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보
1. 소개
전 한국프로야구 선수. 그리고 '''돌격대의 마지막 거포'''
한국프로야구 3대 심씨 강견 중 한명.[4] 원래는 투수였다.
2. 선수 시절
천안북일고와 단국대를 나와 1995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2차 1순위로 지명되고[5] 당시 쌍방울 역대 신인 중 최고대우에 해당하던 1억6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으면서[6] 프로에 입단했다. 당시 회고하기로는 해태 타이거즈에는 가기 싫었다고.[7]
그러나 데뷔 첫 해에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성적을 올렸다. 이는 심성보 본인이 훈련을 게을리 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1996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8] 야구에 눈을 떠, 1996 시즌부터 쌍방울의 주력 타자로 발돋움했다. 1998년에는 24개의 홈런과 한시즌 외야수 최다 보살 20개를 달성하면서[9] 성공가도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외롭던 김기태에게 같이 고락을 할 수 있는 중심타자가 오나 했으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집안 내력이었던 당뇨병.
1999년 군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다가[10] 우연히 받은 검사에서 '''당뇨 수치가 높다'''라는 판정을 받고 혹시나해서 병무청에서 받은 재검에서 병역면제 판정을 받고 잠깐 좋아했으나, 이것은 심성보에게 있어 야구인생의 가파른 내리막길이나 다름 없었다. 당뇨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체중 감소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고 덩달아 극심한 체력 저하를 겪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심성보에게 특별 훈련 스케줄을 짜주며 도와줬으나 한참 젊은 피였던 심성보는 이를 무시하며 지냈다. 심성보가 훗날 말하길 '''“감독님이 많은 배려를 해주셨지만, 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운동에 빠지기 일쑤였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11] , 헛짓으로 시간을 소비했다. 그때 정신 차리고, 관리를 잘했으면 당뇨병을 이겨냈을 텐데.”'''란 말을 했다.[12]
결국 1999년을 기점으로 성적이 대폭 하락했고 2000 시즌 SK 와이번스의 창단 멤버로 들어갔으나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SK 구단의 판단으로 20게임만 뛰고 방출되었다.
이대로 선수 생활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심성보는 당시 LG 트윈스 2군 감독을 지내던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했고,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옛 제자였던 심성보를 2군에서 처음부터 다시 지도했고, 그 배려로 인해 심성보는 2001년 .279 2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재기하게 된다.
하지만 2002년 기대주 박용택에 밀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고, 설상가상으로 김성근 감독마저 '''팀을 준우승시키고도 구단의 운영 방향과 감독의 지도 철학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짤리게 되며''' 심성보는 이듬해 LG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만다.[13]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해 남은 시즌을 뛰었지만, 2003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어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천안시에서 야구용품점과 당구장을 운영했고, 천안시 사회인 야구단 휘닉스 야구단의 플레잉 감독으로 활동했다. 2015년부터 출신초교인 천안 남산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가 2019년 시즌 도중 출신중인 천안북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옮겨 2020년까지 재직했다.
4. 여담
2009년 7월 23일, KBS1 생로병사의 비밀 방송분에 출연하였는데, 보러 가기. 선수 시절에 비해 상당히 수척해진 모습으로 전파를 탔다.[14] 2011년 7월 8일에는 당뇨병 인식 제고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중 LG 트윈스에 초청돼 시구를 하기도 했다.
5. 연도별 성적
- 볼드는 리그 5위 내 기록.
[1] 청송 심씨 26세손 '輔'자 항렬이다.[2] 주 포지션은 우익수. 쌍방울 시절에는 1루수를 겸업한 적도 있다.[3] 지병으로 인한 면제 판정.[4] 다른 두 사람은 심재학, 심정수.[5] 이 당시만 해도 전년도 꼴찌팀에는 전력 보강 지원 차원에서 2차 1라운드 지명권을 2장 줬다. 1994년 최하위를 기록한 쌍방울은 심성보 외에 투수 이원식을 지명했는데 쌍방울에 지명된 상태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다. 이 당시 해태로 같이 건너간 선수가 1990년대 후반 해태의 주전 포수가 되는 최해식이었고 이원식+최해식+현금 2천만원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쌍방울에 온 선수가 현역 말년의 장채근이다.[6] 심성보가 세운 쌍방울 신인 최고대우 기록은 2년 뒤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하는 좌완 오상민(계약금 1억8천만원)에 의해 깨지게 된다.[7] 어느 인터뷰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쌍방울 고등학교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했다. 훈련량도 많았고, 쌍방울은 해태 출신 선수 + 타 팀에서 이적해온 고참 선수들이 많아서 해태 다음으로 팀 군기가 셌던 팀이었다.[8] 후술하겠지만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는 그도 긴장에 떨어야만했다. "김성근 감독이 오면 나는 잘릴 것이다" 라고 말했던 코치가 '억대 계약금 선수' 심성보의 전담 코치 中 한명이었기 때문.[9] 2위는 2008년 카림 가르시아의 19개, 3위는 11년 손아섭의 18개.[10] 심성보가 입단할 당시 상무 피닉스 야구단은 3대 프로 스포츠 종목 중 유일하게 아마추어 선수에게만 입대를 허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년 탈삼진왕 노상수, 1984년 승리타점 1위 양세종같은 선수(단, 양세종의 경우 김성근 감독과 포지션 문제로 인한 불화가 원인이기도 하다.)가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기량이 떨어져서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방출된 안습한 사연도 있었다. 마해영처럼 상무에 먼저 입단해서 제대한 뒤 프로에 입단하기도 했다.[11] 사실 당뇨는 초기거나, 발견한 후에 어느정도 약을 먹고 혈당 관리가 되면(빼박 당뇨인 당화혈 6점대 후반 정도로도 체중 감소가 올 일이 없으며, 당화혈 8점대인 김준현도 체중 감소가 안 왔다.) 체중 감소가 안 온다. 매일 친구들과 술 마셨다는 말을 한 걸 보면 식이요법도 거의 안 했던 것으로 추정. 다른 기사를 보면 혈당 500대를 찍었다고 하니 당화혈로 치면 10점대 중반 수준으로 추정된다.[12] 후술되었지만 이후 심성보가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LG로 이적했을 때도 푹 자고 훈련에 나오게 해주는 등 김성근의 철저한 배려를 받았다고 한다. 생각 외로 장발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이상훈이 머리 기르는 것을 허용해주는등 몇몇 선수들에게는 야구만 잘하면 신경쓰지 않겠다는 식으로 자유를 준 편.[13] 현재도 김성근 감독이 가장 아까운 재능을 갖춘 선수로 꼽는 이가 심성보다.[14] 당뇨병이 발병한 1999년부터 근육이 다 빠진 수척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