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
全琮
(196? ~ 247 또는 198? ~ 249)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오의 장수로 손권의 사위. 자는 자황(子璜).
아버지는 전유, 부인은 손노반. 전서, 전기, 전역의 아버지이자 전단의 숙부로 전씨 일족들 대부분이 오나라의 쇠퇴에 기여했다.
2. 정사
아버지 전유는 조정에서 일하다가 동탁의 난 때 낙향했다. 후에 회계동부도위로 임명되나 손책이 오자 항복한다. 손권 때 전유가 계양태수를 맡게 되었는데, 아버지 전유는 전종에게 쌀 오천 석을 오군으로 보내 적당한 물건으로 바꿔오게 했다.
그런데 전종은 그 쌀을 오군에 그냥 뿌리고 왔다. 당연히 전유가 노발대발하자 전종은 "얻으려고 한 물건은 지금 필요한 것도 아닌데, 사대부가 굶고 있길래 그냥 뿌리고 왔어요." 라고 대답하니 부친은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의 집에는 온갖 식객들이 넘쳐났는데, 그로 인해 명성을 얻은 전종을 손권이 산월 토벌에 보냈고 전종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정예병사 1만 명을 거느리게 된다. 여몽이 관우를 토벌한 것과 같은 시기에, 관우 토벌의 계략을 상소했고 손권은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염려해 일부러 그의 표에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그 일로 손권으로부터 인정받았다.
222년에는 위나라군과 싸워 적장 윤로를 죽이는 등의 활약을 하였고 225년에는 구강태수로 임명되었으며, 228년에는 석정 전투에서 육손, 주환과 함께 활약한 뒤 산월도 토벌했다. 229년에는 위장군, 서주목사에 임명되었다가 같은 해에 손권의 딸이자 원래는 주유의 장남 주순의 아내였던 손노반을 부인으로 맞이함으로 전씨 일족은 출세하게 된다.
233년에는 육안을 정벌해 그 곳의 백성들이 달아나는 것을 장수들이 잡으려고 하자 힘도 없는 백성들이 불쌍하다며 그냥 놔두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전투에서는 패하고 주환의 활약으로 겨우 도망쳤으며, 241년에는 회남의 작피에서 위나라의 왕릉과 싸웠지만 패해 진황 등 10여 장수를 잃었다.
246년 우대사마 좌군사가 된다. 전종은 사람됨이 공손하며, 안색을 관찰해 간언을 바치는 데 뛰어나며, 언사는 일찍이 과격하거나 다른 사람을 범한 적이 없었다. 이것과 관련된 일화로는 손권이 주애와 이주를 포위하려고 했을 때 간언한 일화에서 잘 나타나며 과연 그의 말대로 1년이 지나자 군사들의 10분의 8, 9가 질병에 걸려 실패하게 되고 이 사건은 사람들이 손권을 까는 주된 레퍼토리 하나가 되게 된다.
그리고 손권이 다시 이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그 때 신하들 가운데 간언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신은 그들이 충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궁의 변 당시 손화와 손패가 손권의 후계를 놓고 싸우자 손패를 지지했고, 241년 아들 전기의 공이 고승, 장휴에 밀린 것에 원한을 품고 고담을 교주로 내보냈다.
여기서 육손이 전기를 옹호한 것에 대해서 전종에게 불만을 표현하자 육손과 전종의 사이는 틀어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육손이 죽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전종전과 건강실록에서는 249년, 오주전에서는 247년에 전종이 사망했다고 전한다. 한편, 건강실록에서는 향년 52세라 전하나 건강실록 이외에서 나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 다만, 방통이 우번, 고소, 육적, 장온, 전종 등과 친분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소, 육적, 장온과 나이대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종의 직위와 군사는 전역이 이었는데, 수춘에서 제갈탄을 구원할 때 제일 먼저 성을 낼름 나와 항복했고, 이 공으로 아들 대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위나라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3. 평가
보편적으로 전종 본인에 한정하면 나쁜 평이 그다지 없고 명성을 얻게된 일화나 관우 토벌과 이주 토벌 등에서 적절한 간언을 한 점이 사서에 나타난다. 그러나 가족들의 악행을 바로잡지 못한 데다 촌수로는 윗사람인 육손[1] 의 충고를 무시하고 반목했으며, 오히려 가족들에게 편승해 이궁의 변에서 손패를 지지하는 것으로 끝내는 육손의 사망 원인까지 제공한 셈이 된 인물[2] 인데 이 인물에 대한 악평이 그다지 없다는 게 신기할 지경.
전투 면에서도 크게 세운 공은 별로 없고[3] 이후 본인이 직접 군을 이끌었을[4] 육안, 작피에서는 털리는 기록이 있어 먹튀 느낌이 없잖아 있다.
어찌보면 조선 말기의 김조순과 비교된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석정전투에서 등장, 주방의 계략으로 조휴를 석정까지 유인해 육손, 주환과 함께 무찌른다. 촉의 제갈량이 죽자, 위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 오촉 국경의 파구에 주둔했다.
5. 미디어 믹스
5.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짤막하게나마 등장한다(...)
5.2.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시리즈에선 모든 능력치가 70대인 만능 장수로 나온다. 심지어 초기작에서 무력이 80대였고 이후 무력이 70대 초반으로 너프가 되었지만 후반기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나게 쓸 만한 장수다.
삼국지 8에서는 특이하게도 전종이 개털린 작피 전투가 언급되었다. 더 특이한 것은 이 시나리오 오프닝에서 육손이 손권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전종이 손권에게 총애받는 묘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궁의 변을 생각해보면 일종의 복선처럼 보인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70/지력 71/정치력 72로 분전, 연사, 투함, 정란, 조영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이상하게 188년생으로 나오고 202년부터 등장한다. 통솔력 79/무력 70/지력 73/정치력 72/매력 64의 능력치로, 딱히 높은 능력치는 없지만 골고루 70대여서 능력치 합은 358로 높은 편. 하지만 손권군 소속이라 활용도는 미묘하다.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는데, 안 좋은 걸로 명성을 날려서 그런지 전종을 포함하여 전씨 일족은 모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보수, 징병, 화시, 일제, 진정, 유인, 회복, 명사, 제독. 총 9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72/지력 71/정치력 61/매력 67이고 특기는 강습이다. 일러스트는 좀 찌질한 무장처럼 생겼다.
삼국지 12에서는 일러스트가 멋있게 변경됐다. 일러스트를 보면 말을 탄 채 고삐를 쥐면서 창을 들고 돌진하고 있는데 수염을 기른 얼굴로 소리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법은 화계이다. 지력이 75이지만, 같은 특기를 가진 지력 50대의 장수나 60대의 장수보다는 가치가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8/무력 72/지력 75/정치 61이다. 특기는 농업 3, 문화 1(손노반 인연 효과), 순찰 1, 신속 1, 수영 3으로 전수특기는 농업이고 전법은 방어강화.
삼국지 14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 일러스트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78, 무력 72, 지력 73, 정치 61, 매력 70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신중, 동원, 명성, 위무, 부호, 주의는 패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3, 진형은 어린, 안행, 추행, 투석, 전법은 화시, 경파, 투석, 구축, 시람, 친애무장은 고소, 방통, 손노반, 육적, 혐오무장은 없다. 그리고 이번 작부터 자신의 아버지인 전유#s-3가 추가되었다.
DLC로 등장한 성씨패란에서는 회계의 군주로 나오며 부하로는 전기, 전단, 전상#s-2, 전역, 전유#s-3.1, 전의#s-2.1까지 총 6명을 두고 있다. 소속 도시의 재야 무장으로는 감택#s-4, 낙통#s-3, 반림#s-2, 반씨, 번능#s-4, 우미#s-1.1, 우번#s-6.3, 우사, 유략#s-1.1, 유찬#s-1.2, 유평#s-1.1, 정고, 하달#s-3.1, 하제#s-4.1 총 14명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등용하면 난이도가 급하락한다. 다만 처음부터 군사가 없어서 지력 70 이상의 무장들인 감택, 낙통, 우번, 우사, 하제 중 1명이라도 먼저 등용되면 반드시 군사로 임명한 다음에 전력을 쌓도록 하자.
5.3. 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5.4.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공명전부터 등장. 얼굴은 우금의 얼굴을 약간 변경한 것. 조조전에서는 후반 손권군 주력으로 나오는데 적벽대전에서 합비전투까지 이르는 중반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능력치는 운 특화라 적군 궁병 중에서 가장 강한 편.
[1] 육손이 손책의 사위인 반면, 전종은 손권의 사위이다.[2] 이 때문인지 육손의 손자인 육기의 『변망론』에서 전종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참고로 보즐 같은 몇몇 손패파도 오나라의 공신으로 언급된다.[3] 조비의 남정에 맞선 222년의 승리는 서성과 함께 한 국지전에서의 활약에 불과하며 조진/하후상 등에 맞서 강릉을 끝까지 사수해 낸 주연과 조인을 역관광시킨 주환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228년의 석정 전투는 주방의 사항계로 인한 판짜기 자체가 돋보이는 전투이다. 산월 토벌이야 오나라 장수들이 저마다 토벌경력을 갖고 있음을 볼 때 없으면 이상한 거다.[4] 석정전투 ~ 육안전투 사이에 손권의 딸인 손노반과 결혼을 한다. 즉, 손권의 총애를 받을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