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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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사도'''
54대 허상

'''55대 정궁'''

56대 황완
'''후한의 사공'''
61대 허상

'''62대 정궁'''

63대 유홍
丁宮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원웅(元雄).
패국 사람으로 교주자사를 지내다가 중앙의 부름을 받아 수도로 가게 되었는데, 사일이 자신을 공경스럽게 모시자 삼공의 직책을 맡으면 사일을 부르기로 약속한다. 중앙에서 광록훈을 지내다가 187년 5월에 사공에 임명되었다.
188년 8월에 사도가 되자 사일을 불렀지만 189년 가을 7월에 사도에서 파직되었으며, 정궁이 부르기로 약속한 사일은 정궁이 파직된 후에 도착했다.
189년에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했다가 동탁이 소제를 몰아내고 헌제를 즉위시킬 때 상서(尙書) 자리에 있었다. 정사 동탁전의 주석으로 인용된 《헌제기(獻帝紀)》의 내용에 따르면, 황제를 폐립하는 내용의 책문(策文)이 다 낭독되고 나서 군신들이 아무 말이 없자, 상서 정궁이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이 한실(漢室)에 화를 내려서, 재난이 매우 많았습니다. 옛날에 채중(忽)을 폐위하고 돌(突)을 세웠으니, 《춘추(春秋)》에서는 그 임기응변을 크게 여겼습니다. 이제 대신(大臣)이 사직을 위한 계책을 알맞게 헤아려서 진실로 하늘과 사람의 뜻에 부합하니, 만세를 부르기를 청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글자의 오기로 추정되는 정관(丁管)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직위는 역시 상서이다. 이유가 소제를 폐위하는 책문을 읽자 헌제기의 내용과는 반대로, 분노하여 크게 소리치면서 쥐고 있던 을 동탁에게 던졌다.
역적 동탁이 감히 하늘을 속이는 꾀를 행하였으니, 나는 내 목의 피를 그에게 튀게 하리라!
그리고 나서 분노한 동탁의 명으로 끌려나가 처형당할 때까지도 동탁을 욕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당연히도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져 그를 기리는 시까지 등장한다.
한문
발음
해석
董賊潛懷廢立圖
동적잠회폐립도
동탁이 나쁜마음 먹고 황제를 끌어내리려 하니
漢家宗社委丘墟
한가종사위구허
한나라가 위태롭게 되네
滿朝臣宰皆囊括
만조신재개낭괄
조정의 관리들 동탁의 무리에 가담하는데
惟有丁公是丈夫
유유정공시장부
오로지 정공(정관)만이 대장부로다
잠깐 등장하는데 정사와 연의에서의 모습이 정반대인 특이한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