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기

 

[image]
'''이름'''
이광기(李光基)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69년 4월 10일 (54세)
'''신체'''
175cm
'''데뷔'''
1985년 KBS 드라마 해돋는 언덕
'''본관'''
벽진 이씨
'''학력'''
명지전문대학 졸업
'''종교'''
불교개신교[1]
1. 개요
2. 활동 작품
3. 바이오그라피
3.1. 가족 관계
3.2. 무명 시절
3.3. 데뷔 17년차에 찾아 온 전성기
3.4.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4. 극복 후 활동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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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광기는 1985년 KBS 드라마 '해돋는 언덕'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 '야인시대'(배우 활동), '해피 타임'(예능 활동)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2. 활동 작품


'''작품'''
'''연도'''
'''작품명'''
'''배역''' 및 '''역할'''
'''비고'''
'''드라마'''
KBS
1992년
<삼국기>
천지 천왕

1996년
'''<전설의 고향>'''

[2]
1998년
<왕과 비>
의경세자

2000년
<태조 왕건>
'''신검'''

2003년
<장희빈>
홍치상

2004년
<달래네 집>
이광기

2010년
<사랑하길 잘했어>
도기

2014년
<정도전>
'''하륜'''
[3]
<드라마 시리즈>


2015년
<징비록>
'''고니시 유키나가'''

MBC
1990년
내 친구 깨치


2002년
베스트 극장


SBS
1995년
<코리아게이트>
김오랑

2003년
<야인시대>
이억일

JTBC
2011년
<인수대비>
안평대군

'''TV 프로그램'''
2006년
KBS2 <무한지대 큐>
MC

2007년
tvN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MC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패널

2008년
<해피타임>
패널

2009년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패널
[4]
2013년 7월 27일
KBS2 <세대공감 토요일>

[5]
2015년
JTBC 유자식 상팔자

[6]
2020년
채널A 행복한 아침

408회 게스트
2020년
EBS 로망대로 살아볼까
나만의 세컨드 하우스_이광기편
[7]
'''영화'''
2001년
<소름>
이 작가

2002년
<휘파람 공주>
종길

2004년
<그녀를 모르면 간첩>
김영광
단역
2009년
<부산>
노름꾼
단역
'''연극''' 등
2006년
<아트>
규태

2011년
<민들레 바람되어>
안중기

'''<가시고기>'''
'''정호연(아이 아버지)'''
[8]
  • 이 밖에 뮤지컬 에 출연했고 2009년에 <웃자웃자>와 2015년에 맹꽁이 아빠[9][10]를 발표한 트로트 가수다.

3. 바이오그라피



3.1. 가족 관계


  • 배우자: 박지영 (1971년 ~ )
    • 장녀: 이연지 (1999년 ~ )
    • 장남: 이석규 (2003년 8월 25일 ~ 2009년 11월 8일)[11]
    • 차남: 이준서 (2012년 12월 12일 ~ )
이광기의 아버지는 1997년 세상을 떠났고, 이광기는 지금의 아내와 1998년 결혼하여 1999년 장녀 연지, 2003년에는 장남 석규[12]를 낳았다. 2007년 4월에는 아내와 아이 둘을 모두 필리핀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4월부터 필리핀에서 가족들이 귀국해 같이 살기 시작한다.

3.2. 무명 시절


서울에서 태어나 1980년대부터 이미 아역배우로 데뷔했으며 그때는 지금처럼 그리 비중이 크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삼국기전설의 고향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극에서 배역을 맡으며 경력을 쌓았으나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다.[13]

3.3. 데뷔 17년차에 찾아 온 전성기


본격적으로 이름 석자를 알린 것은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맏아들인 '''신검''' 역을 맡아 극 중반에서부터 합류하면서부터였다. 호부견자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견훤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한심하고 유약한 장남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냥 그저 그런 비중에 그치나 싶었지만 후반부에 가서 아버지 견훤을 축출하고 백제 왕에 오른 뒤 비중이 급상승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몸부림치는 연기를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데뷔 17년차가 되어서야 2001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후 출연한 야인시대에서도 이정재의 수행비서 이억일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비중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야인시대 내에서 손꼽히는 진중함과 충성심을 가진 배역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살려 현재까지도 그 당시의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야인시대가 대 히트하면서 소프모어 징크스도 피해가게 됐다. 이 시기 유흥에 많이 빠져살았다고도 회고했다.
야인시대 스페셜 방송에서는 동대문파 배역의 배우들과 함께 나와 흔들린 우정을 부르기도 했다. 임화수 역의 최준용이정재 역의 김영호도 한 소절씩 함께 불렀다.
주로 무거운 역에서 인상을 많이 남겼지만, 2003년 5월 8일 방영된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코너에서는 그야말로 친한 동네형같은 털털함과 더불어 의외의 예능감을 뽐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튜브 링크 사극 장희빈에서는 홍치상 역으로 출연하면서 당시 함께 출연했던 박선영, 박예진 등과 한 팀으로 나왔던 쟁반노래방의 에피소드전설의 레전드급 에피소드로 통하며, 이후 이광기가 본격적으로 예능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도전곡이 '푸른 잔디'였는데, 5번째 시도 3소절의 '가슴이 저절로'를 '가슴이 '''뻐렁쳐''''로 부른 것이 압권이었다.[14] 심지어 예능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이후 진중한 연기를 보면서 예능에서의 모습이 겹치는 바람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할 정도. 이 이후 15년이 지난 2018년에도 뻐렁치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예가 있으며,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아예 표준어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도 몇명 있긴 있다. 물론 그 출처가 네이버 오픈사전이므로 당연히 표준어는 아니다.
그렇게 2008년경까지 해피타임 같은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예능인으로도 활동을 했다. 예능에서의 유쾌하면서 다소 어리버리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꽤나 준수한 연기파 배우다.

3.4.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2009년 11월 6일에 아들 이석규 군이 감기에 걸려 감기약을 먹고 있었는데 좀처럼 낫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큰 병원에 아들을 데려가보니 인플루엔자 H1N1에 감염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2009년에 범유행했던 그 인플루엔자(당시 통명 '신종플루')이다. 치사율은 0.1% 정도로 웬만한 독감보다도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라 그리 위험한 병이 아니었지만, 일단 처음부터 그 증상을 감기로 오인했으며,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아 타미플루의 복용이 늦어진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15] 그래도 아들은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16] 이광기와 정상적인 소통을 했지만 며칠 뒤인 11월 8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6세.[17]
이광기의 아내는 충격으로 실신했고, 이광기는 고인이 생전에 자주 애용하던 장난감을 들고 아내와 함께 크게 오열했다. 특히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누나 연지가 '''동생의 영정사진을 직접 들고'''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생전 아들은 이광기의 동료들과 안면이 있었는데, 이를 말해주듯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다. 김구라, 유재석, 김보성, 지석진, 이정원, 차인표- 신애라 부부, 조형기[18], 박남정 등이었다. 최진영도 조문을 왔었는데, 이광기가 생전 최진실과 사이가 각별했기 때문에 이 인연으로 조문을 왔다. 4~5개월 후 본인도 세상을 떠났는데, 이 때는 이광기가 최진영의 조문을 갔다.
발인은 2009년 11월 10일 이루어졌으며, 김구라, 김보성 등이 운구를 들었다. 화장은 벽제에서 치러졌으며 유골은 벽제공원 하늘문 납골당에 안치되어있다.[19]
이후 이광기는 2009년 12월 중순까지 한달 여간 방송 활동을 중단했고, 출연하던 해피타임에서 잠정 하차했다. 이 시기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한다. 장례를 마치고 온 날 밤 아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신한 듯 오열을 하자 이광기는 그걸 듣기가 힘들어 옥상으로 나갔고, 옥상 끝에 서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한다. 뛰어내리기 위해 몸을 밑으로 숙인 순간, 뭔가 편안한 바람이 그의 곁을 스쳐갔고, 무언가의 힘이 그를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이 정말로 있다고 믿게 되었고, 결국 자살하려는 마음을 접고 그 때부터 교회에 열성적으로 나가는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몇 번 고비가 있었는데, 한 번은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다시 마음이 괴로워져 교통사고를 고의로 내려고 했지만, 차에서 흘러나오는 CCM CD를 듣고 오열하며 다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젖은 사자곡.
현재까지도 이광기는 매년 기일마다 그의 납골당을 찾아가고 있으며, 막내아들 준서가 태어난 이후에도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있다고 한다.[20]

4. 극복 후 활동


2009년 11월 둘째 아들 석규가 사망한 뒤에는 2010년에 아이티에 발생한 지진으로 봉사에 참여했다. 봉사를 하면서 아들 석규를 잃은 슬픈 마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기쁨을 얻고 방송에 복귀했다.[21]

그렇게 봉사활동만 하다가 2011년 연극 <가시고기>를 통해 다시 연예계 활동을 재개했고 2014년 정도전 하륜역을 통해 완전한 재기에 성공했다. 현재는 예능과 간증에 자주 나오는 중. 이후 2011년 12월 12일에 장남을 잃은 아픔을 딛고 차남 준서가 태어났다. 차남이 태어난 이후 본인도 다시 방송에 출연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정도전에서 하륜을 맡으면서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분량은 많지는 않았지만 (주연들 중에서는 가장 적었다.) 특유의 능글거림과 구렁이 담넘어가듯 자유롭게 여러곳에 섞이는 감초로써 열연하였다. 심지어 의도치 않게 유행어도 만들어냈는데 그 유행어가 '''소생, 하륜입니다(...)'''
이후 여러 사극에 등장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파주시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본인이 가끔씩 가게로 출근할 때도 있다고.
복면가왕 92차 경연에서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캔디가이로 나와 생강이 있어 없어? 진저맨과 같이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을 불렀으며 정체를 밝힐 때 부른 곡은 김현식의 '사랑했어요'였다.
2019년 1월 14일에 모친상을 당했다.관련 기사
나 혼자 산다에서 헨리가 자선경매에 참여했을때 그 역시 경매에 참여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경매 경험이 처음이라 우왕좌왕하는 헨리에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과감하게 지르라고 조언해주기도 한다.[22] 본인도 직접 그린 그림을 경매에 내걸기도 했다. 자선경매에 자주 참여한다고 한다
2019년 말부터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5. 여담


  • 이 배우가 맡은 역할 문서보다도 본인 문서가 더 늦게 만들어졌다. 덤으로, 리그베다 위키 시절엔 아예 본인 문서 조차도 없었다.
  • 타짱에 출연한 적이 있다.(5회, 2006/12/20) 물론 결과는 김홍식(코미디언)에게 밀려서 1라운드 탈락.
  • 원래는 가수를 꿈꿨고 본인이 직접 자작곡도 지었을 정도로 열성적이였으나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과거스펀지에서도 공개했고, 으로 청중평가단 앞에서도 자작곡을 열창했으나 반응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론 일본아이돌 소년대를 모델로 한 그룹을 준비중이었는데, 배종옥이 이미 그거 소방차가 하고 있다며 절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 연예계에서도 알아주는 아웃도어 매니아이다. 아예 자신의 전용 캠핑장비를 차로 가지고 있을 정도며, 김구라 부자의 캠핑 멘토가 되기도 했다.
  • 한창 드라마 정도전으로 인기 끌었을 시기에 1대 100 3월 18일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우승상금의 목적은 아이티 태양열 발전기 설치라고 밝혔다. 평소에 비해 매우 어려운 난이도임에도 6단계 1:7까지 갔으며 본인은 긴장감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또한 정도전을 녹화했을 때 주로 선배급인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본인이 막내라고 말했다. 조재현, 유동근의 커피 심부름은 덤.
  • 장신영의 예명을 지어준 사람이며 김구라가 동상이몽2에서 직접 언급했고, 또한 장신영 본인도 밝혔다.
  • 태조 왕건에서 신검 역할을 할때 벽진군 전투로 인해 벽진 이씨 문중에서 시조를 공격했다고 항의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배우야 어디까지나 연기를 했을 뿐이라 이광기도 이 사실을 알리며 해명하느라 고생했다. 이와 비슷한 일화로 삼국지의 오나라 도독이던 주유의 후손 주윤발이 주유와 적대관계이던 조조를 연기하여 주유와 싸운 영화도 있다.
[1]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이후 개종하였다. 원래는 에 계속 가려고 했지만, 무명 시절 돈 없던 자신을 믿어주고 결혼해준 아내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에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것도 아니었고, 또한 성경에 대해 별로 관심도 많이 없었기에 예배에서 맨날 졸고 자주 빠지는 솥뚜껑 신앙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나마 교회에 나가도 성도들의 인사를 받으러 나간 거였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에 석규가 신종플루로 죽자, 그 이후로 솥뚜껑 신앙에서 벗어났다.[2] 그 유명한 '''내 다리 내놔'''의 주인공 귀신 역을 했다.[3] 활동을 쉬었다가 복귀한 이광기의 인지도를 단번에 끌어올린 배역이다.[4] 이석규가 생전에 출연한 '''마지막 작품'''이다.[5] 183회에 신지와 함께 특별출연[6] 딸 이연지 양과 함께 출연[7] 다시보기#[8] 상술했듯 '''이석규가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연 때문에''' 출연한 연극이다.[9] 이것도 아들 이석규가 세상을 떠난 것의 영향이 크다.[10] 다만 맹꽁이 아빠는 트로트가 아니라 동요라고 봐야 한다. 세상을 떠난 큰아들보다 3살이 어린 아역배우 전진서와의 듀엣으로 발표했다.[11] 생존하였다면 고등학교 3학년이다.[12] 야인시대를 촬영하던 도중에 낳았다.[13] 전설의 고향에서 맡은 대표적인 배역 중 하나가 '덕대골'이란 제목으로 방영한 내 다리 내놔에서 한쪽 다리를 잘리자 살아나 "내 다리 내놔"를 외치며 집까지 쫓아오는 시체 역할이다. 진짜 독기어린 목소리로 외다리 상태임에도 밤에 쫓아오는 모습이 실로 공포스러움이 돋보인다.[14] 사실 이 징조는 전곡 다시듣기를 뽑은 이후, 5번째 시도 직전에 제작진이 실수로 지난 주 노래 종이접기로 잘못 트는 틈을 타 박예진에 3소절 가사가 맞는지 물어봤는데 이때 박예진이 당황했다.[15]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때 국내에서 27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언론들이 공포 조장 뉴스를 찍어내며 굉장히 치명적인 병인 양 각 학교별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수학여행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보통 난리가 아니었던 통에 오해가 생겼지만, 한 해에 국내에서 독감으로만 2천여 명이 사망하는 마당에 70만 명 감염되어 3백 명 미만 사망한 유행성 질병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16]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빠, 밖에 천둥이 쳐요' 였다고.[17] 2003년생이다.[18] 당시 석규의 빈소로 향할 때, 장난감을 사들고 갔다.[19] 안재환이 안치된 곳과 같다.[20] 후술하겠지만 막내 준서는 2011년생이라서 석규와 준서는 생전 만난적이 없다. 일부 네티즌들은 준서가 태어난 소식에 이른나이에 떠나기 싫었던 석규가 동생으로 환생한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21] 당시 절친이었던 김구라가 이광기를 많이 챙겼다고 한다. 본인이 진행하는 휴머니즘프로에도 함께하자 섭외하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고. 이에 이광기는 활동의 끈을 놓지않고 방송과 연극등지에서 활동을 조금이나마 이어나갔다.[22] 이광기의 조언 덕에 헨리는 박지성 사인볼을 낙찰받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