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언
李悤言
(858~938)
후삼국시대, 고려초기의 호족.
본거지는 벽진군인데 오늘날의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벽진의 지방 호족으로 신라 말 혼란기에 도적들이 성주 주변 지역을 장악하자 성을 굳게 지켜 방어하였다. 이총언은 사병을 거느린 지방 세력가였던 모양인데, 통일신라에서 군의 장관은 태수였지만 고려사 이총언 열전에서는 이 당시 그의 구체적 관직명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그는 중앙정부에서 보내진 지방관이라기보다는 토착 촌주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후삼국시대 영남지역 호족들이 그렇듯 친신라 성향으로 작은 독립세력을 형성하고 수성하고 있었으나 도적과 후백제의 위협 앞에서 작은 세력으로서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궁예를 쫓아내고 고려왕조의 기틀을 다지던 왕건이 먼저 접근하였다. 왕건은 같이 힘써 싸우자고 사람을 보냈고, 고립된 상황이던 이총언은 매우 기뻐하며 아들 이영(李永)을 보내 왕건 아래에서 일하게 하였다. 벽진군은 후백제군이 고려의 동맹인 신라와 다툴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 근처에 있었으므로, 여기가 친고려 세력이 되면서 고려의 통일전쟁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후백제군이 벽진군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막아낸 것으로, 후백제의 기세를 잠재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공으로 그는 고려 개국공신에 책봉되었다.
그의 사후 그의 후손들은 벽진을 본관으로 삼는 벽진 이씨가 되어 조선시대 까지 사대부가로서 명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태조 왕건에서는 김영인(1940)이 연기하였다. 견훤이 3번째로 대야성으로 쳐들어갈 때 대야성과 더불어서 벽진군을 점령하기 위해 신검과 병사 5천 명을 보냈는데, 이총언은 1천 명도 안되는 군사로 신검을 말 그대로 캐박살 내버린다. 재미있게도 벽진군으로 쳐들어온 신검 역의 배우 이광기는 벽진 이씨로 이총언의 33대손이라 비록 드라마이긴 해도 조상과 맞서싸운 셈. 이게 알려져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벽진 이씨 문중에서 이광기에게 어떻게 조상님께 무례를 범하냐고 항의했다는 소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