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파니
[image]
1. 개요
서양 타악기 중 하나이며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 없는 '''타악기의 왕'''. 음정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유율 타악기' 에 속하고,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에 따르면 공명통에 씌운 가죽을 쳐서 소리내기 때문에 '막명악기' 계열로 분류한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침공할 때 군악대도 동행했고, 이 때 나카르도 서구에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유럽인들은 나카르를 땅에 내려놓고 연주할 수 있도록 개량했고, 북의 크기도 여러 종류로 늘리고 북 가죽의 장력을 조절해 음역을 바꿀 수 있는 스크류를 달았다.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음정을 낼 수 있는 북 종류였기 때문에, 군악대 뿐 아니라 관현악단에도 상비 악기로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작곡가인 쟝 바티스트 륄리는 17세기 후반 쯤 자신의 오페라에 팀파니를 도입했고, 그보다 후대 작곡가였던 바흐나 헨델도 축전적인 성격의 세속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기악 작품 등에서 팀파니를 사용했다. 이 당시의 팀파니는 주로 연주되는 곡의 으뜸음과 딸림음만을 연주했고, 두 가지의 북을 갖춰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다.
스크류를 돌려서 음정을 조절해야 했기 때문에, 연주 중 음정을 바꾸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탓에 몇몇 주자들은 무려 여덟 대의 북을 자신의 주위에 빙 둘러놓고 북춤 추듯이 현란한 연주를 벌이기도 했는데, 워낙 진기명기에 가까운 탓에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물론 이들의 기교파 연주가 훗날 팀파니 연주법 발달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베토벤 시대에 이르러서는 팀파니가 관현악에서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했는데, 교향곡 9번의 2악장 초반부에서 관현악 전합주에 섞여 세게 치는 소리는 당대에도 꽤 유니크한 취급으로 여겨졌다. 베토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한발 더 나가서 북이나 연주자의 숫자를 늘이거나 북채(말렛)를 다양화하는 등의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 정점이 10명의 주자가 16대의 팀파니를 연주하는 베를리오즈 레퀴엠이다.
19세기 후반에는 종래의 스크류를 발전시켜 T자형 핸들로 음정을 조절하는 팀파니가 보편화되었는데, 이 개량으로 조율 시간이 한층 빨라졌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손을 쓰는 방식이라 연주 중에 신속하게 음정 조절을 하기 힘들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20세기 초반에 스크류나 핸들이 아니라 페달을 발로 밟아 음정을 바꿀 수 있는 페달 팀파니로 개량되었다.
페달 도입 외에도, 20세기 중반 들어 플라스틱 소재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영향받는 종래의 동물 가죽이 아닌 플라스틱막으로 대체하는 형태의 팀파니가 보편화되었다. 통상 관현악단과 취주악단에서는 4~5개 세트의 북들을 연주자 주위에 죽 늘어놓아 사용하고 있고, 낮은음자리표 밑의 라(D)음에서 높은음자리표의 내림라(Db)까지 약 1옥타브의 음역을 갖는다.
1번 북: 직경 81~76cm(32~30인치)
2번 북: 직경 74~71cm(29~28인치)
3번 북: 직경 66~63.5cm(26~25인치)
4번 북: 직경 61~58.5cm(24~23인치)
''5번 북: 직경 56~51cm(22~20인치)''(특별편성)
이외에도 말러 같은 작곡가는 5번 교향곡에서 좀 더 대형화된 84cm(33인치)의 1번 북으로 D음보다 낮은 음을 치도록 요구하기도 했고, 반대로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봄의 제전' 에서 높은 소리를 내는 피콜로 팀파니를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래 영상들에서도 정규 교향곡 연주시 1~4번북이 정규편성되어 연주하는 것이 보통.
2. 연주법
영상을 참조하며 아래 글을 읽으면 팀파니의 연주법을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주로 동그란 펠트를 끝에 붙인 북채를 양 손에 하나씩 잡고 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악보에 특정 채를 지시하지 않는 이상 팀파니스트들은 이 펠트채를 기본으로 상비한다. 하지만 낭만 시대 이후에는 특별히 나무채나 가죽채, 콜크채 등을 특수 효과용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고, 현대에 와서는 스펀지채나 고무채, 브러시, 드럼스틱, 회초리, 심지어 주먹이나 손가락, 손바닥까지 별의별 도구와 신체부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칠 수도 있다.
[image]
실제 악보에 이렇게 연주하라고 나온다. 해석한 사람들에 따르면 종이를 따로 씌워서 했을 것이라 한다.
북을 칠 때는 북면 중앙이 아닌, 테두리에 가까운 가장자리를 쳐서 소리를 내야 제대로 된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중앙을 칠 경우, 대단히 무딘 음정과 덜 강렬한 소리가 나버린다. [3] 플라스틱 피를 사용한 팀파니는 의외로 여음이 길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파니스트들은 여음을 남기라는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를 빼고는 친 뒤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북면을 눌러 여음을 없애거나 약화시킨다. [4]
단타로 치는 것 외에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 채와 북면 사이의 탄성을 이용해 연주하는 트레몰로 주법도 대단히 효과적인데, 흔히 시상식 등에서 기대심리를 조장할 때 상투적으로 쓰이며, 흔히 '''두구두구두구'''라는 의성어로 표현되기도 한다.사용예[5] 또한 세기 약하게도 강하게도 낼 수 있고, 북 하나 뿐 아니라 채 하나에 북 하나 식으로 두 개의 북을 사용해서 연주를 할 수도 있다.
단타 연주법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북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다.[6] 베토벤의 9번 교향곡 3악장 맨 끝에 이런 예가 나온다. 그리고 반대로 한 개의 북을 한 쌍의 채로 동시에 내리칠 수도 있는데, 말러의 4번 교향곡 3악장 후반부에 나오는 클라이맥스에서 매우 강력하고 무거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페달의 도입으로 연주 중에도 신속하게 음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팀파니를 독주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로 끌어올리는 작품도 나오고 있다. 벨라 바르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에서는 페달을 써서 수시로 음정을 조절하도록 하는 기교적인 악구가 있고, 연주 직후 혹은 연주 중에 페달을 움직여서 음정을 끌어올리고 내리는 글리산도나 포르타멘토까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페달 팀파니건 그 이전의 것이던 간에 음정을 바꿀 때 작곡가는 반드시 바꾸기 전의 음정과 바꾼 후의 음정을 기본적으로 악보에 써줘야 한다. [7] 악기에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현대음악에서는 몇번 북에서 음정을 어떻게 바꾸라고 더 세밀하게 지시하기도 한다.
채를 바꾸거나 페달을 조작하는 것 외에 북면을 이용한 주법도 있는데, 가죽 위에 헝겊 등 부드러운 재질의 물건을 올려놓으면 음량이 작아지고 음색도 부드러워지는 약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코페르티' 라고 하는데, 베를리오즈가 처음 도입한 바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용례를 들자면 라벨의 볼레로[8] 도입부에서 팀파니를 크레센도로 연주하는데, 이걸 보통 코르페티로 시작해서 천을 점점 벗겨서 음량을 키우는 식으로 연주한다.. 팀파니가 스타트를 끊기 때문에 화면에 단독으로 잡혀 알아보기 쉬우니, 볼레로 공연 영상을 보면 한 번 확인해보자. 그리고 북면에 탬버린이나 마라카스, 심벌즈 등 다른 타악기나 동전, 나무조각, 쇠사슬 등을 올려놓고 쳐서 색다른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북면을 치지 않고 수분을 머금은 손가락이나 헝겊 등으로 꾹 누른 채 강하게 문지르면 독특한 글리산도음을 얻을 수도 있는데, 다만 대규모 작품에서는 쓰기 힘들고 팀파니 독주곡이나 소규모의 타악기 앙상블 등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외에 북면 완전 가장자리의 테두리를 치거나 북통을 두들기는 등, 보기에는 다소 개그스러운 주법도 드물게 활용된다.
의외로 다루기 어려운 악기인데, 그래서 관현악이나 취주악 같은 합주 음악에서는 타악기 주자를 팀파니스트와 여타 타악기를 연주하는 퍼커셔니스트로 양분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팀파니스트를 짬되는(...) 타악기 주자로 대우해주는 것이 일반적.
3. 사용 영역
앞에서 쓴 것처럼 관현악이나 취주악에서는 상비 악기로 대우받고 있다. 다만 실내악 영역에서는 타악기 만으로 구성되는 타악기 앙상블 외에는 활용되는 기회가 별로 없다. 원체 음량이 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대규모 합주 음악에서도 팀파니가 가장 세게 트레몰로를 연주할 경우 다른 악기들의 음량을 거의 가려버리는 효과가 발생할 정도다.
드물지만 협주곡도 있는데, 바로크~초기 고전 시대에는 팀파니 6~8대로 기예를 벌이던 비르투오소 연주자들을 위해 작곡되었다.[9] 20세기에 와서는 페달 팀파니의 성능을 십분 활용해 미요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팀파니스트 출신 작곡가 베르너 테리헨 등이 작곡했다.
▲ 팀파니 협주곡의 예시.
그리고 나카르에서 개량되면서 바닥에 내려놓고 치는 악기가 된 탓에, 행진하며 연주하는 군악대 등의 마칭 밴드에서 콘서트용 팀파니를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생겼다. 대신 팀파니를 나카르처럼 경량화해서 1인당 북 한 개씩 둘러메고 걸어다니며 칠 수 있는 '마칭 팀파니' 라는 개량형 악기가 미국에서 간혹 쓰인다.
페달 팀파니가 보편화가 되었다고는 해도, 초기 낭만 시대 이전의 작품들을 시대 고증에 맞춰 연주하는 시대연주 단체에서는 여전히 동물 가죽을 북면으로 쓰고 스크류나 핸들로 조율하는 구식 팀파니를 쓰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전통을 고수하는 악기 편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페달 팀파니가 요구되는 곡을 제외하고는 구식 핸들 팀파니를 쓴다.
재즈나 록 음악, 기타 대중음악 쪽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고 있는데, 주로 1960년대에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 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더 후 등의 밴드에 의해 드럼 세트에 더해지는 액세서리 악기로 동원되기도 했다. 재즈에서는 독특한 컨셉의 밴드로 유명했던 선 라의 아케스트라(Arkestra)에서 중용되었고, 존 콜트레인 밴드의 기교파 드러머로 유명했던 엘빈 존스도 드럼 세트에 추가해 연주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신해철이 넥스트 1집과 4집에서 사용했고, 노브레인도 '청년폭도맹진가'의 인트로에서 삽입한 바 있다.
아마추어 관현악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악기이기도 하다. 일단 관현악의 필수요소라서 반드시 있어야하는 악기인데, 아마추어 악단의 특성상 팀파니스트가 따로 없는 경우가 많아, 공연 때는 객원 연주자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팀파니스트가 자기 악기가 따로 없는 경우[10] 에는 팀파니를 따로 빌려써야 한다.
게다가 음대가 없는 대학교의 악단이라면 대여료가 추가로 든다. 또한 팀파니를 들쳐업고 올수는 없으므로, 결국 팀파니를 쓰려면 객원 팀파니 주자의 연주료+팀파니 대여료+팀파니 운반비를 몽땅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바로크에서 초기 고전 시대의 것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관현악 작품들에는 팀파니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다 보니, 과감하게 편성에서 빼는 모험을 하지 않는 이상 상당한 액수의 비용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팀파니스트가 주문한대로 팀파니의 개수를 맞춰서 빌려왔더니 연주회 당일에 리허설 해보고는 '한대는 필요없다'고 해서 빼는 경우(...). 그냥 돈 날라간 거다.
[1] 유명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오프닝.[2] 영상 맨 왼쪽 큰북 바로 옆에 있다. 지휘자는 노바야 로시야 스테잇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인 클라우디오 반델리.[3] 하지만 이런 효과를 얻으려고 별도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인의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 에서 들을수 있다.[4] 여음이 짧은 가죽 피를 사용한 팀파니의 소리를 흉내내기 위함이다.[5] 판타지개그 8편 동영상으로, 전부노래잘함(...) 최우수상 시상시에 나온다.[6] 세개 이상의 음을 내려면 주자는 한 손에 두 개씩의 북채를 동시에 쥐고 연주해야 한다.[7] 이탈리아어로는 muta x in y, 영어로는 change x to y. 더 간단하게 x-y 식으로도 표기한다.[8] 디지몬 어드벤처 삽입곡으로 유명한 그 곡 맞다.[9] 참고로 이런 류의 협주곡은 현대의 대형화된 팀파니로는 연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두 팀파니스트가 같이 연주하거나 구식 팀파니를 복원해서 연주하곤 한다.[10] 아직 졸업하지 않은 전공 학생을 객원으로 기용할 경우 보통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졸업자 중에도 자금 사정 때문에 자기 팀파니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