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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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을 상징하고 전세계적 아이콘이 된 '''전설적인 배우'''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에 오른 역사적인 인물이며 동시에 할리우드를 넘어 '''대중문화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인 1950년~60년대 초까지의 클래식 시대에 활동한 20세기 전 세계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2] 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예인 중 한 명'''[3] 이며 섹스 심벌(Sex Symbol) 등의 수식어로 불리었다.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6위'''에 선정됐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존 F. 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등 많은 남성들과 얽히며 화려한 사생활 측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의문을 남기며 사망하면서 음모론 등 많은 뒷 이야기를 낳은 인물이다. 금발 미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2. 상세
할리우드에서 편집기사로 일하던 정신장애가 있는 모친의 사생아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먼로가 어렸을때 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해 먼로를 기를수 없게 된 모친과 책임을 지지 않고,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 부친[4] 대신에 여러번의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며 고아원과 여러 양부모 집에 전전하면서 계속된 여러 양아버지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먼로를 맡아 기르던 위탁 가정의 부모가 멀리 이사를 가는데, 법적인 문제로 먼로를 데려갈 수 없었고,[5] 그렇다고 아직 어린 소녀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어 후다닥 결혼을 시키고자 같은 학교 연극반이었던 제임스 도허티(James Dougherty)와 16세 때 결혼 시켰다. 제임스가 군에 주둔하게 되자 그의 부모와 같이 군대 근처에 집을 옮기며 살았는데 그때 잠깐 부업으로 누드 사진 촬영모델을 하게 되자 남편과 그 문제로 마찰을 일어 더 많은 자유로움을 원하며, 현재 삶에 지루함을 느꼈던 동시에 부부 관계간에 큰 사랑의 감정이 없어서 남편과 4년만에 이혼하게 된다.[6]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방위산업체에서[7] 페인트 분무기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부대 사진 작가 데이비드 코노버(david conover)의 눈에 띄어 정식적인 모델이 되었다. 이때 달력의 누드 모델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8]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더 큰 기회를 얻었는데 1947년 <쇼킹 미스 필그림>이라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스크린에 데뷔한다. 예명은 192-30년대 유명했던 브로드웨이 스타인 마릴린 밀러와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을 결합했다.[9]
그 후로도 단역을 전전하다가 1950년에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에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다. 53년에 <나이아가라>의 주연을 맡아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20세기 폭스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먼로 워크'''를 중심으로 화려한 선전을 전개, 그녀를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만들었다.
이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돌아오지 않는 강>, <7년만의 외출[10] >, <버스정류장>, <왕자와 무희>,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금발의 백치미인 컨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는 똑똑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백치미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공적인 자리에서는 백치미 "연기"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먼로의 위탁 부모들 중 한 가정이 흑인 지역을 출입하는 집배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흑인들과 어울렸던 먼로는[11] 영화계 데뷔 후에도 흑인 아이들과 한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이고[12] 양부모에게 성추행 당한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 운동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는 등 '모든 인간은 타고난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당대 사회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라는 유명한 사진에는 그녀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궁금했던 한 영문과 교수가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진짜였다고... 물론 이 책을 읽는 것이 똑똑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영미문학계에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책이 가진 '''괴랄한 난이도'''[13] 를 생각하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집념과 교양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는 평생 백치미 컨셉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력을 키우고 싶어했다고 한다.[14] 실제로 로렌스 올리비에 또한 먼로가 자신이 이제껏 공연한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이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부부를 주연으로 하려 했지만, 막판에 나이든 비비안 대신 상대적으로 어린 먼로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 먼로의 매력에 위기감을 느낀 비비안 리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현장에 머물면서 감시를 했지만, 결국에는 비비안 리마저 먼로의 인품과 지적 매력, 유머 감각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멍청한 금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똑똑하면 안 된다고 믿고 싶었던 기자들은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역할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한다는 질문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펠링은 아냐?"였다고.
먼로가 생전에 이러한 이미지로 고착된 것은 고아로 자란 데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로 그녀가 평생 가지고 있던 정서 불안과 두려움 및 약물 중독에서도 기인했는데 <뜨거운 것이 좋아>를 촬영할 때는 서랍장을 열면서 "버번 위스키 어디 있어요?"하는 단순한 대사를 무려 59번이나 NG를 내서, 결국 서랍 안에 대사를 적어 놓았지만 어느 서랍에 컨닝 페이퍼를 넣었는지 몰라서 모든 서랍에 넣은 후에야 대사를 말했고[15] 먼로의 마지막 완성작 <The Misfits>에서는 번번히 촬영장에서 지각을 해서,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불쾌해했다고 한다.
애정 결핍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무시하고 몸매에만 관심을 주는 영화계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그 당시에도 유색인 팬들이나 유색인 국가 방문 시에도 예의 바른 태도로 좋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당시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던 한국에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방문 시 한국인 팬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문 기사를 즐겁게 보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한국어를 모르니 기사 내용은 당연히 몰랐겠지만 흐릿하게나마 보였을 신문 속 사진을 보고 내용을 짐작은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먼로 방문 환영 현장에서 한국 영화인 대표로 나선 최은희와 [16] 팔짱 끼고 있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3. 결혼과 이혼
첫 결혼은 1942년, 16세 때 항공사 정비공으로 일하던 짐 도허티와 치렀다. 이 결혼은 당시 먼로의 위탁 부모가 다른 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먼로를 데려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마디로 차마 아직 미성년인 여자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기가 미안해서 이웃의 청년과 급하게 짝을 맺어 준 것. 짐의 부모, 특히 어머니가 먼로가 성실하고 정숙한 처자라고 환영을 하며 결혼을 빨리 치루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4년 만에 먼로가 모델 일을 하는 문제로 헤어졌다.[17] 훗날 짐 도허티는 "여전히 먼로를 사랑합니다만, 먼로에게 빠진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먼로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결혼 274일 만에'''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이미 은퇴한 상태였고 먼로는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였는데 이것이 한 때 야구선수로서 큰 영광을 누리던 디마지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유명한 일화로 먼로가 많은 청중에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면서 "이 기분을 당신은 모를 거예요"라고 하자 디마지오가 "잘 알아"라고 대답한 일이 있었다.
디마지오는 가부장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이여서 외향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먼로를 감당 못해 가정폭력을 자주 저질렀고, '''야구 배트까지 써서 마릴린 먼로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어찌나 맞았는지, 이 시절의 먼로는 얼굴의 멍을 감추기 위해서 짙은 화장을 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법원에 이혼장을 내밀면서 "그가 날 때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들의 사이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실시한 한국 위문 공연부터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상으로 쉬어야 했던 디마지오가 전지훈련 겸 팬 사인회로 먼로와 함께 일본에 갔는데, 계획에 없이 한국의 최전선 장병 위문 공연 제의가 들어왔고 먼로가 거기에 응해서 둘이 위문공연을 했다.[18] 이 위문 공연을 본 후부터 디마지오는 먼로를 계속해서 닦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촬영 현장에 따라간 디마지오가 먼로가 환풍기 씬을 찍는 것을 보고 먼로에게 화를 내서 둘이 큰 소리로 다투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19]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3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유언 중에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군."이라는 말도 유명하다. 또한, 케네디 가문의 형, 동생과 먼로의 스캔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서 평생 케네디 가문을 증오했고,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도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쳐도 그가 저지른 가정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실제로 조 디마지오의 친아들마저도 훗날 이에 대해 증언하며 아버지를 비난했을 정도였다.
이후 먼로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3번째 결혼을 한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 작가였으니,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당대 최고의 육체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결혼도 곧 실패로 끝난다.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려서 고생한 것이 이혼 사유 중 하나다. 사족으로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렸을 때 의원 한 명에게 '당신의 아내인 먼로와 사진을 찍게 해주면 당신을 사면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밀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그녀가 죽은 뒤에 밀러는 '전락 이후(After the Fall)'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여기서 그녀를 끝까지 도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었다.[공연영상]
밀러와 이혼 후 촬영 중에 대본을 못 읽을 정도로 각성제 및 음주를 하여 정신이 망가진 먼로는 이런 저런 추문에 휩싸였다. 결국, 영화 촬영을 고의로 펑크내고 '''존 케네디 대통령 생일잔치'''에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는 추문을 일으켜서 바로 영화 촬영장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은둔 생활을 하였다.[20] 80년대 후반 발견된 미공개 사진이나 디마지오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은둔생활 동안 약물을 끊고 재기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생일 잔치에서 먼로는 '''속옷도 입지 않고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서'''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자작곡을 불렀는데 좌중이 그 매력에 경악했다고 한다. 케네디는 그 많은 기자들이 있는 와중에 먼로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당시 무대 뒤에 서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원은 케네디 암살 50주기를 기념해서 한 인터뷰에서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여자의 엉덩이와 고혹적인 목소리 뿐이었어. 그리고 그 때의 내 나이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지."'''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 기자 하나가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 댔는데 미국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고 그중 일부만 공개를 허락 받았다.
한편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마릴린과 존 케네디 대통령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남편의 생일 파티에 마릴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당신 혼자 가세요.'''라고 쏘아붙이고는 말을 타러 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마릴린이 사망한 뒤 남편과의 사이도 다시 진전되었다고 한다. 이때 입었던 드레스는 199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대략 14억에 팔렸으며, 2016년 11월 줄리어스 옥션 경매에 다시 부쳐져 '''무려 56억원에 낙찰되었다.''' [21]
4. 사망
1962년 8월 5일 가정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녀의 방 침대에서 나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22]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으로 되어 있다. 사건 현장에는 수면제 통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전화기를 꼭 붙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고. 실제로 죽기 직전으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인은 그때까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예상은 못 했다고. 향년 36세.
존 및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죽음에 마피아 조직이 개입된 모살설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와 정말로 친했다고 한다.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 디마지오는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고, 평생 케네디 일가를 증오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다만 디마지오는 전술된 대로 폭행 문제가 있는지라 본인도 떳떳할 수는 없는 처지다.
재클린 케네디가 먼로의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카더라도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전직 CIA 요원이 자신이 먼로를 살해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는 해외 기사가 있었으나 그 기사가 게시된 웹사이트는 가짜 뉴스를 올리는 사이트였다. #
한국에서도 생전에 유명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보니 대한뉴스에서도 사망 소식을 전할 정도이다. #
5. 그녀에 관한 말들
'''먼로의 23편의 영화는 총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그녀의 명성은 그녀가 살던 시대의 어떤 다른 연예인의 명성보다도 뛰어났다. 어리석고 유혹적인 금발머리라는 그녀의 초기 이미지는 할리우드의 압박을 피할 수 없는 예민하고 불안한 여성의 비극적인 모습에 나중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녀의 연약함과 감각은 그녀의 불필요한 죽음과 결합되어 결국 그녀를 미국 문화 아이콘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섹스 심벌로서 인생을 보냈으며 가장 오래 지속되는 대중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당대의 유혹, 우아함, 신비로움의 상징으로 남은 마릴린 먼로는 여전히 영화계의 상징이며 불멸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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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대의 아프로디테다. (중략) 그녀는 대중문화에 스며들어 욕망을 계속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녀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녀를 단순한 인간이 아닌 진정한 아이콘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 영국 영화 협회(BFI)#
'''그녀의 이미지는 영원한 표준 아이콘으로 문화적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여배우.'''
'''고인이 된 금발의 여신은 영원히 숭배될 것이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끝없이 화제가 되고 신화적인 인물인 마릴린 먼로는 꿈과 악몽이 함께 만들어진 최고의 슈퍼스타로 남았다. 순진하고, 연약하며, 불가능할 정도로 매혹적인 그녀는 스크린 섹슈얼리티 바로 그 본질을 규정했다. 핀업걸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부상한 그녀는 카메라가 사랑한 재능 있는 코미디언으로 발전했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면 장악 능력이 존재했다. 요컨대, 호박 속에 갇힌 연약한 아름다움으로 시대의 파괴에도 흔들리지 않는 먼로는, 영화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사랑 받는 아이콘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전설로 남았다.'''
― AllMovie#
'''미국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먼로의 인기있는 몇몇 라이벌들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미키 마우스가 있다. 그 어떤 스타도 정욕에서 연민에 이르기까지, 질투에서 회한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광범위한 감정에 영감을 준 적은 없었다.'''
― ''The Guide to United States Popular Culture''#
'''신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사진작가가 그녀를 카메라 앞에 앉힌 첫날 그녀는 천재였어요.'''
'''나는 마릴린이 그녀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거의 압도적인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물론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한없는 생명력과 일종의 믿을 수 없는 순수함을 발산한다.'''
― 카렌 블릭센 (덴마크의 대문호)#
'''각 세대, 심지어 각 개인에 의해 다시 창조되고 있는 영원한 형태변환자.'''
― 로이스 배너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
'''20세기에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사람.'''
― 게일 레빈 (미술 사학자)#
'''만약 마릴린이 내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마릴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녀의 전성기에 있는 마릴린 먼로를 방문하거나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하늘로 돌렸을 때 잠깐 들를 것이다.'''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은 할리우드에서 최초의 여성 소유의 제작사였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여성들을 위한 길을 닦았고, 모든 여성들은 그녀의 이미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것에 대해 그녀에게 빚진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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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는 최초의 미국 여신 – 우리의 사랑의 여신입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어디에나 있어요. 스타는 죽지만 빛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 버트 스턴[26]
(사진 작가)#
6. 필모그래피
1962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그녀의 모든 영화는 2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으며 2019년 기준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20억 달러의 수익이다. 1950~60년대 제일 흥행이 좋은 여배우들 중 하나로 꼽혔다.
7. 기타
- 마릴린 먼로는 산소를 마시듯이 샴페인을 즐겼다고 한다. 샴페인 중 그녀가 선택한 최고의 샴페인은 바로 파이퍼 하이직이었다. 그녀는 욕조에 샴페인을 부어 호사스러운 목욕을 즐겼을 정도로 파이퍼 하이직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 이름과 얼굴 자체가 브랜드인 배우라 상표로 엄청 사용된다. 2020년 기준 그녀의 이미지와 이름은 돌체 앤 가바나, 잘레스, 레고 등 전세계 거의 100개 브랜드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포브스 연예인 사후 수입 순위에 항상 등장한다.출처 이 순위에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녀의 불멸의 인기를 확인 할 수 있는 기록.
- 사망 한지 50년이 넘은 지금도 가장 유명한 연예인 중 한 명이다. 시대를 초월한 아이코닉한 이미지, 끊임없이 나오는 그녀의 패러디[31] 로 고전 배우 중 원탑의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전 세대에 조사한 인지도 조사에서 미국#, 영국# 모두 고전 배우 중 인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비교해도 안꿇릴 정도다. 배우로 한정하지 않아도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 입가에 있는 점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애교점이라 불리는 그것을 먼로점이라고 따로 불릴 정도.
- 금발은 염색한 것이다. 노마 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머리가 갈색이다. 그보다 더 전인 아주 어렸을 적의 사진들을 보면 머리 색이 밝았다.#, 서양인의 경우 어릴 때는 머리가 금발이었다가 자라서 더티 블론드가 되거나 갈색 머리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동양인도 비슷하게 어릴 때는 모발이 가는 갈색 머리였다가 자라면서 짙은 색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녀의 사망 이후 부검에서도 체모가 갈색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아담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키가 166cm으로 의외로 크다.당시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이 160cm, 미군의 평균 신장이 174cm이었으니 마릴린 먼로는 현재로 따지면 170 초반에서 중간 가량에 해당하는 키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워낙 키가 큰 여배우들이 많았기에 비슷한 세대의 여배우 중에선 그리 큰 키는 아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함께 출연한 제인 러셀만 해도 170cm이라 먼로가 작아보였고, 비슷한 세대의 그레이스 켈리나 오드리 햅번 등도 170cm 가량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75cm, 살짝 더 윗세대인 캐서린 헵번은 173cm이다. 작은 체구로 유명한 비비안 리도 163cm.
-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을 한국인 경호원에게 선물해주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녀의 성미를 생각한다면 있을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 결국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빈센트 반 고흐 진품 한국인 소유 사건 항목 참조.
- 한국에도 방문했었다. 관광이 아닌 한국전쟁 당시 미군 위문 차.
- 영국의 록 음악가 엘튼 존과 그의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은 1973년에 마릴런 먼로를 추모하는 노래 Candle In The Wind를 발표했다. 정확히 말해서 마릴린 먼로에게 바치는 내용이면서도 명성의 대가에 대해서 말하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모든 재능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 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마릴린 먼로의 소문난 광팬이다. 특히나 상술한 먼로의 불우한 처지와 심경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와 염문설을 뿌린 것도 흑백혼혈이라는 유사한 인종적 배경 외에 조 디마지오의 대체자로서의 이미지를 간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뮤직 비디오 역시 먼로의 한국 위문 공연에 대한 오마쥬이다. 또 먼로 관련 기념 물품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비용을 아끼지 않고 구입하라고 평소 에이전트에게 단단히 언질해 둔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물건 중 하나가 생전 먼로가 소유했던 흰색 그랜드 피아노였다.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 닉 캐넌이 무심코 웃옷을 피아노 위에 걸쳐놓았을 때도 적잖이 화를 냈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 이름조차 먼로라고 지었을 정도(..) 덧붙여 위치는 다르지만 두 사람 다 입가에 애교점이 있는 대표적 유명 인사로 손꼽히고 있다.
- 안나 니콜 스미스가 시대적 기준으로 큰 키(마릴린 먼로 166cm, 안나 니콜 스미스 180cm)에 속하는 데다가 풍만한 외모는 물론이고 파란만장했던 인생사까지 마릴린 먼로와 겹친다는 평이 많다.
-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를 찍는 과정에서,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 밑에 조수로 일했던 콜린 클락은 자신과 먼로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2편을 써 냈는데,
와 이다. 전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후자는 2011년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32]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와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밖에 케네스 브레너가 로렌스 올리비에로, 에디 레드메인이 콜린 클락으로 출연한다. 세간에는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 속 배경은 사실이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적으로 콜린 클락의 주장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 미드 Quantum Leap 5기 17화 "Goodbye Norma Jean"에서, 원래 역사대로라면 죽어야 하지만 샘의 개입으로 마지막 작품이 되는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서 은퇴한다.
- 마이클 셰이본의 대체역사소설 유대인 경찰연합에서는,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영부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이혼하는 데 성공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마릴린 먼로와 재혼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 2011년 7월, 시카고의 번화가에 있는 파이오니어 광장에 마릴린 먼로의 환풍기 씬을 재현한 대형 동상이 설치되었다. 크기가 8m나 되는 동상이며 먼로의 얼굴 표정이나 옷, 발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게다가 주변을 울타리로 막은 것도 아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도록 완전 개방해 놓았기 때문에, 먼로의 다리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두 다리 사이에 서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사진을 찍는 등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너도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설치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허벅지 부분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 놓는 등 마찬가지로 민망한 방식으로 동상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 날짜로 2012년 5월 7일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2012년 봄까지만 설치해 둘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제 시카고에 가도 더 이상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사진은 검색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캘리포니아로 옮겨졌었다. 2014년 6월 현재 뉴저지에 있다
- 게게게의 키타로에도 등장하는데 2기작부터 5기작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먼로가 요괴로 나온다더 이상한 건 피이라는 요괴를 남편으로 두고 있단 점. 이 작품에선 빌런으로 등장한다.[33]
- 배우 나문희가 그녀의 담당 성우를 했다고 한다.
- 20세기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다품종 대량 생산을 많이 풍자했고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단순하게 다른 색깔을 여러 번 입혀서 <마릴린 먼로> 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깡통 캔과 더불어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며 원작은 당연히 수백억 대를 넘는다.
-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며 '얼굴과 몸매가 좋은 사람은 쓰레기 봉지 같은 걸 입어도 어울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감자 포대를 잘라서 만든 원피스를 입은 화보가 있다. 참고로 대공황시기에 실제로 있던 스타일이다. 당시에 워낙 가난하여 옷을 사거나 옷감을 사서 옷을 만들 수 없어서 포대를 잘라서 옷을 만들고는 했다고 한다.
- 노래 실력도 좋아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 , , <뜨거운 것이 좋아>의 와 , , <나이아가라>의 , <돌아오지 않는 강>의 과 등 그녀가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뮤지컬로 많이 리메이크 되었다. 재즈풍이나 뮤지컬 댄스풍의 사랑스러운 가사와 매혹하는 듯한 목소리가 포인트이다.
<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작 중 뮤지컬 노래로, 마돈나의 Material Girl의 뮤직비디오#등 많은 아티스트들의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다. 마돈나도 먼로의 팬.
< I wanna be loved by you >
Cole Porter's "My Heart Belongs to Daddy" - Marilyn Monroe
< 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
< Bye Bye Baby >
< River Of No Return >
< Down in the Meadow >
- 스티븐 호킹이 그녀의 팬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구실에는 마릴린 그림이 붙여져 있으며 만일 과거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전성기 시절의 마릴린 먼로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8.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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