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1. 개요
2. 인식론의 고전적 문제
2.1. 앎이란 무엇인가?
2.3.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3. 인식론의 하위 분야
4. 기타
5. 관련 항목
5.1. 더 읽을만한 글
5.3. 인식론과 관련된 주제가 등장하는 작품들


1. 개요


/ Epistemology, theory of knowledge
인식론은 혹은 지식의 본성과 범위를 연구하는 철학의 분과에 해당한다. 지식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안다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이 무언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등을 탐구하는 것이 주된 과제다.
'존재'를 주로 다루는 형이상학과 더불어 서양 고대철학 시기부터 철학의 핵심 분야로 간주되었고, 특히 근대 철학 시기엔 데카르트로크 등의 철학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학제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데이비드 흄 이래 형이상학과는 상당 부분 분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에는 분석철학, 과학철학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 인식론의 고전적 문제



2.1. 앎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이래 앎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justified true belief; JTB)'이라고 받아 들여졌다.[1] 하지만 에드먼드 게티어는 그에 대한 반례로 보이는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하였다[2]. 이들 반례는 정당한가? 만약 그렇다면 우린 기존의 '앎' 정의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가? '''게티어 문제''' 참조.

2.2. 우리가 아는 게 있는가?


데카르트의 책이나 매트릭스에서 상상되었듯이 어쩌면 악령이나 외계인 같은 게 우리를 통 속에 가둬 두고 거짓 정보를 보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 대부분은 틀린 것일 텐데, 우리의 믿음은 과연 여전히 정당한 앎인가? 어떻게 확실한 믿음을 확보할 수 있을까? 통 속의 뇌 참조.

2.3.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믿는 것"과 "'''합리적으로''' 믿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지구는 둥글다'고 믿는 철희와 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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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희와 동희는 둘다 '지구는 둥글다'고 믿지만, 그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 철희: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서 봤을 때, 지구는 둥글다고 보는 게 맞아."

* 동희: "왜 지구가 둥그냐고? 동그라미가 네모보다 예쁘잖아!"

철희와 동희는 둘다 '지구는 둥글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참을 믿는다. 그러나 철희의 믿음은 합리적이고 인식적으로 정당한 반면, 동희의 믿음은 참이라 한들 비합리적이며 인식적으로 정당치 못한 것 같다.
이때 '합리적이다', '인식적으로 정당하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정당한 믿음은 어떤 확실한 토대 믿음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토대 믿음 없이도 모든 믿음들이 아귀가 맞기만 하면 합리성이 확보되는가? 이런 '합리성', '인식적 정당화'가 앎의 필요조건이기는 한가?

3. 인식론의 하위 분야


  • 진리론(Alethiology)[3]
  • 형식인식론: 논리학, 확률론, 통계학 등의 형식과학에서 발생하는 인식적 문제를 고찰하는 분야. 베이즈주의 인식론 참조.
  • 사회인식론

4. 기타


국제 대학입시 자격 시험 중 하나인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필수 과목 중 하나인 "Theory of Knowledge"가 인식론의 기초적 내용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다.

5. 관련 항목



5.1. 더 읽을만한 글



5.2. 인식론 관련 정보


해당 항목 참조

5.3. 인식론과 관련된 주제가 등장하는 작품들



[1] 이것은 영미철학에서 고전의 고증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이다. 영미철학은 현대적인 문제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서, 고증에 있어서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 넙죽 받아들이고 현대적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정작 테아이테토스에서는 " 어쨌거나 수많은 사례를 생각해 봤지만 잘 맞아떨어지는 게 없구나 테아이테토스여 난 시간이 없으니 간다 빠이" 같은 느낌으로 글이 끝난다. 차라리 앎이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는 주장은 플라톤 중기의 대화편인 메논이나 파이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테아이테토스가 후기 대화편이며, 중기 대화편에서 제시했던 JTB를 확립하기 위해 전진하다가 좌초하고 암튼 우리가 JTB를 포함해서 앎에 대해 여러가지로 열심히 검토했고 여러 가설을 제시해 봤던 것은 확실하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고 일단 시간 없으니 빠이 하는 식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플라톤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JTB를 받아들였던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테아이테토스 이래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 이상한 것은 맞다.[2] Edmund L.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Vol. 23, pp. 121–23 (1963).[3] 다만 진리론의 경우 인식론이 아닌 형이상학에서 다룬다고 보는 견해도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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