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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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NC 다이노스 소속의 우완투수. 2010년대 중반 NC의 필승조 불펜 콰르텟 단디 4의 일원으로 임창민, 원종현, 임정호 등의 투수들과 함께 NC가 창단 이래 빠르게 리그 상위권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한 투수이다.
2. 아마추어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다.[3]
처음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할아버지의 권유였다.[4] 서울고에서 2학년때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다 감독이 교체되면서 코치를 따라 성남서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5] 그 때 팔꿈치 부상을 입고 등판을 아예 하지 못했고 1년 유급도 하게 된다.[6]
고3때 거의 공을 던지지 못했지만 2004년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2차 6순위(전체 42순위) 지명을 받았다.[7] 허나 1년 유급을 하는 바람에 실제 입단은 2005년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패스트볼만 던지고 변화구는 전혀 던지지 않았다. 고교 2학년 때 구속 140km/h를 꾸준히 넘겼고, SK에서도 2학년 때의 활약을 보고 지명했다고 구단에서 본인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3. 프로 경력
[이영미 人터뷰] “할아버지가 우승하는 걸 보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거예요” NC ‘믿을맨’ 김진성-<1>편[8]
[이영미 人터뷰] NC 김진성이 구단에 연봉 백지 위임을 먼저 꺼낸 사연-<2>편[9]
3.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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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로에 와서도 이 팔꿈치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이 부상 때문에 1군 기록 없이 재활만 반복하다 2006년에 첫번째 방출을 겪었다.
방출 후 수술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던 시기인데, 2011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팔꿈치 이상이 있었지만 재활 센터에 등록할 50만원이 없어서 집 앞에 있는 5만 원짜리 헬스장에서 재활하는 안습한 상황이 거듭되었다고 한다.[10]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9년 입단 테스트에 응시해서 넥센 히어로즈의 신고선수로 입단했다.[11]
무려 3년을 신고선수로 있었지만, 끝내 1군 기회를 잡지 못했고 엔트리에 이름만 있다가 2011년 6월 7일 넥센 히어로즈에서 조재호, 강병우, 박민주 등이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을 때 같은 시기에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어 선수생활 두번째 방출을 겪었다.[12]
당시 정명원 2군 투수코치가 김진성을 안타까워해서 NC 다이노스에 입단 테스트를 보라고 추천해 줬다고 한다. 때마침 새롭게 창단하는 NC 다이노스의 공개 테스트에 응시, (당시 모습 사진, YTN 뉴스 인터뷰[13] ), 극적으로 합격하면서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잦은 부상 속에서도 구속이 145km/h에 이를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프로의 기회를 다시 잡은 듯.
3.3. NC 다이노스 시절
그렇게 강진으로 다시 돌아간 김진성은 입단 후에도 5,60명 정도 되는 NC 창단 멤버들과의 경쟁을 거쳤다.[14] 이때 만난 코치가 최일언 투수코치로, 투구 폼부터 변화구 던지는 법, 경기를 운영하는 법, 경기전 컨디션을 조절하는 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배웠다고 한다.
2012년 KBO 퓨처스리그에서는 NC 다이노스의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총 49경기에 나와 46.1이닝 4승 1패 20세이브 1홀드 ERA 2.14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특히 20세이브는 '''역대 퓨처스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이다.'''
3.3.1. 2013 시즌
이를 바탕으로 NC 다이노스의 1군 리그 참가 때 비로소 1군 무대를 밟게 됐다. 첫 1군 시즌인 2013 시즌에도 마무리 보직을 받아 4월 13일 SK 와이번스전에서 팀의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동점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맞는 등 부진한 투구를 보이면서 결국 마무리 보직은 이민호에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민호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선발 투수인 이재학이 잠시 마무리를 맡기도 했지만만 이재학 역시 부진해 돌고 돌아 손민한이 마무리를 맡는 등 NC는 1군 첫 시즌부터 마무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후 간간히 계투로 등판하였다.
3.3.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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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의 실패를 딛고 NC 다이노스의 마무리 투수로서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진출의 주축 선수가 되었다. 최종 성적은 58경기에 출전하여 48.1이닝 3승 3패 1홀드 25세이브 ERA 4.10.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팀의 첫 20세이브 투수가 되었고, 데뷔 10년 만에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3.3.3. 2015 시즌
부상으로 이탈하고 복귀한 뒤에는 임창민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겨줬다. 부상을 당한 이후에도 이닝 소화가 많았던지라 마냥 뭐라할 수는 없지만, 피홈런이 많아졌다는 게 흠. 시즌 성적은 59경기 3승 4패 12홀드 5세이브 66이닝 18볼넷 70K ERA 4.50.
3.3.4. 2016 시즌
무려 84.1이닝이나 소화했음에도 4.48의 ERA와 1.13의 WHIP를 기록하면서 2015 시즌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순수 구원 투수로서 '''100탈삼진'''을 찍으며 엄청난 구위를 선보였다. 그러나 승부처마다 터지는 피홈런과 함께 포스트시즌에서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록과 팬들이 받은 인상이 전혀 다른 시즌이 되어버렸다.
3.3.5. 2017 시즌
69경기 89.2이닝 10승 6패 15홀드 27볼넷 98K ERA 3.61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특히 구원 투수로서 10승을 기록하며 8년 만에 구원 1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89.2이닝이라는 2017 시즌 한미일 통틀어 순수 구원 최다 이닝을 기록할만큼 엄청난 혹사를 당하기도 했다.
3.3.6. 2018 시즌
지난 3년간 엄청난 혹사를 당한 것이 결국 처참한 성적으로 돌아왔다. 50경기 45.1이닝 3승 2패 5홀드 19볼넷 38K에 그쳤고, ERA는 7.15에 달하며 김진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까지 치솟고 말았다.
3.3.7.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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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지난해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하락세 이전의 구위를 찾지는 못했다. 시즌 성적은 42경기 42이닝 1승 2패 5홀드 39피안타 6피홈런 15볼넷 35K ERA 4.29.
3.3.8. 2020 시즌
2월 2일, 스프링캠프 훈련 이틀 만에 돌연 귀국했다. 지난해 연봉 협상에서 3,000만 원이 삭감된 것에 이어 이번에도 2억 원에서 4,000만 원이 삭감된 1억 6,000만 원에 계약했다는 것이 그 이유. 도장을 찍은 다음 날 갑자기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겠다면서 장동철 운영팀장 및 이동욱 감독과 면담했고, 이후 귀국을 결정했다고 한다.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때는 지난해보다 성적이 나아졌는데도 4천만 원을 삭감하는 것은 너무 짠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2018 시즌 후 7점대 ERA를 찍고도 2억을 맞춰줬는데 필승조도 아닌 4점대 불펜에게 1억 6천이면 충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으로 갈렸지만 그 이후로는 대체로 김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우선 팀 내 투수조 최고참 중 한 명이 연봉 불만 때문에 1군 전지훈련에서 이탈해 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 것이 팬들에게 상당한 실망을 안겨주었고, 본인이 그 삭감안에 어찌됐건 도장을 찍고 끝난 일인데 그게 속상하다고 다음 날 갑자기 전지훈련지를 떠나는 선택을 한 것도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9 시즌 개막 직전 한용덕 감독과의 갈등을 일으킨 이후 뜬금없는 트레이드 요청으로 팀 자체로 무기한 참가활동정지 징계 처분을 받은 이용규처럼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쨌건 팀 허락을 맡고 귀국한 것인지라 징계를 줄 명분도 없다. 그러나 이용규보다 상황은 좋지 않은데, 현재 김진성의 팀 내 입지나 기량은 당시 이용규보다 낮다. 이용규는 심각한 한화의 외야 뎁스 때문에 복귀를 했지만 김진성은 양적으로 보강된 NC의 젊은 불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동욱 감독을 제외한 코칭스태프진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호준 코치는 이 사태에 대해 연봉 협상에 있어서 구단이 제시하는 어떠한 금액도 선수는 만족하기 어렵다면서, "구단이 선수에게 했던 아쉬움보다 기회를 준 고마움을 앞세운다면 이런 갈등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 "선수가 손해 본다는 생각보다 팀에 고마웠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만약 김진성이 귀국 전 자신을 찾아왔다면 그런 내용으로 설득했을 건데 그러지를 않았다면서 김진성 본인이 코치에게 말하지도 않고 귀국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본인도 여론을 의식했는지 "구단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지만 당연히 팬들 사이에서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미국에 남은 구단과 선수들은 캠프 분위기는 좋고, 김진성의 귀국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화일보 정세영 기자의 개인방송인 뭐니볼 TV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그것도 아닌 모양. 그래도 이동욱 감독은 김진성을 전력 구상에서 제외하지 않았고 '필요한 선수'라고 언급했으며, 다른 선수도 마음을 빨리 추스르고 다시 캠프에 복귀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16]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비시즌이 길어지며 가진 팀 자체 청백전에서 1군 타자들을 상대하며 1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이날 해설을 맡은 염종석은 김진성의 투구를 보며 볼끝의 무브먼트가 좋고 로케이션도 이상적이라며, C팀에서 훈련하면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충실히 잘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4월 27일 KIA와의 연습경기에서 4회말 선발 이재학의 뒤를 이어 등판했으나 2사 2, 3루에서 최형우에게 쓰리런 홈런을 허용하면서 1이닝 1자책을 기록했다. 다만 이 무렵 조부상을 치른 상황인데다 운도 없었던 게 최형우의 타격자세가 무너지면서 무릎을 꿇었고 배트까지 부러졌는데도 공이 넘어갔기 때문.
개막 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고 있으며 평균자책점 0점대를 기록하고 있으나 다른 투수들이 콜업되는 와중에도 계속 2군에 머물러 있다.[17] 팬들은 저 사건으로 코칭스태프한테 밉보여서 그런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중.
6월 7일자로 홍성민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되었다. 2군 기록은 11경기 9세이브 12이닝 5피안타 1볼넷 15K ERA 0.75.
6월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8-12로 앞선 8회초 마운드에 오르며 시즌 첫 등판을 하게 되었다. 선두타자 정수빈에게 바로 안타를 맞았으나 박세혁, 양찬열을 삼진으로 잡았고 다시 박건우에게 안타를 맞아 2사 1, 2루까지 몰렸으나 호세 페르난데스마저 삼진으로 잡아내며 실점없이 이닝을 끝냈다. 1이닝 21구 2피안타 3K 무실점.
6월 11일 경기에서는 2-7로 앞선 8회에 등판했지만 연속 안타를 내주더니 1사 1, 2루에서 정수빈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았다. 실점 후에는 뜬공 두 개로 이닝을 끝냈지만 어김없이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6월 12일자로 결국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10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당일 LG 트윈스전에서는 12-2로 앞선 9회에 등판해 뜬공 - 뜬공 - 삼진으로 이닝을 끝냈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3-5로 뒤진 6회에 올라와 1사에서 로베르토 라모스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다. 이후 연속 안타까지 허용했지만 삼진과 뜬공으로 추가 실점을 막았다.
8월에는 자주 등판하고 있는데, 탈삼진이 매우 많지만 그만큼 피안타도 많다보니 실점이 꽤 늘어나 평균자책점이 5점대에서 머무르고 있다.
현재 전성기시절 보다도 높은 K/9를 기록하고 있고 단 3개의 볼넷만을 내주며 압도적인 볼삼비를 기록하고 있으나 피안타가 매우 많고, 실점도 꽤 있다보니 크게 체감되지 않는편. 특히 이번시즌에는 커리어 평균과 달리[18] 우타자에게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좌타자에게는 피안타율 .255에 피OPS .766으로 커리어 평균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우타자에게는 피안타율 .366에 피OPS .995로 심각한 상황.
한데 9월 들어 페이스가 급격하게 좋아졌는지 지거나 이기거나 접전 상황에서 끊임없이 등판하고 있다. 등판하는 경기마다 무실점피칭을 이어나감으로써 평균자책점도 3점대로 진입하였다.
9월 24일 LG전 5:7로 지고 있던 8회초 등판해 무실점한 뒤 8회말 타선이 7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하면서 얼떨결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한달간 김진성의 성적은 14경기 14.2이닝 ERA 0.00 피안타율 0.087 피OPS 0.277 WHIP 0.41, K/9 11.91, 볼삼비9.00으로 각종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피안타율이 2할 중반인 불펜이 수두룩한 KBO에서 피OPS가 2할 중반이라는 탈인간급의 성적'''을 거두며 올시즌 두 자리수로 시작했던 평균자책점 또한 2점대로 진입하였다.
10월 초에도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이 2.50까지 내려왔고 1일 경기에서는 시즌 첫 홀드도 기록했다. 이후 5개의 홀드를 더 챙기며 10월 한달간 리그에서 가장 많은 6개의 홀드를 기록하였고 15경기 13.2이닝 3자책 ERA 1.98 WHIP 1.02로 9월에 이어 계속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1군 복귀 후 약간의 불안한 모습이 있었으나 8월 27일부터 10월 9일까지 무려 '''22경기 연속 비자책''' 및 9월의 미스터제로의 모습으로 언터처블 그 자체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NC의 불펜을 견인해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스프링캠프 사건을 두고 팬들의 여론이 완전히 뒤집혀서 그러게 왜 연봉을 달라는대로 안 줘서 감히 황제폐하를 귀국하게 만드냐, 이번에는 달라는대로 다 줘라, 이재학 강윤구 배재환 이 셋 연봉도 얹어서 다 김진성 줘라...등의 농반진반의 여론으로 바뀌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부터 6차전까지 전 경기에 등판하여 숱한 위기 탈출을 보여주며 ERA0을 기록하였다. 한국시리즈 전에는 감독님께 본인은 풀타임으로 뛰지 않아 힘이 많이 남아있으니 최대한 많이 써달라고 말했으며[19]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으로 하게 된 인터뷰에서 시즌 초반 팬들에게 실망감을 드려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여론은 김진성에게 더 호의적으로 변했다. 다만 6연투의 여파인지 6차전에서는 라이트와 임정호의 주자를 분식해버렸다. 그래도 실점은 최소화하며 리드를 내주지 않았고, 팀은 4:2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진성은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6G(전 경기 출장) 3홀드 6⅔이닝 5피안타 4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 평균자책점 0.00'''이라는 역사에 남을 투구를 펼쳤다. 그리고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임에도 두산과 NC의 모든 선발 및 불펜 투수를 통틀어 구창모와 드류 루친스키에 이어 3번째로 높은 WAR를 기록하였다. 구창모0.63, 루친스키0.62, 김진성 0.52로, 4차전 MVP를 받은 선발투수 송명기(0.45)보다도 높고 두산의 모든 선발 투수들 보다 김진성의 WAR가 높다. 또한 투수가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출전한 것은 역대 9번째로, 특히 시리즈가 5경기 이상이 됐을 때 전 경기에 나온 투수는 김진성이 5번째이며# '''6경기 연속 등판은 KBO 역사상 최초이다.'''
4. 투구 스타일
포심 패스트볼 최고구속 149km/h에 평균은 140km/h 초중반의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구속을 가진 투수 같아 보이지만, 구속 이상으로 회전이 좋은 무거운 공을 던지며[20] 구위로 찍어 누르는 '''돌직구형 투수'''. 여기에 최일언 투수코치에게 전수받은 포크볼을 주로 구사한다. 다양한 구종을 구사할 수 있지만 포크볼을 포함한 스플리터 계열 변화구 비중은 마무리를 맡았던 2014 시즌에는 25% 안팎의 비율로 던지다 2017 시즌 40.5%로 구사율이 확 뛰었고, 2018 시즌 47.3%, 2019 시즌 36.5%를 기록했다. 또다른 변화구인 슬라이더는 꾸준히 15% 안팎의 비율로 섞어 던지고 있다. 말하자면 구속에 비해 강한 패스트볼과 떨어지는 공의 조합으로 탈삼진을 노리는 전형적인 파워피처로 실제로 통산 K/9가 9를 넘는다.[21] 위기상황에서 강한 면모도 갖추고 있어 마무리로 뛰었던 2014 시즌에는 유독 터프세이브를 많이 올렸던 바 있으며 무사 만루같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불려나와서 얕은 플라이와 연속 삼진으로 선행주자를 지워버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약점은 제구에 기복이 있다는 것과 멘탈. 팔 동작으로 강약조절을 잘 못하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투구를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제구가 높은 편이고, 컨디션에 따라 스플리터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몰리는 날이면 필연적으로 큰 장타를 맞는다.[22] 이렇게 포크볼이 가운데로 몰려서 홈런을 맞는 모습은 2015~2016시즌 김진성에게 NC 팬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모습 중 하나일 정도다.[23] 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놓은 상태에서는 나름대로 타자를 요리할 줄 아는 투수이지만 볼카운트가 불리할 때는 타자를 그대로 거르거나 볼넷을 허용하는 비율이 높다. 거기다 플레이 중 페이스가 항상 심하게 긴장한 상태라는 것도 많은 팬들이 지적하는 단점. 앞서 말한 위기에 강하다는 것도 선행 주자가 있는 경우 구원 등판 했을 때의 이야기고, 본인이 연속 출루를 허용하거나 할 경우에는 대체로 무너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풀릴 때에는 체감상 아웃카운트의 태반이 삼진일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결정적인 한방을 허용하는 타입이다. 아무래도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사람들의 특성상 팬들은 후자를 더 주목하게 되므로 기록에 비해 팬들에게 많이 까이기도 했던 선수이다.[24] 그러니까 삼진 아니면 장타를 허용하는 투수. 2020년 후반기 인터뷰에 따르면 '볼넷을 줄 바엔 차라리 안타를 주자'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자세가 플레이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연투 시 성적도 괜찮은 편이라 많은 경기에 등판이 가능한 것[25] 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기량보다는 김경문 감독의 고질적 불펜 혹사를 우려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상황의 원종현과 함께 예전 두산 불펜투수들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적잖이 샀고, 결국 2018 시즌 임창민, 원종현, 김진성이 모두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26] 하지만 2020시즌 후반 투구 시 몸의 중심 이동을 미세하게 조정한 뒤 9월 이후 홈런을 내주지 않았고, 한국시리즈에서 6경기 6.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 별명
- 2014 시즌 팀의 마무리 투수로 뛰던 시절, 세이브상황이 아닐 때 등판했을 경우에는 성적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편인 것이 부각되면서[27] 귀족 마무리라 불리기 시작하다, 계속해서 호투를 이어가자 신분이 상승해 황제 마무리라 불렸고, 종장엔 호투하는 날마다 황제 폐하라고 불렸다. 이마저도 하고 싶은 일 다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의미었으나 호투를 거듭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28] 선수 본인도 알 정도로 유명한 별명.#
- 위의 황제라는 별명에 빗대어, 2014년 6월 최훈 돌직구 101화에서 황제 마무리로 그려졌는가 하면 8월에는 대놓고 황제로 그려졌다.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도 황제폐하 짤을 만들었을 정도.
-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보직을 옮긴 2015 시즌 이후부터는 특히 부진할 때 찐따성, 찐따형으로 불렸다. 역시 비하의 의미보단 팬들의 애칭에 가까운 별명.
6. 말말말
'''야구란 제 인생 같아요. 야구가 없었으면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없었을 것이고, 야구가 없었다면 제 가족도 못 만났을 것이고, 야구가 없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이나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리도 없었겠죠. 제 삶에 있어서 야구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줬어요. 그래서 야구는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2020년 12월, 창단 첫 통합우승의 주역으로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진성에게 야구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7. 여담
7.1. 야구 관련
- 2013년 시즌 부담감에 시달려 대인기피증까지 겪은 적이 있는데, 2014년에 팀에 합류한 선배 박명환과 손민한에게 조언을 받으며 극복했다.[29][30] 그래서인지 인터뷰마다 본받고 싶은 투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박명환과 손민한을 언급하곤 했다.[31]
- 2020년 9월 맹활약한 비결 역시 손민한과 김수경 코치의 세부적인 코칭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겸손하게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외관상으로는 투구동작의 변화가 티가 안 나지만 선수 본인에게는 크게 느껴져서 투구 밸런스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본인 스스로도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구단 관계자나 코치들 모두가 인정하는 노력파다. 유연성이 부족해 투수로서 타고난 몸이 아님에도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던 비결은 부단한 노력밖에는 없다고.[32]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계속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다고 한다.
- NC 창단 직후 치러졌던 2011년 트라이아웃 합격자 중 최금강과 함께 유일하게 2020년 현재까지도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으로, 2011년 10월 전남 강진에서 입단 테스트를 거쳐 영입했던 신고선수들까지 모두 합쳐도 이상호[33] 까지 세 명만이 현역에서 뛰고 있다.
- 경기 시작 전 전체 훈련과 별도로 2시간 30분 정도 미리 운동을 시작하는 루틴이 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며, 최근에는 나이 때문인지 악력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덕아웃이나 불펜에서 공을 계속해서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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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부상당한 그의 재활을 위해 구단에서 고압산소치료기란 의료기기를 들여왔다. 일명 ‘산소탱크’로 불리는 이 기계로 산소를 쐬면 적혈구가 증가하고 백혈구가 감소하여 피로 회복이 빨라지는 효과가 있어서 선수들에게 인기폭발이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셈이며 김진성 본인도 이 기계 덕분에 복귀가 2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 강민호에게 굉장히 강하다. 2019년까지 21타석에서 3안타 1홈런을 맞았지만 무려 11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피OPS는 0.516.
- 잠실 야구장에서도 상당히 강한데 2014~2019년 사이 잠실에서의 평균자책점이 2.30이다. 특히 2016 시즌에는 0점대일 정도. 잠실 야구장이 외야가 넓고 투수 친화적인 것과 구위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합쳐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하다.
- 그림자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2014년 기사에서 "해가 질 무렵 마운드에서 투구하면 그림자가 굉장히 거슬린다. 내 투구동작 그림자인데도 마치 누가 옆에서 따라 하는 느낌을 받는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봄과 가을에 주말 낮 경기가 펼쳐질 때 마무리 투수는 해질 무렵 등판하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보통 일몰이 시작되는 5시 부근에 던질때의 ERA가 5.58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7.2. 야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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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야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선수. 어렵게 운동하고 있는 후배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롤 모델이 된다면 좋겠다"는 겸손한 대답을 남겼다.
-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부터 모교인 성남중 후배들에게 글러브, 언더셔츠, 배팅 장갑 등 6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들을 매년 기부하고 있으며[35] 2020년 5월에는 코로나19 창원지역 지정병원인 마산의료원 의료진 170명에게 샌드위치와 음료를 기부했고 12월에는 미혼모자 보호시설에 기저귀와 아기용 물티슈를 기부했다.[36] 2021년 1월에는 마산의료원 의료진에게 다시 한번 빵과 우유를 기부했다.#
- 2015 시즌이 끝난 후 결혼했고 지금은 아들이 있다.
8. 연도별 성적
9. 관련 문서
[1] 서울고에서 전학.[2] 2020 한국시리즈 5차전 선수소감에서 밝혔다. 천주교인지 개신교인지는 불명.[3] NC의 ‘마지막 투수’ 김진성 두번 쫓겨나도 포기 안했다…서른여섯 김진성, NC의 가을 수호신[4] 할아버지가 고집이 센 편이었던 어린 김진성의 고집을 잡는다고 친척 형을 따라다니며 야구를 배워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5] 당시에도 할아버지는 전학을 말렸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김진성은 본인을 좋은 투수로 성장시켜준 코치를 따라서 전학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코치가 두세 달 만에 다른 곳으로 또 옮겨갔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 다잡고 훈련해보려 했지만 당시 학교와 집과의 거리도 멀고 갑자기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진성은 그때부터 야구 인생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 같다고 술회했다.[6] 본사 블로그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프로 진출과 대학 진학을 놓고 학교와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프로 데뷔 후 두각을 나타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그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7] 동기가 윤희상, 정우람이다.[8] 영상[9] 영상[10] 공익근무할 때 3~4시간 자고 아르바이트를 뛰었다고 한다.[11] 대치중학교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정민태 코치의 아들이 마침 이 학교에서 뛰고 있어서 테스트 제안을 했다고 했다.[12] 본인이 답이 안보이는 강진 2군 생활에 지쳐서 방출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당시 넥센의 강진 2군은 말 그대로 바닷가에 컨테이너 몇 개 갖다 놓고 끼니마다 식대 2천원짜리 밥먹이던 그야말로 답이 없는 유배지였다. 선수들도 강진은 너무 가기 싫었다고 대놓고 말하고 유배지라고 언급할 정도. 당연히 제대로 된 재활은 꿈도 못 꾸는 상황. 부상으로 다쳤던 팔꿈치가 제대로 재활이 안돼서 3년동안 제대로 투구를 못하고 있었다. 김진성뿐 아니라 히어로즈 초창기 강진 시절에 부상당한 투수들(조용훈, 노환수 등등)은 거의 대부분이 재활에 실패해 그대로 은퇴해야 했다. 강진의 재활 시설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보여주는 증거.[13] 1분 14초에 잠깐 나온다.[14] 당시 노성호, 이민호 등이 눈에 띄었는데 그들이 던지는 걸 보면 자신이 없어져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쉼 없이 훈련만 했다고 한다.[15] 2020년 11월 26일 뉴스[16] 2020 시즌 후반기 김진성의 필승조에서의 맹활약을 보면 결과적으론 이러한 감싸기가 신의 한 수가 되었다.[17] 심지어 2군에서 9.95의 ERA를 기록한 장현식도 5월 18일자로 1군에 등록됐다.[18] 통산 우타자 상대로는 OPS 7초반, 좌타자 상대로는 OPS 7 후반으로 좌타자에게 더 약했다.[19] 타 불펜투수들의 체력적 부담을 본인이 지겠다는 뜻[20] 2회의 팔꿈치 수술 경력과 그로 인한 험난했던 재활 과정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악력과 강견의 소유자이다. 실제로 2017년 올스타전 퍼펙트 피쳐에서 배트 3개를 한 번에 쓰러뜨리고 심지어 배트를 부수기도 했다.[21] 김진성의 통산 K/9는 4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5위의 기록이다. 그 위로는 오승환, 심창민, 구대성, 신철인만이 있을 뿐이다.[22] 김진성의 통산 HR/9은 1.49로 4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1위'''이다. 또 김진성은 순수 구원투수로 4년 연속(2015~2018) 두 자릿수 피홈런을 기록한 유일한 투수다.[23] 2015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했다가 복귀한 이후로 피홈런이 급증했으며, 이는 다음 시즌까지도 이어졌다.[24] 특히 2016 시즌 후반기.[25] 김진성은 선발 등판이 전무했던 투수 중 '''통산 다승 3위'''를 기록하고 있다.[26] 자세한 내용은 단디 4 문서 참고.[27] 팬들 사이의 우스갯소리로 세이브 상황이 갖춰질 때만 잘 던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마무리 시절 한점 차 상황 터프세이브를 거두는 날이 많아서# 팬들의 인상에 깊게 남았기 때문인 듯. 해당 시즌 25세이브(리그 4위)라는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어 팀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28] 팀 동료 임창민의 별명 '임사장'과 같은 케이스로, 여기도 처음에는 분식을 잘한다고 분식집 사장이나 하라면서 팬들이 부르던 별명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부정적인 의미가 희석되면서 애칭으로 변했다.[29] NC 마무리 김진성을 깨운 손민한의 한마디[30] 박명환은 김진성에게 왜 야구를 하는가 물었는데 김진성이 먹고 살려고 야구한다고 말하자 야구를 즐기면서 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31] NC 불펜 진실게임, 상대하기 싫은 타자는?[32] 중심 이동을 앞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 애쓴다고 한다.[33] 2011년 당시 이상호를 조명한 기사에 따르면 NC는 2011년 11월 신고선수 25명을 영입했다.[34] ##[35] 2017년2018년2019년[36] 프로야구 NC 김진성, 코로나19 의료진에 샌드위치 선물 NC 김진성, 지역 미혼모자 보호시설에 기저귀 선물…"조금이나마 보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