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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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폴란드[1] , 프랑스의 영화 감독이자 '''아동성범죄자'''이다. 기념비적인 명작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영화 감독들 중에서 가장 어두운 삶을 산 감독으로 일컬어진다.
2. 일생
2.1.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년시절 (피해자)
본래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3년 뒤인 1936년에 고국인 폴란드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또 다시 3년 뒤인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멸망시키고 총독부를 세우면서 폴란스키 일가는 크라쿠프 게토에 갇히게 된다. 불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로 이송되어 살해되었고, 아버지 또한 오스트리아 린츠 근교에 위치한 마우타우젠-구젠 강제수용소[2] 에 끌려가 노역을 당하게 된다. 끌려가기 직전, 폴란스키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일제검거 현장을 기웃거리던 그에게 도망치라고 속삭였고, 폴란스키는 10살 되던 해인 1943년에 게토를 탈출해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던 한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보호를 받았다. 천만다행히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남았고, 전후 아들과 재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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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h_o8E_A3pc
폴란드에서 데뷔작 물속의 칼을 연출했으나, 폴란스키에 의하면 폴란드 공산 정부가 그 영화를 혹평했고 특히 엔딩을 싫어했다고 한다.[3]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베를린 영화제등에 노미네이트 되는등 인정받게 되어서 기뻤다고. 이후 프랑스로 넘어가 제라르 브라슈를 만난 후, 막다른 골목의 각본을 적은 후 영국에서 영화 제작자 진 구토스키[4] 를 만나 혐오를 찍고 막다른 골목의 연출을 맡았다.[5]
이후 감독, 배우 등을 하면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았다. 폴란드 학파 시절 데뷔한 감독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케이스다. [6] 편집에 있어서는 가히 젊은 거장의 풍모를 보일 정도가 되었고, 영화 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와 박쥐성의 무도회 촬영때 만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2.2.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 (피해자)
Tate-LaBianca murders
1969년,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린 최악의 사건,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죄자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들[7] (찰스 맨슨은 직접 쳐들어가진 않았고, 배후에서 앳킨스 일당을 조종했다고 볼 수 있다.) LSD#s-1에 취한 상태로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쳐들어가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샤론 테이트를 포함해 집에 있던 사람들을 전원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다.
전말은 이렇다. 예전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했던 찰스 맨슨은 테리 멜처[8] 라는 음반 제작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발매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찰스 맨슨의 노래는 소음공해라고 하며 단칼에 거절하자 원한을 품은 맨슨은 자신의 추종자인 앳킨스, 크렌빈켈, 카사비앙, 왓슨 등 4명에게 자신을 음치#s-1라고 디스한 멜처를 미행해서 집을 알아낸 후 습격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들이 테리 멜쳐의 집 주소를 알아냈을 때 이미 그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이후였고, 폴란스키의 친구가 그 집을 샀다. 당시 폴란스키는 일 때문에 혼자 런던에 가 있었고[9] 폴란스키 일가가 집 없이 싸구려 아파트 등을 전전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호의로 집을 잠시 빌려줬는데, 하필이면 그 때 맨슨 일당이 쳐들어온 것이다.
집 안에서만 총 6명의 사람이 살해되었다. 우선 가정부로 일하던 10대 소년 스티븐을 권총 네 방과 칼질 한 번으로 즉사시켰다.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던 세브링은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권총을 한 방 쏘고 칼로 7회 난도질한 후 시체를 거실에 매달아 놓았다. 애비게일은 28회 칼로 난도질했고, 그의 애인 프라이코스키는 권총 두 방을 쏘고 칼로 51회 찔러 즉사시켰다.
마지막 피해자였던 샤론 테이트가 8개월 된 뱃속의 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에 찰스 맨슨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맨슨 패밀리의 주요인물이던 수전 앳킨스는 "넌 살아봐야 소용 없어. 죽어서 더 쓸모가 있을 거야."라면서 16번의 칼질로 잔혹하게 살해한 후 세브링의 시신과 같이 거실에 매달아 두었다. 범인들은 이후 인근 슈퍼마켓에서 또다른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했다.
사건이 벌어진 저택은 이후 록밴드인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가 구입해서 제작 스튜디오로 사용했으나, 역시 터가 좋지 않긴 했는지 흉흉한 일들이 벌어져서 결국 레즈너는 이 집을 철거했다. 그리고 테리 멜처는 이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 한동안 은둔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인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폴란스키는 순간적으로 이소룡이 샤론 테이트를 죽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폴란스키는 이소룡한테 무술을 배웠고 샤론 테이트도 배역을 위해 무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맨슨 패밀리 중 누군가가 안경을 떨어트려놔서 그랬다고 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2.3. 아동 성범죄자 (가해자)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만 12명에 달하며, 이 중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미성년자다. 성폭행을 할 때 술과 약물도 이용했다.
1977년에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10] 당시 13살이었던 소녀인 사만다 가이머에게 계획적으로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후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 본인이 유죄를 인정했지만 법원에서 감형을 해주지 않자 런던을 거쳐 프랑스로 도피한다. 미국에서 아동 성범죄는 아주 엄격하게 다루며, 폴란스키 감독은 이후 미국에서 도피하여 쭈욱 유럽에서 활동을 계속했다.[11][12]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때도 참석할 수 없었던 건, 귀국하자마자 아동 성범죄로 잡혀서 교도소로 직행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13] 결국 2009년 9월 스위스에서 공로상을 받으러 가다가 체포되어 32년간의 도피생활이 끝나고 가택연금 중이었으나,[14] 2010년 7월에 스위스 법원이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맨슨은 이 사실을 알고 폴란스키가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여도 좋지 않냐고 자기합리화하며 짖어댔다.[15] 차이나타운의 감독이 등장인물인 노아 크로스와 다를바 없게 되었다.
여담으로 폴란스키가 유럽으로 도피하기 전 당시 10대였던 데미 무어가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 무어는 폴란스키를 처음 봤을 때 되게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 같았다고.
2017년 7월 6일, 피해자였던 사만다 가이머가 사건종결을 탄원했다. 기사
하지만, 8월에는 자신을 '로빈 M'이라고 밝힌 한 여성이 1973년 16세 때 로만 폴란스키의 성범죄 희생자가 됐다고 고소했고 이 외에 로만 폴란스키를 고소한 한 명의 여성이 더 있다. 게다가 10월에는 독일 여배우(61) 레나테 랭거(Renate Langer)가 10대 시절에 로만 폴란스키에게 성폭행당했다고 그를 고소해버렸다. 뉴욕타임스의 2017년 10월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레나테 랭거는 그가 15세 때인 1972년 2월 스위스 그슈타트에 위치한 폴란스키 감독 자택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또 한 번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레나테 랭거는 로만 폴란스키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공식적으로 고소한 네 번째 여성이 됐다. 스위스 경찰은 최근 레나테 랭거를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인터뷰에서 레나테 랭거는 당시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지 않았고 수년 후 남자친구에게만 이 일을 고백했다고 밝혔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여름, 어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1월에도 프랑스 국적의 발렌틴 모니에라는 여성이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도 10대 때 폴란스키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
이로써 폴란스키의 입지는 더더욱 좁혀지게 되었다.
2.4. 논쟁
폴란드와 프랑스의 정부가 로만 폴란스키를 적극적으로 보호한 점이나[16] , 중립국인 스위스의 영화제에 참석한 폴란스키를 미국 경찰이 체포한 점 때문에 2차적인 논란이 생겼다.
성범죄 건으로 서구권의 영화계에서도 큰 논란이 생겨, 그의 불행한 인생에 대한 동정이나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선처를 부탁한 이들(마틴 스콜세지, 이자벨 위페르, 틸다 스윈튼,제레미 아이언스, 모니카 벨루치, 웨스 앤더슨, 데이비드 린치,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우디 앨런, '''하비 와인스틴''', 대런 애러노프스키, 왕가위 등)과 #[17] , 불행한 인생과는 별개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이들(셀마 헤이엑[18] , 케빈 스미스, 그렉 그룬버그[19] , 제시 아이젠버그, 제이미 폭스, 존 레전드, 지미 키멜, 아놀드 슈워제네거[20] , 닐 게이먼, 빌 마허, 존 스튜어트, 크리스 락, 제이미 리 커티스, 슬라보예 지젝, 패트리샤 아퀘트 등)[21] 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이때문에 온라인에서는 로만 폴란스키의 문제적인 행적과 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조금만 풀어도 순식간에 키배가 붙는다.
그리고, 2017년에 터진 하비 와인스틴 성추행 파문에 로만 폴란스키를 옹호하던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나서서 비난하면서 이 문제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비 와인스틴이 저지른 성추행에는 그리도 비난하면서 로만 폴란스키는 왜 옹호하냐는 것. 할리우드가 미투 운동을 이용하면서 폴란스키의 성범죄에 모르는 척하고 다른 성범죄에 비난하는 것에 할리우드가 비판받고 있다. 결국 할리우드에서 이 여파인지 2018년 5월, 빌 코스비와 함께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로부터 제명당했다. 그것 때문에 화났는지 폴란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을 집단 히스테리라며 비난했다. # 2019년 4월에 아카데미 회원 회복 소송 진행 중이다.# 그리고 패소되었다.#
2020년 2월 28일에 열린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수여해 큰 논란이 일었다. 감독 입후보 시기때부터 논란이 되어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 세자르 영화제 위원회에 공개적으로 폴란스키에게 상을 주지 말것을 명령했으며 압박을 느낀 세자르상 위원진이 총사퇴하는 일까지 있었으나 기어코 그에게 수여한 것이다. 폴란스키에게 시상되는 순간 배우 아델 에넬[22] 은 "프랑스의 수치!" 라며 소리를 지르곤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다수의 영화인들이 자리를 떠났다. 폴란스키는 페미니스트가 무섭다는 이유로 세자르에 참석하지 않았다. 시상식 직후 프랑스에서는 폴란스키 수상을 반대하는 격한 시위가 일어났고, 한때 일부 시위대가 시상식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최루탄을 쏘며 막는 등 충돌도 빚어졌다. 폴란스키는 성범죄로 인해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이미 제명당한 상태인데, 프랑스는 자국 영화인이라는 이유로 계속 감싸려다가 세자르상의 권위를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3. 작품 세계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대체로 무겁고 암울하며 비극적인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감독이 살아오면서 겪어온 온갖 어두운 사건들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공포/스릴러 영화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심리묘사를 잘해 관객들한테 어두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폴란스키 본인이 자기 영화에 자주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테넌트에선 아예 주연을 맡지만.
데뷔작부터가 그리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아내가 될 샤론 테이트를 만났을 때에는 의외로 코믹하면서도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박쥐성의 무도회》와 같은 영화도 감독하는 등 나름대로 밝은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 것 '''같았다.'''[23]
그러나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에게 아내와 아기가 살해당하는 참변을 겪고 난 후에 그 암울한 작품 세계는 아예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특히 살인 사건 직후에 만들었던 《맥베스#s-2.1》를 보면 폴란스키의 정신이 어디까지 붕괴되었는가 실감할 수 있다.[24] 폴란스키가 만든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작품 중 처음으로 X등급을 받았다. 비슷하게 잔인한 영화인 《타이투스》보다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다만 마냥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는게 아니라 시니컬한 블랙 유머가 따라붙는다. 차이나타운의 어두운 엔딩이나 《테넌트》같은 영화에서 드러난다.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본인의 욕망을 투영했는지 몰라도 차이나타운, 악마의 씨, 테스, 비터 문 등에서는 강간같은 성범죄 묘사가 자주 나온다.
3.1. 편차가 심한 감독
영화를 잘 만들 때는 한없이 잘 찍는 명감독이지만 반대로 못 만들 때는 작품성과 재미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특이한 감독이기도 하다.
《대해적》[25] , 《나인스 게이트》, 《올리버 트위스트》 가 대표적으로 두고두고 욕먹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이며, 로저 이버트 같은 유명 평론가가 별점을 '''1개 반''' 줄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다.[26] 《나인스 게이트》를 제외하면《대해적》은 대자본을 들여 나름대로 블록버스터 혹은 코미디를 의도한 작품이어서, 이 방면에서 약하다는 걸 여지없이 드러냈다.
4. 필모그래피
- 1962년 물속의 칼
- 1965년 혐오#s-2
- 1966년 막다른 골목
- 1967년 박쥐성의 무도회
- 1968년 악마의 씨
- 1971년 맥베스#s-2.1
- 1972년 왓?
- 1974년 차이나타운
- 1976년 테넌트
- 1979년 테스
- 1986년 대해적
- 1988년 실종자[27]
- 1992년 비터 문
- 1994년 진실#s-3
- 1999년 나인스 게이트
- 2002년 피아니스트
- 2005년 올리버 트위스트#s-3.2
- 2010년 유령작가
- 2011년 대학살의 신#s-2
- 2013년 모피를 입은 비너스
- 2017년 실화: 숨겨진 비밀
- 2019년 장교와 스파이
5. 기타
프랑스의 배우 에마뉘엘 세니에르[28] 와 재혼했다. 에마뉘엘 세니에르는 그의 작품 실종자로 데뷔했으며 그후 현재까지 계속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나인스 게이트에 신비의 여인으로 등장했다. 나이 차이는 30살 이상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9]
성룡 주연의 영화인 《러시 아워 3》에서 카메오#s-1로 출연한 적이 있다. 성룡 일행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변태 형사#s-1 역을 맡았는데, 러시 아워 팬이어서 적극적인 오퍼 끝에 출연했다고 한다.
유대인이긴 하지만 그의 부모들은 모두 무신론자라고 한다. 폴란스키 본인도 무신론자라고 했다.
감독을 맡은 영화 테스는 아내 샤론 테이트가 가장 좋아한 소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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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대한민국의 한 초등학교의 성폭력 예방 수업에서 '''성폭행 범죄자를 가려내는 문제의 예시'''로 나온 적이 있다.[30] 사실 강간범은 보통 젊고 힘있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든 노인도 충분히 가능하며, 따라서 성폭행 범죄자는 외모로 구분할 수 없기에 이들 중 누구도 성폭행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정도가 정답이다. 다른 후보들이 게가드 무사시, 웨인 루니에, 빌리 헤링턴 등등인걸 보면 그냥 적당히 인터넷에서 유명한 인물 사진들 몇 개를 추려낸 것 뿐인 듯 하다. 지만 나중에 하필 로만 폴란스키가 진짜 성폭행 범죄자라는게 밝혀져버린 것. 다만 사실 폴란스키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40대 정도의 나이였다.
심슨 가족의 에피소드인 '''Angry Dad: The Movie'''에서는 폴란스키가 언급된다. 바트가 만들고 인기 있었던 만화인 Angry Dad를 영화로 제작하려는 제작자가 바트를 찾아오자 이에 호머가 '''나의 어린 로만 폴란스키'''라며 바트를 잘 대해줬다. 그냥 그림 잘 그린 애 보고 '아이고 우리 피카소'라고 하는 정도의 뉘앙스지만 하필... 근데 그걸 가지고 마지가 당황해서 호머에게 귓속말로 폴란스키가 저지른 짓을 말해주자 호머는 이 괴물이라며 '''바트의 목을 조른다'''(...).
패밀리 가이의 어벤져스 성범죄자 패러디에 출연.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 무려 케빈 스페이시, 우디 앨런, 빌 코스비[31] , 브랫 래트너, 스티븐 시걸, 맷 라우어, 제임스 토백 그리고 하비 와인스틴과 함께 모여있다(...).
[1] 흔히 러시아인의 성으로 생각하는 -스키는 폴란드인들의 성이다.[2] "계도 불가능한 정치범"들로 분류된 사람들이 끌려온 3등급 노동수용소이다. 1938년 빈과 린츠에 화강암 석재를 공급하고자 한 비너-그라벤 사의 요구로 세워졌다. 이 회사는 SS(나치 친위대) 소유의 DEST(독일 토목 및 석재 유한공사) 소속이었으며 대표인 오스발트 폴 또한 후에 친위대 대장까지 진급하는 열성 친위대원이었다. 이를 위해 다하우 수용소의 일부 인원이 재배치되어 건설하였다. 마우타우젠 수용소와 구젠 1, 2, 3 수용소를 중심으로 하여 오스트리아 전역의 101개의 보조수용소(Außenlager)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콤비나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절멸수용소들과 같은 가스실은 없었으나 노동을 통한 절멸(Vernichtung durch Arbeit)을 추구하던 곳인 만큼 수감자들은 이곳에 부속된 벽돌 공장, 군수공장에서 끔찍한 중노동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DEST 소속 회사들뿐만 아니라 바이엘, 마우저, 하인켈, 메서슈미트 등 독일 유수의 대기업들 및 수많은 오스트리아 향토 기업들은 이곳의 이러한 참상에도 아랑곳 않고 저렴한 노예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 과정에서 총 '''12~32만 명의 수감자들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45년 소련군이 오스트리아로 몰려오자 나치는 수감자들을 동원해 방어선을 건설함과 동시에 남은 수감자들을 지하공장에 집어넣은 후 붕괴시켜 전부 죽여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학살 명령은 수행되지 않았고, 이후 SS가 물러가고 그 자리를 오합지졸인 빈 출신 국민돌격대원들이 채우면서 수용소의 실질적인 주도권은 수감자들에게로 옮겨갔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무장하여 인근 독일군 패잔병들의 공격을 격퇴하다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전후 이곳은 1970년 박물관으로 재개장되었고, 현재까지도 끔찍한 나치 정권의 범죄를 증언하는 역사적 장으로서 남아 있다.[3] 그것 때문에 좌절하고 프랑스로 여행을 잠시 떠났다고 한다.[4]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의 제작자중 한명이며, 이쪽도 폴란스키처럼 홀로코스트 피해자다.[5] 폴란스키는 막다른 골목이 자신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고 한다.[6] 물론 비슷한 세대 중 인지도로 따지자면 폴란드 영화계가 자랑하는 안제이 바이다도 있지만, 바이다는 영어 영화를 찍지 않아서 폴란스키보다는 밀린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상당히 늦게 빛을 봤고 그나마도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짧았다.[7] 그들은 악마의 씨의 엄청난 추종자였다고 한다.[8] 도리스 데이의 아들. 샤론 테이트의 지인이기도 했다.[9] 폴란스키는 물속의 칼 이후 70년대 초기까지 영국에서 많이 활동했다.[10] 그때 니콜슨은 한때 연인이었던 안젤리카 휴스턴과 휴가를 간 상태였다. 나중에 둘이 있을때 돌아왔는데, 휴스턴이 의심하고 문을 두들기자 폴란스키가 촬영중이라고 거짓말했다고 한다.[11] 테넌트를 찍은 이후에 폴란스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12] 때문에 차이나타운 이후 폴란스키 영화는 언어만 영어고 프랑스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을 불러다가 찍었다. 아예 프랑스어로 찍은 영화도 있다.[13] 그래서 해리슨 포드가 5개월 뒤 도빌 미국 영화제에서 폴란스키에게 트로피를 주었다고 한다.[14] 이것 때문에 만들고 있었던 영화 <유령 작가>를 가택연금 중에 완성해야 했다.[15] 당연히 아동성범죄자건 뭐건 개인이 심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걸 떠나서 앞서 언급되었듯 저 인간은 쳐들어가는 집에 누가 살았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희생자는 로만 본인이 아닌 임신한 아내였고.[16]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라 나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폴란스키에게 동정여론이 형성되어 있다.[17] 선처를 부탁한 전체 명단이다. 아시아 아르젠토, 나탈리 포트만, 자비에 돌란은 선처를 요구한 것에 후회한다고 밝혔다. 엠마 톰슨도 원래 목록에 적혀 있었지만, 자신이 빼달라고 요청했다.[18] 폴란스키 관련 인터뷰를 받았을 때 그를 비난한 적이 있다.[19] J.J. 에이브럼스의 절친이며, 그가 제작한 미션 임파서블 3, 스타트렉 비욘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까메오로 참여했다.[20] 슈워제네거는 주지사 시절 때 그의 작품을 존경한다고 발언했지만, 그의 사건에 대해선 다른 범죄자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래서 폴란스키에게 특별대우는 없다고 발언했다.[21] 뤽 베송도 원래 선처를 반대했지만, 그도 성폭행 논란이 도는 중이다.[22] 아델 역시 12세 때 출연한 작품의 감독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실제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본인도 2019년에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적 있어서 더더욱 이번 일에 분노할 수 밖에 없다.[23] 다만 비슷한 시기에 만든 《악마의 씨》는 내용이 꽤 무겁고 무섭다.[24] 1971년 개봉 당시 영화의 핏빛 묘사가 너무 지나치다는 평론가들의 평에 로만 폴란스키는 "'''당신들은 작년 8월의 내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유혈이 낭자하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고 대답했다.[25] 1985년작으로,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더불어 영화사를 말아먹을 수준으로 쫄딱 망한 해적 영화로 유명하다. 미국에 못 돌아오다보니 프랑스와 튀니지 합작 투자로 만들었는데, 4천만 달러를 들여서 미국에서 164만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제작자인 타라크 벤 암마르는 이후 영화 제작을 포기했을 지경이다. 두 영화 때문에 캐리비안의 해적 이전에는 해적 영화를 만들면 망한다는 인식이 생겼다.[26] 이버트는 올리버 트위스트에 3.5점을 주긴 했지만.[27] 해리슨 포드와 폴란스키의 아내인 에마누엘 세이네르가 출연하며,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이다.[28] 독일계 성씨 Seigner여서 국내에서는 '자이그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라 세니에르가 맞다.[29] 세니에르는 1966년생으로 알려져 있다.[30] 이 무렵에 김길태 살인 사건, 김수철 사건 등 연이은 아동 성폭력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31] 유일한 흑인이라 대놓고 닉 퓨리를 패러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