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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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인물이 이병태 국방장관. 왼쪽 인물은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


李炳台
1937년 2월 1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관료이다. 본관은 영천이다. 이경식 전 경제부총리의 5촌 조카이다.

2. 생애


1937년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11회)[1],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제1군단장,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을 지내고 1992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2]
하나회 출신이지만 이례적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중용되었다.[3] 예편 후 주 호놀룰루 총영사로 있던 중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1993년 2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되었다.[4] 이후 1993년 12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1년간 국방장관을 역임하였다.[5] 간단히 말해, 영변 원자로 공습까지 거론되었던 '''1차 북핵 위기 당시의 국방장관'''이었다.
국방장관 재임 중이던 1994년 7월 초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일산신도시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건설되었다고 답변했다가 일산신도시 주민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6][7]
2017년 80대의 나이로 미국 터프츠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8]



[1] 박희태, 이학봉과 고교 동기다.[2] 이처럼 1군단장-합참 작전본부장-이후 국방장관을 차례로 역임한 육사 후배로 서욱(육사 41기)이 있다.[3] YS의 의견은 하나회 핵심이라면 왜 중장만 하고 예편했겠냐는 것. [4] 박관용 당시 비서실장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장 기용도 문민정부 출범 조각 때 보훈처장을 빠뜨린 게 뒤늦게 발견돼 갑자기 '옮겨심기' 식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5] 이는 전임 국방장관 권영해가 안기부장으로 임명되면서, 비하나회+5.16/12.12 미가담+부패 없는 인물이란 조건을 충족하는 대장급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군내 요직에 하나회 인사가 많아서 숙군 작업 후엔 마땅한 인사가 없었던 것.[6] 특히 일산신도시 아파트를 유사시 적 기동 부대 저지용 장애물로 쓸수 있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었다. 야당에서 해당 발언을 문제삼아 해임 건의안 제출까지 추진했지만, 얼마 후 김일성 사망 소식에 묻혀져 유야무야되었다.[7]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박관용에 따르면 이후로 이병태는 YS에게 장관직을 떠날 때까지 호명될 때마다 XX 호칭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8]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도 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