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아이태니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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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nium
1. 개요
2. 특징
3. 역사
4. 제품
4.1. Merced
4.2. Itanium 2 - Mckinley
4.3. Madison
4.4. Itanium 9000 - Montecito
4.5. Itanium 9100 - Montvale
4.6. Itanium 9300 - Tukwila
4.7. Itanium 9500 - Poulson
4.8. Itanium 9700 - Kittson


1. 개요


2001년에 인텔휴렛팩커드와 공동으로 발표한 CPU이며, 64-bit 고성능 서버를 위한 ISAVLIW(EPIC) IA-64를 적용하였다.
발매 당시부터 처절한 실패로 인해 타이타닉을 빗댄 '''아이타닉'''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넷버스트 아키텍처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인텔 제품 전략의 근간을 뒤틀어버린 양대 실패의 축이기도 하다.
참고로 인텔에서는 '아이테니엄'으로 상표를 정했다.# 따라서 발음 기호를 떠나 법적으로는 아이테니엄이라고 해야한다.[1]

2. 특징


x86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설계의 64-bit 명령어로 돌아가는 CPU이고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설계를 도입했던 터라 당시 32-bit x86 구조에 머물렀던 인텔 제온 시리즈를 제치고 슈퍼컴퓨터 및 서버 시장의 지배적인 위치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발 기간은 원래 계획보다 한참 늦어졌고, 수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서버 시장에서 AMD에서 내놓은 AMD 옵테론 시리즈에 밀린 것은 물론이고, IA-64는 AMD의 AMD64에 묻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결국 인텔 코어 시리즈로 화려하게 회생할 때까지 AMD가 몇 년 동안 인텔을 앞서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IA-64와 아이테니엄에 대한 인텔 측의 공식 입장은 고성능 서버용 명령어 셋과 그를 기반으로 한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 명령어 셋과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개발할 때에는 '고성능 서버만을 위한 것이다' 같은 건 없었고, IA-64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32, 즉 기존 x86 명령어 셋의 엄연한 정식 후계자였다. 즉 인텔은 IA-64를 펜티엄4의 제품 수명이 끝나는 시점에서 일반 데스크탑 시장에 데뷔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서버용으로 목표를 뒀던 쪽은 오히려 인텔이 아닌 공동 개발자인 휴렛팩커드였다. 그러다가 IA-64의 데스크탑 시장 진입이 처절하게 실패한 뒤, 인텔은 아이테니엄을 고성능 서버를 위한 제품군이라고 말을 바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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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망만큼은 시퍼랬지만 실제 판매 결과는 주황색 선
이후에도 인텔의 IA-64 살리기 노력이 간간히 지속되었지만 2000년대 후반 정도가 되면서 사실상 흑역사가 확정되었다. 2017년 마지막 모델을 출시하였고 2021년을 마지막으로 단종되었다.

3. 역사


1994년도에 최초로 발표되었을 당시, IA-64는 IA-32 (=x86) 에서 시장의 절대강자가 된 인텔과 PA-RISC 및 HP-UX를 만들던 HP의 협력 덕에 64비트 시장에서의 기존 경쟁자인 MIPS, DEC Alpha, SPARC, POWER, PowerPC 등의 RISC 칩들을 모조리 물리칠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이에 따라, 당시 서버 시장을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위시하여 기존 서버 업체였던 IBM, SUN 등의 회사들도 IA-64용 운영체제를 열심히 개발했다.
IA-64의 커다란 특징은 x86 CPU의 개발사인 인텔 스스로 x86을 포기했다는 점, 그리고 기존 x86의 CISC, 경쟁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의 RISC와는 전혀 다른 VLIW(EPIC)을 채택하였다는 점이었다. RISC는 당시의 대세였고 지금도 대세이다. 그리고 펜티엄 프로 이후로는 x86 CPU조차도 RISC의 구조를 많이 차용했다.
EPIC은 Explicitly Parallel Instruction Computing의 약자로, VLIW의 일종이다. VLIW는 Very Long Instruction Word의 약자로, CISC에 비해 한 개의 명령어를 극히 단순화시켜 처리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RISC와 달리, 무지막지하게 긴 명령어를 통해서 처리의 효율성을 꾀한다. 즉, 명령어 여러 개를 하나 하나 실행시키지 말고, 여러가지 명령어들 중 병렬 실행이 가능한 명령어들 세 개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긴 명령어로 만들면, 결과적으로 그 명령어 하나만 처리하면 되니 얼마나 간단하고 효율적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VLIW의 코드는 스케줄된 파이프라인에 묶여져 있기 때문에 파이프라인의 깊이나 실행 유닛의 결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바꾸기 위해서는 코드를 다시 컴파일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EPIC은 VLIW구조에 RISC를 참조해서 이러한 단점을 해결했으며 레지스터 관련 기능 등이 추가되었다.#
인텔이 IA-64에서 x86을 포기한 것은, 1994년경에 이미 x86이 구닥다리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x86 아키텍처 CPU인 8086이 1978년에 나왔고 8086 당시 만들어진 명령셋의 확장판 격인 IA-32도 1985년 80386과 같이 등장했으므로 그럴만도 하다. RISC가 x86의 문제점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시점이 이미 80년대 중반이며, 또 다른 CISC 업체였던 모토로라는 자사의 m68k 제품군을 버리고 호환성이 없는 RISC 기반의 PowerPC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그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펜티엄은 경쟁하던 타사의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비해 전력 소비량이 많으면서도 전반적인 성능이 떨어졌다. 전혀 새로운 미래 지향적 아키텍처로 명령어 셋 길이가 일정하고 구조가 간단하며 메모리 액세스 명령어가 분리된 RISC의 장점을 살려 레지스터 숫자를 늘린다든가, 파이프라인을 최적화하여 클럭을 올린다든가, 명령어 해석기가 줄어들면서 칩 사이즈를 줄여 전력 효율을 달성하고 있던 타사와 달리, 인텔의 x86은 CISC 명령어 세트를 채택한 까닭에 구조도 복잡하고 명령어 셋 하위 호환성을 보장하기 위한 부분을 계속 유지하게 되면서 같은 사이즈의 칩에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레지스터를 올릴 수 밖에 없었기에 성능 향상에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당시 아직 32비트였던 PowerPC마저도 64비트를 염두에 둔 명령어 셋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거나.
즉 x86의 문제점은 이미 인텔을 포함한 업계의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였다. 여기에서 인텔이 선택한 것은 32비트→64비트로의 이전과 동시에 하위 호환성을 과감히 포기한 IA-64로의 단절적 이행이었다. 이러한 단절적 이행에 성공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x86과 함께 대표적인 CISC 칩이었던 m68k 계열을 만든 모토로라는 이후 호환성이 없는 PowerPC로 라인업을 이전하는 데 성공하였다. 반면 경쟁 업체였던 AMDAMD64를 통해 그 문제를 끌어안고 가면서 개선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양사의 선택은 불과 몇 년 후 명암이 갈리게 되었다.
어쨌든 그야말로 구질구질하게 x86과의 하위 호환성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타사의 RISC를 능가할 VLIW 명령어 셋을 채택한 킹왕짱 마이크로프로세서 아키텍처로 데스크탑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IA-32의 뒤를 잇는 것과 동시에 서버 시장까지도 석권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되었던 것이 IA-64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 우선 개발완료가 늦어졌다. 최초의 IA-64 프로세서는 당초 예정이었던 1999년이 아니라 2001년에 나왔다. 당시에는 CPU 성능이 1년 반마다 2배씩 올라가는 CPU 기술 발전의 황금기였으므로 2년의 출시 지연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 CPU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줄 새로운 명령어 셋에 맞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던 반면, 기존의 프로그램이 이용하던 IA-32(x86) 명령어 에뮬레이팅은 성능이 너무 떨어져 기대 이하의 결과를 냈다. 심하면 네이티브로 돌리는 것에 비해 속도가 1/10밖에 안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인텔은 '버추어오조' 같은 사설 가상머신 프로그램에 기댈 수 밖에 없었고, 90년대, 2000년대 초반엔 가상화 기술이 그렇게 발달되지 않아 그리 신통치 않았다. 이는 AMD의 AMD64 지원 CPU가 x86 명령어 실행 속도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심각한 문제였으며 이것으로 데스크탑 업체들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 그러면서도 거대한 다이 면적으로 인해 가격이 심히 비쌌다. 이는 등 돌린 서버 업체와 데스크탑 업체들의 엉덩이까지 걷어차는 꼴이었다.
  • 인텔의 x86이 이용하는 CISC 방식 또한 공정 미세화가 진척되면서 가용 트랜지스터 숫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되자 90년대 후반 정도 되면 x86 명령어 셋을 내부적으로 RISC로 별 부담 없이 전환할 수 있게 되면서 EPIC의 장점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 개발 환경의 문제.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IA-64용 컴파일러의 저열한 성능과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컴파일 시간이 기존의 2~3배로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컴파일러에서는 멀쩡하게 컴파일 되었던 소스 코드도 알 수 없는 온갖 오류를 내며 컴파일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이는 VLIW 구조가 그 특성 상 명령어 레벨의 병렬성을 찾는 부하가 CPU의 스케줄러에서 대거 컴파일러로 전가되면서 컴파일러 설계가 복잡다난해졌기 때문이라고. 물론 새 아키텍처로 바뀌면서 컴파일러 제조사들이 삽질하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기에 시간이 약일 수도 있었으나, 아이테니엄이 충분히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 관계로[2] 결국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뒤늦은 초기 출시 이후에도 아이테니엄 칩의 성능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고, 2003년에 x86 위에 64-bit 명령어를 확장시킨 '''AMD64'''가 등장하고 인텔도 2004년 코드명 얌힐을 공개하여 AMD64 지원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데스크탑 시장으로의 아이테니엄 도입 시도는 인텔의 항복으로 끝나고 말았다. 실제로 CPU 아키텍처 교재로 유명한 '컴퓨터 구조 및 설계'의 저자 페터슨 교수 등은 이 사건에 대해 '''인텔이 항복했다'''는 표현을 해당 교재에 '''실제로 수록했다.'''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 ARS 테크니카의 편집인의 '''인텔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정도.
이후 2004년 HP도 아이테니엄 개발을 포기하고[3] 인텔만이 개발하게 되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Windows XP Professional 64-bit Itanium 버전의 판매를 종료하고 Professional x64 Edition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시 Windows Server 2003 기반이라 제대로 된 지원은 아니었다. Windows Vista에서 AMD64를 제대로 지원하였으나, 아직 호환성 문제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기였으며[4], 본격적으로 64비트 운영체제로 쓰이기 시작한 건 Windows 7이다. Windows Server 역시 Windows Server 2008 R2까지 지원하다가, Windows Server 2012에서 아이테니엄 지원을 중단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손을 떼고 만다. 레드햇과 오라클도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 포기를 천명하였고, 마지막까지 남은 건 HP의 아이테니엄용 HP-UX 뿐이다. 사실은 인텔도 아이테니엄을 내던지고 싶은데 공동 개발사인 HP와의 계약 관계 때문에 억지로 끌고 나가는 상황이라고.
2011년까지 남아있는 아이테니엄의 세력은 적극적으로 일본 시장에 파고들어서 살아남은 NEC 등의 독자적인 메인 프레임 시장 및 HP-UX 서버 일부에만 잔존한 상태다. 인텔에서 파악한 바로는 2011년 기준 아이테니엄 시장의 크기는 40억 달러로 추산했다. 슈퍼컴퓨터 TOP500 에서도 2004년에 1위를 한 NASA슈퍼컴퓨터 컬럼비아가 아이테니엄-2를 1만개나 때려박아서 달성했다. 시장 점유율도 한때 10~2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목록에서 안 보인다.
결국 아이테니엄의 상태는 계륵만도 못한 사실상 버린 자식이다. 인텔과 HP 입장에서도 기존 고객들을 x86-64 기반의 제온 서버로 계속 이주를 시키고 있는 판이지만, 중요한 대규모 인프라에 아이테니엄을 여전히 쓰고 있는 일부 고객들과의 약속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도 라인업을 유지'''는''' 시키고 있는 것. 심지어 2016년 2월에 나온 기사로는 새 아이테니엄은 HP를 통해 주문 제작을 받는 식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릴 지경.
사실 아이테니엄은 큰 실패로 인해 인텔 내부에서도 2010년대 부터 버린 자식이였다. 그 증거로 아이테니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컴파일러[5] 팀의 대부분을 2011년에 해체하고 인원들을 제온 부서로 옮겨버린다. 인텔의 부사장 Kirk Skaugen은 IDF 2011에서 인텔 제온 시리즈가 인텔 아이테니엄 시리즈보다 성능과 신뢰도 면에서 더 좋다고 '''확인 사살까지 해버린다.'''# 그러나 휴렛팩커드는 2008년에 4.4억 달러, 2011년에는 2.5억 달러, 2012년에는 6.9억 달러를 인텔에 바치면서 2017년까지 개발을 지속해달라고 주문했고, 인텔은 이 계약 때문에 2017년 까지 아이테니엄 신제품을 만든다.
아이테니엄의 이러한 실패는 IT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가져왔다. 아이테니엄을 계기로 IBM의 POWER 프로세서, Sun의 SPARC 프로세서가 장악하고 있는 중대규모 및 거대 서버, 메인프레임 시장에 등판하고자 했던 인텔의 의도가 무산되었다. 특히, 아이테니엄의 실패로 향후 64비트 명령 체계에서의 주도권을 AMD에게 넘겼다는 점은 인텔의 크나큰 실패라 할 것이다. 또한, 아이테니엄과 함께 서버 시장의 주력 OS로 진출해 보고자 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의도도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테니엄의 출시 지연으로 인한 윈도우 2000의 출시 지연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테니엄의 실패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버 시장에서 조금씩 영향을 넓혀가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여전히 소호 서버, 심플 서버와 같은 규모가 작고 구조가 단순한 서버에 한정되어 있다. 인텔은 자신의 64비트 명령체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손해를 보면서까지 아이테니엄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유지만 하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연구 개발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인텔은 아이테니엄의 실패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공학자들을 개발 부서에 전진 배치했는데, 이들은 실용적 측면에선 두각을 나타냈을지는 몰라도 반도체 구조나 설계와 같은 고차원적인 문제에는 영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이테니엄의 실패 이후 인텔은 수학, 물리학 등과 같은 순수과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하며 이론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결국 9000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아이테니엄 시리즈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4. 제품



4.1. Merced


2001년에 출시된 최초의 아이테니엄. 180nm 공정으로 제조 되었으며 클럭은 733~800MHz 에 L3 캐시 2~4MB. 성능은 3.2 기가플롭스로 당대 대부분의 x86 CPU를 모조리 압살해버렸다. 아쉬운점은 출시는 2001년이지만 성능은 1999년도 로드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성능은 어디까지나 VLIW 네이티브 코드를 돌릴때 이야기고 애뮬레이터를 쓰거나 아직 최적화되지 않은 S/W를 사용하면 2001년에 나온 AMD 애슬론이나 인텔의 펜티엄 시리즈에 발려버렸다.

4.2. Itanium 2 - Mckinley


2002년에 출시하였고 x86 코드 지원 부재를 보완하였으나 동일 클럭의 펜티엄 3에 비해 2/3 밖에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티브 VLIW 코드를 돌리면 11.43 기가플롭스를 달성했다.# 펜티엄 3 투알라틴이 고작 1.1 기가플롭스 수준, 펜티엄 4 프레스캇 2.8Ghz 이 5 기가플롭스였으니 인텔에서는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4.3. Madison


2003년에 130nm 공정으로 제조된 2세대 아이테니엄. 저전력 버전으로 Deerfield가 있다. 성능은 27.5 기가플롭스를 달성했다.

4.4. Itanium 9000 - Montecito


2006년에 나왔다. 아이테니엄의 부진을 일소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네임 채용. 90nm로 제조하였으며 이전 세대보다 성능 및 전력 소모를 개선했다. 캐시는 분리되어 있지만 듀얼 코어이며, 하이퍼스레딩도 처음 들어갔다.
덕분에 성능이 2배로 올라서 45 기가플롭스를 달성했다.# 이 정도면 코어 수가 2배인 코어2 쿼드 Q8300 빰치는 성능이였다. 단 어디까지나 가상화가 아닌 네이티브 코드를 돌렸을 때를 가정 했을 때 기준이다.

4.5. Itanium 9100 - Montvale


2007 년에 나왔으며 같은 90nm 공정이지만 캐시가 공유되는 완벽한 듀얼 코어이다. TDP는 104W 최고 모델(9150M) 기준으로 캐시는 24MB, 클럭은 1.6Ghz, 데이터 버스는 667Mhz, 가격은 3450달러이다.

4.6. Itanium 9300 - Tukwila


20억개의 트랜지스터와 쿼드코어, 2Ghz, 30MB 온다이 캐시로 구성되어 연기되지 않았다면, 성능 논란도 되지 않았을 CPU 이다. 역대 아이테니엄 시리즈 중 전세대 대비해서 가장 큰 성능 향상을 가져왔다.
2007 년에 나오기로 했으나 연기가 계속 이뤄져 결국 2010년에서야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소프트웨어 벤더들이 지원을 포기해버렸다. 인텔 네할렘 마이크로아키텍처에 추가된 기능을 대부분 흡수하였고, 무려 700㎟의 다이에 목표 TDP 130W를 크게 넘는 185W라는 아름다운 TDP를 자랑한다. 오랜 지연 때문인지 공정이 45nm가 아닌 65nm라는 출시 당시에도 구세대에 해당하던 공정을 사용하였다... 안습.

4.7. Itanium 9500 - Poulson


2012년 11월에 출시된 Itanium으로, 32nm 공정에 31억개의 트랜지스터, 32MB L3 캐시 메모리를 포함한 총 54MB 캐시 메모리라는 아름다운 용량을 자랑한다. 기술 스펙은 최신 샌디브릿지 Xeon 급에 준하는 사양으로 QPI 대역폭이 33% 향상되었고 그 외에도 Intel XD bit, VT-x, VT-d, VT-i3, EIST 등 신 기술과 mpy4/mpyshl4/clz, move dahr, ifetch.count 등 신 명령어가 대폭 추가되었으며, 터보 부스트와 하이퍼스레딩을 지원한다. 아키텍쳐 자체도 통용 태스크와 분기 조작이 간소화되면서 개량되었으며, 이러한 큰 변화로 사실상 마지막 성능 향상판이 되었다. 성능만큼 TDP도 늘었으나 170W를 유지한다.
신 라인업이 나옴에 따라 2018년부터 단종 수순을 밟게 됐다. 9월 17일까지만 주문을 받고, 생산 중단은 2021년 1분기에 이루어진다.

4.8. Itanium 9700 - Kittson


2014년 중 출시가 예정되어 있었던 새로운 Itanium이다. Poulson과 똑같이 32nm 공정을 사용한다고 하며, Tukwila, Poulson과 소켓 호환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아키텍처의 변화는 없고 클럭만 올라갔다고 한다.
최고 모델(9760) 기준으로 8코어 16스레드, 32MB L3 캐시, 베이스 클럭 2.66Ghz, 데이터 버스는 6.4GT/s, TDP 170W이다.
2016년 발표에 의하면, 일단 2017년에 나올 거라고는 한다. 관련 기사 인텔의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야기도 포착되었으며, 또 기사에 나온 2025년까지 HP가 아이테니엄 서버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2025년에는 딱 손 털 예정이라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현재 시점으로는 그 때까지 5년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리고 결국 3년이나 늦어진 끝에 2017년, 테스트 제품 출하가 시작되었다. 자사 포함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의 주력 제품은 이미 다들 10nm대 3D 공정을 쓰고 있는 2017년에 고작 32nm 2D 공정으로 제작된 신제품(?)이 나오게 되는 셈. 2017년 2분기부터 출하를 시작했고 2021년 7월 29일에 마지막 제품이 출하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테니엄 제품군의 마지막 모델이라고 발표했다.

[1] 비슷한 예로 Microsoft Windows는 '윈도우'로 읽는다.[2] 아래 서술되어 있듯이 인텔은 아이테니엄으로 별 재미를 못보자 2011년에 컴파일러 팀을 대부분 해체했다. 이는 아이테니엄이 단종되기 10년 전 일이였다.[3] 하지만 인텔에 돈을 바치면서 아이테니엄 개발을 지속해달라고 부탁한건 HP였다.[4] 일반적인 프로그램은 문제가 없지만, 64비트를 지원하지 않는 디바이스 드라이버백신 프로그램 등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5] 위에 설명되어 있듯 VLIW 특성상 컴파일러에 따라 성능이 좌지우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