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평

 

全仁平
1945년 음력 12월 22일[1] ~
1. 개요
2. 상세


1. 개요


대한민국의 대학교수이자 국악인. 본관은 옥천(沃川).

2. 상세


전인평은 1945년 음력 12월 22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 노루목마을[2]에서 태어났다.# 영동 학산초등학교, 대전 한밭중학교[3], 대전사범학교를 차례로 졸업하였으며, 사범학교 졸업 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2년간 근무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진학하였다. 이후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초기 작곡 경향은 형식과 음향 구성에서 서양의 기법을 원용하였으나,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고문헌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 결과 정읍시에서 노피곰, 정읍후사, 머리곰 등을 만들어 냈고, 한국의 민화에서 관현악을 위한 음악 이야기 '까치와 호랑이'(1982년) 등을 만들어 냈다.
한편 민속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굿음악과 농악에도 관심을 보였다. 정읍후사(1984년)는 진도군 싯김굿을 현장 조사하고 굿음악 장단을 으로 연주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또한 장구 연주자 김병섭에게서 설장고를 배우고 우리 나라의 농악 장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의 경험은 관현악곡 두레(1984년)에 나타난다. 우리 나라 장단의 헤미올라 기법과 분할 조합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인도음악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시아적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거문고 독주곡 왕산악(1984년)은 인도의 라가 부빨리(Bupali)라가를 이용한 것이고, 가야고 독주곡 서경별곡(1986년)은 인도의 캬햘 형식을 도입한 작품이다. 관현악곡 별주부와 토끼(1989년)는 인도음악의 지속음(Drone) 기법과 서양 관현악에 사용한 팀파니 비브라폰 등을 우리나라의 관현악 기법에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작품은 "한국음악사를 보면 외래음악의 여러 차례 수용하였다.
1991년 유네스코에서 주관한 실크로드 탐사에 참여한 후, 안목을 더욱 넓혔다. 거문고 합주곡 가야의 노래(1999년)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우술(usul)과 마캄(makam) 이론을 도입하여 선법과 리듬을 더욱 다채롭게 구사한 작품이다.
창작곡의 수요가 늘어나고 대학교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재 국악작곡입문[4]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국악작곡을 공부하기 위한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이다.
1985년에 1년동안 인도 뉴델리의 간다르바 마하 비디알라야(Ghandharva Maha Vidhialaya)에서 인도 음악을 연구하고 돌아온 뒤, 인도음악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1986년 7월 2일에는 서우석과 전인평이 중심이 되어 인도음악연구회를 결성하고 인도음악감상회를 개최하였다.
한만영과 동양음악(東洋音樂)이라는 책을 삼호출판사에서 1989년 출판하였다. 2004년에는 인도음악의 멋과 신비라는 단행본을 출간한바 있다.
여담으로 현재 강사로 출강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친근한 이미지와 젊은 마인드 때문에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학생들에게 '인평이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1] 양력 1946년 1월 24일.[2] 인근의 학산리·박계리와 함께 옥천 전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전기서·전만표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영동 학산중학교 1학년 수료 후 2학년 때 전학.[4] 國樂作曲入門,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