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락

 

李樂
생몰년도 미상
1. 소개
2. 연의
3. 창작물에서


1. 소개


후한백파적의 수령.
195년(흥평 2년) 11월, 장안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던 헌제 일행은 이각, 곽사, 장제의 습격을 받았다. 이를 호위하던 양봉동승은 큰 피해 끝에 간신히 조양간(曹陽澗)에 닿아서는 하동군에 있던 옛 백파적 이락, 한섬, 호재, 그리고 남흉노의 거비(去卑)[1]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힘을 합쳐 이각 등을 물리치고 수천 명을 참수하였으나 큰 피해를 입었다.
비록 이각에게 추격당해 어가는 수십 인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동군 대양현(大陽縣)을 거쳐 안읍현(安邑縣)에 당도하였다. 하내 태수 장양을, 하동태수 왕읍(王邑)이 비단을 공급하였다. 한섬, 호재, 이락은 모두 장군직에 가절(假節)을 받았으며 삼공처럼 개부하였다.[2]
196년(건안 원년), 동승과 장양은 환도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양봉과 이락은 미온적이었다. 5월, 양봉, 이락, 한섬도 환도에 동의해 낙양으로 길을 나섰다.[3] 호재와 이락은 하동군에 남았다. 이후 하동에서 병사한다.

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도 헌제를 호위해 군사를 거느렸지만 위양 땅에서 군사들이 곽사군이 뿌리는 물건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격파되었으며, 황하 기슭에 이르자 쪽배 한 척을 찾아 나룻배로 삼아 헌제를 배에 태웠다. 검을 들고 뱃머리에 서면서 배에 타지 못한 자들이 배의 밧줄을 잡아 당기자 검으로 그들을 찍어서 물 속에 떨어뜨렸다.[4]
안읍으로 수도를 정할 때 헌제를 양봉의 영채에 머물게 했으며, 한섬과 함께 서명해 건달, 부하 장수, 무당의사 등을 추천했다. 이후 낙양으로 헌제를 모시고 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승, 양봉이 헌제를 모시고 낙양으로 떠나자 이각, 곽사에게 사람을 보내 헌제를 납치하자고 약속했다가 자신의 군사만으로 추격했지만 서황에게 죽었다.

3. 창작물에서


[image]
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하고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14에서 오랫만에 복귀했다. 삼국지 3에서 두음법칙의 잘못된 적용 때문에 이악으로 오역되어 있다.
삼국지 3에서 능력치는 육전지휘 62 수전지휘 27 무력 80 지력 54 정치 47 매력 39다. 무력이 80이나 되지만 수전과 매력이 개판이라 무력이 높은 편인데도 장군은 되지 못한다.
삼국지 14에서도 이락이 아닌 이악으로 불리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 57, 무력 70, 지력 36, 정치 13, 매력 17로 일러스트는 수염을 기른 모습에다 투구를 쓴 채 두 손으로 창을 들고 고함치면서 이각군과 분투하고 있다. 개성은 공명, 적도, 탐욕, 주의는 아도, 정책은 운반개발 Lv 3, 진형은 장사, 전법은 화시, 견제, 친애무장은 한섬, 혐오무장은 동승이다. 생년은 160년, 몰년은 196년까지 되어있다.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한섬, 호재보다 전투력이 강하다고 언급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호재와 세트로 등장해 얏타맨의 악당 보얏키, 톤즈라로 나왔다. 둘 중 한 명만을 지칭하는 장면이 없어서 누가 이락이고 호재인지는 알 수 없다. 장사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장사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한섬, 호재와 함께 차지했다.
장사 전투 편에서는 양봉의 명을 받고 서황이 시간을 끄는 사이 황제의 어가를 급습하여 황제를 가로채려 시도하나 만총에게 저지당한다. 그럼에도 만총을 상대로 호재와 함께 2:1로 나름대로 호각세를 이어가지만 도중에 만총이 허저와 바톤터치를 하면서 호재와 함께 허저에게 순식간에 정리당한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헌제를 호위하고 가다가 이각, 곽사에게 헌제를 남기려고 했지만 동승이 사람을 보내 그 사실을 알아낸 뒤에 또 다시 사람을 보내 처치하게 하면서 이락은 살해당했다.

[1] 《후한서》동탁전, 《삼국지》무제기, 원굉(袁宏)의 《후한기》에서는 우현왕. 《후한서》헌제기에서는 좌현왕[2] 이때의 관직명은 사서마다 제각각이라 전모를 알 길이 없다. 《삼국지》 동탁전에서는 한섬이 정동장군(征東將軍), 호재가 정서장군(征西將軍), 이락이 정북장군(征北將軍)을, 《후한서》 동탁전에서는 호재만이 정동장군을, 《후한기》 28권에서는 호재가 정북장군, 이락이 정서장군, 한섬이 정동장군을 받았다고 하였다.[3] 《후한기》29권[4] 정사에서는 동승이 직접 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