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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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특별행정구
新義州特別行政區
Sinuiju Special Administratio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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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소재지
신의주시
지역
관서
면적
132㎢
하위 행정구역
37동 1로동자구 12리[1]
시간대
UTC+9
인구
359,341명[A]
인구밀도
2,647.73명/㎢
당위원장

리재관
인민위원장

리정렬
장관

공석

신의주시
新義州市
Sinŭiju City

}}}
시청 소재지
역전동
광역행정구역
평안북도
면적
180㎢
하위 행정구역
49동 9리
인구
359,341명[A]
인구밀도
1,996.37명/㎢
[image]
<color=#ffffff> 신의주시의 위치
1. 개요
2. 역사
3. 북한 체제 내
4. 기후
5. 여담
7. 신의주시의 하위 행정구역
7.1. 동(洞)
7.2. 리(里)
8.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9.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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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스를 타고 촬영한 신의주 시내 (2019)
북한 평안북도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면적은 180㎢. 인구는 2008년 기준 359,341명.(출처는 여기)

2. 역사


고려 시대에는 거란의 점령을 받았던 강동6주 지역으로, 서희가 외교 담판을 통해 되찾았다.
19세기까지는 의주군 관할이었다.
원래 신의주라는 지명은 없던 지명. 일본1904년러시아러일전쟁을 하기 위해 경의선을 급조하면서 1905년에 새로운(新) 의주라는 뜻에서 만든 곳. 이 당시 행정구역은 의주군 광성면 신의주동이었다. 신의주는 20세기 초만 해도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저지대로, 농사도 포기한 버려진 갈대밭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일제가 대륙 침략 기지로 개발하면서 시가지 주위에 수차례에 걸쳐 이중으로 제방을 쌓아 시가지를 이루게 되었다. 1914년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의주군에서 분리해 신의주부로 승격시켰다. 당초 신의주부의 관할 지역은 제방 안쪽 면적인 6.2㎢(여의도의 대략 2배)에 불과했으나, 1941년 행정구역 대확장으로 17.7배 확장된 109.7㎢로 면적이 크게 늘어났다.#
존재하는 지역의 일부 혹은 외곽을 새로운 도시로 발전시켜 새로운 [도시이름]이라고 이름지었다는 면에서 타이베이시신베이시 (영문명 New Taipei)와 영국령 인도에 의해 지어진 델리 북쪽 뉴델리시와 유사하다.
1945년8.15 광복을 맞으면서 신의주시로 개칭되었다.
경의선 철도 때문에 의주군에 있던 평안북도청을 1924년 뺏어왔다. 6.25 전쟁이 끝난 뒤 2~3년마다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압록강 하안에 위치해 있다. 중국 단둥 시와 조중우의교(도로교)와 압록강철교(남만주철도 철교)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동북쪽으로는 의주군, 동쪽으로는 피현군, 남쪽으로는 용천군(광복 당시: 북쪽으로 의주군, 남쪽으로 용천군)과 접하고 있다.
북중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북한 내에서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다. #

3. 북한 체제 내


1970년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 교시에 의해 중앙에 의한 대대적인 개발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신의주를 국경 관문 도시, 다시 말해서 접대·선전용 도시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간 5,000세대 주택 건설, 신의주-남신의주 지하철 건설, 평양 금수산 여관에 준하는 대규모 여관 신설, 신의주 공항의 민간공항 전환과 외국인 입국 초대소 설치 등의 세부계획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신의주가 대외 선전용 도시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져 이 개발사업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래도 중국과 인접해있다는 특성때문에 1990년대 이후의 북한에서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축에 드는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산 제품들이 신의주를 통해 평안도-황해도까지 이어지기까지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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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특별행정구의 기. 가운데의 꽃은 북한의 국화 목란이다.
2002년북한이 50년간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독립된 기본법(헌법)을 지닌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때는 행정장관에 중국인을 고려하기도 했다#[2] 화교 사업가 양빈(楊斌)을 행정장관으로 하여 임명장까지 줬지만, 공교롭게도 양빈이 10월 4일 중국 당국에 탈세혐의로 체포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3]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16년만에 양빈의 모습이 드러내는데 그는 현재 투자 받기 위해 대만, 중국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다.#
2014년 현재까지는 신의주특구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통일부 홈페이지 등에서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찾아볼 수 있다. 위키문헌
서방국가의 외국인들에게 관광이 개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물론 남한에서 하듯 자유관광은 아니고 당일치기 단체여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중국인 관광객들 한해서 당일치기 단체여행을 비자면제 해준다.
단둥에서 통행증만 있으면 자기 차 몰고 신의주 관광하는 것과 유람선을 타고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것이 검토 중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 11월, 북한은 자체적으로 신의주 특구 개발을 진행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신압록강대교 인근 수출입 가공단지가 건설 중이다.#

4. 기후


평양과 마찬가지로 냉대동계건조기후에 속하여 연교차가 크다. 연 평균 기온 8.8℃, 1월 평균 기온 -8.6℃, 8월 평균 기온 24.0℃로 겨울 기온은 서울보다 약 3~5도 정도 더 낮으나[4] 여름 기온은 거의 차이가 없다. 사실 1월 평균 온도만 놓고보면 철원(-5.5℃)보다 더 낮고 최저기온도 -26.0℃까지 찍었던 혹한 지대다. 물론 여기도 함경도개마고원보다는 다소 따뜻하다. 하지만 비슷한 위도에 있는 지중해안 지역은 물론, 미국 뉴욕(0.6℃)과 비교하면 확실히 추운 곳이다.
그리고 연 강수량이 1,066mm이며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여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겨울에는 극도로 건조하다.

5. 여담


순대국밥집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지명이다. '신의주찹쌀순대'라는 순대국밥집 프랜차이즈와 유사 점포가 우리나라에 분포해 있으나, 정작 신의주는 찹쌀순대로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5] 인근 의주는 전통적으로 왕만두로 유명했다.
목포에서 출발한 1번 국도의 종점이다. 다만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종점은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까지이다. 서울에서의 거리는 약 500km.
이곳에 있는 신의주청년역은 경의선의 종점이다.
신의주의 위성사진을 보면 제방 내부에 타원형으로 형성된 원도심과 남신의주 지역이 분리되어 있다. 신의주 구도심 일대는 지대가 워낙 낮아, 제방으로 보호되고 있다지만 북한의 낙후된 수방시설+무너지거나 넘치면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 지금도 홍수가 나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것으로 악명높으며 2010년에도 대홍수로 침수되어 버렸다. 그래서 북한은 제방으로 보호가 불가능한 원도심 외곽 저지대는 거의 개발되지 않은 채로 두고, 비교적 지대가 높은 남신의주 지역을 개발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신의주경기장을 철거하고 스포츠타운을 건설한다고 한다. # #

6. 남북통일 뒤?


통일이 될 경우,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길 지역이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라선특별시와 더불어 가장 많은 이득을 볼 뿐 아니라 다른 의미로 더 중요한 지역으로 주목받을 이유는 바로 중국 본토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지역이기 때문이다.[6] 즉 중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지역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국가안보와 상당히 밀접한 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상당한 논란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7] 물론 국경지역이라 무턱대고 최전방화한다면 중국이 불쾌하게 여길 것이 뻔한 관계로[8]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이다.
이 '안보'는 소프트파워, 중국 공산당의 안보도 포함한다. 신의주는 중국 입장에서도 자국이 국경을 접한 외국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큰 도시다. 하바롭스크만 해도 중러국경에서 20km 넘게 떨어져 있는 데 비해, 신의주는 단동 도심과 강을 끼고 바로 맞닥뜨려 있다. 중국이 민주화된다면 모를까, 신의주 도심 건물에 "프리 홍콩"이나 "法輪大法好!" 같은 옥탑광고물이 설치된다면 이걸 단동 시민들이 다 볼 수 있게 된다.
한편 경제적인 면으로는 중국의 심장부와 근접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대중국 무역에서 상당한 강세를 나타낼 지역이다. 신의주가 다른 이북의 도시들보다 이점을 가지고 있는 점이라면, 바로 중국 접경에 위치한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것이다. 라선의 경우 낭림산맥이라는 험지로 인해 개발시간이 걸린다는 게 걸림돌이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셈이다. 때문에 훗날 통일후, 지역개발 순위를 두고 관서지역과 관북지역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해볼수 있다. 특히 함경도 지역은 이 지역 출신 새터민들을 이용, 평안도보다 자신의 지역에 대한 지역개발 우선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며, 평안도 역시 지리적 이점을 강조, 평안도 지역개발 우선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신의주 지역이 국경분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신의주 일대[9] 국경 귀속문제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다 끝이 난 상태다. 황금평은 이미 1926년에 조선 소속으로 확정된 곳인데다가 이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인정한 마당에 분쟁이고 뭐고 근거가 전혀 없다. 황금평 귀속문제가 궁금하면 연구를 참고하자. 설령 일제강점기 이후 중국측이 북한에 넘겨준 영토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승인된 국가로 그 외교적 행위는 우리가 국내법적으로 북한을 보는 관점과 상관없이 인정된다.
또한 중국인 밀입국자 들이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도 불체자가 36만 넘게 있는데,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밀입국자들은 나중에 통일한국의 중대한 문제가 될수도 있다. 한반도-중국 국경이 1,420km로 생각보다 긴편이지만, 대부분이 강과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험지이기에 주로 신의주나 함경북도 국경도시들을 통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7. 신의주시의 하위 행정구역



7.1. 동(洞)


  • 신원동 新元洞
  • 본부동 本部洞
  • 압강동 鴨江洞
  • 청송동 靑松洞
  • 역전동 驛前洞
  • 백사동 白沙洞
  • 근화동 芹花洞
  • 채하동 彩霞洞
  • 오일동 五一洞
  • 남중동 南中洞
  • 남상동 南上洞
  • 남서동 南西洞
  • 백운동 白雲洞
  • 개혁동 改革洞
  • 남송동 南松洞
  • 신남동 新南洞
  • 남하동 南下洞
  • 해방동 解放洞
  • 평화동 平和洞
  • 신포동 新浦洞
  • 민포동 敏浦洞
  • 수문동 水門洞
  • 마전동 麻田洞
  • 동하동 東下洞
  • 동중동 東中洞
  • 동상동 東上洞
  • 친선1동 親善1洞
  • 친선2동 親善2洞
  • 방직동 紡織洞
  • 련상1동 蓮上1洞
  • 련상2동 蓮上2洞
  • 류상1동 柳上1洞
  • 류상2동 柳上2洞
  • 와이동 瓦耳洞
  • 락원1동 樂元1洞
  • 락원2동 樂元2洞
  • 선상동 仙上洞
  • 송한동 送瀚洞
  • 석하1동 石下一洞
  • 석하2동 石下二洞
  • 풍서1동 豊西一洞
  • 풍서2동 豊西二洞
  • 백토동 白土洞
  • 성서동 城西洞
  • 남민동 南敏洞
  • 락청1동 樂淸1洞
  • 락청2동 樂淸2洞
  • 연하동 煙下洞
  • 판문동 板門洞
  • 고성동 古城洞

7.2. 리(里)


  • 다지리 多智里
  • 류초리 柳草里
  • 중제리 中齊里
  • 삼교리 三橋里
  • 삼룡리 三龍里
  • 토성리 土城里
  • 상단리 上端里
  • 하단리 下端里

8.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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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당시 84개의 법정동과 10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광복 당시 행정구역이니만큼 일본식 지명도 많이 보이며, 이에 따라 행정동의 명칭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일본 지명을 어느 정도 안다면 이곳에서 카스미, 야마토, 아사히, 하마, 사쿠라, 사카에가 보일 것이다.
행정동
법정동·리
비고
낙화동(樂化洞)
낙원동(樂園洞)·낙청동(樂淸洞)·미륵동(彌勒洞)·연상동(蓮上洞)·창포동(倉浦洞)·토교동(土橋洞)·풍서동(豊西洞)·풍하동(豊下洞)·하동(霞洞)·화평동(化坪洞)

남산동(南山洞)
남재동(南齋洞)·대화동(大和洞)·동재동(東齋洞)·서재동(西齋洞)·석상동(石上洞)·석중동(石中洞)·석하동(石下洞)

마본동(麻本洞)
남민동(南敏洞)·동마전동(東麻田洞)·마전동(麻田洞)·민포동(敏浦洞)·본부동(本部洞)·서마전동(西麻田洞)·욱동(旭洞)

상반동(上攀洞)
상반동1가(上攀洞1街)·상반동2가·상반동3가·상반동4가·상반동5가·상반동6가·상반동7가·상반동8가·상반동9가·연제동(煙諸洞)
시청 소재지
(상반동4가)
서연동(書煙洞)
남미륵동(南彌勒洞)·동초동(東草洞)·백사동(白砂洞)·서당동(書堂洞)·성외동(城外洞)·수문동(水門洞)·연대동(煙臺洞)·정심동(正心洞)·토성동(土城洞)

신탑동(新塔洞)
동중동(東中洞)·송한동(送鷴洞)·신평동(新坪洞)·유초동(柳草洞)·탑상동(塔上洞)·탑중동(塔中洞)·탑하동(塔下洞)

약초동(若草洞)
매지동(梅池洞)·약죽동(若竹洞)·와이동(瓦耳洞)·운정동(雲亭洞)·창동(倉洞)·초음동(草陰洞)·향교동(鄕校洞)

영빈동(榮濱洞)
빈동(濱洞)·앵동(櫻洞)·영동1가(榮洞1街)·영동2가·영동3가·영동4가·영동5가·영동6가·영동7가·채하동(彩霞洞)
도청 소재지
(영빈동)
용서동(龍西洞)
대석동(大石洞)·서린동(西麟洞)·선상동(仙上洞)·선하동(仙下洞)·용상동(龍上洞)·용연동(龍淵洞)·용하동(龍下洞)·중재동(中齋洞)

진사동(津沙洞)
노송동(老松洞)·녹동(麓洞)·압천동(鴨川洞)·진사동1가(津沙洞)·진사동2가·진사동3가·진사동4가·진사동5가·진사동6가·진사동7가

연혁
  • 조선 말기: 방(坊)을 면(面)으로 개칭하면서 광성면·고읍면·진리면으로 개편
    • 광성면: 동초동·마전동·미륵동·민포동·백토동·서당동·성외동·수문동·신의주동·연대동·연상동·와이동·유초동·정심동·토성동·풍서동·풍하동·화평동
    • 고읍면: 구장동·남재동·대석동·동린동·동재동·서린동·서재동·연제동·용상동·용연동·용하동·중재동·창동·향교동
    • 진리면: 낙원동·낙청동·남미륵동·석상동·석중동·석하동·선상동·선하동·송한동·창포동·탑상동·탑중동·탑하동·토교동
  •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
    • 광성면 미륵동·민포동·신의주동의 각 일부가 신의주부로 승격, 의주군에서 분리.
      • 당시 신의주부: 노송정·녹정·대화정·매지정·본정·빈정·상반정·압천정·앵정·약죽정·영정·욱정·운정정·진사정·초음정·하정
    • 고읍면과 진리면이 합병되어 고진면 출범, 고읍면 구장동·동린동은 위원면에 편입, 용상동 일부가 남미륵동에 편입.
  • 1929년 4월 1일: 광성면 마전동(일부)·미륵동(일부)·민포동(일부)
  • 1941년 4월 1일: 광성면, 고진면 전체가 신의주부에 편입.

9. 출신 인물


[1] 신의주시, 의주군, 염주군, 철산군 중 각각 일부 행정구역들로 구성됨.[A] A B 통계청 북한통계(2008년).[2] 다만 이 기사엔 신의주 특구가 무산되었다는 어조로 이해되고 있다. 이 행정구역에는 평안북도 의주군, 염주군, 철산군이 포함된다.[3] 양빈은 이듬해인 2003년 18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4년 가석방되어 가택연금되었다고 한다.[4] 평균적으로 겨울에는 최저기온 영하 7도~14도의 추위를 유지한다[5] 출처 : 주성하 기자의 글.[6] 특히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근접한 지역이라 통일이 될 경우, 중국정부가 민감하게 여기게 될 곳이다.[7] 특히 라선, 아니 나진과 신의주는 미국과 중국이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할 이북 도시들이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통일 후 이 두 지역은 미.중 두 강대국들의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것에 대한 대비가 상당히 필요할 것이다. 특히 나진은 러시아 극동지방과도 연결이 된지라 미.중.러의 강대국간의 신경전도 벌어질 수 있다.[8] 때문에 국경을 대비하기 위한 경찰력이나 국경수비대로 충분하다. 이 지역에 대한민국 국군이나, 특히 동맹국 미군이 주둔할 경우의 중국의 반응은...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아도 어떨지 알듯.[9] 황금평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