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1. 개요
1.1.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의 함의?
1.2. 어원
2. 형이상학의 분야
2.1. 일반 형이상학(존재론)
2.2. 특수 형이상학
3.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


1. 개요


/ Metaphysics
"형이상학"이란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쉽지 않다. 다만 형이상학자들이 대답하고자 했던 질문들 중 대표적인 예시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진짜인가?
  • 정말로 있다는 게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신은 있는가?
  • 사람의 의지는 자유로운가?
다음 예시들은 곧 위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서로 다른 대답들이므로 곧 '''형이상학적인 주장'''들에 해당한다.
형이상학자들의 목표는 곧 위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에 관하여 예시처럼 나름의 대답을 제공하고, 그 대답의 '''근거'''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형이하학 이 있다.

1.1.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의 함의?


현대 한국어에서 일상적으로 "~은 형이상학적이다"라는 말은 "~은 너무 사변적이다", "~은 너무 추상적이다", "~은 뜬구름 잡는 소리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는 한다. 이는 비단 한국어만이 아니라 영어의 "metaphysical" 같은 표현의 일상적 쓰임새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형이상학"은 종종 '너무나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소리만 하는 나머지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의 총칭으로 여겨진다.
그 타당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러한 부정적 견해는 비단 일반인만이 아니라 많은 철학자, 심지어는 후대에 '형이상학자'로 분류되는 철학자들조차 종종 드러내는 견해이기도 하다. 즉 "x의 얘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 글러먹었어!"라고 하는 누군가의 주장이 후대의 철학사 작업에선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여겨지는 것.

1.2. 어원


"Metaphysics"라는 표현은 고대 그리스어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ὰ βιβλία (Ta meta ta physika biblia)"라는 표현에서 유래했으며, 그 본래 뜻은 ''''자연학 뒤에 오는 책''''이다. 왜냐면 자연철학을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자연학(Φυσικὴ ἀκρόασις)』인데, 로도스의 안드로니쿠스(BC 284?~BC 204?)라는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을 정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제1철학"이라고 부른 자료를 모아 "『자연학』 뒤에 오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종합한 것. 어쨌든 원래는 책 제목이었는데, 어째 표현이 "자연적인 것(물리적인 것)의 너머에 있는 것" 정도의 의미도 되는지라 학문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1]
그 후 일본의 학자들이 "Metaphysics"를 『주역』 「계사」에 나오는 표현("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을 빌려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번역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2] 뒤에 "Metaphysics"를 둔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는 방대한 자연산물의 연구를 통해서 그 대상들을 체계적인 지식안에서 정리하였다. 그 다음, 자신의 연구를 되돌아 보았을 때, 모든 자연물에 대한 연구는 어떤 규칙이 포괄적으로 적용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 만물의 대상의 규칙을 파악하는 인간 정신의 어떤 규칙적인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을 '지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지혜를' 배우는 학문을 '형이상학'이라 명명한 것이다.
아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이다.

즉, 지혜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인식은 제1의 원인이나 원리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의 통념이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경험자도 단순한 감각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한층 지혜 있는 사람이지만 다만 이 경험자보다도 기술자 쪽이, 또 일꾼보다도 설계자 쪽이, 그리고 제작적(생산적)인 지식보다도 관조적인 지식 쪽이 한층 지혜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상으로 보면 지혜란 그 어떤 원인이나 원리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 김천운 옮김, 형이상학, 동서문화사, 제1권 제1장에서 발췌


2. 형이상학의 분야


17 ~ 18세기 철학자인 크리스티안 볼프는 형이상학을 크게 다음 두 분야로 구분하였으며, 이는 칸트의 순수이성-실천이성 비판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현대에는 반드시 이러한 구분이 통용되지는 않는다.

2.1. 일반 형이상학(존재론)


/ Ontology
'존재로서의 존재(τοῦ ὄντος ᾗ ὂν; tou ontos e on)'를 다루는 분야. '''존재론'''이라고도 불리며, 플라톤의 <소피스테스>에서의 일화를 따 종종 '거인들의 싸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수리논리학이나 언어철학, 과학철학[3]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통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들, 그리고 각 주제에 관한 고전적인 견해들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존재'라는 개념은 대체 무엇인가? "x가 있다"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인가?
    •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서양 철학사 가운데 이런 "존재물음"이 제대로 제기된 적이 없음을 문제삼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문제를 묻는 현존재(Dasein), 즉 우리 자신을 먼저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개진한다.
    • 윌러드 콰인은 「있는 것에 관하여」에서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예. 최첨단 물리학)을 1차 논리 언어로 번역할 경우, 그 이론을 구성하는 각 명제들이 참이 되기 위한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최선의 이론 가운데 '$$\exists x (Fx \wedge Gx)$$'라는 명제가 포함될 경우, 변항 $$x$$에 할당된 것이 없으면 해당 명제는 참이 될 수 없으므로, 곧 $$x$$의 값은 존재한다.
  • 외부 세계에 무언가가 실재하는가? 영화 매트릭스 같은 얘기가 정말 참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게 실재한다면 이는 우리의 인식 혹은 우리의 말과 정확히 대응하는가? 그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르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눈 앞의 컴퓨터, 책, 음식 같은 것이 사실은 모두 없는 게 아닌지, 혹시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통 속의 뇌 참조.
    • 조지 버클리는 '우리가 직접 보고 관찰한 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경험론적 원칙을 충실하게 따를 경우, 우리 심리 속에 있는 '컴퓨터의 관념'이 아닌, 우리 '바깥'에 있는 별도의 '물리적 실체인 컴퓨터'가 있다고 보는 것은 틀렸다는 관념론을 제시한다.
  • 이란 무엇인가? '참' 개념에 대한 이론이 수립될 수 있는가? 참이란 우리 마음 속의 무언가가 바깥 세계의 무엇과 1:1 대응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참이란 지성이 사물에 부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생각/의미 따위가 바깥 세계의 어떤 사물과 딱 들어맞는 경우, 바로 그것이 참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응론적 진리론"이라고 종종 불린다.
    • 프랭크 램지는 「사실과 명제」에서 문장 '카이사르는 살해당했다"와 문장 "카이사르는 살해당했다는 것이 이다" 간에 의미상 차이가 없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참'이라는 개념이 잉여적이므로 곧 제거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는 "축소론적 진리론"으로 분류된다.
  • 속성개체의 관계는 무엇인가? "a는 F다"라고 할 때, 일반 술어 F에 해당하는 추상적인 것이 있는가? 속성을 띠지 않은 개체라는 게 있는가? 속성들 간에도 우열이 있는가?
    • 플라톤은 『국가』에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관하여 유일한 이데아인 '아름다움 자체'가 있으며, '아름다움 자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 오컴의 윌리엄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사람임 자체'라는 별도의 추상적 속성 같은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람이다"라는 마음 속의 개념에 불과하다는 유명론을 제안했다.
  • 가능 혹은 필연이 무엇인가?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는 참이지만, 황태자가 총에 맞은 건 순전히 우연 아니었나? 즉 황태자가 살아남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나? 반면 "1+1=2"는 결코 거짓이 될 수 없지 않은가?
    • 고트프리트 폰 라이프니츠는 신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방식, 즉 "가능 세계"는 무한히 많으며, 이는 곧 모든 가능성을 망라한다고 주장한다(예.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가 거짓인 가능 세계). 하지만 절대선이며 전지한 은 최선의 세계인 현실세계를 택하여 실현시켰으므로, 이 세계에서 벌어질 일은 필연적으로 결정되어있다.
    • 라이프니츠의 "가능세계" 개념은 현대 양상논리 의미론의 토대가 되었다. 항목 참조.
  • 인과란 무엇인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다르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맺는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이 맺는 관계란 대체 무엇인가? 독립 변인에 "의해서" 종속 변인이 반드시 따라나온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반드시 따라나온다", 즉 원인과 결과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말은 불가사의한 얘기다. 왜냐하면 우린 "필연적 연결"이란 것을 결코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린 그저 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이어 또다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반복적으로 볼 경우, 그 두 별개의 사건을 함께 엮는 심리적 습성이 있을 따름이다.
    • 데이빗 루이스는 「인과」에서 "$$p$$는 $$q$$의 원인이다"를 "만약 $$p$$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q$$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로 분석한다. 후자는 반사실적 조건문에 해당하며, 그 의미는 양상논리 의미론을 통해 형식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 사물의 변화란 무엇이며, 그럼에도 사물이 지속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사물은 어떤 변화를 겪을 때 '다른 것'이 되는가? 몸을 원자 단위로 분해했다 재조합하는 순간이동 기계에 탔을 때 우린 죽는가? 한 사물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성질은 변하더라도 계속 동일한 사물로 남아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 테세우스의 배는 사물의 동일성을 따지는 기준을 세우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도 꼽히는 "4차원주의"에 따르면[4], 나의 인체란 내가 태어난 시점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든 3차원 시간 단면들의 합이다.[5] 즉 4차원주의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내 신장이 130cm였다가 지금은 160cm로 변화했다는 것은 내 몸 한 구석에는 눈이 있고 다른 한 구석에는 손가락이 있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2.2. 특수 형이상학


대표적으로 , 영혼, 자유의지를 다루고자 하는 분야. 기독교적 영향력이 강했던 서양중세철학 때부터 대두된 분야로, 중근세 서양인들은 도덕 혹은 윤리학의 성립근거가 완전한 것에 기반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중요하게 여겼다. 대표적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이 있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근거가 있는가? 신이 없다면 설명될 수 없는게 있는가?
  • 과는 구별되는 영혼이 있는가? 그런 게 있다면 몸과 영혼의 관계는 어떠한가? 영혼이 없다면 설명될 수 없는 게 있는가?
  •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가?
    • 임마누엘 칸트는 근대 과학이 암시하는 결정론이 옳다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왜냐면 결정론에서 말하는 '자연의 필연성'은 칸트가 말하는 현상에 관한 것인 반면,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있는) '사물 자체'의 영역에서 자유의지가 유래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들은 현대엔 주로 종교철학, 심리철학 등의 독립된 분과에서 다루어지지만, 여전히 넓은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에는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6]

3.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



3.1. 고대 철학


탈레스 등의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은 '있는 것이란 곧 x이다'라는 주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의 효시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후 형이상학의 본격적인 논의틀은 헤라클레이토스파르메니데스 때부터 마련되었다. 특히 파르메니데스는 흔히 '변화하지 않는 것만이 진짜 존재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현상은 전부 가짜'라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적어도 중기 저작부터)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눈 앞에 있는 시공간 상의 물체가 아니라, 이를 초월한 불변하는 형상'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흔히 개별자(예. 눈 앞의 고양이)와 보편자(예. '고양이'라는 형상)을 나누고, 보편자를 우선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입장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탐구하는 학문을 "제1철학" 혹은 "신학"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와 생성의 보편적 근원인 "부동의 원동자" 혹은 "제1실체"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를 계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적/현실적/개별적인 것들이 모여 보편적인 종을 성립한다고 보는 점에서 플라톤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신플라톤주의, 스토아 학파고대 로마를 거쳐가며 또한 다양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이어나갔다. 특히 이러한 논쟁은 영지주의 등 초기 기독교의 정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플로티노스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여겨지는 신플라톤주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현상계 속에서도 초월적인 일자의 흔적을 눈치챌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력함으로써 초월적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영지주의 및 기독교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처럼 신플라톤주의 등으로부터 유래한 '실체, 세계는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중세, 나아가 근대까지 유지되었다는 시각도 있다[7]

3.2. 중세 철학


로마시대 말 속주 출신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상당부분 계승한 철학자로서 시간을 비롯한 다양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대한 독창적인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로마가 붕괴하고 암흑기가 찾아오며 다른 학문이 그랬듯 형이상학 또한 침묵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샤를마뉴 시기의 문예 부흥기에 본격적으로 스콜라 철학이 시작되면서 형이상학은 다시금 발전하기 시작한다. 특히 『범주론』 등 아리스토텔레스논리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은 속성의 존재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낳기 시작했으며, 이런 ''''보편 논쟁''''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편자 실재론유명론 간의 차이가 명시화되기 시작한다.[사실] 기욤 드 샹뽀, 로스켈리누스, 아벨라르두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존 및 (이븐 시나 같은 철학자를 통해) 발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13세기 무렵부터 서유럽으로 흘러들어옴에 따라 재발굴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인 형이상학 또한 이런 여러 논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8]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형이상학자에 해당한다. 이에 반하여 오컴의 윌리엄 등에 의하여 유명론 또한 지속적으로 보다 세련되게 발전을 이루어나간다[9]

3.3. 근현대 철학



3.3.1. 17세기-18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양한 유형의 실체를 상정한 것과 달리, 기계론적인 사유에 영향을 받은 르네 데카르트물질정신이라는 두 가지 실체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이원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데카르트의 견해는 곧 몸과 마음 간의 관계를 따지는 심리철학 분야를 촉발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이런 합리주의적 접근법은 스피노자에게 이어져 일원론임과 동시에 범신론에 해당하는 당대의 이단적인 학설로 이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나드가능세계로 유명한 라이프니츠의 독창적인 형이상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른 한편 영국경험론적 전통에서는 형이상학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전하게 된다. 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로크는 명시적으로 경험이 닿지 않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완전히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조지 버클리는 이런 실체, 특히 물리적 실체를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논증을 펼침으로써 관념론을 옹호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데이비드 흄실체, 인과 등을 아예 거부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결별해야한다는 입장을 펼침으로써 근대 경험주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런 흄의 정신은 이마누엘 칸트에게 이어졌으며, 결국 칸트는 유명한 『순수 이성 비판』에서 경험을 넘어서는 '사물 자체'를 연구하려 시도하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원리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하며, 형이상학의 소임은 그 대신 인간의 "순수 이성의 범위"를 규정하고 따지는 데 있다는 반실재론적 견해를 정식화한다.

3.3.2. 19세기


피히테, 셸링 등은 칸트 이론철학의 특정한 측면을 발전시켜 이른바 '독일 관념론'으로 알려진 관념론적 철학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헤겔의 방대한 철학 체계에서 정점을 이루었다고 간주된다. 종종 "헤겔 좌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마르크스 역시 포이어바흐유물론과 더불어 이런 헤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헤겔과 동시기를 보낸 쇼펜하우어는 당대 헤겔의 철학 체계에 대하여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이런 기조는 서양 철학 자체를 전복시키려 한 니체에게도 상당 부분 이어진다. 힘에의 의지 같은 개념이 대표적인 예시다. 키에르케고르 역시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대한 의문을 표함으로써 실존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다른 한편 신칸트주의자들은 칸트의 정신을 이어 여러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개념들에 대한 성찰을 이어갔고, 또한 철학 외적으로는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 사변적인 형이상학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점정 증대되기 시작했다.

3.3.3. 20세기 대륙철학


현상학을 창시한 후설은 적어도 초기 사상에선 형이상학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혹은 관념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고 보는게 통설이다. 하이데거후설에게 헌정한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Das Sein)와 존재자(Das Seiende)[10]를 구분하고, 플라톤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의 유력한 철학자들이 모두 "존재"가 아닌 "존재자"를 문제삼았음을 비판함으로써 20세기 대륙철학 전통에서의 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논란은 있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이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울러 베르그송프랑스 전통에서의 형이상학에 관한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런 흐름은 상기한 현상학, 실존주의 및 그외 여러 흐름들과 결합하여 질 들뢰즈현대에 잘 알려진 여러 프랑스 형이상학자들로 이어진다.

3.3.4. 20세기 분석철학#s-3.2


프레게, 러셀, 비트겐슈타인분석철학 선구자들의 형이상학적 입장은 통일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반면 분석철학을 실질적으로 수립한 논리 실증주의는 영국 경험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아 "형이상학적 진술은 무의미하다"는 과격한 입장을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21세기 현재까지도 세간에서 분석철학에 대해 품는 인상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다만 실제 학계에서는 1950년대 이래 논리 실증주의가 붕괴하고 윌러드 콰인에 의해 존재론이 복권되었으며, 더욱이 양상논리가 발달하면서부터 솔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 데이빗 루이스의 『세계의 다수성에 관하여』 등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자들의 연구는 분석철학 가운데 가장 활발한 학제로 떠오르게 된다. 다만 21세기부터 이런 사변적 '분석 형이상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다시 떠오르게 된다. 자세한건 해당 항목 참조.

[1] 이해하기 어렵다면, Metaphysics라는 단어를 둘로 나눠, Meta+Physics일 때, Meta의 해석에서, '이후'와 '이상'의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이때,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묶어 『자연학』이라는 책의 뒤에 따로 묶어놓았다고 해서 『형이후학』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놨는데, 후대의 철학자들이 잘못 해석한 "형이상학"이라는 단어가 의외로 말이 되니까(…) 그대로 표기를 사용하게 된 것. 만약 '형이상학'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대로 영어로 다시 옮긴다면 Metaphysics보다 Pataphysics가 더 가까운 뜻이 된다. 이 'Pataphysics'라는 말은 사이비 철학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2] (그리스어) Φυσικὴ ἀκρόασις Phusike akroasis, (라틴Physica), (영문)Physics, 현재는 물리학이라고 명칭되는 단어 [3] 특히 과학적 실재론과 밀접한 연관성이 지니고 있다.[4] "four-dimensionalism".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데이빗 루이스가 붙인 "perdurantism"이라는 이름도 자주 쓰인다.[5] "3차원 시간 단면"은 물리적 공간이 일단 3차원이라는 가정하에서 붙인 명칭이다. 만약 초끈 이론에서 말하듯 공간이 10차원이라면 "10차원 시간 단면"이 된다.[6] 이외에도 인식론을 형이상학의 분야로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나 데이비드 흄이 인식론에서 형이상학의 역할을 분리시킨 이래로, 인식론은 현재 거의 별도의 분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7] 김용옥이 플라톤부터 헤겔까지의 철학은 신화 또는 종교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여부는 보는 이가 판단할 몫.[사실] 보편논쟁의 시발점은 신플라톤주의의 수장이었던 플로티노스의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쓴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입문서인 『이사고게』에서 종과 유의 실재성을 물어보면서 시작되었다. 포르피리오스는 이 질문이 논리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관련된 질문이라면서 대답을 회피했고, 이에 대한 최초의 해답을 내놓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시대의 보에티우스였다. 보편논쟁이 스콜라 시기 및 후기 스콜라 시기까지도 논쟁거리이긴 했지만 단초는 스콜라 철학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8] 더불어 신플라톤주의 또한 비슷한 경로로 재유입되어 르네상스 미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9] 이러한 형이상학적 논쟁은 신학적 함축을 갖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이성을 통한 신학 체계의 구축'에 동정적이었던 반면, 오컴은 이성에 기초한 신학체계의 구축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10] 유(有)라고도 번역하고, 중국에서는 마태오 리치가 존유(存有)로 번역한 것을 계기로, 존유라 쓰기도 한다. '존재자(存在者)'라는 번역은 일본에서 처음 한 것인데, 학자에 따라서는 '존재자'라는 번역을 매우 혐오하는 경우도 있다. 재(在)라는 한자는 언어적으로 볼 때 '그러그러한 상태에 현재적으로 있음'의 뉘앙스를 가지고, 자(者)라는 한자 역시도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 이를테면 서강대 정의채 교수는 <신학대전>을 번역하면서, 1권의 말미에 작가의 말 중 상당수를 할애해서 '존재자'로 번역한 일본인들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