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화
1. 개요
前 KBO 리그의 야구선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었으며, 주로 2번 타자에 기용되었다. 팀내 역할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도화선 역할로, 테이블 세터 포지션이었다. 당시 도루를 잘 안하던 빙그레 타선에서 그나마 도루를 하던 선수였기 때문인지 빙그레 올드팬들에게는 더욱 기억에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1989년 21연속 도루 성공 기록을 세웠다. 이를 봤을 때 도루능력이 좋았던 것은 확실하다. 또한 한화의 날쌘돌이 계보는 이중화에게서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성기 시절엔 타율도 꽤나 준수했고 빠른 주루능력으로 대부분 상위타선에 기용되었다.
2. 선수 경력
2.1. 빙그레-한화 이글스 시절
1987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좌타자의 희소성을 인정받아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입단 초기였던 1987년과 1988년은 각각 48경기, 66경기에 출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이후 1989년부터는 김영덕 감독의 용병술로 주로 2번 타자에 기용되었다. 1989년 8월 25일까지 21연속 도루 기록을 세웠다. 이해에는 25도루 49득점을 기록했다. OPS도 .719로 나쁜 편은 아니었다.
1990년에도 줄곧 2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선구안이 상승해 출루율 중 볼넷의 비율이 많아졌다. 도루도 꼬박꼬박 해서 16도루를 달성하지만, 도루실패율이 두 배로 늘어난 건 덤.
1991년에는 351타석에 들어서 25도루 34볼넷 46득점을 기록. 타율도 3할, 장타율은 4할, .776의 OPS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선수로서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이 해 수준급 활약을 펼쳤고 팀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8회 2사 후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놓치며 퍼펙트를 기록하던 송진우가 흔들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며 결국 패배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1] 그래도 당해년도 정규 시즌에 war 2.99를 찍는 등 수준급의 선수로 성장하는듯 보였으나..
다음해인 1992년부터 부진의 늪에 빠져버린다. 도루 횟수도 반토막 나버리고, 타율도 2할대 초반을 기록하며 전년도의 페이스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1993년에는 부상까지 겹쳤고 이후로도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해 결국 1995년 5월 30일자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5년에는 경기에 거의 나오지 못하였으며 7경기에 출전하여 1안타를 기록하였다.
이듬해인 1996년, 64경기에 출전해 타율 .247, 출루율 .302, OPS .617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시즌 종료 후 손목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
한동안 개인 사업을 하다가 2011년 대전광역시에 상설 야구클리닉을 개업했다고 한다. 위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근처라고 한다.
이후 충청권 캐이블 SO 방송인 CMB 대전방송에서 야구중계를 맡아서 중계하고있다. 기본적으로는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만 중계를 하며 간혹 청주구장 경기가 있을때도 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