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87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87년 KBO 신인 드래프트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됐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86년 11월 5일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3명을 뽑았다. 전년도까지 10명을 뽑았으나 전력평준화를 위해 3명으로 줄었다. 연고지가 겹치는 MBC와 OB는 11월 3일에 먼저 1차 지명을 했다.
순번을 정해 지명한 MBC와 OB만 지명순서대로 기재하고, 다른 구단들은 가나다 순이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3. 2차 지명
2차 지명은 1986년 11월 24일에 했다. 꼴찌팀과 6위팀에게 2차 우선 지명권을 2장씩 줬다. 1차 지명 수가 줄어든 만큼 이 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2차 지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드래프트 평가
-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 강기웅이라는 역대급 키스톤 콤비를 입단시켰다. 이 류중일이 선수로서도 잘했으며 후일에 코치,감독으로 크게 성공했으니 삼성의 입장에선 이 드래프트로 아주 큰 소득을 얻은 셈이다. 다만 투수진 강화 드립을 치며 장태수를 지명하는 바람에 이정훈을 놓쳤으니.... 나중에 이정훈은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지만, 부상으로 인해 빙그레 시절만큼 보여 주지 못했다.
- OB 베어스 : 건진선수가 아무도 없다. 망했어요. 그나마 뽑은 진상봉은 지명을 쌩까고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후 1991년에 연고지팀인 빙그레의 1차지명을 받고 빙그레, 한화에서 뛰었다.
- 빙그레 이글스 : 배성서 감독의 작전으로 악동님을 얻었다. 그리고 악동님은 1987년 최우수 신인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작년 장종훈에 이어 연습생 신화라 불리는 투수가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 해태 타이거즈 : 박철우는 사실상 유일한 좌타자로서 타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고, 쌍방울에서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백인호도 주전 내야수로 뛰다가, 박철우와 비슷한 시기에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해태에서 은퇴했다. 수비코치로서의 능력은 무난하지만, 주루코치로서 능력이 워낙에 나빠서 욕만 배부르게 먹었다. 조용호는 소리없이 빙그레를 거쳐 타자로 전업해서 쌍방울로 갔고, 거기서 3할타율을 찍어보고 은퇴했다.
- 청보 핀토스: 그 전해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최창호를 정식 선수로 지명해서 데려온 것을 빼면 소득이 아에 없다.
- 롯데 자이언츠: 1차지명자인 김종석을 비롯한 선수들은 프로에서 망했고, 2차지명에서 유일하게 건진 선수인 전종화는 선수로서 그럭저럭 해주었고, 코치로서의 능력도 괜찮은 편이다. 다만,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파동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점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았다. 박태호는 대구고의 지휘봉을 잡아 전국대회 우승을 수 차례 성공시켰으며 영남대 감독으로 이동하였다.
tmi 김종석은 현재 부산중 감독생활을 하며 좋은 투수들을 만들고있다
5. 이모저모
- 뛰어난 선수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 외환 사정 악화로 대부분의 구단이 자금난에 시달렸고 그래서 모든 구단이 선수 영입에 인색했다.
- OB에 1차 지명된 조재환은 지명권 양도로 해태에 입단했다.
- 청보에 1차 지명된 임성주는 지명 후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포철에 입단했다가 지명된지 7년만인 1994년에야 입단했다.
- 청보에 2차 1라운드 지명된 최진영은 지명권 양도로 삼성에 입단했다.
- 해태에 2차 1라운드 지명된 조용호는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 청보에 2차 2라운드 지명된 박성현은 청보에 입단하지 않았고, 1988년에 빙그레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