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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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NC 다이노스의 투수. 투수조 조장이었으며 손민한, 이혜천에 이어 세 번째 고참. 더불어 총각들로 구성된 NC 다이노스 선수들 중에 가장 먼저 에 성공한 선수다. 정확히는 12시즌 종료후 결혼식을 올렸다. 2014년 개명했는데, 개명 전 이름은 정성기(鄭城基).
효천고등학교 시절에는 강철민, 조용준과 함께 투수진을 이끌었다. 원래 둘과 동기지만 유급했으며 둘이 졸업한 뒤인 1998년에 에이스로 활약[1] 하며 팀을 황금사자기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결승에서는 대구상고(현 상원고)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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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입단식 당시 모습.
고교 졸업 당시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2] 갓 창단한 동의대학교 야구부에 입학했으며 4학년 말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계약금 24만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그해 말 루키 리그를 거쳐 이듬해인 2003년 싱글A에서 ERA 2.16 1승 4패 18세이브를 올리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에 일시 귀국했다가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뒤 현역으로 복무한다. 이때 강원도 화천군에서 소총수로 복무했다고...
현역으로 복무를 마치고 애틀랜타에 복귀한 2007년 싱글 A에서 ERA 1.15 1패 22세이브를 기록하며 더블A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압박감 등으로 흔들리며 ERA 4.41 2승 2패 6세이브를 기록하게 된다. 2009년 초 존 슈어홀츠 단장이 2선으로 물러나고 프랭크 렌 단장 체제로 바뀐 뒤 팀의 전력 구상에서 배제되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승격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애틀랜타 구단에 방출을 요청하고 완전히 퇴단했다.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하게 되지만 국내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은 해외파 선수는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부터 2년 동안 뛸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2년 동안 스스로 훈련하였다.[3] 2011년에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실패하고 같은 해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합격하게 된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성적은 4시즌 동안 ERA 2.70 3승 8패 47세이브 WHIP 1.181.
미국에 있었을 적에도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하다 보니 김경문 감독과 NC 코치진에서는 승리조 불펜 혹은 마무리로서 생각 중인 듯. 연습경기 및 시범경기에서는 불펜 투수 중 가장 안정감을 보였다. 그러나 페이스를 빨리 끌어올린 탓인지 2012 시즌 개막 이후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이면서 불펜 투수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가능성이 있었던 마무리 자리는 김진성에게 돌아간 상태.
그리고 2013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도 탈락했다. 35세에 맞이하는 첫 1군 시즌부터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퓨처스리그 등판도 5월 5일 이후 없다가 약 3개월만인 8월 2일에 등판했고 8월 4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8월 7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뒤늦은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기록은 2이닝 2실점 1삼진 4피안타. 8월 22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등판, 1이닝 1실점(비자책) 1피안타 2삼진의 피칭을 했다.
어렵게 1군 데뷔 무대를 치렀지만 2014 시즌에는 다시 퓨처스 리그에 머물렀다. 2014 시즌 중에 정진으로 개명했으나 KBO 홈페이지와는 달리 구단 홈페이지에는 정성기로 나왔다.
2014 시즌에는 결국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정규리그가 종료되기 전에 포수 허준과 함께 2014년 9월에 방출되었다. 5월 9일 이후로 퓨처스리그 등판이 없었던 것을 봐서는 부상이 있었거나 일찌감치 NC에서 전력 외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방출 후 은퇴,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가 되었다. 2016년에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했다.
2020년에 모교인 순천효천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NC 트라이아웃 당시에도 위기가 있었다. 마산에서 치러지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타고 가던 버스가 구르는 사고가 난 것. 대단한 것은 별다른 부상이 없자 병원에서 바로 트라이아웃이 치러지는 마산구장으로 달려가서 트라이아웃을 치뤘다고 한다.
젊었을 때 모습이 기아 타이거즈의 내야수 김태진을 닮았다
1. 개요
전 NC 다이노스의 투수. 투수조 조장이었으며 손민한, 이혜천에 이어 세 번째 고참. 더불어 총각들로 구성된 NC 다이노스 선수들 중에 가장 먼저 에 성공한 선수다. 정확히는 12시즌 종료후 결혼식을 올렸다. 2014년 개명했는데, 개명 전 이름은 정성기(鄭城基).
2. 아마 시절과 애틀란타 시절
효천고등학교 시절에는 강철민, 조용준과 함께 투수진을 이끌었다. 원래 둘과 동기지만 유급했으며 둘이 졸업한 뒤인 1998년에 에이스로 활약[1] 하며 팀을 황금사자기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결승에서는 대구상고(현 상원고)에 패했다.
[image]
2003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입단식 당시 모습.
고교 졸업 당시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2] 갓 창단한 동의대학교 야구부에 입학했으며 4학년 말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계약금 24만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그해 말 루키 리그를 거쳐 이듬해인 2003년 싱글A에서 ERA 2.16 1승 4패 18세이브를 올리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에 일시 귀국했다가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뒤 현역으로 복무한다. 이때 강원도 화천군에서 소총수로 복무했다고...
현역으로 복무를 마치고 애틀랜타에 복귀한 2007년 싱글 A에서 ERA 1.15 1패 22세이브를 기록하며 더블A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압박감 등으로 흔들리며 ERA 4.41 2승 2패 6세이브를 기록하게 된다. 2009년 초 존 슈어홀츠 단장이 2선으로 물러나고 프랭크 렌 단장 체제로 바뀐 뒤 팀의 전력 구상에서 배제되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승격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애틀랜타 구단에 방출을 요청하고 완전히 퇴단했다.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하게 되지만 국내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은 해외파 선수는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부터 2년 동안 뛸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2년 동안 스스로 훈련하였다.[3] 2011년에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실패하고 같은 해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합격하게 된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성적은 4시즌 동안 ERA 2.70 3승 8패 47세이브 WHIP 1.181.
3. NC 다이노스
미국에 있었을 적에도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하다 보니 김경문 감독과 NC 코치진에서는 승리조 불펜 혹은 마무리로서 생각 중인 듯. 연습경기 및 시범경기에서는 불펜 투수 중 가장 안정감을 보였다. 그러나 페이스를 빨리 끌어올린 탓인지 2012 시즌 개막 이후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이면서 불펜 투수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가능성이 있었던 마무리 자리는 김진성에게 돌아간 상태.
그리고 2013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도 탈락했다. 35세에 맞이하는 첫 1군 시즌부터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퓨처스리그 등판도 5월 5일 이후 없다가 약 3개월만인 8월 2일에 등판했고 8월 4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8월 7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뒤늦은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기록은 2이닝 2실점 1삼진 4피안타. 8월 22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등판, 1이닝 1실점(비자책) 1피안타 2삼진의 피칭을 했다.
어렵게 1군 데뷔 무대를 치렀지만 2014 시즌에는 다시 퓨처스 리그에 머물렀다. 2014 시즌 중에 정진으로 개명했으나 KBO 홈페이지와는 달리 구단 홈페이지에는 정성기로 나왔다.
2014 시즌에는 결국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정규리그가 종료되기 전에 포수 허준과 함께 2014년 9월에 방출되었다. 5월 9일 이후로 퓨처스리그 등판이 없었던 것을 봐서는 부상이 있었거나 일찌감치 NC에서 전력 외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방출 후 은퇴,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가 되었다. 2016년에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했다.
2020년에 모교인 순천효천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4. 여담
NC 트라이아웃 당시에도 위기가 있었다. 마산에서 치러지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타고 가던 버스가 구르는 사고가 난 것. 대단한 것은 별다른 부상이 없자 병원에서 바로 트라이아웃이 치러지는 마산구장으로 달려가서 트라이아웃을 치뤘다고 한다.
젊었을 때 모습이 기아 타이거즈의 내야수 김태진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