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1. 개요
2. 발단
3. 수법
4. 원인
5. 선수
6. 반전?
6.1. 각 구단별 상황
7. KBO의 뒷처리
8. 후폭풍


1. 개요


2004년 시즌 중 발생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대거 병역비리 사건. 각종 언론들이 '''프로야구는 이제 망했다!''' 라는 논조의 기사들을 연이어 쏟아낼 정도로 KBO 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이자 흑역사이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에는 '병역비리 사건'이라 불리지 않고 '''프로야구 병풍 사건'''이라 불렸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당시 언론 기사 등을 검색하려면 '병역비리'보다 '병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병풍이라는 유행어의 수명이 끝나버린 2010년대 이후로 병풍사건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2. 발단


페넌트레이스의 막바지에 다다른 2004년 9월 4일 오전, 서울경찰청이 "야구선수 50명이 브로커 2명과 짜고 병역비리를 저질렀다"라고 발표한다. 처음은 LG 트윈스 소속 선수 4명이었으나 곧 8구단 전체로 확산, 한 달간 실시간으로 사건이 보도될 지경이었으며 심지어는 '''경기 중에 경찰서로 끌려가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
안 그래도 K리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의 4강 신화로 큰 인기를 끌었던 데다[1] 한국프로야구 최대의 스타였던 이승엽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지구 바닥을 뚫고 들어갈 기세였는데, 사건의 규모와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언론은 물론 팬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프로야구 망했어요!'''를 외칠 지경이었다.
이로 인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던 한국프로야구는 순위싸움도 포스트시즌도 한국시리즈도 그냥 '''망했다.''' 어느 코치는 사건 직후 텅 빈 관중석을 보며 "차라리 남은 시즌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사회봉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기도... 그 결과는 2002년 시즌과 비슷한 230만명대의 관중 수. 대략 프로야구 초기인 1983년 시즌과 비슷한 셈이다. 그나마 2004년 한국시리즈가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나온지라 간신히 흥행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3. 수법


개인병원에 약물[2]혈액을 섞은 소변을 제출하여 진단서를 끊고, 종합병원 검사 3시간 전 짙은 농도의 커피를 다량 섭취한다. 이럴 경우 콩팥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구체 신염으로 판정된다. 만약 병무청에서 다시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엔 병무청 화장실에서 '''음경에 약물과 피를 직접 주입하기도 했다.'''

4. 원인


  • 당시에는 경찰 야구단이 없어 선수들이 야구와 군대 문제를 병행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상무밖에 없었다.
  • 2003년에 김재박삿포로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도 한국이 올림픽에서 메달 딸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군대 문제가 시급한 젊은 선수들이 국대로 뽑힌다는 보장도 없었다.
  • 야구계 전반의 인식이 현역으로 가면 기량이 쇠퇴한다여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입대를 꺼렸다.
  • 사건에 연루된 대부분의 선수들이 1970년대 후반 출생인데, 바로 이전 세대인 1970년대 초반생까지는 방위나 면제 판정이 굉장히 쉽게 나왔기 때문에[3] 이후 세대들의 군 문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다. 프로야구 초창기 때 선수 수급을 쉽게 하기 위해서 프로야구 선수의 경우 방위병으로 복무하고 방위병 근무가 끝나는 저녁 6시 이후 홈 경기에 한해 출장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4] 이 제도가 1996년 이후로 폐지됨으로써 병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 팀이 아닌 이상 닥치고 현역이나 공익으로 가야 한다.
  • 브로커 중 한명이었던 김도윤이 한때 한화 이글스의 선수였기 때문에 야구계 인맥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문제의 싹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미 정민태서용빈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병역비리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었던 적도 있고, 홍원기, 박진만 등은 부모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 준 혐의로 구속 수감되거나 불구속 기소된 적도 있었으며, 성영재의 경우 의병제대를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 구속되는 등 이미 숱한 문제점이 발생했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각 구단이나 KBO는 '''군대는 선수 개인의 문제'''정도로 인식해 왔다. 군대를 전략적으로 잘 보내는게 우수한 프런트와 지도자의 미덕이 된 지금과 달리 병역을 팀 차원에서 관리하지 않았다.

5. 선수




6. 반전?


수많은 선수들이 연루된 것은 물론 선배가 후배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 주고 심지어는 코치가 브로커를 소개해 주는, 야구판 전체의 도덕성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막장#s-1.2이었다.
하지만 당시 모든 언론들이 '''프로야구 멸망'''급의 대사건이라는 식으로 언급하였으나, 한 달도 못 돼 사회 면에서 관련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묻혔다. 그리고 10월이 되고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자 언제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 언제나처럼 한국시리즈 경기에 암표가 나돌았다. 당시 기사
처음 예상보다는 사건이 좋게 좋게 끝난 셈인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에는 사법처리된 선수들 대부분이 듣보잡들이었다. 해당 팀 팬들이나 이름을 알 정도였을 뿐, 일반인들은 누가 누군지도 몰랐던 상태.[5] 시간이 지나자 관심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름을 알법한 선수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된 탓에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하나둘씩 재검받고 군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아 쟤도 비리였구나"라는 식으로 알려졌을 뿐.
결정적으로,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초대형 실드가 등장했다.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 유명 배우들의 병역비리가 발각되면서 어그로가 한 방에 그 쪽으로 쏠렸다. 송승헌 등도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없음 처분되어 법적으로는 무죄였지만 여론은 그렇지 않았다. 송승헌은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 문제로 입영 연기를 신청했지만, 여론에 밀려 바로 군대에 끌려갔다. 결국 드라마는 주연 배우를 연정훈으로 교체했으나 평균 시청률 15%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종영했다.

6.1. 각 구단별 상황


각 구단이나 각팀 팬들은 우리 팀이 제일 망했어요라며 징징거렸지만, 보다시피 8개 구단 모두 연루된 사건이었다.
  • 그래도 굳이 꼽자면 2004년 당시에 불펜진이 대거 이탈한 삼성 라이온즈제일 타격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윤성환, 정현욱, 오상민, 지승민 등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으니... 덕분에 사실상의 루키시즌을 보내던 권오준[6]권혁에 대한 과부하가 발생하고, 결국 반 게임차로 현대 유니콘스에게 1위를 내준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주전들의 이탈로 당시로는 신인 내지 유망주였던 조동찬,안지만,박석민 등을 땡겨썼고 부상으로 출장이 불투명한 박종호가 출전을 강행할 정도였다. 끝내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줬으나 우승에 실패한다. 사실 삼성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연루된 선수 모두 죄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군대나 감방을 보내버렸기 때문에 전력 공백이 즉각적으로 나타난 편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 전력들이 한꺼번에 복귀하면서 지옥의 불펜야구는 계속된다.
  • LG 트윈스는 숫자상으로 타격이 큰 편이었으나 실질적인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선수는 유망주였던 심수창#과 병풍 당시 이미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이동현 정도라서 다른 팀과 달리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4위 싸움을 하던 KIA와 SK가 병풍으로 각각 주전 마무리(유동훈)와 주전 외야수(이진영, 채종범) 등을 잃은 상황이라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박용택, 알 마틴, 박경수[7][8] 등 1군 멤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부상으로 모조리 이탈하여 4위 경쟁에서 탈락,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 롯데 자이언츠 또한 제일 크게 타격을 입은 팀 중 하나. 삼성의 피해가 불펜 쪽에 집중되었다면 롯데는 내야(조성환), 외야(김주찬), 포수(최기문), 선발(김장현[9]), 불펜(임경완) 모든 포지션에서 아주 골고루 나가리가 되었다. 하지만 비밀번호 찍기 바쁜 시절이라 이미 역대급 최악팀에서 선수 몇 명 빠진다고 별 티가 안 났다. 그런데 오히려 이대호손민한의 분전으로 이듬해인 2005년에 5위를 기록하며 꼴데를 벗어나기도했지만 다시 귀신같이 연속 최하위권을 기록하엿다. 한편 주전 포수인 최기문이 재검+부상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신인 포수인 강민호가 선발출장하며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한화 이글스는 비리를 저지르건 말건 기자들이 관심이 없었다. 브로커가 한화 출신이었고 김충 전 코치가 연루되었기 때문에 구단 분위기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팀이다.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 판정받은 한상훈을 4년이나 잔류시키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급기야는 2010년에 입영연기제도에 대해 선수와 구단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탓에 송광민이 시즌 중에 훈련소로 끌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현역 생활을 할 수 없는 부상이 발견되어(왼쪽 발목인대 손상) 훈련소에서 조기 퇴소해 재검 후 2011년 3월에 충남교육청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3년 6월 19일에야 소집해제되어 바로 1군에 합류.
  • SK 와이번스는 야구판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탓인지 매우 기민한 반응을 보여줬다.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매의 눈으로 타이밍을 엿보다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을 거라는 점을 확신하고 행정소송을 제기, 주전 선수들을 일단 잔류[10]시키는 데 성공한다. 단, 그 이면에는 무명 선수들에겐 그런 거 없고 방출이라는 흑역사가 존재한다.[11]
  • KIA 타이거즈는 가장 큰 공백이었던 이현곤이 빠르게 복귀했으며, 그 전까지 김종국손지환(연루되었으나 면제 판정 받아 일찌감치 돌아왔다)이 돌아가며 땜빵을 맡아야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야수진에서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문제는 투수진에서 터졌는데, 2004시즌에 120이닝을 던지고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하며 불펜에서 고군분투한 유동훈이 구속당하면서 불펜진이 붕괴되었다.[12] 참고로 에이스 김진우의 2005시즌 성적이 6승 10패 평균자책점 3.91이었는데, 저 6승이 전부 완투승이었다.
그래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전력 누수가 적었던 팀. 애초에 연루된 인원이 딱 2명이다. 이들은 딱히 연루될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 현대 유니콘스도 피해가 적었다. 연루된 인원은 평균에 가까웠으나 그 중 주전급은 2명(정성훈, 마일영)뿐이었다. 다만 정성훈이 맡았던 3루수 자리는 꽤 타격이 있었는데, 정성훈이 전력에서 빠진 시즌 말에 3루수는 클리프 브룸바가 맡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브룸바가 3루수를 맡았다. 그나마 마이너에서 3루수로 뛴 경험이 있어 크게 공백은 못느꼈다.
  • 불구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루된 선수들을 그대로 기용한 구단들도 있었다. 무개념의 흔적들

7. KBO의 뒷처리


KBO는 사법처리된 선수 51명에 대해 남은 기간 '''출장정지'''를 내리고,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냅다 출장정지를 풀어버린다.''' 당연히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여론? 크보가 언제 그딴 거 신경썼나?''' 이렇게 무리하게 징계를 풀었던 까닭은 각 구단이 "선수가 없어서 경기를 못해요 ㅠㅠ" 라며 하도 징징거린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징계를 풀 수밖에 없었기 때문.
사실 출장정지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사법처리된 51명만 적용 대상이었다는 점.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공소권없음 처분된 19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기에 출장했다.[13]
이 일로 경기할 선수들이 부족했던지 시즌 경기수를 133경기에서 126경기로 줄였으며, 2009년에서야 원상복귀했다. 또, 선수가 부족하다며 '''외국인 선수를 3명으로''' 늘리려는 계획까지 추진했다. 당연히 여론과 선수협의 반발로 무산. 이는 2014년에 NC 다이노스kt wiz의 창단으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해 외국인 선수 쿼터가 3명으로 확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당시 총재 박용오는 선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공익근무요원도 경기 출장하게 해달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임의 탈퇴 기간을 60일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이는 삼성이 오상민이나 현재윤을 FA 보상선수에서 빼두고 싶어 구치소까지 찾아가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 편법을 저질렀기 때문. 즉, 기간을 확 늘려버리면 함부로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더 신나게 악용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현재는 '''사실상 방출이지만 연봉은 주기 싫을 때, 혹은 쫓아냈지만 다른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막아 반강제 은퇴시켜버릴 때''' 사용하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야구 조약에 '''앞으로 병역비리 저지르면 무조건 제명'''이라는 규약을 삽입하였다. 그야말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어쨌든 이걸로 크보가 "규약에 없으니까 봐주세요ㅜㅜ" 라는 개드립은 칠 수가 없게 되었다.

8. 후폭풍


  • 그 남자의 사건이 있었던 2년 만에 이런 대형사고가 터지자 대한민국 국회에서 병역법을 열심히 보완했으며 2004년 12월부터 2010년까지 무려 22번이나 손을 봤다.
  • 야구계에서는 더 이상 병역이 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덕분에 그 때까지 지지부진하였던 경찰 야구단이 이 사건 덕분에 2005년 말 창단되었다. 경찰 야구단최진행최형우, 김태완 등을 창단 멤버로 받아들였고 이들은 경찰청에서 복무를 마친 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경찰청 홍보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도 창단 검토가 있었으나 예산과 타 종목 형평성 등의 문제로 없던 일로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때부터 KBO는 공인구를 바꾸거나 리그 일정을 조정하는 등 국제 대회를 열심히 대비한다. 그리고 그 결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박이 터지면서...[14]
  • 현재 각 구단은 이 사건의 교훈으로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구단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장이 지체된 모습을 보이는 유망주들은 병역을 먼저 해결하도록 지원해 주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몇몇 선수들이 상무나 경찰청을 다녀와서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팀의 에이스가 되거나 없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보인 이후로는 신생 팀의 전력보강 선수 지명이나 2차 드래프트 관련 보호선수 명단 사항도 있어서 군대 가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육군이 1년 9개월로 단축된 이후에는 현역 입대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양의지, 박희수, 박정권, 손승락, 민병헌, 우규민, 모창민, 최형우, 최진행같은 경우이다. 물론 안 그런 구단도 있지만. 그리고 군 팀 입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던 구단의 말을 안 들었다가 결국 몸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폭망한 어떤 선수의 사례까지 있어서, 군 팀들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선수들의 인식도 변했다. 더 이상 군대가 프로 선수의 무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특히 사건에 연루되어 공백기를 가졌던 선배들이 멋지게 부활하여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대표적으로 손시헌, 조성환 등.
  • 팬들 또한 변했다. 유망주가 기대한 만큼 터지지 않으면 예전과 달리 오히려 먼저 병역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며 걱정해주기도 한다. 이를 잘 활용하는 팀이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 베어스. 여기는 일단 장기적으로 키울 자원이다 싶으면 무조건 병역부터 해결시킨다. 그 결과, 20대 군필 자원들이 매년 구단으로 돌아오며 기대에 부응하는 이들도 꽤 많다. 이 대표적인 예시로 양의지, 민병헌, 유희관, 허경민, 박건우 등이 있고 최근 들어 돌아온 유망주들은 이현호, 박세혁, 김인태, 이우성, 류지혁 등. 물론 몇몇 예외들은 존재한다.[15]
  •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2010년 들어 어느 정도 잊힌 사건이 되었다. WBC 이후 유입된 야구팬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올드 팬들은 응원팀 선수가 대거 연루된 이 사건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린다. 가끔 롯까들이 네이버 댓글로 조성환의 흑역사를 들먹일 때만 빼고. 야구 팬들은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야구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으나 2012년에는 이에 못지않은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흑역사를 갱신한데 이어, 2017년에는 최규순 게이트가 터졌다.
  • 2008년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공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는데, 올림픽에서 야구가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데다가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의 정식종목 존속여부가 불안정해짐에 따라[16] 군팀 입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찰 야구단이 2016년부터 기존 만 30세였던 지원 상한 연령을 만 27세로 낮추기로 함에 따라 문이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경찰 야구단은 2015년 이후 의경 제도의 존폐 문제와 관련해 경찰 측에서 의경 제도는 계속 유지된다고 밝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결국 2018년에 선수 선발을 중단했다. 2023년까지 의무경찰이 단계적으로 인원 축소 후 폐지됨에 따라 자연히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1] 다만 2004년에는 실제 관중 수는 238만 명으로 K리그(240만명)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당시 K리그가 신생 시민구단이 창단된 것을 감안해야 한다.[2] 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을 사용.[3] 1990년대 초반 병역 인력의 적체 현상이 심했던 탓에 신검에서 현역 1급 받고도 방위병으로 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4] 이종범, 이대진, 염종석 등이 마지막으로 이 혜택을 받았다.[5]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프로야구 암흑기여서 이영우, 조성환, 유동훈같이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선수들 조차 야구팬들에게나 익숙했지 대중에겐 듣보 그 자체....사실 프로야구가 부활해서 자리잡았다는 2020년대 현재에도 류현진 같은 스타급 메이저리거나 이대호같이 경력과 캐릭터가 모두 확실한 스타선수 아니면 프로야구 주전이어도 대중에게 듣보인 건 마찬가지다.[6] 2000년에 일단 군대를 가서 2003년에 전역했다. 그런데 일단 가기로 해서 다녀온 데가 해병대.[7] 2004 시즌 당시에는 상위타선에서 쏠쏠하게 활약하였다.[8] 홋날 kt wiz로 이적하며 2004년 못지 않은 커리어를 기록한다. [9] 이 당시 김장현은 롯데에서 상당히 밀어주던 선발 유망주였지만 복무 후 2009년에 웨이버 공시된다. 그가 구속된 후 대타로 나선 투수가 이명우.[10] 단 이호준은 죄질이 강하여 빨간줄이 그였다.[11] 그 외에 병역 브로커를 소개의 핵심인물인 이호준과 당시 소개를 받은 SK 선수들과의 사이가 약간 틀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12] 이 때문에 몇몇 기아팬들은 저때 유동훈이 깜빵가서 쉬는 바람에 혹사도가 덜해 09년 우승이 가능했다는 말을 종종 하고는 한다. 물론 그의 몫은 신용운과 한기주가 다 뒤집어썼다.[13] 사법기관에서 처벌받지 않은 선수를 무턱대고 범죄자 취급하여 정지시키는것도 문제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다.[14] 다만 1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WBC 병역 특례는 사라졌다.[15] 물론 이런 선수들은 데뷔시즌 때부터 어느 정도 이상 해 주며 주전이든 백업이든 1군에 붙어있던 선수들로, 오재원의 경우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14 시즌 이후 이용찬이원석은 상무로 입대, 홍상삼은 경찰청으로 입대, 정수빈 역시 같은 시기 입대 예정이었으나 구단의 만류로 유예되어 2016 시즌 이후 입대 했다.[16] 일단 올림픽 정식종목이면 자동적으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 포함되기 때문에 야구의 올림픽 제외에 따라 아시안게임에서도 매 대회마다 야구가 정식종목에 추가되는지 불확실해졌다. 아시안게임 개최지의 사정에 따라 야구가 제외될 수도 있는데 인도네시아가 야구 인기국이 아닌지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포함여부에 귀추가 모아졌는데 일단 정식종목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에 야구의 정식종목 복귀가 되어 일단 한시름 돌릴 수 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