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1949)
1. 개요
194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49년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당산초등학교, 서울장훈중학교를 졸업하였다.[2]
서울장훈중학교 졸업 후 좋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인해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3. 정치인 시절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양천구의회 의장을 지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서울특별시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계파로는 원희룡계에 속해 있었던 모양이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무소속 추재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검정고시 대리시험으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되어 2007년 구청장직을 상실하였다.
4. 논란
당선된지 1년도 안 되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고, 결국 2007년에 구청장직을 상실했는데, 그 이유가 '''대학 입학 검정고시 대리시험(...)'''이였다. 당시 선거 팜플렛에 가난한 집안을 그렇게 강조했었던지라 유권자들의 배신감이 매우 컸다.
어떻게 보면 양천구청장의 수난사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 최고위원이였던 원희룡이 공천에 개입해 자기 사람이였던 이훈구를 공천시키기 위해, 추재엽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는데 이 게 매우 잡음이 있었다. 아예 경선 조차 치르지 않고 공천에 배제시켜버렸던 건데, 추재엽은 이 때 지역구민들에게 매우 평이 좋았기 때문에[3]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좀 많이 심각했었다.
결국 추재엽은 공천에 불복하여, 탈당했으나 낙선했고, 추재엽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 2007년 검정고시 대리시험 혐의로 구청장직 상실.[2] 뭐 서울 외곽지역이 다 그러했듯이지금이야 목동에 초등학교가 많지만, 이 때는 당산동까지 가야 했다. 마을버스도 없었던 시절이니 뭐... 목동이 개발된 시기는 1980년대였고, 현재의 목동은 그야말로 논밭이였다. 목동사거리에서 목동4단지로 넘어가는 곳은 원래 계곡이 있었다. 목동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하천이 있었다. 지금이야 다 복개 상태지만.[3] 전국 최초로 음식물 쓰레기 용기 개발해서 양천구 각 가정에 무상 보급해서 음식물 쓰레기 악취를 줄인 성과를 인정 받아 매니매스토 평가 등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어 표창을 받기도 했었으며, 일본에서 취재를 왔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