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균
1. 개요
前 삼성 라이온즈의 좌투좌타 외야수.
2. 데뷔 이전
동대문상고 시절 모교의 1993년 대통령배 4강 진출에 일조했다.
그 뒤 인하대학교 야구부에서 뛰던 중 1997년 아시아선수권 대회와 199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도 출장해 일본전에서 홈런을 기록하는 등 대표팀의 6승 무패의 선전에 일조하며 병역 특례를 획득했다.[1][2] 다만 당시 국가대표 사령탑이 장영균의 소속 학교였던 인하대의 주성노 감독이었기 때문에, 은사 잘 둔 혜택 아니냐는 뒷말이 좀 있었다.
3. 선수 경력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9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었다. 당시 계약금은 7천만원이었다.기사[3]
1999년 8월 5일 KBO 퓨처스리그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이는 KBO 퓨처스리그 사상 6번째로 나온 기록이다.
그러나 국가대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4]
2001 시즌에 2할 2푼대의 저조한 타율에도 불구하고 200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으나 그 해 팀은 우승에 실패했다.
2002 시즌에는 5경기만 출장했지만 외야 백업으로 200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고,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를 상대로 극적인 백투백 홈런과 함께 4승 2패로 우승하면서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2003 시즌이 끝난 후 심성보, 이준[5][6] 과 함께 방출되었다.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했다.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이 때 대표팀에서 대학 출신 외야수를 2명 뽑았는데 임재철 등을 제치고 박한이와 함께 뽑혔다.[2] 당시 7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하였다.[3] 당시 입단 동기로는 '''권오준''', 임동규 등이 있다.[4] 2000년 당시에는 김주찬과 더불어 팀 내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5] 프로야구 초창기에 활약한 대도였던 이해창의 아들로 신고선수 출신이다.[6] 1군에서는 2003년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친 경기에 등판해 1.2이닝동안 1실점을 한 기록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