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석(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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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한국의 농구 선수, 한국에서는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주전이었다기 보다는 블루워커적인 면모가 보이던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한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대전고 시절에는 좋은 슈팅 실력으로 대전 내 농구선수 중 1, 2위라는 좋은 평가를 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이후 명지대에 진학해 대학 선수로 활동하는 중 허리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일단 대학 때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당시 기아자동차의 명성을 이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 10순번으로 입단하게 된다.
2.2. 프로 선수 시절
초년 때에는, 김영만에 밀려서 식스맨으로 미미하게 활약하며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당시 감독이었던 박수교 감독에게는 연봉에 맞지 않는 고급차를 구입해 몰고 다닌다는 이유로 큰 혼이 나기까지 했다. 또한 이 기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중 하나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방해했다. 결국 2시즌간 기아와 모비스에서 큰 활약이 없었던 뒤에 국군체육부대 상무에 입대한 뒤 이후 제대해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2004-2005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상무 입대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선수가 되었는데, 이는 무릎부상을 상무의 체계적인 훈련 아래에서 고쳤고, 또한 입대하기 전의 부진을 통해 자신의 마음 가짐을 다시잡고 악착같이 뛰는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된 것이 좋게 작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크게 발전한 수비실력과 팀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를 아끼지 않으며 기량발전상을 수상하고, 이 해에 기량발전상과 같이 우수 후보선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 시절의 이병석은 수비 스페셜 리스트로서의 모습으로 손색이 없었다. 유재학 감독의 중용 아래서 악착같이 달라붙는 거친 수비로 인해 상대 플레이어가 부담스러워 하는 수비수였고, 게다가 KBL에서의 수비 스페셜리스트 답지 않은 나쁘지 않은 슛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외곽에서 3점포를 터트려 줄수 있는 슈터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강력한 수비를 이루는 한 축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 시절 강력한 수비 덕분에 2005-2006, 2006-2007 두 시즌 연속으로 수비 5걸상에 들었다.
그리고 이후 서울 SK 나이츠로 김학섭과 함께 울산 모비스 피버스가 전형수와 김두현이 가는 조건으로 2:2 트레이드 된다. SK는 베테랑 수비수를 보완한 트레이드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SK에서의 이병석의 모습은 모비스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펼치지 못했다. 3점슛 능력도 해를 가면서 떨어지는데다, 무엇보다도 SK시절에는 모비스에서 보여주던 수비능력에 비해 떨어진 수비실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0-2011시즌을 앞두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황성인과 1:1 트레이드되었다.[1]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시절에는 궂은일을 이현호와 함께 맡으며 열심히 뛰어 다녔지만, 실질적으로 전성기 때에도 3점 슛 능력이 뛰어나 슈터 역할을 해주기도 했지만 원체 득점력이 뛰어나지는 않았기도 하고, 팀 내에서의 역할 자체가 이현호와 함께 블루워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노장 식스맨치고 나쁘지 않았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젊은 가드의 보강과, 약한 수비를 보강해줄 포워드를 필요로 했던 서울 삼성 썬더스의 생각 아래 강혁과 1:2 트레이드로 김태형과 함께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강혁이 트레이드 상대였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다니기는 했지만 삼성의 팬들이 이병석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병석이 들어오고 나서도 딱히 삼성의 수비력이 보강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쓸쓸하게 은퇴했다.
분명히 주목받는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선수 시절에는 뛰어나고 악착같은 수비력과 3점 슛 능력을 보여 주었기에 쏠쏠했던 선수로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3. 은퇴 이후
심판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2018년부터 명지대 농구부 코치로 부임했다. 2020년부터는 명지대에서 지낸 조성원 감독에 부름을 받아 창원 LG 세이커스 코치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