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1. 개요
2. 발생 원인
3. 이산가족 상봉
4. 현재판 이산가족들과 앞으로의 상황


1. 개요


'''"갈 수 없는 길에 뿌려진~! 천만 인의 눈물이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 곡 발해를 꿈꾸며의 2절 가사 한 구절.

離散家族
가족들이 본의 아니게 흩어짐으로써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가족을 뜻하는 말이다. 서로 생사를 모르고 막연히 그리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사를 알고 있어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평화를 지향하는 현대에서는 그럴 일들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줄었지만, 엄연히 '''현재도 발생하고 있는''' 가족이다. 당장 대한민국만 봐도 그렇다. 따라서 아래의 서술은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을 주로 작성한다.

2. 발생 원인


주로 '''전쟁'''이나 자연 재해로 인해 발생한다. 옛날에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노예로 끌려가거나 전쟁중 낙오 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제 강점기시절에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6.25 전쟁이 발생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좀 더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이산가족의 역사는 삼국사기 등에서도 여러 잦은 전쟁으로 발견되며, 고려시대의 공녀제도 또한 이산가족이 발생한 한 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등 조선시대에도 여러 전란()에 휩싸여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휴대폰이나 전자기기, SNS가 없던 당시에는 서로 생사도 모르고 죽는 경우가 많았을 듯하다.
이후 남북 분단 및 '''6.25 전쟁'''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휴전선으로 인해 아직도 이산가족은 현재진행형인 상태. 2015년 기준 이산가족 1세대는 최소연령 70세에서 최대연령 100세에 이르는 등 고령화가 심각해진 한편, 남북관계가 언제 통일될지 모르는 분단 고착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라서 6.25 전쟁 이산가족 1세대가 혈연을 또 만나볼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한편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산가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원인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같이 '''전쟁''' 때문이다. 서독과 동독이 발생할 시기에도 이산가족이 만들어졌으며,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사람 중에서도 이산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도마 위에 오르는 편이다. 물론 종전된 지 몇십 년이 지난 상태이지만 전쟁 통에 헤어졌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 가끔 유럽 사람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준다고.
중화권에서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과 대만에 이산가족들이 생겨났다. 공자 직계 후손도 공덕성은 대만으로 갔지만 이외의 공자 일문은 중국대륙에 남아 있어서 이산가족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공식적인 중국과 대만간의 민간교류가 막혀있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민간 차원에서 중국과 대만간의 상호왕래가 허용됨에 따라 대만인의 중국방문이 일반화되었고, 중국인들의 대만방문도 공공연하게 이루워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산가족이라 보기 어렵다. 독일의 경우에는 동서독간의 상호교류는 활발했고, 서독인들이 동독을 얼마든지 방문할수있었고 동독인들도 제한은 있었기는 했지만 서독방문이 불가능한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이산가족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이산의 이유는 작게는 정치적 다툼, 크게는 전쟁 때문이지만 현대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만나지 못하거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러기 아빠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 해외로 나간 아버지의 소식이 별안간 끊어지고 가족들이 애타게 찾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직접 찾아가서 수소문하거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때도 있으며, 비슷한 경우로 집안이 궁핍하여 아기를 양육시설에 맡겼는데 나중에 데려오려 하니 그새 이미 어딘가로 입양이 되어 버려 찾기가 힘든 일도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과 딸의 관계도 어찌 보면 이산가족의 한 가지 사례이다.

3. 이산가족 상봉


수많은 이산가족들을 위해 갖은 노력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어지면서 남한 혹은 해외의 이산가족을 찾아주기도 했으며,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가 이뤄진 후에 2000년 8월 15일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이후 여러 차례 상봉이 있었다.

4. 현재판 이산가족들과 앞으로의 상황


이산가족들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이산가족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일단 2대, 3대의 가족들도 이산가족이기는 하나, 헤어지는 슬픔을 직접 겪은 이산가족 1세대 이외에는 스스로를 이산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대 시점까지 생존한 이산가족 1세대들은 80~90살이 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고, 이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10여살의 어린 나이에 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2세대들은 자신의 부모세대가 실향민이라는 인식 정도만 있을 뿐이지, 북한에 있는 다른 친척을 찾겠다는 생각은 아주 옅다. 아울러 근 70년 이상 동안 왕래 한 번 없었던 이들을 한 가족, 한 일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1세대와 1세대, 또는 1세대가 자신의 자손 및 친족을 찾아서 만나는 것이 거의 100%이고, 1세대 당사자들이 타계하면 교류는 대부분 끝난다.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남남이 되어버리는 것. 2020년 기준 앞으로 10년 안에 이산가족 상봉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