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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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진호(鄭鎭浩)
일본식 성명
東本鎭浩
본관
동래 정씨[1]
생몰
1927년 2월 14일 ~ 1950년 10월 3일
출생지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율북리
(현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통안마을)[2]
사망지
전라북도 순창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정동영 전 국회의원은 그의 5촌 조카이다.

2. 생애


정진호는 1927년 2월 14일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율북리(현 구림면 율북리 통안마을)에서 정정모(鄭政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전주부로 이주하여 노송정(현 완산구 노송동)에 거주했다.
전라북도 전주공립농업학교 토목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5년 2월 5일 전주 한벽당(寒碧堂)에서, 안성 등과 함께 일제 식민지 치하의 조선어말살정책, 창씨개명, 강제징용 등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인한 민족말살과 강제 수탈이 심화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장차 일제의 패망과 조국독립에 대비할 것을 맹세하는 혈서동맹을 조직하여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 탄약운송 열차가 전주 지역의 터널을 통과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이를 폭파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던 중 동지 한 명의 밀고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는 곧 소위 치안유지법·총포화약류 취체령, 폭발물 취체규칙 위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아 부산형무소에서 고문을 당하며 약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검사의 공소 취소로 공소가 기각, 불기소처분을 받고 비로소 석방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방위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은 후 장교에 임관하였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 순창에 들렀다가, 그해 9월 좌익 분자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처형 직전, 밧줄을 풀고 인근 야산으로 도주했으나 산 중턱에서 재차 붙잡혔고 10월 3일 처형당했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016년 7월 4일,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정동영이 7촌 조카 정모씨를 운전겸임의 7급 비서로 두고 있어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이 있었는데#, 이때 정동영 의원이 "독립운동가의 손자로서 국가보훈처의 취업알선 대상자"라고 해명했던 이 정모씨가 바로 정진호의 손자이다.
[1] 안산공파 31세손 '''진(鎭)''' 수(秀) 항렬.[2] 정동영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