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
1. 후한#s-1 말의 군벌
張濟
(? ~196)
후한 말의 인물. 동탁#s-1 휘하의 무장. 무위군 조려현 사람. 아내는 추씨,[1] 여동생은 장강자, 조카는 장수.[2]
192년 1월 동탁의 사위 우보의 명령으로 이각, 곽사와 함께 파견되어 중모에서 주준#s-1을 격파했고, 이어 연주 진류군과 예주 영천군의 여러 현을 공략하며 약탈을 자행했다.
192년 4월 동탁이 왕윤 등에게 암살되자, 이각·곽사·번조 등과 함께 연합 세력을 이루어 장안을 공격했다. 이들은 장안을 접수하는데 성공해 동탁 살해의 주모자인 왕윤을 죽이고 헌제를 납치했다. 장제는 이때 헌제에게서 진동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표기장군 평양후로 다시 임명되었으며, 홍농에 주둔했다.
후에 장안에 있던 이각과 곽사가 헌제를 놓고 패권싸움을 벌이자, 장제는 홍농에서 병력을 이끌고 장안에 들어가 둘을 화해시키고는 헌제를 홍농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곽사는 변심해 헌제를 미 땅으로 데리고 가버렸으나, 양봉에게 격파된다. 양봉은 동승#s-2과 함께 헌제를 데리고 낙양으로 가는 여정에 오른다. 이때 장제는 이각·곽사와 함께 양봉을 추격해 양봉을 궁지에 몰아넣지만, 헌제의 중재로 일단 물러난다. 하지만 결국 황제를 잃은 셈이 되어 이들 세력은 목적도 없이 공중에 뜬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후 장제는 군량 부족으로 형주 북부를 약탈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그의 군세는 조카인 장수가 이어받게 된다.
후에 조조는 장수의 항복을 받아낸 후 장수의 군영에 머물 때 미인인 장제의 처를 첩으로 삼았으며, 이는 장수를 분노하게 만들어 장수가 다시 조조를 공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조조는 아들 조앙#s-1·조카 조안민·충복 전위를 잃고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위 내용으로 미루어 장제는 이각·곽사의 휘하 세력이라기 보다 둘과는 어느 정도 독립된 세력으로 볼 수 있으며, 일찌감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각·곽사의 무리에 비해 장제의 군세는 조카 장수가 계승해서 발전시켜 하나의 독립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건 장제보다는 장수의 능력으로 보이지만...
현대에 장제 부부의 묘가 발굴되었으며 출토물 중 청동마가 유명하다.#
1.1. 미디어 믹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독립 세력이라기 보다는 이각 휘하 장수로 등장하며, 지력이 10~20대인 우매한 무장 스타일의 이각·곽사보다는 지력이 높아 50대 전후를 마크하고 있으나, 무력은 70 전후로 조금 낮게 나온다. 통솔력은 근소하게 장제가 높다. 이 두 사람이 그냥 무력형이면 장제는 지력, 정치력, 매력도 평균 수준 이상인 밸런스형 무장이다.
삼국지 3에서는 사도구 중에서 유일하게 장군이 될 수 있는 능력치를 달고 나온다. 웃긴건 그 능력치를 후대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그의 조카인 장수가 가져가버린 것이다.
삼국지 5에서는 무력 70/지력 63/정치 66/매력 72의 능력치에 특기는 화계, 내분, 고무, 복병, 분기, 난사이며 기본 진형은 학익, 구행. 다른 시리즈에 비해 능력치 배분이 후한 편으로 모든 작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지력 60대, 매력 70대를 찍는다.[3] 무쌍이 없어서 잉여인 분기를 제외하면 특기들이 대부분 수비에 쓸만해서 약소 군주가 영입할 경우 꽤 좋은 무관으로 굴릴 수 있다. 특히 189년 시나리오에서는 초반부터 용명이 3000이상이기 때문에 초기 시나리오라 경험이 부족한 다른 장수들에 비해 많은 병력(13000명)을 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70/지력 48/정치력 56. 돌진, 충차를 보유하고 있고 노병계, 궁기병계 병법은 없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2/무력 64/지력 55/정치력 57/매력 65에 특기는 돌격, 기습, 역공 3개로 밸런스형. 이각, 곽사 패거리 중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장수다. 내정 관련 특기는 없지만 이각 세력에서는 정치 높은 무장이 가후 정도인지라 내정에서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4] 부인으로 추씨를 시작부터 두고 있어 다른 이와의 결혼은 에디터를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동탁 세력에 속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66/지력 52/정치력 53/매력 55로 전작에 비해 크게 너프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각, 곽사, 번주보다 좋다. 특기는 없고 병과도 기병적성만 A이고 나머지 병과적성은 C인지라 전투만큼은 이각, 곽사보다 안 좋을 수도 있다.[5] 영웅집결에서는 조카의 부하로 설정되었다.
삼국지 12에서는 대우가 좋아져서 원래 이각의 부하로 나오는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는 이각을 떠나 독립세력으로 등장한다. 11까지 군웅할거 시작 연도는 194년 6월인데 12부터는 195년 1월로 나오기에 이 시점에서는 장제가 독립한 시기이기 때문. 일러스트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으로 등장하여 왼손에 허리를 댄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따봉을 한 상태에서 턱수염에 갖다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완에 위치하였고 바로 옆에 조조가 있기 때문에 멸망 1순위 세력으로 꼽힌다. 그래도 수하에 조카랑 가후가 있고 완의 재야를 등용하고 초반에 조조와 싸움 걸지 말고 동맹을 맺고 조공을 바치고 장안의 이각을 노리는게 쉬운 길이다. 사실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시작하자마자 낙양을 털면된다. 서황, 양수 등의 인재와 비옥한 영토 및 방어기지를 얻을 수 있고 여기를 점령하고 버티는 자체가 조조의 확장을 견제하는 효과까지 있어서 좋다. 198년까지 버티면 사마의까지 나와서 그때까지 모은 물량과 인재를 바탕으로 서북방을 쓸어버리고 조조와 맞짱뜨면 된다. 영웅집결에서도 드디어 장수의 군주가 되었다. 가후도 데리고 나온다.
삼국지 13에는 195년 군웅할거와 영웅집결에서 군주로 등장한다.[6]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72/지력 55/정치력 53이고 특기는 문화 1(추씨 인연 효과), 훈련 5. 전수특기는 훈련이다. 중신특성은 없고 전법은 창속약화. 이번에는 시작 위치가 완에서 홍농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에는 장안의 이각이 있으니 손쉽게 먹어버리고 다음은 마등을 노리자. 이번에는 조조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초반 걱정은 덜게 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0, 무력 66, 지력 55, 정치 53, 매력 60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6 하락했다. 개성은 저돌, 동요, 주의는 패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3, 진형은 봉시, 장사, 전법은 돌격, 견제, 친애무장은 추씨, 혐오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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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 따로 등장은 없지만 조카인 장수세력과 그의 옛 처인 추씨가 등장하면서 언급이나마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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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서는 수염꼬아놓은 털보로 등장한다.
마사토끼와 브레이브 치킨의 마사토끼 삼국지 가후전에서는 가후와 함께 저족에서 붙잡힐 때 있던 사람이자 동탁과 가후를 연결한 사람으로 나온다.
유비 3형제와 엮일 일이 없건만 어째서인지 천지를 먹다 낙양 전투의 보스로 나와 썰린다. 나오지도 않는 이각, 곽사, 번주 보단 대접이 좋으려나...?
삼국전투기에서는 맥도날드 세트의 커피로 등장. 그래서인지 이각, 곽사, 장제, 번조 4인방 중 유일하게 컬러가 다르다. 동료 중 한 명인 번조와 함께 낙양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낙양 전투 편에서는 장안을 공격했다가 식량 부족으로 퇴각하는 마등군을 번조와 함께 습격하는 것으로 나온다. 마등과 한수가 추격을 뿌리치고자 나눠져서 도망치자 장제는 마등을 쫓는데, 마초와 방덕의 활약 덕에 추격은 실패한다. 이후 번조가 이각, 곽사에게 숙청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그들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홍농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나고, 황제의 장안 탈출을 계획한 양표에게 포섭된 무장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이후 이각, 곽사를 화해시킨다는 명목으로 장안에 와서 황제를 빼돌리는 것을 돕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같이 포섭됐던 양봉과 나중에 끼어든 동승과 내분이 일어나게 되고, 양봉과 동승이 손을 잡으면서 또 밀려나게 된다.
이후엔 선성 전투 (1)편에서 군벌들의 근황을 정리할 때 재등장. 황제 구출에 협조했으나 양봉, 동승에게 밀려나 홍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상 빈털털이가 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재기하려고 형주의 양성을 공략하고자 했으나 잘 되지는 않았고, 최후에는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완 전투 편에서는 추씨의 남편이었다고 언급되는 부분에서 1컷 정도 모습을 비춘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이각, 곽사 등과 비슷하나 그래도 지능 면에서는 조금 낫다고 평하였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 나왔을 땐 잘난 거라곤 아내가 미인이라는 것 하나 뿐(...)으로 묘사되고, 그래서인지 아내 추씨도 무능력한 장제보다 조조를 더 좋아한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조카 장수는 굉장히 고평가되었다.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로 자는 자통(子通)이다.
초국 평아현 사람으로 벼슬길에 나와 군의 계리와 주의 별가가 되었다.
208년에 조조가 적벽에서 털려 강릉도 뺏기고 손권이 병사들을 인솔하여 합비성을 포위했다. 그때, 역병이 유행했다. 오직 장군 장희만을 파견하여 단신으로 기병 천 명을 인솔하도록 하고, 여남을 지날 때 그곳의 병사들을 통솔하여 포위망을 풀도록 했는데, 이때 많은 사람이 역병에 전염되었다. 장제는 곧 비밀리에 자사에게 말하여, 정희의 편지를 받은 것처럼 위장하고, 장희가 이끄는 보병과 기병 4만 명이 벌써 우루(雩婁)에 도착하였으니 주부를 보내 정희를 맞도록 하라고 말했다. 세 조(條)의 사자가 편지를 갖고 성안의 수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 중 한 조는 성으로 들어갔지만, 두 조는 적에게 체포되었다. 손권은 그것을 믿고 긴급히 포위했던 진영을 불태우고 달아났으므로 성은 무사했다.
209년에는 조조가 손권의 공격에 대비해 회남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려고 하자 장제는 "백마 연진 때는 이주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무조건 깨지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위험하게 그런 도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조조가 이주를 시키자 그 백성들은 모두 손권에게 도망쳤으며,[7] 결국 조조는 무안해하면서 장제를 단양태수로 임명한다.
이후 백성들이 장제가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는 바람에 장제가 체포됐을 때는, 조조가 '''우금#s-1'''에게 "자통이 이런 일을 할리가 없습니다!"이라고 하면서 장제를 풀어주고 승상주부서소속으로 임명한다.
219년에 조인#s-1이 관우에게 포위당하면서 방덕이 죽고 우금이 항복해 조조가 천도를 논의하고 있을 때, 사마의[8] 와 함께 "우금 등은 홍수에 빠져 죽었는데, 결코 공격하여 싸운 과실이 아니므로 국가의 원대한 계획에 손해될 것은 많지 않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겉으로 친하지만 속으로는 소원합니다. 관우가 생각한 바를 얻는 것을 손권은 반드시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파견하여 그 배후를 습격하도록 권하고, 장강 이남지역을 분할하여 손권을 봉하도록 허락하면 번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라고 하여 손권에게 장강 이남을 주면 아마 유비를 배신할 거라는 조언을 해 손권은 이것을 듣고, 즉시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여 공안과 강릉을 습격하였으며 관우는 결국 붙잡혔다.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장제는 상국장사(相國長史)로 전임되었다. 제위에 오른 후에는 또 장제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 동중낭장(東中郎將)이 되도록 했다. 장제가 수도에 남기를 청했으므로 조서를 내렸다.
장제가 만기론(萬機論)을 올리자 문제는 매우 좋아했다. 수도로 들어와 산기상시가 되었다. 당시 조서가 있었는데, 조서는 정남장군(征南將軍) 하후상에게 내려졌다. 장제가 수도에 도착하자 조비는 그에게 물었다. 온 천하의 풍속과 교화는 어떻냐 물었는데 장제가 "신은 어떤 것이 선정(善政)인지 보지 못했고, 단지 망국의 소리만을 들어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응담하니 조비가 화를 내면서 이유를 물었다. 장제는 이어서 말했다.고조는 노래를 만들어 ‘어떻게 용맹한 무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까?’라고 했다.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현명한 신하들은 변방지역을 지켜야만 된다. 만일 어떤 일도 없다면 패옥을 울리며 돌아와도 늦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조비는 노여움을 풀고, 즉시 사람을 보내 이전에 하후상에게 보냈던 조서를 찾아 갖고 오도록 했다.무릇 ‘위엄을 행하고 은혜를 편다(作威作福)’는 것은 상서에 보이는 교훈적인 말입니다. ‘천자에게는 농담의 말이 없다(天子無戲言)’라는 것은 옛 사람들이 신중히 했던 것입니다. 오직 폐하만이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222년에 이릉전투 후 조인과 함께 주환을 치러갔을 때 주환이 일부러 보인 약점을 공격하러 한 조인을 만류하나 결국 조인은 패했다. 조인이 죽자 조비는 다시 장제에게 동중낭장자리를 내려 조인의 군사를 통솔하게 하지만 곧 상서로 임명해 다시 수도로 불러들였으며,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장제는 관내후의 작위를 받는다.
228년에 주방#s-2의 거짓항복계에 조휴의 군사가 속아넘어가자 장제와 만총은 그를 말렸으나 결국 조휴는 패배했으며, 장제는 중호군 호군장군 산기상시가 된다. 당시 조휴의 군대는 이미 패배하여 무기와 군수품을 버리고 퇴각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오나라는 협석(夾石)을 끊으려고 했는데, 마침 위나라 구원병이 왔기 때문에 관병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장제는 승진하여 중호군이 되었다.
하후현전 주석 위략에 따르면 장제가 호군으로 있을 때 아문(牙門)에서 자리를 얻고 싶으면 1천 필(匹)을 바쳐야 하며, 백인독이 되고 싶으면 5백 필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는데 사마의는 장제와 가까워서 어느 날 그를 불러서 그 사실을 물어 보았다. 장제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하고, 농담으로 낙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1전(錢)이라도 부족하면 안 되는 법이라고 했으며 사마의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후현이 장제를 대신하여 호군이 되었지만 이러한 인사를 막지 못했다가 사마사가 호군이 된 후 이런 폐단을 없었다. 즉, 당시 중원에서는 '필(匹)'과 '전(錢)' 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었으며, 조예 대 사마지 등의 건의로 화폐를 재건하기 위해 오수전이 발행되었음에도 포백(布帛)의 화폐 기능을 제거할 수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당시 중서감 유방과 중서령 손자가 전권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장제가 상소를 올려 이들 중서를 비판했다. 사마표의 전략에 따르면 232년에 조예는 평주자사 전예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게 하고, 유주자사 왕웅에게는 육로를 이용하여 요동(遼東)을 협공하도록 했다. 장제는 말렸으나 조예는 듣지않고 전예 등이 갔다가 모두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하였고, 조령을 내려서 군사를 철수시켰다.
237년경인 경초(景初) 연간, 밖으로는 정벌과 노역이 계속 이어졌고, 안으로는 궁전을 건축하는 데 힘을 쏟았으므로, 원망하는 남녀가 많았으며 수확이 나빠 곡물도 적었다. 이에 장제가 상소를 올리기도 했으며, 조방#s-1이 즉위하자 영군장군 창릉정후가 된다. 242년에 만총이 죽자 태위가 된다. 당초에 시중 고당륭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교사(郊祀)에 관한 일을 논의하면서, 위나라를 순의 후예로 간주하고, 순을 받들어 하늘에 제사지내고자 했다. 장제는 순의 본성이 규이고, 그의 후예는 전씨이므로 조씨의 선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문장을 지어 고당륭에게 힐문했다.
249년에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킨 고평릉 사변에서 조상#s-2이 밖에 있어 잡지 못하자 장제는 사마의가 조상을 면직시키려 할 뿐이라면서 안심시키면서 돌아오게 했다. 조상은 이를 믿고 병권을 반납했지만 사마의는 약속과는 달리 조상의 삼족을 멸했고, 장제는 충격을 받아 크게 반발했다. 그 뒤 조상 토벌의 공으로 도향후에 봉해지지만 거절하다가 억지로 받았다. 결국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는지 병에 걸려 얼마못가 사망했으며 태위의 작위는 왕릉이 잇는다.
본래 사마의와 함께 승상부 주부 출신인 장제는 훗날 사마의를 도와 고평릉 사변을 성공시키는 인물이고, 때문에 사마의 일파 사람으로 보는게 일반적이지만... 조상 등이 바보가 아닌 이상 사마의 일파를 태위 직에 앉혔다는 것도 이상하고, 더군다나 쿠데타까지 7년 동안이나 숨죽이고 있었다는 것도 미묘하다. 때문에 장제가 사마의와의 친분과는 별개로 그쪽 파벌이라고 단정지을 만큼의 정치적 연대는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실 조상의 실정이 누가 봐도 자명할 정도로 심각했음과 이후의 그가 보여준 태도를 감안하면, 장제의 쿠데타 가담은 그저 조상 일파가 나라 망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목적도 있을 것이고, 조상의 최측근인 환범과 사이가 나쁜 것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2.1. 미디어 믹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형적인 문관 캐릭터이다. 참모로 활동하며 매번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조언을 올리는 초반부 참모들에 못지 않은 지략을 발휘한 인물인데, 조조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이후에 출현하는 만큼 초반부 참모들에 비해 관심이 떨어져서인지 능력치도 행적에 비해 너무 낮게 나온다. 연의부터 이랬으니 대표적인 무관심의 피해자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왜인지 사마의군으로 나온다. 고평릉 사변때 사마의의 편을 들었긴 했지만 이후 장제 자신의 약속과는 달리 사마의가 조상을 죽여버리자 죄책감에 번민하다 병에 걸려 죽은 것을 보면 조상일파의 막장짓에 반대했을뿐 조씨황실에 대한 충의는 지켰던 인물이었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8/무력 49/지력 81/정치력 80의 훌륭한 책사. 정란, 조영, 혼란,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0/무력 42/지력 87/정치력 77/매력 55에 군사, 명사 특기를 가진 좋은 문관.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반목, 유인, 반박, 논파, 군사, 명사, 간첩. 총 8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8/무력 43/지력 85/정치력 77/매력 56으로 역시 괜찮은 문관이지만, '''특기가 없다'''. 여담으로 일러스트는 턱수염만 기르고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손권을 편지로 낚아서인지 '''파괴력약화'''라는 희망고문의 전법을 가지고 있다. 일러스트는 조조가 천도할 때 막는 장면인데 두 손을 내밀며 가로젓고 있다. 전법과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이긴 하나 창천항로에서의 날카롭고 차분한 모습과 삼국전투기에서의 귀요미한 모습과 비교해보면 괴리감이 상당하다. 사실 이전 시리즈에서도 날카로운 인상의 일러스트였는데... 위관등과 함께 12편부터 오히려 일러스트의 간지가 추락한 대표적인 인물.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4, 농업 4, 교섭 6, 언변 4, 견수 2. 중신특성은 농업중시로 전수특기는 교섭이며 전법은 위보다.
삼국지 14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 일러스트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50, 무력 43, 지력 85, 정치 77, 매력 55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상승했다. 개성은 명경, 지낭, 문화, 안목, 주란, 주의는 예교, 정책은 화계연구 Lv 4, 진형은 안행, 정란, 투석, 전법은 화시, 연노, 진정, 투석, 친애무장은 사마의, 온회, 왕릉, 종회, 호질, 혐오무장은 손자, 유방, 조상, 환범이다. 여담으로 장흠과 같은 성을 가진 무장 중에서 지력이 제일 높다.
창천항로에서는 적벽전투때 얼마전 병사한 유복의 후임자로 온회와 함께 조조에게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첫 등장하며, 적벽이후 합비를 방문한 조조를 맞이하며 본격적으로 등장, 유복의 뒤를 이은 양주자사인 온회의 부관으로, 유복 생전부터 합비를 지킨 인물. 합비 성벽을 시찰하는 조조일행을 안내하면서, 유복의 업적을 열거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인다. 장제의 말을 듣고 조조가 유복의 업적을 찬미하자 조용히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떨며 슬퍼한다. 그 후 장제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조조는 장제가 식견이 뛰어난 인물임을 간파하고 온회의 곁에서 군의 일을 배우게 한뒤에는 자신 곁에 두고 대국을 맡길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후 합비전투에서 손오의 대군을 물리친 후에는 사마의와 함께 전선을 떠나 조조의 곁에서 머무르는 모습이 보인다. 한중 공방전 때는 조조를 따라 종군하는데, 가후로부터 조조군의 일류 책사라면 다들 거쳐간 길이라며 한중에 도착할때까지 보고 들은건 모조리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알지못하는 경지에서 책략을 내라는 명을 받는다. 한중에 도착해서는 유비군이 주둔하고 있는 산을 보고 바들바들 떨면서 '이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가후에게 유비군을 공격하려는 조조를 말려줄것을 청하는데, 작중 그림에서 보면 그 산은 다른 산과는 다른 불길해보이는 짙은 검은 안개로 뒤덮여있는 것으로 나온다. 가후 등은 이 산을 뒤덮고 있는 것은 도대체 뭐냐며 당황해하는 정도였지만 장제만은 유독 불길한 느낌을 강하게 느끼며 어쩌면 조조가 한중에 들어온 순간부터 적의 계략에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바들바들 떨며 직접 조조에게 한중에 대한 결단(철수)은 하후연이 이미 내리고 있었던게 아니겠느냐고 간하며 조조에게서 철퇴명령을 이끌어내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비의 한중왕 선언으로 이어진다. 장제는 그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이라며 자책하지만 조조에게 그 철퇴는 조조보다 더 조조다운 계책이었다며 오히려 칭찬을 받는다. 한중에서 물러난후엔 사마의와 함께 조조 곁을 지키며, 손권을 이용해서 번성을 공격한 관우를 물리치자는 계책을 진언하는 등 조조의 참모로 활약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권투만화 KATSU!의 주인공 사토야마 카츠키로 나온다. 전형적인 츳코미 캐릭터. 하지만 그가 하는 진언은 위 소개대로 거의 들어 먹질 않는다. 아다치 미츠루의 캐릭터라서 아다치 작품의 패러디까지 담당. 그 밖에는 합비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타이틀 컷에서는 듣는 이를 청개구리로 만들어 버리는 청개구리 엄마 같은 인물(...)이라고 소개됐다.
강릉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유복#s-2에게 크로스 게임의 대사 160km를 던지라는 유언을 듣는다.[9]
안풍 전투 편에서는 손권의 공세를 어떻게든 막아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1컷 등장. 위의 160kg 투척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합비 전투 편에서는 제1차 합비 전투에서 정사의 내용대로 장희가 이끈 대군이 좀처럼 올 생각을 안 했음에도 구원군으로 곧 온다는 내용을 거짓으로 유포해 손권을 낚아 철군시켜 깔끔하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이를 알아버린 손권이 다시 쳐들어오면서 진정 여기서 끝이라며 체념하려던 찰나, 첨산에서 막 전투를 마친 장료가 바로 합류하면서 활약하는 연의의 내용이 전개된다.
장료 덕분에 손권의 대군을 한 번 막아낸 후, 태사자가 심어 놓은 과정 등이 합비성 내부에서 불을 놓으며 혼란을 일으키자 즉각 장료에게 보고해서 대응하게 하기도 했다.
이문열/이희재 만화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우금을 투항시키고 방덕을 참수했을 때 조조가 수도를 옮길 걱정을 하자 사마의와 함께 비가 관우를 도와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며 간언을 하는데, 이때 나오는 장제가 장수의 삼촌 장제로 나오는 오류가 있었다.
3.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동오의 마지막 승상으로 자는 거선(巨先)이다.
양양 사람으로 어려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중대한 임무를 맡았지만 시세에 영합해 황제의 좌우를 보호하자 여론에서는 그를 비웃었다고 한다.어려서 명석하고 이치가 있어, 손휴 때 둔기교위가 됐다.
위가 촉을 정벌해, 오나라 사람들이 장제에게 말하길 사마씨가 국정을 다스린 이래로, 큰 재난이 자주 이르러, 지력이 비록 넉넉해도, 백성은 아직 복종하지 않고 있다. 지금 다시 그들의 자력을 다하여, 파촉을 원정하며, 병사는 힘들고 백성은 피곤하나 가엾게 여김을 모르니, 무엇을 할 겨를도 없이 패할 것인데,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장제는 조조가 공이 중국을 뒤덮고, 위엄이 사해를 뒤흔드나, 속임수를 숭상하고 계략에 의지하며, 정벌이 그치지 않아, 백성들은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나, 그의 덕은 품지 않았고 조비, 조예 부자가 참혹하고 지독한 짓을 계속하여, 안으로는 궁실을 일으켰고, 해마다 안정을 얻지 못했으니, 인심을 잃었으며 반면 사마씨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배풀어 민심이 그들에게 돌아가 수춘 3반과 조모의 죽음으로도 사방에선 움직임이 없으며, 위세와 무력이 성하여, 근원은 견고해졌고, 민심이 복종하여, 간사한 꾀가 세워졌다 했다. 지금 촉은 환관이 국정을 독점해 나라가 엉망이고 무력을 남용해 백성은 피곤하고 사졸은 지치고 밖의 이익을 다투며, 수비를 정비하지 않았으니 사마씨가 이길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비웃었으나 과연 그 말대로 되었다.
269년에 승상인 육개가 손호에게 추천했지만 이를 거부하면서 일가족 전체가 추방되었으며, 279년 8월에 승상이 된다.[10]
280년에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심영, 손진, 제갈정 등과 같이 싸웠으며, 심영이 말하길 우저에서 진의 수군이 내려 올것이니 기다렸다가 왕준#s-1이 이끄는 수군을 격파하자고 얘기하자 장제가 오는 어차피 망할거고 촉에서 온 병사가 여기에 이르면 다시 정돈을 못할거 같으니 지금은 강을 건너 결전하고 싸워 사직과 함께 죽던지 이긴다면 격파당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장강을 건너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해 맞써 싸우기로 한다.
3월에 왕혼#s-1의 부장인 장교를 궁지에 몰아 항복시켰으며, 제갈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였다. 마침내 강을 건너 싸우나, 오군이 대패했다.
주준#s-2의 군사와 싸우다가 장교가 후방을 공격해 오군이 혼란에 빠지면서 제갈정이 5,6백명과 불리해지자 달아나면서 합류시키려고 했는데, 사람을 보내거나 제갈정이 직접 찾아옴에도 장제가 눈물을 흘리며 어렸을때 경의 집안의 승상[11] 께 뽑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는데 어름난 어진 이가 알고 돌아보신것을 저버릴까 두렵고 지금 사직을 위해 죽겠으니 다시 부르지 말라했다. 제갈정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놓아주고,제갈정이 100보를 도망치고 그를 돌아보니 이미 장제는 사망했다고 한다.
3.1. 미디어 믹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지력, 정치력, 매력이 우수하고 무력은 낮다. 통솔력은 삼국지 9에서는 78까지 찍었지만 이후 너프를 당했다. 명색이 오나라 승상인데 안습이다. 워낙 등장 시기가 늦다보니 대체로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등장 도시는 양양.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78/무력 45/지력 80/정치력 78의 능력치에 병법 7종을 보유. 분전, 제사, 연사, 누선, 투함, 정란, 고무를 포함하고 있는 데다 지력도 높으니 전쟁 시 쓸모가 많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49/지력 81/정치력 78/매력 83에 특기는 무려 10개.(농업, 기술, 보수, 화시, 일제, 진정, 고무, 반목, 항변, 제독) 화시, 일제 특기가 있어 전투에서도 쓸 만하고 내정쪽으로도 보수는 무력이 낮아서 잉여지만, 농업, 기술 특기가 있어서 등장 시기를 감안하면 여러모로 좋다.
삼국지 11에서는 능력치 통솔력 67/무력 43/지력 80/정치력 78/매력 83로 통솔이 67까지 떨어졌다. 특기는 불굴#s-2. 하지만 통솔력과 무력이 꽤 낮기 때문에 전장에서 써먹기가 애매하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나라 최후의 결전에서 죽기를 각오한 모습으로 자세히 보면 검을 들고 서 있다. 여기에서는 통솔력 이 69로 전작보다 소폭 올랐다. 지력/정치가 80 내외라 내정용으로 굴리기 괜찮은 편. 전법은 공격약화.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3, 농업 4, 문화 3, 설파 5, 언변 3. 중신특성은 농업중시로 전수특기는 설파이며 전법은 위무다. 일러스트는 문관형인데 정작 무관형으로 분류되어 있고 무기도 도검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43, 지력 80, 정치 78, 매력 83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불굴, 담력, 주의는 왕도, 정책은 지세연구 Lv 4, 진형은 어린, 방원, 전법은 연노, 철벽, 업화, 구축, 시람, 친애무장은 제갈정,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카미나#s-1로 등장.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이 인물까지 출연함으로써 삼국전투기에는 3명의 장제가 전부 다 출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좀 더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인지 장교와 관련된 삽질은 빠졌다.
4. 후한 말의 관료
張濟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원강(元江). 장희#s-1의 형, 장오#s-1의 후손.
여남군 세양 사람으로 태상을 지내다가 179년 3월에 사공이 되었으며, 182년에 영제가 공경들에게 조서를 내려 자사, 2천 석 관리들 중에 백성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말이 떠도는 자를 적어 올리게 했다.
장제는 허욱과 함께 환관과 영합해 뇌물을 받아서 변방의 먼 곳의 작은 군에서 백성들을 교화한 26명의 관리를 탄핵했는데, 진탐이 공경이 들추어낸 것은 사사로운 당파에 따른 것이라 하자 영제는 장제, 허욱을 꾸짖고 연루되어 불려온 사람을 모두 의랑에 임명되었다. 184년 여름 4월에 병으로 면직되었다.
4.1. 미디어 믹스
드라마 영웅조조에서 채옹과 진탐이 낙양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소문이 떠돌아 영제가 삼공을 시켜 조사하라고 한 것에 대해 나눈 대화에서 그 삼공 중 한 사람인 장제는 허욱과 함께 소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장본인, 환관 무리의 직계, 이번 소문의 주인공, 부정을 저지른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자기들 죄를 조사할 리 없다고 언급된다.
조조가 의랑이 되어 구휼금 횡령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환관들과 이 상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조조를 처리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도 진탐의 문하생이 천하에 널려있는 것, 평소에 조조의 명망이 높은 것, 조조가 상소를 올렸으나 백관이 서명한 것은 소임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서 그들을 흔들기 어려운 것 등을 이야기한다.
5. 후한의 3대 황제
장제(후한) 문서 참조.
[1] 다만 이 여성의 성이 추씨라는 건 삼국지연의의 창작이고, 실제로는 성명이 알려지지 않았다.[2] 장제는 장수의 막내 삼촌이다. 원굉의 후한기 29권에 장제가 장수의 계부(季父, 막내 삼촌)라는 기록이 있다.[3] 종합치만 따지면 이각 3인방은 물론 화웅, 이유보다도 좋다. 물론 뒤의 둘과 가치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4] 조카인 장수는 정치력과 매력이 장제보다 낮다. 매력은 그렇다쳐도 정치가 40대밖에 안 된다.[5] 이각과 곽사 모두 기병적성 A에 이각은 창병, 병기적성이 B이고, 곽사는 창병, 극병적성이 B이다.[6] 198년 여포토벌전에서는 장수가 군주로 등장한다.[7] 이게 자그마치 10만 호에 달했다. 인구로 치면 최소 50만, 최대 80~90만까지 추산이 가능하다. 위나라니까 무안해하고 만 거지, 촉나라나 오나라였으면 국가 위기 상황이었다.[8] 위서 장제전에선 사마의와 같이 진언했다고 써 있는데 진서 선제기는 장제의 존재를 지우고 사마의 혼자 진언한것으로 나온다. 당연히 진서의 곡필.[9] 유언을 들었을 당시에는 막판에 치매끼가 온 걸로 치부하고 못 들은 걸로 하겠다며 넘겼지만 나중에 공성전에서 바위 160kg를 던지며 유언을 실행하긴 했다.[10] 육개와 장제 사이에 사서에 기록이 안 되어 있는 승상이 있는 듯하다. 천새 원년(276년)에 만든 <봉선국선비>에서 발견된 내용으로 손호 시대에 '승상 연, 태위 구, 대사도 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성씨는 기록하지 않아서 성은 알 수 없다. 즉, □연.[11] 아마도 제갈량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