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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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河龜
대한민국의 전 교수, 출판인, 기업인.
평안북도 신의주시 마전동에서 장승언(張承彦)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일본 조치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였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다니던 중 해방을 맞았다. 1946년 경성제대에서 이름이 바뀐 경성대학을 1회로 졸업했다.[1]
경성제대 재학 중이던 1944년 학도병 기피를 이유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동생이 소련군에 의해 옥고를 치른 후 온 가족이 월남하였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전임강사를 거쳐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당시 독일어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수입으로 부인의 병원을 개원하였다. 부인 원금순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2]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였다.
195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의 사망과 교과서 출판업자의 과열경쟁으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동생 장하린과 함께 종로2가의 종로서적을 인수해 경영했다.
1980년대 초 동생에게 사장 자리를 넘기고 회장직에 올랐고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7년 11월 23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남 장덕원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세존상사 대표로 있고, 차남 장덕주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를 나와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장덕원의 아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다. 손자인 장기하도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할아버지 아버지 대는 물론 본인 세대까지 모두 서울대 출신이 되었다.

[1] 경성대학은 이듬해 1947년 폐교되고 국립서울대학교로(현 서울대학교) 통합된다.[2] 고려대 의대의 전신으로, 수도의과대학과 우석대 의대를 거쳐 현재는 고려대학교 재단에 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