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휴
1.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관
張休
(205? ~ 245?)
1.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관. 자는 숙사(叔嗣). 장소의 차남, 장승의 동생.
1.2. 정사
221년 손등을 세워 오나라의 태자로 삼을 때 사부를 선정해 우수한 인재를 선정해서 그의 빈객과 친구가 되도록 했는데, 이 때 제갈각, 고담, 진표와 함께 태자 손등을 모시면서 사서를 학습하게 했다. 말타기와 활쏘기를 함께 하게 하면서 도리나 육예에 관해 강론해 나란히 태자의 빈우가 되는데, 손권은 손등에게 한서를 숙지하도록 명하자 장휴가 장소에게 한서를 배워 손등에게 전했다.
장휴가 수업할 때는 문의를 지적하고 사물을 분별하되 조장이 있었으며, 매번 연회 자리에 참석할 때 술이 무르익으면 음악을 지었다. 손등도 번번이 자신을 낮추어 같이 음악을 즐거워했는데, 장휴의 사람됨이 남들보다 해박하고 통달해 손등이 그를 심히 사랑해 항상 좌우에 두어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침대에서 잘 정도로 친했다.
손권이 사냥을 나갔을 때 장휴가 상소를 올려 경계하는 간언을 하자 손권이 이 글을 좋아해 장소에게도 보여주었을 정도이며, 229년에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장휴를 우필로 삼아 제갈각, 고담, 진표와 함께 사우(四友)라 칭하게 된다. 하지만 241년에 손등이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죽기 직전에 이 사우들을 칭찬하면서 중용할 것을 권해 그의 유언에 따라 시중, 우림도독이 되어 양무장군으로 승진한다.
241년에 고담의 아우 고승과 함께 수춘을 정벌하러 갔다가 전종이 왕릉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위나라의 군대가 승세를 타 오영장과 진황의 군대를 격파하자 고승과 함께 분전해 위군을 멈추게 했으며, 이를 보고 전서와 전단 등이 공격하자 왕릉의 군대가 물러났다. 당시 논공행상을 할 때 적을 멈추게 한 것이 적을 퇴각시킨 것보다 큰 공이라 여겨 전서와 전단이 편장군과 비장군이 될 때 장휴와 고승은 잡호장군이 되었는데, 권력 다툼으로 사이가 나빴던 손패파인 전종 일족과 손화파인 장소 일족의 사이는 이 일로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궁의 변 당시 손권이 병으로 눕자 손화가 종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손화의 본처 장비(張妃)의 숙부인 장휴가 종묘 근처에 살고 있었으므로 손화는 장휴의 집에 가서 머물게 된다. 손노반은 이 사실을 이용해 태자가 종묘로 가지 않고 아내의 집으로만 가서 놀고 있다고 하자 이 일로 손화는 손권의 미움을 사게 된다.
또한 전종 일족이 241년의 작피 전투의 일을 얘기해 장휴, 고승이 진순과 내통해 거짓으로 그 공훈을 늘렸다고 하자 장휴는 고승과 함께 교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으며, 아첨과 위선으로 음흉한 짓을 꾸며서 장휴가 싫어하던 손홍이라는 자도 장휴를 참소하자 조서를 내려 결국 장휴는 41세의 나이로 죽는다.
보다시피 41세에 죽었는데 생년과 몰년은 알수없지만 아버지인 장소(생년 157)과 형 장승(생년 178)보다 나이 차이가 심하다. 같은 동오사우인 고담의 '''할아버지''' 고옹이랑 장휴의 '''형''' 장승이랑 고작 10살 차이이다.
1.3.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지만 일러스트만 보고는 장소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는 70 후반에서 80 초반이므로 내정용으로 쓰자.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3에서는 형은 장군이 되지 못하지만, 장휴는 군사가 될수가 있다. 이상하게 형보다 먼저 임관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8/31/74/78. 누선, 정란 혼란 말고는 그리 눈에 띄는 병법도 없다. 분전이 있지만 무력이 낮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6/28/74/77/73의 문관형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약간 어설픈 만능형인 형과 비교하면 지력, 매력은 비슷하고 정치에서 우위이지만 통솔, 무력에선 많이 밀린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기술, 진정, 반목, 명사. 총 4개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를 보면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3/27/74/80. 특기는 상업 3, 설파 2, 수영 1.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은 기병동요. 생몰년도가 204~244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4, 무력 27, 지력 74, 정치 77, 매력 73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9, 정치력이 3 하락했다. 개성은 문화, 인맥, 주의는 예교, 정책은 운반개발 Lv 3, 진형은 안행, 정란, 전법은 혼란, 고무, 정란, 친애무장은 고담, 고승,[1] 손등, 제갈각, 진표, 혐오무장은 손홍이다. 전작에 비해 생몰년도가 205~245년으로 변경되었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葬休
생몰년도 미상
장흠의 아들, 장일의 동생.
형인 장일이 죽자 장일이 자식이 없어서 장휴가 병사를 이어받아 거느렸지만 후에 죄를 지어 박탈당했다.
2.1. 미디어믹스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는 촉과 위가 정전협정을 맺고 오와 위가 싸우는 상황에서 오나라의 여러 자제들이 촉에 인질로 갔는데, 비관과 관림의 결혼식에서 술 대작을 하다가 조인이 대련을 제안하면서 승패를 떠나 악감정은 잊는 것으로 하겠다고 하자 위나라의 악감정을 가진 오나라의 자제들이 이에 응했다.
반평, 손소, 여종, 능봉, 주기 등이 연달아지자 동오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나섰으며, 비관은 장휴에 대해 장흠의 장남, 차남이 용맹하다고 알려졌다면서 차남은 반평과 비슷한 스타일이라면서 개차반으로 제갈량이 잘 다루면 좋은 칼이 될 수도 있겠다고 평했고 결국 조인에게 한 방에게 패했다.
오나라의 자제들을 오나라로 되돌려 보내게 되었지만 남겠다고 한 손소를 따라 촉에 남기로 했으며, 장휴는 오나라에 돌아가도 가업을 이을 가능성도 없고 집안 어른의 눈총도 심해서 촉나라에 남아 비관의 휘하가 되었다. 손소와 함께 동정호에서 수군을 양성하고 수군을 이끌어 꾸준히 공을 세웠으며, 손소와 의형제를 맺어 손소를 형으로 모셨고 강릉의 수군을 통솔했다.
이전에 장흠이 죽자 가족들이 장흠의 명성을 먹칠할 것을 우려해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답답하게 여기면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었다고 하며, 그러나 비관이 타산으로 부하들을 대하는 것을 보고 기회라 여겼다고 한다. 후에 황호로부터 전종이 손권, 손화의 암살을 꾀해 역모를 일으킨는 사실을 듣게 되자 손소와 함께 진압을 위해 강하 수군으로 참전했다.
3.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
張休
(? ~ 228)
장군으로 228년에 마속과 함께 가정에서 위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하면서 마속, 이성과 함께 참수되었다.
3.1. 미디어믹스
소설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는 가정에 오르던 마속이 갑자기 기절했다가 일어나면서 본래 산을 올라가서 진을 치겠다고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으나, 생각이 바뀌어 산을 내려가겠다고 하면서 이를 이성이 말리자 이를 거들면서 마속이 산에 오르다고 일사병으로 쓰러졌다고 들었다면서 군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을 권했다.
마속이 더운 날씨에 산 위에 진을 치면 식수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서 내려가겠다고 하자 왕평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미리 식수를 넉넉히 들고 간 사람이 마속이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마속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마속이 군령을 내세워 산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따른다.
장합이 촉군을 공격하면서 화공으로 위기에 몰아넣는 상황에서 이성과 함께 달아나려 했는데, 마속이 불안해서 얼어붙은 채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꿋꿋하게 버티려는 것으로 착각해 왕평이 마속을 지키라고 촉군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촉군이 마속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장휴는 달아나는 자는 모두 베겠다면서 우리도 간다고 외치면서 위군에게 맞섰다.
[1] 황건적의 장수 고승이 아닌 고소의 차남인 고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