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

 



<colbgcolor=#299ad7> '''Hewlett Packard'''
[image]
'''국가'''
미국 (다국적 기업)
'''설립년도'''
1939년
'''설립자'''
윌리엄 레딩턴 휼릿, 데이비드 패커드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사업분야'''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프린터, IT 서비스, IT 컨설팅
'''2015년 이후'''
HPI
PC/프린터
HPE
서버/스토리지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
3.2. 2000년대
3.3. 2010년대
3.3.1. 분사에 대한 논의
3.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
4. 한국에서
5. 얽힌 일화들
5.1. Apple 창업주들과의 관계
5.2.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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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P / Hewlett-Packard'''
1939년 '''윌리엄 휼릿(William Redington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공동으로 설립한 '''프린터''', 컴퓨터, 서버 등의 전자제품 제조로 유명한 미국의 '''IT 회사'''. 미국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의 팰러앨토의 한 차고에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윌리엄 휼릿과 데이비드 패커드 모두 1934년에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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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면 Hewlett을 '''휼릿'''으로 써야 하고, Packard를 '''패커드'''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한국HP 측이 '''휴렛팩커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매체들도 이 표기를 따른다.
HP는 지난 2015년 서버/스토리지 중심의 Hewlett Packard Enterprise(HPE)와 PC·프린터 사업 중심의 HP Inc.로 분사했다. 역사상 매출 기준 최대 규모의 기업 분할이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로.

2. 상세


과 함께 컴퓨터와 관련된 제품이다 싶은 건 뭐든 제조하는 업체이다.
계산기도 생산한다.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을 위한 제품으로 HP 48시리즈와 49/50시리즈를 출시하였다. 지금은 단종. 또한 회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공학용 계산기 중에서, 최근 'HP Prime' 이란 제품이 나왔는데, 이 제품이 'Ti nSpire' 보다 좋다.(...) 물론 기능은 Ti nSpire가 더 많다. 하지만 여전히 끝판왕은 Texas Instrument. 그래도 카시오보단 명성이 높은 편이다.
프린터 시장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잉크젯 프린터가 지금이야 캐논엡손이 좀 활개를 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용 시장 이야기이다.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는 삼성전자LG전자OEM으로 납품하고 있다. 추가로 HP와 삼성 프린터 간에 호환되는 잉크 카트리지가 있다. HP 74/75 계열과 삼성 M95/C95 계열이 대표적. 실제 장착하여 확인하였다. 그래서 HP 내 OEM 사업 담당자는 한동안 실적이 잘 나올 때마다(=삼성, LG 등이 HP OEM 제품을 잘 팔았을 때마다) 자랑도 못 하고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고... 삼성 초기의 가정용 프린터 제품들은 HP 프린터를 그대로 수입해 와 삼성 로고만 붙인 것이라고...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 '삼성휴렛팩커드'라는 브랜드로 shp 로고가 붙은 채 판매된 바 있다. 근데 이건 삼성이 판 게 아니라 삼성과 HP의 합작투자회사가 판매한 것이기 때문에 삼성에서 팔았다고 보긴 어렵다.
많이 찍고 빨리 찍어야 하는 업무용 기기에서는 정말 독보적이다. 게다가 레이저 프린터로 넘어가면 전지구급. 업무용 플로터는 HP 말고는 전부 듣보잡이다. HP가 2017년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부를 인수하게 됨에 따라 그냥 끝판왕이 되었다.
데스크탑 컴퓨터의 경우 2018년 현재 전세계 기준 PC 시장 1위다. 오히려 삼성, LG의 데스크탑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듣보잡에 가깝다.
애프터 서비스가 불친절하기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나와의 HP 상품 댓글에는 AS를 성토하는 댓글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빅뱅 이론셸든 리 쿠퍼는 "'''난 HP에게 보상을 받아내려고 고객 센터에서 2시간 반을 기다린 적이 있다.'''" 며 자랑할 정도. 이는 HP가 미국 회사 특유의 기업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많은 미국의 회사들은 드넓은 국토 탓에 개인 사용자용 제품은 우리나라처럼 밀착 A/S를 하는 개념을 갖고 있는 회사가 별로 없다. 따라서 서비스 수준을 낮추고 하드웨어를 저렴하게 파는 방식을 택하고, 대신 추가적인 밀착 A/S를 원하는 고객은 워런티를 추가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HP 제품 목록을 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찾아보자. F3키 사용을 권한다.

3. 역사



3.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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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교 동기인 윌리엄 휼릿(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휴렛팩커드(HP)'를 설립하고 음향 발진기(Audio Oscillator)를 내놓으면서 실리콘밸리 1세대 벤처 기업인 HP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두 사람은 1938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벤처를 창업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본금은 겨우 538달러였다. 1989년 캘리포니아 주는 HP가 탄생한 에디슨가 367번지의 허름한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생지 (The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로 명명하고 사적으로 등록했다.
회사 이름을 정할 때의 에피소드가 꽤 재미있다. 우선 이 둘은 그들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누구 이름이 앞에 올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이 때 패커드가 이겼지만 의외로 패커드는 '팩커드-휴렛'보다는 '휴렛-팩커드'가 더 마음에 든다며 휴렛-팩커드로 결정하였다.[1][2]
HP가 생산한 첫번째 제품은 '200A'라는 이름의 오디오 발진기(특정 음역의 주파수를 생성하는 테스트 장비)였으며, 당시 이 기기의 가격은 500달러 내외였다. 당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HP에서 제작한 이 기기에 관심을 보였고, 1940년 제작한 영화 환타지아의 사운드 모니터링에 HP 장비를 사용했다.
휼릿이 1940년대에 미 육군에 자원해 들어가 있는 동안 hp는 패커드가 이끌었다. 이 기간동안 hp는 무전기, 소나, 레이더 등 선박 및 항공용 군수 장비를 주로 생산했다.
휼릿이 다시 hp로 돌아온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hp는 엄청나게 성장한다. 이 시기에 뉴욕거래소 상장을 했고, 60년대 일본의 요코가와 전기 사 그리고 80년대 삼성전자와 합작 방식으로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HP는 당시 기업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기업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1942년 모든 직원에게 건강 보험 비용을 지원했고, 사무실에도 벽이 없는 '오픈 플로어(Open Floor)' 디자인을 적용해 직원들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이 때의 HP 문화를 HP Way라 한다.
이러한 HP의 기업 문화와 팩커드의 경영철학은 HP 출신 직원들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의 모든 IT 기업은 협업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1993년 데이비드 패커드가 HP 의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면서, 휼릿과 패커드는 모두 경영에서 은퇴했다. 70대 후반의 나이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커드와 휼릿은 1996년과 2001년, 83세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2. 2000년대


2000년대의 삽질은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당시 IBM, 컴팩, HP가 PC 삼대장이었던 상태에서 HP가 컴팩을 인수합병하였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대형 M&A였으며, 창업주의 후손들은 모두 이 합병을 반대했다. PC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인답시고 컴팩(Compaq)을 무리하게 많은 돈을 주고 산 것인데, 소송에서 이들이 패하면서 합병이 이루어졌고, 결국 실패한 M&A 사례로 평가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칼리 피오리나 문서에서 확인. 2008년에는 IT 서비스업체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EDS)[3]을 인수했다.
이후 애플이 아이패드, 아이폰 등의 모바일 기기로 대박을 내자 이를 따라하려다가 큰 삽질을 했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의 조기철수. 사실 HP는 1990년대 후반부터 죽 PDA를 내놓는 회사였는데, 뜬금없이 후발주자인 애플이 이를 석권하자 억울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칼리 피오리나로 시작하여 그녀로 끝나는 긴 여정이었다. 'HP way'로 일컬어지는 창업주들의 정신이 엄청나게 훼손된 것도 이 때. 이 암흑기의 영향으로 HP는 이후 꽤 오랜시간 방황했다.

3.3. 2010년대


한 때 PDA도 잘 팔아먹던 회사였으나, 휴대폰으로 진화하는 것을 생각 못해서 망한 Palm OS의 개발사인 Palm Inc.의 하드웨어 사업 부문을 2010년 4월에 인수해서 모바일 컴퓨터 사업을 강화했다. 1993년 애플이 터치스크린 탑재 휴대용 컴퓨터인 뉴턴(상표명은 메시지패드)을 발표하여 먼저 '상용화'하였다. 다만 뉴턴은 애플의 예전 몇몇 제품들처럼 시대만 앞서가고 성능이나 가격면에서 상품으로서의 매력은 별로라 사업적인 재미를 못 보고 1998년 포기했고, 본격적으로 PDA를 성공시킨 것은 1996년에 이 분야에 진출한 팜이 먼저이며 HP는 시장에서 팜과 자웅을 겨루었다. HP의 PDA 중에는 2000년대 직전까지 출시되던 조나다 시리즈와 컴팩으로부터 인수한 브랜드인 iPAQ 시리즈가 유명한데, 그냥 그 당시에는 IT기기에 'i'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고.
팜의 운영체제 webOS를 이용해서 야심차게 애플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webOS 2.2를 탑재한 HP Pre 스마트폰 시리즈와 webOS 3.0을 탑재한 HP 터치패드를 내놓았다. 버전 네이밍이 기막히게 안드로이드와 일치한다(핸드폰용 OS = 안드로이드 2.1 / 2.2 / 2.3 | 태블릿용 OS = 안드로이드 3.0). 그러나 애플은 커녕 삼성전자모토로라에게도 밀리는 바람에 스타일 구기고, 2011년 8월, 1년 조금 넘겨 GG. 그래서 스마트폰태블릿 PC사업을 관둔다고 발표했다. 태블릿PC 제품인 HP 터치패드가 발매된 지 49일만의 일이다. 이후 webOS를 탑재한 제품을 내놓는 회사는 없었으며, LG전자가 인수해서 스마트TV웨어러블 기기에 사용 중이다.
스마트 제품 사업 중단을 기점으로 스마트 제품의 판매가격 인하를 단행했으며 파격적인 가격 인하로 인하여 반짝 잘 나갔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상표명) 16GB 제품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같은 499달러였으나, 초기 물량 27만대 중 2만여대만 팔리는 등 워낙 안 팔리자 8월에 접어들어 100달러를 내려 399달러로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8월 11일 사업 중단 발표 후 아예 떨이로 299달러를 내린 100달러에 판다니, 아무리 떨이라지만 다른 제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거의 공짜로 주는 수준. 처음에 499달러 주고 산 사람들은 가격 차이를 HP에서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아마존닷컴 등의 쇼핑몰에서는 올라온지 얼마 안돼서 품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걸 본 HP는 한동안 OS 지원은 해 줬다.
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랩탑, 데스크탑 모두 포함) 사업부를 분사해서 매각한다고 하며, 한마디로 프린터를 제외한 모든 컴퓨터 사업은 그만두거나 매각한다고 발표.
2019년 11월, 제록스 이사회는 HP에게 인수합병을 제안했다.# 그러나 HP는 '''335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합병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제록스는 350억 달러로 값을 올렸으나, '''또 거절당했다.'''

3.3.1. 분사에 대한 논의


IBM이 제조부문 비중을 줄이고, 솔루션 및 컨설팅 비중을 높인 것을 따라하는 것이 결단의 주 내용이나, 이 소식이 들리자마자 뉴욕 주식시장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다.(...) IBM이 PC 사업부를 매각하고, 통계 분석을 통한 경영 컨설팅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블루오션에서 거의 혼자서 떼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HP는 이를 부러워한 듯 하다. 시장의 반응은 '''변신하는 건 좋은데 왜 지금 같은 위험한 시기에 하냐'''라는 것.
이 발표를 한후 얼마 안 가(한달) 2011년 9월 CEO 레오 아포테커는 이사회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태블릿 컴퓨터 사업의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 그러나 컴퓨터 사업을 매각한다는 전임 회장의 방향은 후임인 멕 휘트먼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연말까지는 이에 대한 결말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 10월 26일, 경영진은 장고 끝에 PC 사업부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시장은 이를 환영했고 주가는 4%가 올랐었다. PC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발표했을 때 주가가 20%나 빠졌었다.
2011년 오토노미라는 회사를 인수했는데 오토노미의 분식회계로 '''88억 달러를 감가상각했다.(!)''' 주식이 12% 빠져서 10년만의 최저치를 기록.
2012년 9월, CEO인 멕 휘트먼은 스마트폰 사업에 다시 뛰어들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스마트폰은 뛰어들지 않았지만, 노트북-태블릿 컨버터블 PC는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4년 10월 서버 사업부와 PC+프린터 사업부를 분리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뉴스가 떴다. 2011년에 PC 사업부를 왜 매각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있지만, 그때 팔았으면 제 값을 못 받았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3.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


2014년 11월자로 분사를 확정지었다. 기존의 프린터와 PC 사업부는 HP Inc.로,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한편, 3D 프린팅 등 신시장 사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며, 기업용 컴퓨팅 관련 사업은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되어 급변하는 클라우드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전략과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국 HP는 2015년 11월 1일 프린터·PC 사업부가 포함되는 지주회사 격인 HP 주식회사와 기업 하드웨어·서비스를 담당하는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사하였다. 2015년 당시 포츈500 기업 중 19위 기업의 유래없는 대형 분사 프로젝트였다.
2011년 취임한 당시 최고경영자(CEO) 멕 휘트먼이 HPE CEO를 맡고, 현재 PC·프린터 사업을 총괄하는 디온 와이즐러가 HPI를 이끌게 된다.
'''HP Inc.'''는 5만명의 직원규모로 이전부터 그래 왔듯, 가정용, 업무용 컴퓨터와 프린터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문서
'''HP 엔터프라이즈'''는 25만명의 직원 규모로, 기업용 컴퓨팅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

4.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1984년 8월 삼성전자와 합작 형식으로 삼성휴렛패커드를 설립하여 최초 진출했다. 지분 규모는 HP 55%, 삼성전자 45%였다. 이 시절 로고는 HP 로고 앞에 S를 붙인 shp 형태였다. 1995년 삼성전자가 '마이젯'을 내놓으며 HP의 주력사업인 프린터 사업에 진출하는 바람에 파트너쉽을 종료하여 현지법인 한국휴렛패커드로 탈바꿈하였으며, 3년 뒤인 1998년에 삼성전자의 지분을 모두 인수함으로써 100% 지분을 HP가 소유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2002년에 유한회사로 법인전환 후 컴팩코리아를 합병했다.
이 때 HP는 현금이 말라붙었던 삼성전자에게 프리미엄까지 얹어 달러로 지분 인수 대금을 결제했다. HP는 SK그룹에도 1억 5,000만 달러를 융자해 줬다. 당시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한국HP는 2년간 1,200대 1로 환율을 고정해 영업했다.
IMF 구제금융 시기에 문을 닫은 고려증권의 여의도 사옥을 매입해 HP빌딩으로 개명한 후 본사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소유권은 2012년 사모펀드에게 매각했으나 여전히 해당 건물을 임대해 활용하고 있다.

5. 얽힌 일화들



5.1. Apple 창업주들과의 관계


Apple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어릴 적에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다가 부품이 없어서 HP(이미 초 거대기업이었다)의 CEO인 빌 휴렛의 집에 전화하여 당돌하게 부품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빌 휴렛은 이 당돌한 꼬마와 20분 가까이 통화한 후, 부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여름방학 동안 휴렛패커드 주파수 측정기 조립라인에서 일하게 해주었다고. 과연 대인배. 그런 인연 덕분인지 스티브 잡스Apple을 경영하며 교육 사업에 많은 신경을 썼고 App Store로 콘텐츠 플랫폼 영역을 개척하면서도 디즈니를 방불케 하는 수준의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듯한 빡빡한 어린이 보호 정책을 시행했다.
Apple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Apple을 창립하기 전에 몇 년간 잠시 다니던 회사이기도 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서전에 따르면 HP에 다닐 무렵, 그는 이미 회사 창고에서 남는 부품과 공구를 집에 가져다가 '''재미삼아서 Apple 컴퓨터를 설계하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워즈니악은 HP의 높으신 분들께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HP는 개인용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고 이에 실망한 워즈니악은 '다른 걱정 없이 평생 연구에만 몰두하게 해 주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HP를 퇴사하고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Apple에 몸을 담게 된다. 이후 Apple 컴퓨터의 설계를 완성한 워즈니악은 HP가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HP에 지원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채용에 불합격하였고 워즈니악을 빼고 구성된 HP의 PC 개발팀은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사용해서 엉성한 Apple 모방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결국 HP가 개인용 컴퓨터에 진출한 것은 코모도어 64가 엄청나게 팔려 나가고, Apple 컴퓨터나 기타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 내에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다. C64는 단일 기종으로 1700만대나 팔린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진 컴퓨터로 실질적으로 컴퓨터라는 물건을 가정에 보급한 건 IBM이나 Apple이 아닌 코모도어 인터네셔널의 코모도어 64였다.
이 인연이 영향이 있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에 HP가 Apple의 iPod을 자사 마크를 뒤에 박아서 iPod+HP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소비자들이 HP 마크가 각인된 iPod을 좋아할 리 만무했고, 결국 1년만에 판매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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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기타


  • 최고 경영자 멕 휘트먼이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을 당시 대변인이 트위터에 올린 홍보 동영상이 140자 제한 때문에 마지막 한 글자가 빠졌고[4], 링크는 베이시스트 김현모(H.J.Freaks)가 여장한 채 베이스 기타로 푹신푹신 타임을 연주하는 동영상(후방주의) 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결국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낙선하고 2016년 클린턴 라인에 서서 트럼프를 맹비난하더니 대선에서 또 졌다. 2018년 초 HPE를 떠났다.
  • 신도림 테크노마트 번호를 가르쳐 달라는데 직원 자신의 번호를 가르쳐달라는 걸로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다. 참고로 이 유머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기사로 나왔다.
  • 한국표준시의 신호계측장치로 HP 장비를 사용한다. 표준연구원의 한국표준시계 관련 보도자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HP의 계측기 사업부는 1999년 에질런트를 거쳐서 2014년 키사이트로 분사했다.
  • 미국에선 IBM, 구글, 아마존닷컴 등과 더불어 무노조 경영을 하는 기업이기도 하나, 한국에선 해당사항이 아니다.
  • 1995/96 시즌부터 1998/99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토트넘 홋스퍼 FC의 메인스폰서였다.
  • 최근에는 폼이 많이 죽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계 1위 기업이었다. 외국계 기업 취업선호도 1위 ‘한국HP’
  • 출시하는 노트북의 기종마다 처음부터 장착된 부품만 사용가능하게 설정해놓았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라고 불린다. 물론 하드디스크 혹은 SSD 같은 저장장치나 은 아무 제품이나 교체해도 되고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그외 부품에 해당된다. 만약 그 기종에 맞는 부품이 아닌 다른 부품을 장착 후 부팅하면 에러 메시지를 띄우면서 부팅을 막아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무선랜 카드인데 이 제도 때문에 무선랜 카드 조차 맘대로 바꿀 수가 없다! 즉 HP에서 그 기종에 사용할 수 있게 인증한 무선랜 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 노트북을 몇 년 사용하면 무선랜 카드가 느려지거나 끊기는 등의 문제가 생기거나 더 빠른 와이파이 사용을 위해 무선랜 카드 교체를 하게되는데 HP의 경우는 그 기종에 맞는 무선랜 카드를 확인해봐야 한다. 노트북의 BIOS 개조를 하여 부품을 교체해도 부팅이 가능하게 할 수는 있다만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에 쉽지는 않은 부분. 여담으로 레노버 제품의 노트북도 해당된다.
  • 심슨 가족에서는 스티븐 잡스가 휴렛팩커드를 디스하는 장면이 있었다.

6. 관련 문서



[1] 링크[2] The HP Way 휴렛팩커드 이야기(저자:데이비드 패커드) ISBN:9788946102248 에서는 동전을 던져서 빌이 이겼다고 나와있다. P65 참조 (우리는 회사 이름에 누구 이름을 먼저 쓸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빌이 이겼다. We flipped a coin to see whose name would come first in the company name. Needless to say, Bill won.)[3] 1998~2001년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더비 카운티 메인스폰서를 맡았다.[4] http://bit.ly/bNCAV에서 r 하나가 빠졌다[5] 휴렛팩커드의 지원을 받고 설립된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