수가 부산고에서, 부산중 선수가 경남고에서 뛴 것을 쉽게 볼 수 있다.[11] 중앙대를 졸업하고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였으나, 2년 만에 방출. 2017년부터 중앙대 투수코치로 있다.[12] 정확하게는 9회말에 오심이 일어나서 군산상고의 김봉연이 1루심 김옥경을 손으로 밀치며 퇴장당했고 이에 불복한 군산상고가 경기를 거부하며 몰수패 당했다.[13] 참고로 동대문상고는 8강에서 만난 부산고에게 12:3으로 콜드게임패배를 기록한다.[14] 때문에 두 학교 간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벌어질 땐 양 학교 간의 응원전이 매우 치열하다.[15] 그리고 강민호는 안중열과도 비교당했다가 강민호 부상 기간 동안 안중열의 밑천이 다 드러나면서 이런 의견은 쏙 들어갔다. 심지어 안중열은 진골 부산고 출신이다.[16] 이 두 형제는 전부 동생이 고졸, 형이 대졸이라 동생이 형보다 먼저 프로에 데뷔했다는 특징도 있다.[17] 아버지와 똑같은 우완 투수로, 2020년 기준 경남고등학교 2학년이다.[18]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 순.[19] 프로 입단 후 김주현으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