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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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의 명장으로 본명은 정교금(程咬金)이다. 자는 의정(義貞).
2. 생애
정지절은 589년에 제주(濟州) 동아현(東阿縣)에서 태어났다. 날래고 용맹하였으며, 마삭(馬槊)[1] 의 달인이었다.
수나라 말 도적들이 일어나자, 정지절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도적에 대비하였다. 뒤에 정지절은 이밀을 의지하여 내군표기(內軍驃騎)가 되었다. 이 내군표기는 이밀이 군중에서 용맹한 이들을 선발하여, 4표기에 소속시켰고, 다시 이들을 좌우로 나누어 자신의 내군이라고 부른 것이다. 정지절은 이밀의 휘하에서 많은 대우를 받았다.
이밀과 왕세충이 대결할 때 정지절은 내마군을 이끌고 이밀과 같이 북망산(北邙山) 위에 진을 쳤고, 선웅신이 외마군(外馬軍)을 이끌고 언사성(偃師城) 북쪽에 진을 쳤다. 그리고 왕세충이 선웅신의 진영을 습격하자, 이밀은 정지절과 배행엄을 보내 선웅신을 원조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배행엄이 화살에 맞아 낙마하자, 정지절은 배행엄을 구출하고 무예를 발휘하여 왕세충의 군대를 물리친다. 이러한 정지절의 용맹함은 왕세충의 마음에 들었는지, 왕세충은 이밀이 패배한 뒤 정지절을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다.
하지만 정지절은 왕세충의 사람됨을 싫어하여, 619년 진경과 함께 당나라에 귀순하였다. 정지절은 당나라에서 진왕부(秦王府) 좌삼통군(左三統軍)으로 임명되어, 송금강(宋金剛)을 물리치고, 두건덕을 사로잡았으며, 왕세충을 항복시키는 전공을 세웠으며, 이때의 공적으로 숙국공(宿國公)으로 책봉되었다. 당시 고조의 태자였던 이건성은 정지절을 싫어하여, 정지절을 고조에게 참소하였고, 정지절은 강주(康州) 자사로 좌천된다. 이후 626년에는 고조의 아들인 진왕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이건성과 이원길을 토벌하고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인 당태종이다.
태종의 치세에서 정지절은 태자우위솔(太子右衞率)로 임명되고, 우무위대장군(右武衞大將軍)으로 승진하였으며, 실봉 7백 호를 하사받았다. 또한 정관 연간에는 노주(瀘州) 도독, 좌영군대장군(左領軍大將軍)을 역임하였고, 장손무기(長孫無忌) 등과 함께 자사를 이어받았다. 더불어 노국공(盧國公)으로 다시 책봉되었으며, 보주(普州) 자사로 제수되었으며 여러 차례 좌둔위대장군으로 전임되고 진군대장군을 지냈다.
고종의 치세에 들어 정지절은 좌위대장군으로 승진하였다. 656년 서돌궐의 사발라가한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지절은 657년 총산도(蔥山道) 행군대총관(行軍大總管)으로 제수되어 사발라가한의 토벌을 맡았다. 사발라가한은 정지절에게 공격을 받아 세력이 약해졌다. 정지절은 사발라가한을 토벌한 뒤에 면직되었지만 그 뒤에 다시 기주(岐州) 자사로 제수되었다. 정지절은 병으로 기주 자사에서 물러난 뒤 인덕 2년(665년)에 세상을 떠나,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익주(益州) 대도독으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공(襄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