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9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99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및 고졸우선 지명
1차 지명은 1998년 10월 8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고졸우선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졸선수 중 1명을 뽑았다.
3. 2차 지명
1998년 11월 2일 서울특별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12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8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선수들의 지명권은 SK 와이번스로 인계)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4. 드래프트 평가
- 롯데 자이언츠: 조성환을 얻었다. 처음에는 보여 준 것이 없었으나, 2003년 3할을 치면서 포텐이 터지려는 찰나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뒤 3년간 공익근무를 해야 했다. 복귀 시즌인 2008년에 주장직을 맡으며 포텐이 터지고 그 이후로는 자이언츠 800만 팬의 캡틴이 되었다. 여담으로 조성환보다 순번이 한참 위에 있던 김사율도 2011~2012년 2년 간 마무리로 준수한 활약을 했다. 그 외에 임재철이 쏠쏠한 활약을 했으나 2002 시즌 도중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고, 전성기는 두산에서 보냈다가 2015년에 친정으로 복귀한 후 은퇴했다. 비슷한 활약을 했던 한규식 역시 아쉬웠다. 1차 지명의 경우 4년 전 데려오려다가 후일을 기약했던 김건덕이 혹사 후유증으로 투수로서의 가치가 사라지자 정원욱으로 선회했는데, 첫해에 그럭저럭 해 준 이후로 팀에 몸담은 4년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고졸우선지명으로 뽑은 송승준은 롯데 입단을 거부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지명권이 소멸되었고, 이후 돌고 돌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당시 롯데의 선택을 받으면서 2007년에야 롯데로 오게 된다.
- 한화 이글스: 전체적으로 크게 이득을 보지 못했다. 2차 1라운드에서 뽑은 방콕 아시안게임 멤버였던 내야수 황우구는 프로에서는 아마 시절 명성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4년 개인 사정으로 돌연 은퇴했고, 그 다음 순번으로 지명한 윤근주 모두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이영민 타격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한 신민기는 한양대를 거쳐 2003년에야 입단했지만, 입단 후에 좀처럼 기회를 받지 못해 팬들이 고향 팀 롯데로 보내라고 할 정도였으나 병역비리에 걸리면서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방출. 그나마 1차 지명으로 뽑은 박정진이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야 뒤늦게 빛을 봤고 그 외 낮은 순번으로 한상훈과 이양기를 건진 것이 작은 소득이다.
- 쌍방울 레이더스: 어려운 팀 사정 때문에 1차 지명한 이진영만 겨우 입단시켰고, 쌍방울 해체 이후 SK로 재창단되면서 주전 외야수 겸 국가대표 우익수로 성장하며 훗날 FA 대박도 두 차례나 이뤄냈다. 라형진은 삼성에 바로 지명권을 양도했고 나머지 2차 지명 선수들과 고졸우선 지명자인 최경철은 대학으로 보냈다. 이들 중 지명권을 승계한 SK에 입단한 선수는 4명(최경철, 김형철, 이영욱, 한상준)뿐이었으며 그나마 최경철과 이영욱이 어느 정도 기회를 얻었지만 모두 팀을 떠났다. 최경철은 LG의 포수부족 시기에 잠재력이 터지면서 3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주전을 확보했다.
-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한 정성훈이 3루수로 자리잡으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2002시즌 후 내야진 교통정리 겸 박재홍을 얻기 위해 트레이드, 이후 현대에서 완전히 주전 3루수로 자리잡으며 훗날 FA 대박도 두 차례나 이뤄낸 뒤 2018년 친정팀으로 돌아와 1년을 뛰고 은퇴했다. 유동훈은 병역비리에 연루되는 등 부침을 겪기는 했으나, 복귀 후 팀의 허리를 든든하게 해 주었다. 그 외에는 차일목이 눈에 띄는 정도이며 장일현, 최영완(최영필의 동생) 등이 반짝 활약을 보였다. 안병학은 원광대 재학 중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결국 감감 무소식.
- OB 베어스: 1차 지명한 홍성흔은 진갑용을 밀어내고 베어스의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고, 그에게 밀려 이도형과 진갑용이 트레이드됐다. 2008 시즌부터 부상 등 여러 문제로 더 이상 포수로 뛰지 못하고 전업 지명타자가 되었으며, FA가 되자 롯데로 떠났으나 4년 뒤 돌아왔다. 구자운은 데뷔 초반에는 그런대로 활약하였으나 병역비리에 연루된 뒤 부상까지 겹치며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고, 그 외에는 대학 진학 이후 2003년에 입단한 정재훈과 김성배가 눈에 띈다. 정재훈은 한때 팀의 마무리로 맹활약했었고 김성배는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건너간 뒤에야 제대로 빛을 보았고, 2016년 트레이드로 돌아왔다. 그 외에는 장성진과 이승준의 반짝 활약이 있었다. 2차 1픽 정종수는 이후 우리 히어로즈로 이적했다가 2008 시즌을 마치고 방출된 뒤, 현재 KBO 소속의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과 고졸우선지명은 실패, 그러나 2차 1순위로 지명한 투수 권오준이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2003년부터 1군에 자리잡았고, 뒤늦게 포텐이 터지면서 2004년에는 오재영과 신인왕 경쟁도 했다. 이후 2005년에 입단한 오승환을 이어 주는 셋업맨으로 활약, "KO 펀치"로 불릴 정도로 팀의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비록 중간에 팔꿈치 부상을 인해 여러 번 수술을 받았지만, 오뚝이처럼 재기하며 2020년까지 선수시절을 보내고 은퇴했다. 그 외에는 2000년대 중반 선발로 뛰어준 임동규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 LG 트윈스: 1차 지명자인 김상태는 계약금으로만 3억 1000만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입단했지만, 정작 프로에서는 데뷔 첫 해 규정이닝을 채우며 선발로 뛴 걸 제외하면 이후 자리잡지 못했고, 이후 부상까지 겹치며 2004년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방출. 고졸우선으로 택한 김광삼은 타격 재능을 높이 평가받았으나 프로에서는 투수로 정착했다.(일시적으로 타자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2차 1라운드에서 뽑은 좌완투수 큰승호가 2003년 최다이닝 1위, 탈삼진 1위에 오르며 선발투수로 자리잡는 듯 싶다가, 이후 부상과 당겨쓰기 등으로 인해 이진영의 보상 선수로 SK로 이적했다. 지명 당시 유격수였다가 대학 진학 후 투수로 전향한 정재복은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팀의 암흑기 내내 불펜노예로 고생하다가 2013시즌 후 방출되었고 넥센에서 뛰다가 2015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 현대 유니콘스: 편법을 써 가면서 데려온[11] 고졸우선지명 박기범은 망했고, 1차 지명으로 뽑은 박장희는 데뷔 초 선발진에서 그런대로 쏠쏠했으나 교통사고, 그 이후의 병역비리에 연루되면서 선수 생명이 끝났다. 대신 2차 지명에서 선방하였다. 3라운드에서 이택근을 지명하였으며, 하위픽인 11라운드에서 송신영을 지명하였다. 다만 청대 외야수로 잘 나가던 이종욱을 2라운드로 지명한 다음에 대학으로 보냈다가 입단시켜 놓고 1년만에 상무로 보냈다가, 상무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출해 버리는 뻘짓을 한 것이 아쉽다. 내보낸 이유도 딱히 명확하지도 않고,[12] 내보낸 이종욱은 손시헌의 도움으로 이적한 두산에서 포텐셜이 터졌으니... 그리고 1라운드로 지명했던 양용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며 버티다가 홍익대로 진학해서는 1, 2학년 때만 등판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5. 이모저모
- 현대에 고졸 우선지명된 동산고의 박기범은 원래 배명고 재학 중인 선수였으나, 연고지에 마땅한 고졸 선수가 보이지 않았던 현대가 박기범을 동산고로 전학시키면서 우선지명을 하는 편법을 썼다. 이 일을 계기로 1차 지명에서 전학생 지명 금지 규정이 생기게 되었다.
- 당시 재정난을 겪었던 쌍방울은 지명한 13명[13] 의 선수 중 1차 지명자인 이진영 1명만 계약했다. 게다가 쌍방울이 이진영에게 준 계약금은 1억 원으로 타팀 1차 지명자에 비하면 턱없이 낮았다.그리고 그 1억원도 줄 여력이 안 돼 당시 감독이던 김성근도 일부 보조해야 했다.
- 쌍방울에 1라운드 지명된 라형진은 지명권 양도로 삼성에 입단했다. 1998년 초 포수 박현영이 쌍방울로 트레이드되면서 1999 신인지명의 1라운드 지명권을 받기로 합의한 것.
- OB에 2라운드 지명된 장성진은 고교 시절 신경현과 배터리를 이루며 팀을 강팀으로 이끌었던 에이스였지만 1994년 말 건국대를 중퇴한 후 공백기를 거쳐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상태였다.
- 쌍방울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은 경기고 투수 강희성은 홍익대학교 재학 중 SK가 지명권을 포기해 2006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동기들보다 3년 늦게 프로에 입단한 건데, 그렇다고 군 복무로 인한 공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이 당시에는 아직 두산이 아니라 OB였음으로 여기서는 OB로 기재한다.[2] 1976년 8월 23일 생의 좌완 투수다.[3] 영남대 진학 후 2003년 입단.[4] 고려대 진학 후 2003년 입단[5] 성균관대 진학 후 2003년 입단[6] 동국대 진학 후 2003년 입단[7] 대전고를 졸업하고 1999년 신생 대학야구부인 동의대에 진학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 LG가 지명을 포기했고, 대만에 잠시 적을 두다가, 한화에 신고선수 입단. 이후 윤경영으로 개명.[8] 쌍방울 해체로 SK로 인계 후 홍익대 진학하여 2003년 입단[9] 건국대 진학하여 2003년 입대.[10] 건국대 진학 후 2003년 입단[11] 박기범은 원래 서울 배명고에 재학 중이었지만 당시 인천/경기 팜에 마땅히 뽑을만한 고졸 선수가 없다고 판단한 현대가 고3을 앞둔 박기범을 연고지역 학교인 인천 동산고로 전학시키는 방식을 통해 지명하였다. 이후 현대의 이러한 꼼수로 인해 타 연고지역에서 전학온 전학생은 1차 지명이 불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게 된다.[12] 당시 현대가 돈이 없어서 방출시켰다는 설이 그나마 가장 그럴싸하다. 2005 시즌 맹활약한 정수성 때문에 방출했다는 말도 있으나 형의 후광이 워낙 강했던데다가 지명 당시 제일 끝 순번(2차 12라운드)이었던 정수성, 각급 대표팀을 거쳤고 상위 라운드에 지명된 이종욱은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안 된다. 팀이 히어로즈로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 전준호의 뒤를 이을 리드오프감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것을 보면 이종욱 방출이 왜 잘못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13] 애초에 삼성으로 가기로 합의된 라형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