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공수 857편 납치 사건
[clearfix]
[image]
1999년 1월 13일, 하네다 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
1. 개요
1995년 도쿄에서 하코다테로 가던 전일본공수의 보잉 747이 납치된 사건.
2. 사고 진행
하네다 공항을 이륙한 857편은 이후 오전 11시 45분 납치범이 점령한다. 승무원과 승객 365명을 인질으로 잡은 납치범은 옴진리교의 일원이 되기 위함이라 알렸다. 또한 자신이 사린과 플라스틱 폭탄을 소지하고 있다 하였으며 객실 승무원에게 이를 살포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것이 알려지자 일본에서는 옴진리교의 계획이 정말 성공하는 것이 아닌지[1]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12시 45분 857편은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했다. 납치범은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 비행기는 급유한 뒤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이라고 승무원에게만 전했다.
2.1. 결말
다시 857편이 도쿄로 향하는 사이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태스크 포스가 설치되었고 납치범이 다른 협력자 없이 혼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아내고 다음 날 오전 3시 42분 당시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지시대로 납치범이 체포되면서 사망자 없이 끝나게 되었다.
3. 사고 이후
납치범은 '''쿠츠미 후미오'''라는 사람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코바야시 사부로'''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도쿄 신탁 은행[2] 의 50대 은행원이었으나 정신 질환으로 인해 퇴사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폭탄이라 주장하던 것은 사실 점토로 만든 것이었고 사린 가스라 주장하던 것은 그냥 물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며 전일본공수는 5,300만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9년부터 857편은 나리타 - 하노이 구간으로 운행되고 있다. 사고기는 2003년에 퇴역한 뒤 텔아비브에서 해체되고, B777으로 교체되었다.
4. 기타
- 전일본공수는 국내선 중심의 운영을 하여 경쟁자 일본항공에 비해 사고가 적은 편이었으나, 이후 1999년에 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그렇지만은 않게 되었다.
5. 둘러보기
[1] 당시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난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었다.[2] 현재는 합병을 거쳐 미쓰비시 UFJ 신탁 은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