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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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무법자에서 월릭 옹.
1. 개요
2. 생애


1. 개요


Eli Herschel Wallach (일라이 허셜 월릭)
1915년 12월 7일 ~ 2014년 6월 24일 (향년 98세)
미국에서 활약한 대배우이다.

2. 생애


미국배우.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연극 무대의 배우로 시작했다. 입단 초기에 메이스너 기법[1]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대배우인 센포드 메이스너 (1905년 8월 31일~1997년 2월 2일)에게 연기하는 방법을 직접 공부하였고 액터즈 스튜디오의 창립멤버가 되었다.[2] 그리고 여기에서 방법 연기[3]의 대가이자 연극 전문가 겸 평론가인 리 스트라스버그 (1901년 11월 17일~1982년 2월 17일)의 밑에서 공부하여 수많은 훈련과 노력을 거듭하였다. 그후 뉴욕 시립 대학에서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1945년에 브로드웨이에 데뷔했고 테네시 윌리엄스의 MaureenStapleton과 함께 공연한 것으로 인해서 1951년 토니 상을 받았다.
그후 《황야의 7인》, 《서부개척사》와 같은 미국 서부극에서 활동하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촬영한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인 《석양의 무법자》에서 '추한 놈' 투코역으로 나와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유명세를 탔다. 한편 세르조 레오네 때문에 죽을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거기다 석양의 무법자 촬영 당시에 이미 50대의 나이었다! 이때 같이 촬영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랑 죽이 잘 맞았는지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캐릭터 배우로서의 다재다능함을 뽐내면서 영화 예술과학 아카데미는 그를 본질적인 카멜레온이라고 불렀고 그는 이 별명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들을 쉽게 연기할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생전에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아 BAFTA Awards, 토니상, 에미상 등을 받았으며, 2010년 11월 13일에 94세의 나이로 영화 발전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기도 하였다.
2014년 타계하기까지 10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여전히 연기활동을 하면서 어니스트 보그나인과 함께 노익장으로 유명했던 배우. 영화 대부 3에서 '''돈 알토벨로'''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작가》에서는 단 한장면의 촬영을 위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럽까지 가서 촬영을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고, 석양의 무법자의 DVD판 추가 장면에서 투코 역의 더빙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재 수록을 할 수 있었던 배우였기도 한 것을 보면 본인의 배역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있다.[4]

'''무슨 영화가 필요해요? 연극무대는 모든 면에서 더 높은 레벨에 있고 그것이 더 만족스러운 매체입니다. 그에 비해 영화는 훌륭한 그림 옆에 있는 달력 예술과 같아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그렇게 많이 할수 없지만 무대는 무정부주의적인 매체예요.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 제가 할수 있는 가장 생생하고 너무 기쁜 일입니다.'''

그가 초기에 영화의 배역을 제의 받았을 때 후회없이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면서 설명했던 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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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오스카 공로상 수상후 왕년의 표정을 지은 월릭.


[1] 배우가 주변 환경에 본능적으로 행동하도록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방법.[2] 여담으로 이때 당시의 동기는 로버트 루이스 옹을 포함하여 말론 브란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헐버트 비곳트, 시드니 루멧, 마릴린 먼로까지 있었다.[3] 다양한 연극 전문가들에 의해서 공식화된 진실되고 감정적인 표현능력을 장려하기 위한 훈련과 리허설 기술의 범위. 메소드 연기라고도 한다., 창시자는 러시아 배우이자 감독인 콘스탄틴 스탠티 슬라프스키.[4] 재수록 시점에서 리 밴클리프는 고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생존해있지만 높은 출연료+감독과의 불화로 성사되지 못했다.[5] 이 말을 했던 당시 무려 1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