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하히메

 

五郎八姫
분로쿠 3년 6월 16일(1594년 8월 2일) ~ 간분 원년 5월 8일(1661년 6월 4일)
일본 에도 시대의 인물. 법명은 덴린인(天麟院).
다테 마사무네의 장녀. 이름의 유래는 마사무네가 정실인 메고히메와의 사이에서 생긴 첫 아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고 남자 이름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딸이 태어나자 그냥 자신이 생각한 남자 이름을 붙여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에 번역된 모 유명한 대하소설에서는 고로하치히메라고 오역해 버렸다.[1]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육남인 마츠다이라 타다테루의 정실. 약혼부터 파란만장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지했던 다이묘 친족 사이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에게 태클 거는 구실 중 하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약혼 안 했어도 어차피 일어났겠지만.
이렇게 결혼해 놓고 인생에 도움 안 되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바람을 넣어서 결국 타다테루는 카이에키(改易: 영지를 몰수하고 평민으로 강등시키거나 영토를 대폭 줄임) 당하고 이로하히메는 이혼해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찬 여성으로 마사무네가 자주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다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기독교도였다고 한다.

[1] 일본인 중에서도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로하치라고 잘못 읽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