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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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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흔히 먹는 도정한 자포니카 종 백미.'''
'''여러 가지 쌀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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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쌀 생산국 및 그 생산량
1. 개요
2. 특징
3. 역사
4. 쓰임새
4.1. 식문화, 생산과 교역
4.2. 한국의 쌀 생산
4.2.1. 한국의 잉여 쌀 재고
5. 품종과 용법
5.1. 야포니카(중단립종, Medium grain, Short grain)
5.1.1. 국내 유통 품종
5.2. 인디카(장립종, Long grain)
6. 기타 이야깃거리
6.1. 쌀을 팔다
7. 관련 문서


1. 개요


보리, 조, 수수 등도 쌀의 일종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멥쌀, 입쌀을 주로 가리킨다.
의 낱알, 정확히는 벼의 낱알의 왕겨와 겨층을 벗겨내어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을 가리킨다. 벼로부터 쌀이 나오는 만큼 두 항목의 내용이 많이 겹친다.
한국어
[1]
한자
(미)
영어
rice

2. 특징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이기작, 삼기작까지 가능해서 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칼로리가 아주 높은 곡류 중 하나다. 과거 쌀 생산을 할 수 있던 나라들이 쌀 농사를 장려한 까닭이 바로 이 단위 면적당 높은 생산력 때문이다. 많은 역사가들은 중국(특히 장강 이남 지방)이 지난 몇천 년간 가장 높은 생산력을 보인 까닭을 쌀에서 찾기도 한다.
옥수수와 함께 전세계 주요 작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전세계 평균적으로 1헥타르당 평균적으로 4.5톤을 생산했으며, 이는 3.3톤인 밀보다 높다. # 물론 농사라는 게 땅에 씨 뿌리면 수확이 쑥쑥 되는 게 아니라 기술에 따라서 편차가 매우 심한 거라서, 쌀이든 밀이든 지역에 따라서 단위 면적당 생산량 편차가 심한 편이라 일괄적으로 명확하게 어느 쪽이 생산성이 더 높다고 말하긴 어렵다. 일단 통계상 세계 평균으로는 쌀이 더 높은 편.
인류 문명이 산업 사회로 접어들기 전의 전근대 농경사회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농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곡물을 생산하고 있는가'''였다. 일제강점기까지 흔히 쓰이던 천석꾼, 만석꾼 등의 용어를 생각해보면 쉽다. 일본도 쌀의 생산량과 보유량으로 다이묘의 위세가 높고 낮음이 결정되었으며 고쿠다카[2]와 같은 단어가 이를 반영한다. 그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쌀 농사를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단백질 함량의 '''절대량은 심하게 적지만'''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다양하여, 가축을 기르기 힘들어서 유럽에 비해 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사랑받던 작물이었다. 건조 백미에는 약 4~6%의 단백질이 들어있으며 현미의 단백질 함량도 비슷하다. 밀은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5~15% 이상, 을 만드는 강력분은 11%~13% 정도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으나 이 중 80% 이상이 글루텐으로 형성돼서 단백가는 쌀 쪽이 더 높다. 그래서 쌀은 오곡 가운데 으뜸이었고, 특히 군대에 공급하는 군량으로 삼기 매우 적합했다.
이렇게 말하면 영양분만 보면 쌀이 밀에 비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농작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벼는 열대 저습성 작물인 까닭에 일조량이 많고, 특히 강우량이 풍부한 곳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물을 엄청나게 많이 소비하는 특성[3] 때문에 따로 과 같은 인공 습지를 만들어 재배해야 하고, 재배할 때는 물을 계속해서 공급해줘야 한다. 날이 조금이라도 가물면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 있었던 탓에 동양의 각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치수사업이 대단히 중요하게 평가되었다. 아울러 잡초와 병충해에도 약해서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쌀 미(米)자를 88(八十八)로 파자해서 농부가 수확할 때까지 88번 손이 갈 정도로 막대한 노동력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4] 물론 물을 적게 먹고 손을 덜 타는 품종도 있지만 이런 품종은 수확량이 적거나 이삭이 팬 이후 수확할 때까지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인구 밀도가 높고 강우량이 풍부한 곳에서 노동집약적인 재배방법에 어울리는 작물로, 한국지리 시간에 나오는 집촌, 산촌에서 집촌이 발달하는 지역 중 논 농사를 짓는 지역이 포함되는 게 이러한 이유다.
쌀 농사가 가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단점은 에 있는데, 항상 물을 채워 놓아야 하니 여기서 여러 해충이나 질병이 발생하기 쉽다. 한국이나 일본은 그리 따뜻하지 않은 온대기후임에도 기온의 연교차가 매우 심하므로 여름 한철의 높은 기온을 이용하여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이 문제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연중 고온다습한 중국 남부나 동남아, 인도 등 아열대기후/열대기후지역은 일 년 내내 논에 물을 채워서 삼모작, 사모작을 했기에 장구벌레 등 해충이나 병원균이 서식하기 최적의 장소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말라리아뇌염 등의 곤충 혹은 수인성 전염병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일각에서는 쌀농사를 짓는 문화권이 집단주의에 가깝고, 밀 농사를 짓는 문화권이 개인주의에 가깝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5]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라는 책도 있다. 하지만 저자인 권삼윤은 책 내부에 자신은 사회학자가 아니며 책의 내용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한 것은 아니고 현상만을 적어두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이라고 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에 가깝다. 먼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을 현실 사례에서 엄밀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존재하며,[6], 설사 구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미권이 아닌 많은 밀 농사 문화권 지역 역시 다양한 형태의 집단주의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7] 즉, 이와 같은 해석은 '밀=서양 -> 개인주의', '쌀=동양 -> 집단주의' 라는 이분법적, 문화적 도식에 기반하는 동시에 그것을 다시 강화하는 근거가 미약한 가설이다. 어느 사회나 일반적으로 농경사회에서는 보다 집단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산업사회로 접어들고 도시가 주된 삶의 터전이 되면서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어떤 사회의 성격은 주식의 종류와 그 영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인 요인의 복잡한 조합의 결과물이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3. 역사


벼의 재배는 약 1만년 전에서 6천년 전 농업이 시작되며 이루어졌다. 특히 벼의 생육에 적합한 더운 기후와 높은 강수량을 가진 아시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벼 농사가 발달하였으며, 자포니카(Japonica) 종은 중국 양쯔강 유역의 상산 유적과 허무두 유적 주변에서 기원전 8천년 경 재배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5천5백년 경에는 인디카(Indica) 종이 분화하여 인도로 이후 기원전 4천년경에는 동남아시아 일대로 전파되었다. 기원전 1천년을 전후하여 캅카스에도 상륙하였다. 서아프리카에는 기원전 1500~800년 사이에 전파되어 니제르 강 삼각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에 의해 중세 초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에 중동 개량종 쌀이 보급되었으며 이후 서기 15세기부터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경우 빙하기 이후 근세까지 냉대동계건조기후가 나타났던 탓에 쌀의 재배에 매우 불리하였으며, 청동기 시대에 벼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잡곡의 생산량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편 2003년,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1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벼 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것이라는 학계 주장이 나왔다.'''[8] '빙하기였을 당시 기후에서 벼가 발아할 수 있는가?'라던가 '재배벼인가, 야생벼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전자는 냉해실험을 통해 발아할 수 있었다고 밝혀졌으며 후자는 그 중간 단계인 '순화벼'에 해당된다고 밝혀졌다. 다만 유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벼와 유사성은 조금 낮다고. 콜린 렌프류의 《현대고고학의 이해》에서는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하였다. 농경 사회의 증거인 세계 최초의 볍씨(1만 3000년~1만 5000년 전,구석기 시대)가 흥수아이와 같은 지역인 충청도 청주시에서 발굴되었으며 미국의 지오크론 연구소와 애리조나대와 서울대 AMS 연구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외4개 연구기관에서 흙과 볍씨, 토탄 등을 시료로 해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교차검증 하였으며 모두 동일한 결과를 얻어냈다. 볍씨가 많이 출토된 2토탄층의 화분 분석 자료는 ‘상대적으로 온난 습윤한 저습지에 형성된 토탄층’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나무분석 자료를 봐도 오리나무-밤나무 류의 낙엽활엽수가 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온난한 기후였던 알레뢰드/뵈링 간빙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소로리 토탄층의 보존’을 일축해버린 문화재위원회의 처사가 두고두고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청주시 소유지가 된 보존지역이 약간 남아있지만 다른 공장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제대로 된 토탄층 발굴은 쉽지 않다. 적어도 10~15m 이상의 깊이에 200㎡(10×20m) 면적을 발굴하기는 턱없이 좁다. 이융조 교수는 “폐교된 인근 소로분교를 박물관으로 조성하고 소로리 주변 지역의 농지에 대한 학술발굴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더욱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위 서술한 콜린 렌프류의 《현대고고학의 이해》에서는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하였지만 여전히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중국 및 메콩강 유역 동남아 쌀 등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된 문장은 책 전체에 단 하나 "(앞서 서술한 중국 쌀보다) 더 빠른 시기인 13000년 BC 한국(Korea)에서 순화 벼가 발견됨"이라는 설명뿐이다. 억지로 찾아봐도 세계 지도에 중국과 함께 그려진 쌀 그림 하나 뿐이다.
안승모 교수는 “소로리와 비슷한 중부지역 토탄층에서 학술발굴이 계속 이어져서 추가적인 자료를 확보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아닌게 아니라 달랑 소로리 한 곳의 자료 뿐이니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소로리와 비슷한 환경의 다른 지역 토탄층들을 발굴해서 관련 유적을 충분히 확보하여 논란을 해소하고 더 깊이 있는국제적 고고학적 성과로 인정 받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 하다. 출처
쌀에 대한 언급이 있는 문헌들, 예를 들면 《산해경》 같은 서적을 보면 동양에서 쌀은 오래전부터 단순한 식량의 위상을 넘어 제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곡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을 때 쓰는 떡이나 술, 식혜 등등은 모두 쌀을 사용해 만드는 제물이다. 지금의 인식과는 달리 고대 이래 술을 빚은 가장 큰 목적은 사람이 음용하기보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고[9], 동양권에서 제사에 쓰는 술은 대부분 쌀로 빚었다.[10] 쌀의 재배는 이러한 제사문화와 그 역사를 함께 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며, 서양에서의 포도 재배와 신앙 문화와 비교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4. 쓰임새


쌀은 보리,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적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현대에서는 쌀 생산량 1위는 중국, 2위는 인도가 차지하며 세계 총 생산량의 약 92%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아시아 사람들이 먹고 있다. 단, 의외로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이집트가 1위를 차지한다.

4.1. 식문화, 생산과 교역


1위
2위
3위
4위
5위
'''생산국 상위 5개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수출국 상위 5개국'''
태국
베트남
미국
파키스탄
인도
'''수입국 상위 5개국'''
필리핀
사우디
코트디부아르
말레이시아
이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11], 마다가스카르, 브라질[12], 콜롬비아 서북부[13], 베네수엘라 서북부[14]의 주식이다. 중동 지역에서도 빵이 주식이지만, 쌀도 재배되기 때문에 볶음밥이나 죽으로 해 먹기도 하며, 서아프리카, 동부 아프리카에서도 먹는다. 주로 이나 으로 많이 만들어 먹으며, 주정을 얻어 을 빚기도 한다. 쌀가루로 만들어서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쌀로도 빵을 만들 수는 있으나 정작 쌀빵은 크게 보편화되지 않았다. 쌀은 밀이나 보리 등에 비해 글루텐이 적어서 빵 반죽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초벌 떡을 이용하거나, 밀가루 반죽에 쌀가루를 섞는 방법을 주로 쓴다.
한국에서는 한국 요리 문서에도 나와 있듯 "식사 = 을 먹는다"라는 '''특정 곡물을 먹는 행위가 식사 전반을 나타내는 행위'''가 될 만큼 쌀에 모든 식문화가 집중된 특이한 구성을 보인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표주록》에서는 홋카이도에 표류한 조선인이 아이누인에게 식사를 얻어먹으면서도 아이누인이 밥을 짓지 않는 것을 보자 '사람은 당연히 곡식 밥을 먹을진대 이자들은 사람인 것 같으니 당연히 밥을 먹겠지. 지금 밥을 하지 않는 건 우리에게 밥을 나눠주기가 아까워서 쌀을 아끼느라 참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메시[15]/판[16]이라는 말을 식사 전반을 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고구려, 부여, 발해 등 쌀 농사를 짓던[17] 농경민족들이 철수한 중세 이래로는 만주 지방에서 쌀 농사가 힘들었었지만 조선인들이 재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재배 상한선이 북만주까지 올라갔다. 얼마나 근성으로 재배했는지, 물이 있는 곳에는 메기와 조선인이 있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조선 후기 농법에서 '건앙법'이라는 벼농사 재배법이 있는데 이는 볍씨 단계에서 발효시킨 돼지 오줌에서 얻은 비료를 투입하여 못자리에서 기르고 나중에 모내기하는 재배법이다. 이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 벼가 냉해에 강해진다. 이렇게 해서 북위 50도 선까지 벼농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아울러 중국에서도 이 방식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대 중국 화북 지역에서 벼농사를 많이 재배하지 않은 것은 당시 주식이 쌀이 아니라 밀이었기 때문이다. 지리, 기후적 특성상 황무지나 다름없었어서 쌀 농사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중앙아시아에서도 스탈린 때문에 연해주로부터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피똥을 싸가면서 기어코 벼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UAE엔 2018년 3월에 열린 정상회담 때문에 국내 연구진이 벼농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동아시아 ~ 남아시아의 주식인 것과 동시에 세계적인 주식이자 옥수수, 보리와 더불어 중요한 생산물 중 하나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는 물물거래의 수단으로도 이용됐는데, 일부 지역에선 지금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쌀을 수출하는 태국에선 외환위기로 인해 화폐가치가 폭락하자, 전투기나 석유를 수입하는 거래수단으로 쌀을 이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쌀을 통한 물물거래는 화폐경제의 발달과 쌀의 부피와 무게라는 물리적인 제약으로 인해, 과거와 대비해 상당히 드문 편이다.
밀이나 옥수수와 달리 대부분 생산지가 주요 소비지라 쌀의 국제적 교역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다만 20세기 말엽부터 미국에서 쌀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아시아 시장에 팔려고 압력을 넣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다른 곡식들보다 몇 배나 많은 물을 먹는다고 까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GDP의 0.02%를 생산하기 위해 7%의 국가 물 사용량을 써야한다. 주로 미시시피 강 하구와 캘리포니아에서 재배하는데, 특히 캘리포니아가 문제다. 캘리포니아라고 하면 건조 지역이라고 쉽게 이해하기 쉬운데, 캘리포니아는 남북으로 상당히 긴 영토를 가지고 있고 북쪽과 남쪽의 기후는 전혀 다르다. 캘리포니아의 상징처럼 알려진 건조 기후는 남쪽 남가주에만 해당되는 내용이고 오레곤에 가까운 북가주는 습도도 높고 비도 많이 오고 수량도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인 calrose는 샌프란시스코보다도 북쪽에 위치한 북가주 지역에서 생산된다. 문제는 이 수량을 사막과도 같은 남가주 지역에 나눠줘야 한다는 거… 막상 쌀을 생산했다 해도 남부에서 먹는 잠발라야 등의 케이준 요리를 제외하면 내수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즉 소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수출을 위한 행위라 외국에서도 까인다. 그만큼 쌀은 아시아 국가의 인구 유지와 생산력을 위해 자급하는 곡물로서 중요성이 강했다.
한국에서는 쌀까지 개방하면 농가 전체가 파탄난다는 인식과 현실 때문에[18] 규제까지만 받아들였고, 어떤 농업 협상에서도 '쌀은 아니다.'는 명제만은 분명히 한다. 실제로 쌀 시장 자체는 열려 있는데#, 한국은 그동안 쌀 수입 개방을 하는 대신에 의무수입으로 버텨 왔다. 그러나 점차 줄어드는 쌀 소비와 반대로 쌀 의무 수입량은 증가해, 이번에도 반대하면 이전에 비해 2배가 넘는 양을 수입해야 한다고 예상했으므로 개방이 불가피했다.
다만 수입쌀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데, 관세를 매길 때 고려되는 기준 시점이 20년 전이다. 지금 수입쌀과 국내쌀의 가격이 3배 정도 차이가 있는데, 그 당시는 5배가 넘었으므로 관세를 400%나 매길 수 있는 것이다. 농민들이 걱정하는 것도 단순 쌀개방이 아니라 나중에 관세가 줄어들어 외국 쌀이 더 싸지는 현상이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 관세를 얼마나 매길 것인지 정확히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관세율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면 협상에서 불리해지므로 정확한 언급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관세율에 대한 공식 발언은 협상이 끝난 시점이 될 듯하다. 결국 514%로 확정되었다. 이는 수입쌀의 가격 경쟁력을 거세시키다시피 한 살인적인 관세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완전 개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정도의 관세 부과가 가능했던 건 의무수입물량을 협상 진행 당시의 의무수입물량이었던 약 40만 톤으로 고정하고 초과분에 한해서 저 살인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을 조금 비틀어 40만 톤 중 38만 톤을 협상 대상국에게 할당하는 제안이 승낙되어 나름의 윈윈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쌀 시장 개방을 결사저지하는 이유로 '식량 안보'가 꼽히기도 한다. 한국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준 전시상태이며, 3면이 바다라서 잠재 적국[19]의 해상봉쇄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만일 식량이 자급되지 못한다면 전쟁 발발과 동시에 사실상 패배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식량 안보에 민감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후 문제로 한반도에서 대량 재배가 불가능한 밀이야 어쩔 수 없어도 쌀은 항상 잉여가 남을 정도로 재배 물량을 유지하는 것이다.[20] 국내 농업종사자의 숫자가 300만명도 안되는 점을 고려하면링크 농민 표심은 그저 핑계거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농업인구는 1970년 1400만명에서 2015년 256만명으로 무려 81.7%가 줄어들었다. 1970년 대한민국 인구가 3224만명이므로 농민 비율은 43.4%였지만 현재는 5.0% 수준인데, 그 정도 농민 표가 무서워서 쌀 수입을 결사 방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풍기 켜놓고 자면 죽는다와 동급 수준으로 잘못 알려진 대표적인 스테레오타입 편견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주식으로 먹는다. 다만 쌀의 품종은 토종이라 적응력이 높지만 생산성은 낮다.
유럽에서는 지중해성 기후의 지역들에서 주로 재배한다. 이 지역은 여름이 매우 덥고 건조한 대신 겨울이 온난하고 강수량이 일정하기에 겨울에 밭벼로 기른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최초로 쌀을 받아들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활동 중 아시아에서 들여 왔다는 설과, 고대 이집트에서 들여 왔다는 설이 존재한다. 현재도 유럽에서 세 번째로 쌀을 많이 생산한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쌀을 최고로 많이 생산한다. 이탈리아에서도 스페인처럼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섬에 최초로 쌀을 들여왔다. 현재는 대부분 북부의 강 유역의 충적지인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재배한다. 그런데, 주 소비지인 밀라노 등은 부유한 지역이라 이웃의 가난한 동네에서 사람들이 와서 대신 모내기를 해줘야 했다고 한다. 주로 리조또 용으로 소비한다.[21]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맞먹는 유럽 최대의 쌀 생산국으로, 남부 발렌시아 지방에서 재배하여 주로 빠에야 용으로 소비한다. 레콘키스타 전의 이슬람 지배 당시에 들어온 문화로 추정된다고. 특이하게도 단립종, 장립종을 모두 소비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모든 슈퍼와 마트에서도 단립종과 장립종 쌀을 모두 구비한다.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싸다. 종류 불문하고 1kg에 싸게는 0.6유로, 비싸도 1.5유로를 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바로 옆의 포르투갈에서도 즐겨 먹는다.
터키에서는 동북부 흑해 연안에서 재배하여 볶음밥 필라으를 만들어 먹는다. 지금이야 넘쳐나는 빵을 주식으로 먹지만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필라으를 주식으로 먹던 때도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특식 개념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데, 넘쳐나는 게 고기다보니 기름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해서 볶아 먹는다. 기후가 건조, 반건조 기후라 주로 외국산을 사서 먹지만, 강제이주되어 이곳에 오게 된 고려인들을 주축으로 근성으로 쌀농사를 지어 왔다. 이 신화로 유명한 곳이 김병화를 중심으로 한 북극성 고려인 콜호스. 다른 콜호스들이 생산량을 바닥을 치고 있을 때 혼자 목표치의 두세 배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그들 말로는 태양이 쨍쨍하기 때문에 관개시설을 정비해서 아무다리야 강의 물을 끌어올 수만 있다면 꽤 잘 자란다고. 하지만 아랄해 사막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면서 환경이 더는 쌀농사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고, 일단 강물이란 강물은 전부 아랄 해로 흘려보내어 호수부터 되살려놓고 봐야지 안 그러면 다같이 말라죽게 생겼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에 와서는 고려인의 관개 쌀농사 신화는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유럽 지역 러시아에서도 흑해 연안의 크라스노다르 지방에서 체르케스인들이 재배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도 러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의 원산지는 크라스노다르를 비롯한 흑해 연안이다. 추운 지역이라는 인식과 달리 시중에 파는 쌀 치고 수입산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한국에서 먹는 쌀은 아예 크라스노다르라고 써있기도 하다.
현재 쌀농사의 북방한계선독일 함부르크 바로 남쪽 브라운슈바이크이다. 독일 농업연구소에서 시험적으로 재배하는데 성공했는데, 한국인 박사과정생이 독일의 쌀농사 실험에 기여했다고 한다.

4.2. 한국의 쌀 생산


우리나라는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도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1970년대 이후를 제외하면 없었다고 볼 정도로 늘 쌀이 부족해왔다.[22][23]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도 있었을 정도니.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베이비붐으로 인구는 매년 3%씩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쌀 생산량은 답보를 거듭하면서 쌀 부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당시 한국은 보릿고개, 절량농가[24]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사정이 나빴다.
박정희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통일미를 개발해 보급했고 1976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쌀 자급에 성공했다. 수확량은 3,621만석이었다. 자급 달성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해 11월 쌀 소비 억제 정책의 키워드와 다름없었던 무미일을 폐지했다.
이후로도 풍년은 계속돼 1977년엔 쌀 생산량이 4천만석을 돌파해[25]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다수확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쌀 대풍을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은 이 해 12월 4천만석 돌파 기념탑을 세웠으며, 농촌진흥청을 방문해서는 쌀 자급 달성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녹색혁명 성취'라는 휘호를 남겼다. 정부는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하고, 쌀의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초과하여 해외에 수출도 하게 되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쌀이 남아돌자 박 대통령은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만인 1977년 12월 쌀 막걸리 제조를 허가했다. 쌀 막걸리의 등장은 그 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인들은 쌀의 자급자족 성공으로 보릿고개나 혼식/분식 장려 운동, 무미일, 절미운동 같은 단어들을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해 놓고, 가장 먼저 그동안 한이 맺혀 있던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데 소비하기 시작했다.
통일벼는 냉해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는데, 1980년 최악의 냉해로 통일벼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80년은 쌀 생산량이 30% 감소한 최악의 흉년이었다. 1981년 통일벼 강제 정책이 폐기되었고 식량난이 대강 해결된 1980년대가 되자 '''맛이 없어서''' 통일미는 당연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쌀 농사는 1977년 풍년 이후 1980년에는 냉해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해마다 풍년이 들자 쌀이 남아돌아 쌀 증산이 아닌 감산 요구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쌀 생산량은 1988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2017년에는 쌀 생산량이 최악의 흉년이었던 1980년보다 적어져 통일벼 개발 이전인 1960년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벼 재배 면적도 1987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인데, 2018년 73만 8천 헥타르로 2017년 75만 5천 헥타르보다 2.2% 줄어들었다.

4.2.1. 한국의 잉여 쌀 재고


한마디로 재고가 넘쳐나고 있으며 해결될 기미는 요원하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대~1980년대 중반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격감한 데에 반해서 쌀 재배량은 그에 맞춰져서 줄어들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물론 쌀 재배 농지의 면적은 농어촌 인구감소 등으로 크게 줄어들기는 했으나 쌀이 열대작물인 관계로 지구 온난화 때문에 생산성이 개선되어(...) 쌀 재배량은 그에 걸맞는 정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나마 현대 한국이 1950~70년대처럼 인구가 활발히 증가하는 나라였다면 최소한의 수요 유지라도 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앞으로도 상황은 좋지 않다. 궁여지책으로 쌀을 대량으로 수출하려면 인건비가 훨씬 낮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국가들과도 경쟁해야 되는데 가격경쟁력마저 별로 없다.
한해 소비량 대략 300만 톤. 2018년 현재 재고량 143만 5천 톤. 그리고 매년 300만 톤 이상이 생산된다. 예를 들어 2019년 생산량은 374.4만 톤. 그러다보니 관리비용도 커서 2018년 재고관리를 위한 양곡관리비 3878억 8800만 원.
2000년대 후반 들어 밀가루 대신 쌀을 재료로 쓴 빵이나 건빵 등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쌀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발생하는 잉여분[26]이나 한국에 할당된 수입쌀 쿼터분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이런 쌀들은 문민정부부터 참여정부때까지 인도적 차원으로 북한에 지원하는 방법으로 소모했지만, 대북지원이 끊긴 이후로는 재고처리를 위해 쓰는 것. 묵은 쌀뿐만 아니라, 대북지원에 조달하던 쌀과 얽힌 농가들 중에는 이명박 정부 이후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된 곳도 있다. 전통적으로 농협과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전성기 때는 학생운동권과 연계한 농촌활동도 하던 단체인 전농이 주장하는 이야기.
과거 무역개방 협상에서 쌀 개방 예외를 주장하며 한국의 보호 정책으로 외국으로 수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2007년부터 '쌀 수출추천에 관한 고시'를 통해 수출을 시작하였고 2013년엔 연간 2507 톤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때는 의무 수입량이 지금에 비해 적어서 '북한 지원하면 관세화를 안 해도 됐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때 쌀개방을 다시 10년 유예한 쌀협상의 대가로 재차 복리계산으로 증가한 의무수입량은 관세화 결정 시점에 와서는 그런 것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다. 2004년 쌀의무수입량은 20만 톤울 넘는 수준이었지만, 2014년에는 40만 톤을 넘었다. 상한같은 건 없기 때문에 계속 끌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같은 조건으로 다시 10년을 연기하면 80만 톤이 되는 상황인데, 2017년 국내 쌀생산량이 400만 톤 정도다. 그리고 1994, 2004년때 곡물수출국들이 내건 협상조건이 악랄한 것이, 관세화를 한다 해서 그 시점까지 늘어난 연간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2014년 연간 40만 톤 수입하면서 관세화하기 vs. 2024년 연간 80만 톤 수입하면서 관세화하기. 하지만 이것에는 물량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다르게 할 여지가 있고, 국내 쌀소비량 자체가 감소 일로에 있고 정부는 국내 쌀생산량 축소를 기조로 하기 때문에, 쌀 의무 수입물량의 폐지 내지 감축은 언젠가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통상과제로 남아 있다.
매년 30만 톤씩 과잉 생산되는 쌀 때문에 정부는 골치를 앓는다. 2016년 기준, 한해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재고가 쌓여있어 사료로 헐값에 팔아치우는 정책이 추진 중이다. 사료로 푸는 이유는 사람 먹을 용도로 시장에 풀면 쌀값이 폭락하기 때문이고 헐값에 파는 이유는 다른 사료가 원체 싸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쌀 생산을 줄여야 하나, 농민들은 쌀농사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는 제도(직불금제)가 있어 소득이 보장되는데다가, 기계화율이 90%가 넘어 농사짓기가 편하기 때문에 쌀 생산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사료로 푸는 다른 이유는, 곡물창고에 여유공간이 없어 햅쌀을 수매할 때면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쩡한 쌀까지 사료 용도로 방출하는 것이 아니다. 김영삼, 노무현 정부 때 쌀협상 결과 복리계산으로 이십 년 간 증가한 의무수입물량 수입쌀이 많은 요즘은 가공용으로도 경쟁력이 없는 구곡과 보관 중 상태가 나빠진 쌀을 방출한다. 흔히 군대밥이나 정부지원쌀이 맛없다고 흉보는데, 과거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빤히 보일 만큼 못 먹을 쌀을 그런 용도로 쓰지는 않는다.
정부미 보급 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나라에서 준 쌀은 품질이 나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주 옛날에는 정부미는 통일벼여서 쌀집에서 사먹는 일반미와는 미질이 확실히 달랐다. 통일벼 계열 품종이 시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 와서는 도시전설. 물론 쌀은 1년만 지나도 품질이 확연히 떨어지니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구하는 쌀과 동등한 품질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쌀이 남아돈다고는 하나 단가문제도 있고 묵은쌀 재고처리를 이런 곳에 하는 것도 사실이고, 품질 좋은 햅쌀에 비해 이런 쌀로 지은 밥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애시당초 구곡이 된 이유 자체가 과다생산 때문이다. 우연히 구곡이 돼서 사료로 파는 것이 아니라, 구곡이 될 수밖에 없도록 수요를 초과하게 사들인 후 구곡이 될 때까지 묵혀뒀다 사료로 파는 셈이 된다.
물론 진짜 제때제때 처분 안 하고 묵혀두는 이유 중에는 한국의 식문화는 다른 어떤 식문화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주식인 밥 비중이 높기때문에, 쌀의 공급부족만은 피하고 싶은 정권의 보수적인 쌀 농업 운영 영향으로 쌀만큼은 재고를 쌓아놓는 영향과 함께 통일에 대비하는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붕괴되어 흡수통일된다면, 북중합병이 아닌 이상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책임은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에게 돌아간다. 그 상황에서 한가하게 전 세계 쌀을 긁어모아서 화물선 용선해서 실어나를 수야 없으니, 정부에서 대량으로 쌀을 보유하고 있다가 북한 주민들에게 푸는 방법이 제일 쉽고 간단하다. 따라서 현대 대한민국에서 보유하는 쌀 보유량은 국가 안보 문제와도 직결되기에 정부는 쌀 보유량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통일을 대비하는 문제 뿐 아니라 유사시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쌀 보유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다른 식량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데다가 수입을 해놓는다 해도 보존이 오래도록 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쌀,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의 주식인 자포니카 쌀은 전세계 쌀 생산의 10%에 불과하여 유사시 외국에서 수입하기 어려운 품종이기도 하며, 정미만 해놓지 않으면 몇년동안 보관도 가능하고 쌀밥만 먹어도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영양을 섭취하기 좋은 식품이기 때문이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은 비싼 가격에 국내에서 쌀을 재배하는 것이 안보에 필수적이며, 쌀을 수입할 경우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도래할 것처럼 선동하는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들은 일부 농산물의 가격이 급변하는 것과, 대량 수입 시 수요증가에 따른 시장가격 상승 우려, 또는 수출국이 수출을 조건으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우려 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쌀은 밀, 옥수수, 콩과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로 전세계에 걸쳐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어,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또한, 톤당 600~950달러(약 70만~110만원)선(2020년 7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발표 국제 쌀 시장 동향 기준, 국내 재배되는 쌀과 유사한 중립종인 중국 동북미와 캘리포니아 쌀 기준)인 국제 쌀 시세를 고려할 때, 정부의 쌀 수매가는 톤당 250만원 수준으로 약 2.3~3.6배에 달하기 때문에 시세가 급변한다 하더라도 현재 국내 생산 쌀의 정부 수매가 이상으로 비싸게 구매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주장도 마냥 옳은 것은 아닌데, 당장 아이티의 사례만 봐도 알겠지만 자체 생산하던 농산물을 수입으로 돌린다는 것은 자국의 농업 기반을 완전히 작살낼 위험이 있다. 특히나 쌀은 한국에서 주식이기 때문에 '비싼 가격'까지는 아니어도 국내에서 쌀을 계속 재배하는 것이 식량안보에 필수라는 것은 옳은 주장이다.

5. 품종과 용법


쌀도 여러종이 있는데 인디카가 포함된 장립형과, 한국인들 대부분이 싫어하는 향미가 포함된 중장립형[27],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포니카가 포함된 단중립형, 그리고 찹쌀이 포함된 단립형이 있다.
어느 품종이나 잘 씻어서 밥을 지어야 한다. 안그러면 바구미화랑곡나방 유충 같은 쌀벌레가 씹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돌이 씹힐 수도 있다. 물론 요즘 유통되는 쌀은 돌을 모두 제거하여 나오므로 아주아주 재수가 없어야 하겠지만.
이외에도 덜익은 낟알을 쪄 말려 빻는 찐쌀이라는 가공법도 존재한다.

5.1. 야포니카(중단립종, Medium grain, Short grain)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흔히 보이는 품종. 현재 주로 생산되는 품종은 아래와 같다.
통상적으로 자포니카라 하지만, 학명인 japonica는 자포니카가 아닌 야포니카로 읽는다. 그 이유는 학명은 영어가 아닌 라틴어이고 라틴어의 j는 모음 앞에서 반모음 [j]로 읽히기 때문이다.[28] 참고 1 참고 2

5.1.1. 국내 유통 품종


  • 추청(아키바레) - 중만생종. 과거 국내에서 가장 선호되었던 일본품종 쌀. 과거 맛있는 밥의 대명사로 인식 되었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령층에서 특히 좋아하는 품종이며, 현재 기준으로 따졌을 때 역시 맛도 가격도 가장 무난하여 가장 표준적인 밥맛에 가깝다. 신동진이나 새누리처럼 재배면적 상위권 품종 중 하나. 유명 브랜드인 '대왕님표 여주쌀'도 추청쌀이다. 다만 2023년까지 국산품종 장려를 위해 정부의 종자 보급이 중단될 계획이다. 대체 품종으로는 알찬미가 꼽히고 있다.
  • 신동진 - 전라북도 서부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품종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농촌진흥청이 '동진' 품종을 개량하여 만든 쌀이다. 꾸준히 재배면적 2~3위 정도를 해온 대중적인 품종 중 하나이며 2018년 기준 전국재배면적 1위를 차지하였다. # 최초로 해외수출에 성공한 쌀이기도 하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쌀알이 다른 쌀보다 1.3배 수준으로 커 씹는 맛이 좋은 품종이다. 다만 다른 이름있는 품종들과 비교했을 시 찰기는 좀 부족하다는 평이 있는데,[29] 따라서 리조또볶음밥같이 밥 요리를 만들 때 더 적합하다. 같은 이유로 국밥에도 잘 어울리는 편. # '고품질 브랜드쌀'에서도 신동진미 브랜드쌀이 다수 선정되고 있다.
  • 새누리 - 2007년 명명된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 호남농업연구소(익산시 소재)에서 개발한 쌀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재배면적 1위를 차지하였으나 2018년에는 다른 품종들이 치고 올라와 4위로 내려앉았다. # 새누리당의 당명과 같은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황주홍 의원은 갑작스레 새누리미의 재배면적이 증가한 것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고시히카리 - 조생종. 현재 가장 보편화되어있으며 품질 또한 한·일 모두 최고로 치는 일본품종 쌀. 비교적 키우기는 어려운 품종이지만 윤기나 광택도 좋고 쌀의 맛도 진해 맛있는 쌀 품종의 대명사격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수도권, 특히 김포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다만 추청과 마찬가지로 국산 품종 장려를 위해 종자 보급을 줄여나가고 있으며 2023년에는 정부의 종자 보급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이다. 대체 품종으로는 해들이 꼽히고 있다.
  • 히토메보레 - 경기 이남 지방에서 주로 재배한다. 조생종으로 일찍 수확하고 외관품질도 좋으며 고시히카리보다 재배하기 쉬워 일본내 쌀 생산량 2위에 위치한다. 2023년에는 정부의 종자 보급을 중단한 계획이다. 대체 품종으로는 해들이 꼽히고 있다.
  • 밀키 퀸 - Milky Queen. 일본 농림수산성의 슈퍼라이스 계획에 따라 고시히카리를 개량한 품종. 2000년대에 들어와 새롭게 개발된 품종으로, 201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도 들어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특히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의 함량을 낮추었다고. 고시히카리의 최신 개량 버전답게 최고가 수준의 가격을 보이고 있다.
  • 맛드림 - 고시히카리를 모종으로 하는 신품종. 고시히카리보다 약간 저렴하다.
  • 칠보 - 고시히카리를 모종으로 하는 신품종. 다만 경작방법에 따라 밥맛이 달라져서 망했다고 한다.
  • 오대미 - 강원 영서 북부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품종이다. 조생종으로 일찍 수확한다. 갓 나온 가을까지가 가장 맛나고 겨울부터는 풍미가 떨어진다. '철원오대쌀'로 유명하다.
  • 하이아미 -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서 두뇌에도 좋다고 하나 어차피 그 밥이 그 밥.
  • 황금벼, 금탑 - 극조생종으로 추석 햅곡에 자주 올라간다. 가을초까지만 맛난다고(?) 한다.
  • 일품벼 -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서 주로 생산하며 밥맛은 상당히 좋다고 한다.
  • 통일, 유신 - 뛰어난 생산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맛없기로 악명 높은 쌀. 통일벼의 떨어지는 밥맛을 개선한 유신벼가 등장하기도 했다.
  • 해들미 - 조생종. 고시히카리와 히토메보레의 대체자이다. 정부의 국산 쌀 보급 계획에 힘입어 이천에서 주로 재배하고 있다.
  • 그 외 - 삼광, 호품, 일미, 고대미[30], 칼로스 등.
  • 혼합 - 위에 나온 여러 품종을 섞어서 도정한 쌀. 주로 고가의 품종에 저가 품종을 섞어서 마진을 발생시킨다고. 보통 가격은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당연히 단일 품종보다 밥맛은 떨어진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식량과학원 선정 최고품질 쌀 18품종[31]': 삼광, 운광, 고품, 호품, 칠보, 하이아미, 진수미, 영호진미, 미품, 수광, 대보, 현품, 해품, 해담쌀, 청품, 진광, 예찬, 해들
위의 쌀 품종 중에는 일본 품종이 꽤 많고 고시히카리나 히토메보레같은 일본 품종이 고급 쌀 취급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일본 쌀 품종은 국내 사정에 맞게 개량되어서 원래 일본 쌀 품종과는 성장 과정이나 밥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계속 재배되고 있는 한반도 토종 품종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1960 ~ 1970년대에 한국에서는 쌀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한 '통일벼'를 만들었으나 추위와 도열병에 약해서 통일벼를 전국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지 단 수년만에 흉작을 맞았다. 사실 도열병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통일벼는 원래 도열병에 강하게 만든 품종이다. 그래서 도열병 저항성을 믿고 한동안 잘 재배했는데, 갑자기 통일벼의 저항성을 우회하는 신종 도열병이 등장하자 통일벼만 대량으로 재배하던 농촌 전체가 휘청거린 것이 문제였다.[32] 이 시기 쌀 자급을 드디어 온전한 형태로 달성하기는 했다. 이 이후부터는 오히려 쌀을 안 먹는 추세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자급 가능한 유일한 주요 식량 작물이다. 물론 밥맛이 떨어져 인기가 없어서 2000년 이후에는 생산이 중단된 상태. 통일벼보다 훨씬 맛이 좋고 생산량도 비슷한 많은 벼들이 개발되어서 실험용을 빼면 아무도 경작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쟁 등 만일의 상황에 의해 갑자기 식량이 부족해질 가능성에 대비해서 연구는 하고 있다고.
반찬 안먹고 오로지 쌀만 먹을 때 껍질을 다 벗겨서 먹으면 육류와 계란, 우유에 풍부한 비타민 B1 부족으로 각기병에 걸릴 수 있다. 물론 현미를 먹으면 괜찮지만, 근대에 와서 도정기술이 발전하여 백미를 주로 먹게 되자 옛날보다 각기병이 더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원래 동아시아권에서 각기병은 꽤 골치였고 근래인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도 각기병으로 고생했다. 그러므로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잘 챙겨먹는게 중요하다. 사실 식품공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면서 채소류를 접하기 쉽고 최소한의 수산물을 섭취하는 한국, 일본의 전통사회에서 웬만해서는 걸리기 쉽지 않다. 각기병이 부자병, 에도병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상술한 일본군 각기병 사건도 "군대가면 흰쌀밥 준다"는 이유와 당시 일본군 급식이 쌀은 배급했지만 부식은 돈으로 주었거나 보급에 신경쓰지 않아서 가난한 병사들이 저축하느라 쌀밥에 최소한의 조미료와 반찬만 먹어서 생긴 일이다.
현미는 영양가는 좋은데 껍질 때문에 보통 깔깔한 게 아니다보니 식감이 영 좋지 않다.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쌀눈만 남기고 다 도정하는 공법으로 만든 변종 백미도 팔고 있다고 한다. 현미를 깎아 나온 가루를 따로 모아 선식 먹듯이 먹는 것도 한 방법. 아울러 2000년대 이후엔 현미에 대해서도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져 지금은 오히려 백미보다 맛있다는 현미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리고 단순 탄수화물인 백미보다는 복합 탄수화물인 현미가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좋다. 하지만 건강에 좋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현미는 소화가 잘 안 되는 편이다. 식이섬유가 많은 편이라 보통 쌀밥 먹을 때보다도 굉장히 오래 씹어서 먹어야 한다. 현미로만 밥을 지어먹는 것보다는 백미와 섞어서 지어먹는 게 낫다. 보통 처음에는 백미에 살짝 현미를 뿌려가며 먹고, 이후 1:9, 2:8 과 같이 슬슬 현미의 양을 늘려가면 된다. 요즘은 칼집현미라고 해서, 물이 스며들기 쉬워 밥짓기 좋고 소화도 쉽게 만들어 나오기도 한다. 먹기가 더 힘들어 여러 가지 가공유통형태가 있는 보리쌀도 이런 것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저렇게 껍질을 다 벗기는 과정에서 쌀이 절반으로 쪼개지거나 부스러져서 싸래기가 되기도 하는데, 싸래기는 상품성의 문제 때문에 따로 모았다가 일반 쌀보다 싼값에 판다고 한다. 가격은 거의 1/10 정도. 그 외에 희나리(덜 익은 쌀), 열손립(열에 손상된 쌀) 등 온전치 못한 것들도 혼합쌀에 들어가서 품질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상태에 따라 사료용, 가공식품용 등으로 나뉜다. 수입쌀값이 더 싼지라 가공식품이 다 싸래기를 쓰진 않는다.
혼합 쌀에는 수입산을 섞어 파는 경우가 있으니 시중에서 쌀을 구입할 때 '혼합'만 피하고 몇가지 품종만 골라서 먹으면 밥맛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보통 '농협'이 파는 쌀이라면 믿고 사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것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부 지방의 단위농협은 오래 되어 부패한 쌀이나 희나리 등을 혼합해서 쌀을 팔다가 심심찮게 적발되기 때문. 현재로서 가장 강력하게 쌀 품질을 관리하고 있는 품질인증마크는 'GAP'이나 '도지사 및 시장 인증마크, 쌀 품종명 관리마크'다. 이들 마크를 믿는게 가장 좋은 방법.
단, 위의 서술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 '''쌀포대에 표시돼 있는 "혼합쌀"은 싸래기나 수입쌀을 섞은 쌀이란 뜻이 아니다!''' 수입쌀을 국산쌀처럼 포대갈이해서 밀유통하는 범죄행위를 보도하는 신문기사에서 섞었다며 혼합쌀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것과 다른 뜻이다. 지역 전체가 특별히 선정해 재배, 유통하지 않으면 동진쌀+고시히카리 등으로 품종이 다른 쌀을 농협이 수매해 저장하게 되는데, 그것을 말한다. 라고 책상앞에 앉아서 이야기들을 하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혼합쌀과 수입쌀을 섞은 혼합쌀이 다른 표기로 판매되지도 않을 뿐더러 많은 비양심 농가에서 값싸고 마진을 많이 올릴수 있는 수입쌀을 섞어 혼합쌀로 유통하고 있다. 농협이 수매하여 저장중인 품종이 혼합된 쌀에 수입쌀을 섞을 경우 그 수입쌀의 비율이나 원산지를 반드시 표기해야하는 의무는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수입쌀을 섞어 마진을 보는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것이다.
자포니카는 GI 지수가 높아 상대적으로 당뇨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땐 꼭 반찬을 챙겨먹어야 한다. 반찬이 탄수화물의 소화를 늦추고 이로 인해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도정여부에 따라 GI 지수가 달라 현미나 잡곡을 먹는다면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또한 자스민 라이스를 비롯한 품종은 GI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아 심지어 당뇨 환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5.2. 인디카(장립종, Long grain)


외국에서 주로 먹는 쌀은 '인디카'(장립종) 품종으로 전세계 쌀의 대부분이 바로 이 인디카 품종. 우리가 주로 먹는 자포니카(중단립종)와는 모양과 맛이 무척 다르다.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안남미라는 별칭도 있다. 참고로 장립종이 야생종에 더 가까운 종이다.
  • 자스민 라이스(타이 홈 말리 라이스)
  • 바스마티
이 두 가지 품종이 서구에 주로 유통되는 고급 쌀 품종이다.
상기한대로 품종에 따라 쌀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인디카 쌀은 자포니카 쌀에 익숙한 사람의 입맛에는 찰기가 상당히 적어 어색하다. 특히 과거 국내에 수입되던 안남미는 품질이 별로 좋지 못해서 향기도 적어서 별로 맛이 없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씹는 맛이 있지만 찰기가 없고 퍼석하게 느껴져서 기피한다. 반대로 인디카 쌀에 익숙하면 자포니카 쌀을 찐득거리고 비린내가 나는데다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국내에선 쿼터제를 통해 장립종을 수입하지만 밥보단 쌀국수나 레토르트 볶음밥처럼 가공이 필요한 식재료로 사용한다.
인디카 종은 밥 짓는 방법(중간에 물을 계속 갈아준다!)부터 시작해서 자포니카 쌀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쌀을 씻지 않는 게 보편적이다. 상술했다시피 후라이팬에 볶는 방식의 볶음밥 계열로 요리하는 경우엔 자포니카와 크게 차이나지 않아 레토르트 볶음밥에도 사용되며, 이 맛에 익숙해지면 찰기가 많은 한국식 볶음밥은 그냥 비빔밥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실제로 동남아에 여행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현지의 쌀음식 중 대부분이 볶음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부수적으로 쌀의 포장 방식도 많이 다르다. 자포니카는 20킬로 정도의 대량으로 포장하지만, 인디카는 보통 2킬로 정도로 소포장한다. 다만 해외에서 찾아보면 자포니카 쌀 역시 소포장한 게 좀 있다. 애초부터 비주류인데다가 쌀을 주식이 아니라 건강식 혹은 별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태원 포린 마트 등에서 다양한 품목을 골라 살 수 있고, 이마트에서도 태국산 안남미를 구할 수 있다. 품종을 잘 보고 골라서 사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도 소포장과 대포장 모두 구매 가능하다.

6. 기타 이야깃거리


의외로 1984년에 '''북한이 남한에 쌀을 지원'''한 적도 있었다. 남한의 수해로 인해 북한이 쌀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당시 경제 상황이 이미 뒤집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익숙치 않은 모습이다. 사실 당시 전두환이 쫀심을 근거로 거절할 것을 예상하고 날려본 드립이었는데, 예상 외로 그 제안을 덥썩 받아들여 버렸다. 이때 북한도 사정이 안 좋아서[33] 도와줄 형편이 못 되었는데, 막상 남한이 지원을 받겠다고 하니까 부랴부랴 덜 익은 까지 수확해 남한에 보냈다고 한다. 전두환 정부는 보답으로 북한이 보내준 구호품 금액의 100배에 달하는 전자제품을 보내, 김일성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겨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을 도와줄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남한에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중국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지원'한 수재물자는 북한에서 생산되기만 했을 뿐 그 비용은 전부 중국이 댄 셈이었다. 당시 그것들 중 일부는 같이 보내 온 옷감 등 다른 품목과 함께 샘플화해 전국 초중고에 보내져서 반공교육 목적으로 국산샘플과 비교전시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아마 체제 선전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인데[34], 남한에서 이 쌀을 배급받아 먹은 사람들은 대개 '''맛이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다,심지어 모래 같은게 섞여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쌀 7,200톤 이외에도 사이다 등등의 물품도 보내왔는데, 어느 것 하나 품질이 좋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역전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때문에 역효과만 났던 모양. 게다가 당시 북한도 쌀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이 당시 정말로 먹을 것이 부족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저 북한에서 받은 쌀의 품질이 조악해서, 저 쌀로 밥으로 먹기보다는 주로 을 해 먹었다고들 한다.
반대로 김정일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쌀은 북한 쌀이 맛있다"'''고 한다.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의 이미지와는 달리, 쌀 자체만 놓고 보면 윤택하고 풍요로운 맛이 난다고. 김정일, 김정은이 먹는 쌀은 따로 농사를 지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주변 일대의 논에도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에서 키운 벼이다. 수확한 이후에도 탈곡을 거치면 불량 쌀을 여성 노동자들이 하나하나 핀셋을 이용하여 골라낸 후 사용하고 이를 위한 부서까지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안치다'란 동사를 사용한다. ''''앉히다'가 아니다!''' 밥이나 떡 등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솥이나 시루,냄비에 넣고 불 위에 올리는 행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사이다.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틀리기 쉬운 표현. [35]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철원, 이천, 여주, 김포, 안성, 군산, 보성(웅치면)의 쌀과 진도의 흑미가 등록되어 있다.
여름철에 생쌀에 곰팡이가 엷게 필 수 있다. 약간 파르슴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해도 잘 모르는 편. 잘 씻으면 눈에 보이는 포자는 제거되지만, 곰팡이가 곡식류에 생겼을 때 생성되는 아플라톡신, 푸모니신, 오크라톡신 등 '''독소는 쌀에 스며든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제거되지 않으며, 아플라톡신 B1같은 강한 독성의 발암물질은 268도 이상에서야 분해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조리과정을 거쳐 봤자 그대로 남아있는다. 즉, '''곰팡이 독소는 씻거나 요리한다고 제거되지 않으므로 쌀에 곰팡이가 피었다면 미련없이 즉시 처분하도록 하자.''' 쌀을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제습제를 넣어두면 예방할 수 있다.
파스타 중에서 쌀을 닮은 것이 있는데, 오르초(Orzo)라고 한다.
일부 모르는 구매자가 있는데, 쌀의 생산년도이다. 예를 들자면 2020년대 구매자가 구매한 쌀을 환불하려고 하는데 생산년도가 2019년이라서 묵은쌀 의심해서다. 이를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패러디 했는데 어느 진상이 "쌀의 생산년도가 작년이니 반값으로 내놔야지!" 이에 대한 사장 정복동의 반응은 지금부터 모내기를 하던가'''미래로 꺼지던가'''다 당연히 2020년 당일에는 벼를 모내기 하는 중인데 생산년도 2020년 쌀이 있을리가 없다...쌀 포대에서도 생산년도를 작년으로 해두고 도정일은 올해로 해둔다.

6.1. 쌀을 팔다


현재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이 '쌀을 구매'할 때, 반대로 '쌀을 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쌀 한 되 사와라" 라는 말을 "쌀 한 되 팔아와라" 라고 말하는 식. 80년대까지 일상적으로 쓰이던 말로, 1925년 발간된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에서 주인공 화수분의 아내가 '어멈'[36]이 집에 쌀이 없어서 쌀가게에 갔다가 주인과 친해져서 친딸을 입양시킬 집을 알아봐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로 직전까지 집에 쌀이 없어 굶는 집안에서 쌀가게에 쌀을 판다는 모순적인 장면 때문에 어리둥절 하는 대목이지만 실은 쌀을 자주 샀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용법이 쓰이는 이유에 대한 가설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과거에는 쌀이 주요 화폐였고 돈은 쌀과 병행에서 쓰이는 보조적인 화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쌀을 팔아 돈을 산다'라는 인식이 정립되어 있었다는 설이 있다. 현대의 우리가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돈으로 금을 산다'와 비슷한 말이라는 것이다. 즉 쌀이 돈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쌀을 판다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 첫째 가설이다.
그 외에는 쌀을 팔 수 있을만큼 재산을 축적한 양반이 사농공상의 제일 아래인 쌀을 팔러 다니는 행위가 터부시 되었기 때문에 '쌀을 산다'라는 말을 에둘러서 반대로 표현했다는 가설도 있다. 또는 중요한 쌀을 사러간다고 하면 집안에 쌀이 떨어졌다는 것이므로 조상님이 노하시기 때문에 반대로 쌀을 판다라고 하여 집안이 풍족하게 들리게 한다는 긍정적인 해설도 있다.
참고로 시장에서 쌀과 곡식류를 전문으로 하는 점포는 따로 '''싸전'''이라고 부른다. '쌀'과 가게를 뜻하는 '전'의 합성어에서 ㄹ이 탈락한 것. 대규모 유통이 발달하고 농협 등에서 직접 쌀을 판매하면서 전통적인 "싸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7. 관련 문서



[1] 중세 한국어에서는 ㅂ계 합용병서가 붙어서 'ᄡᆞᆯ'과 같이 발음했다. 중국인이 중세 한국어의 어휘를 정리해 둔 《계림유사》라는 책에서 흰 쌀을 '한보살(漢菩薩)'이라고 음차해서 쓴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중국인에게는 어두의 'ㅂ'이 '菩'로 들렸던 것. 불교에서 말하는 그 보살과 한자 표기는 같지만 의미상의 관련은 없다. 알렉산더 보빈은 이를 일본어로 올벼를 뜻하는 단어 早稲(와세)와 동계어로 보고 있다.[2] 석고. 땅의 넓이를 가리키는 옛 단위로 쌀 1석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 면적=1고쿠다카.[3] 통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엔환경계획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쌀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물은 2~3.5톤에 이르는데, 밀 1kg 생산에는 1~1.2톤이 필요하다고 한다. 쌀이 물을 두 배 넘게 필요로 하는 셈이다.[4] 이와는 별개로 진짜 의 자원은 이미 설문해자에서 이삭의 낟알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나온다.[5] 사이언스타임즈 2014-05-23 '쌀의 마음, 밀의 마음'[6] 일반적으로 개인주의가 지배적이라고 보는 국가나 지역에서도 다양한 형태와 스케일의 집단이나 커뮤니티를 강조한다.[7] 사실 북서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많은 유럽 국가들은 집단주의적 전통을 갖는다. 또한, 동아시아의 밀 농사 재배 지역, 서아시아의 많은 지역 역시 이에 포함된다.[8] #[9] 중국에서 일반인들이 널리 음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소한 후한 시대 이후이다.[10] 검은 수수로 빚은 술을 제사 때 쓸 수 있는 천자만의 특권이 존재했던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는 것 같다.[11] 일반적으로 커리와 반찬 몇 종류, 콩 수프에다가 밥과 빵을 같이 얹어서 자주 먹는다.[12] 학교 급식, 식당, 일반 가정집 모든 곳에서 빵보다 더 많이 먹는다. 먹을 때는 페이조앙(Feijoão)이라는, 팥죽 비슷한 브라질식 콩요리와 매운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한국에서도 파는데, 깡통에 담긴 묽은 케찹 + 콩이 이 요리 중 하나다.[13] 콜롬비아 서북부는 카리브해 지역의 아프리카계 문화의 영향을 받아 흰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다. 특히 칼리. 메데인 지역의 반데하 파이사(bandeja paisa)가 유명하다. 동부 안데스 산악 지역에서는 엠파나다 같은 만두를 먹거나 옥수수로 만든 아레파를 먹는다. 동부 지역은 옥수수가 주식이다. 즉 서부 카리브해 인접 지역은 쌀밥을 주로 먹고, 동부 안데스 지역은 옥수수를 주로 먹는다. 다만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쌀로 만든 푸딩인 Arroz con leche(아로스 콘 레체)는 콜롬비아 전 지역에서 즐겨 먹는다.[14] 나머지는 일반적으로 빵을 주식으로 먹는다.[15] めし(고항ごはん)[16] fàn(飯)[17] 부여~고구려 시기에 만주에서 농경이 행해진 것은 분명하나 쌀이 얼마나 재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발해 노주의 특산물 중 하나가 쌀이었던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았다.[18] 쌀 시장 개방을 하면 인건비가 훨씬 낮으면서 기후조건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쌀 재배에 유리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중국 남부, 인도 등 남아시아 국가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해야된다. 막말로 인건비를 1980년대~90년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트린다면 모를까 제대로 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쌀과잉 문제를 더 먼저 겪은 일본도 고급쌀 위주로 수출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19] 일본, 중국, 러시아[20] 일본은 태평양 쪽이 열려있고 해안선이 길어서 미국을 적으로 돌리지만 않는다면 해상봉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보다 쌀 시장 방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며 TPP를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21] 로마 시대에 이미 쌀의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긴 했다. 고고학 연구로 소량이지만 쌀이 수입되어 식용,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22]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근대 어느나라도 식량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리츠 하버가 인공비료를 개발한 이후에나 식량문제에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23] 보통 평년작보다 생산량이 5~10% 늘어나면 풍년, 그만큼 줄어들면 흉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풍년이 들어도 쌀이 남아돈 적은 없었다고 한다.[24] 絶糧農家. 식량이 떨어져 밥을 먹지 못하는 농가를 의미한다.[25] 쌀 자급률이 113%를 웃돌았다.[26] 대개 3년 이상 저장하면, 신선도가 심하게 떨어져 쌀 자체만으론 상품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27] 가장 메이저한 종으로는 자스민 쌀이 있는데, 외국쌀로 밥 지었다가 이상한 향기가 나서 당황한 사람들은 이 자스민 쌀로 밥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립형 쌀은 향이 거의 없다.[28] 간단히 말해서, 라틴어의 J는 그냥 I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Japonica를 Iaponica로 바꿔서 읽어보자.[29] 어디까지나 맛있는 쌀끼리 비교했을 때 얘기지 찰기가 별로 없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 것.[30] 삼한 시대 패총에서 발굴된 볍씨로 놀랍게도 발굴 후에 발아했다. 이를 농촌진흥청에서 연구해 보급하고 있다. 한반도에 언제 도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古代米'라는 명칭처럼 과거에 재배했던 쌀이라는 의미이다.[31] 2019년도 주요 식량작물(벼) 품종해설서 - 2019년 6월 발행 기준[32] 식물 병리학적으로 말해서, '''완전하고 영구한 저항성'''은 허상이다. 한편 이러한 단일 품종만의 재배로 인한 문제점은 아일랜드 대기근에서도 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면에 피눈물 나는 아일랜드의 사정이 섞여 있다는 게 더 중요한 점이지만.[33] 이 시대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소련이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사회주의적 모순의 누적으로 사회주의권이 전반적으로 망가져 가던 시기다. 북한의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 밀려 골골거리기 시작했는데, 이 상태에서 입을 잘못 놀려 쌀을 무더기로 퍼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하 생략. 거기다가 북한은 한국보다 더 큰 수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이로부터 10년 뒤에는 북한의 경제가 아예 결딴나 버렸다.[34] 80년대 초는 남북한간의 이미지 경쟁에서 북한이 결정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때다. 아시안 게임, 올림픽 유치, 경제 성장으로 활성화된 승용차 보급, 컬러TV와 프로스포츠 대중문화의 확산 등.[35] 뱀발이지만 한 대학 논술과목에서는 '밥을 앉히다'라는 답이 정답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외국인 'Bob'을 의자에 '앉히다'고 주장하면 맞은 어법이고, 이 클레임이 받아들여졌기 때문...[36] 화수분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