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천

 

'''이혜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OB 베어스 등번호 55번'''
이정훈(1997)

'''이혜천(1998)'''

김도균(1999~2000)
'''두산 베어스 등번호 59번'''
김도균(1997~1998)

'''이혜천(1999~2008)'''

서동환(2010~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49번'''
민병헌(2006~2010)

'''이혜천(2011)'''

오성민(2012)
'''두산 베어스 등번호 59번'''
서동환(2010~2011)

'''이혜천(2012~2013)'''

최병욱(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59번'''
임정호(2013)

'''이혜천(2014~2015)'''

구창모(2016~)

[image]
'''이름'''
이혜천(李惠踐 / Hye-cheon Lee / Hei Chun Lee[1])
'''생년월일'''
1979년 3월 12일[2]
'''출신지'''
부산광역시 남구
'''학력'''
대연초 - 대천중 - 부산상고[3]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4]
'''프로입단'''
1998년 2차 2순위(전체 12순위,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8~2008)'''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9~2010)
두산 베어스 (2011~2013)
NC 다이노스 (2014~2015)
애들레이드 바이트 (2015~2017)
멜버른 에이시스 (2017~2018)
1. 소개
2. 선수 경력
2.3.1.1. 2011 시즌
2.3.1.2. 2012 시즌
2.3.1.3. 2013 시즌
2.3.2.1. 2014 시즌
2.3.2.2. 2015 시즌
2.4. 호주리그 시절
2.4.1. 2015 ~ 2016 시즌
2.4.2. 2016 ~ 2017 시즌
2.4.3. 2017 ~ 2018시즌
3. 플레이 스타일
4. 별명
5. 여담
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강속구 투수.

2. 선수 경력



2.1. 한국 프로야구 1기 시절


[image]
OB에 입단하였던 초기 시절
[image]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1998년 OB 베어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 2년째부터 팀의 중간계투로 활약하였다. 굉장히 전성기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김인식과 김경문 감독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혹사당했는데, 99년 77게임 119이닝 , 00년 78게임 84.1이닝, 01년 53게임 142이닝, 02년 78게임 79이닝, 03년 83게임 55이닝, 04년 79게임 52이닝 으로 6년동안 443게임을 굴렀다. 2006년 5월 27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에 등판해 최연소 500경기 출전 기록(27세 1개월 15일)을 세웠는데, 전성기동안 엄청나게 구른 덕에 얻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허리 부상으로 군면제를 받았으며, 2007시즌 내내 등판하지 못하다가 포스트시즌에서만 나왔다. 당시 한국시리즈의 향방을 바꾼 사건으로 평가받는 3차전 벤치 클리어링의 주역 중 하나. 2005년 시즌부터는 주로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2006년에는 시즌 중후반까지 방어율 1위 경쟁을 하며 류현진트리플 크라운을 저지할 대항마 중 하나였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승복은 없어 10승 이상을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허나 2006년 시즌을 끝으로 혹사와 부상 여파로 인해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줄어들면서 그 이후로는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혹사로 인한 제구력의 상실은 의외로 있는 케이스로, 어깨 관절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회전동작을 담당하는 회전근개가 무리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릴리스 시 팔을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게 되어 제구가 불안해지는 것. 회전근개가 완전히 찢어지면 회전근 파열로 수술을 받게 되지만 과사용으로 인해 근육이 수축력을 잃어버리면 파열되진 않아서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데드암 증후군. 보통 구속이 떨어지거나 제구와 구속이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네 개의 회전근개가 전부 다 망가지지 않고 일부만 망가질 경우 제구력만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슷한 케이스는 한신 타이거즈후지나미 신타로. 이쪽도 어린 나이부터 계속된 혹사로 인해 제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도 다행히 빠른 공의 구속은 유지되었기 때문에 망가져서 랜덤제구가 된 제구력을 역이용한 윽박지르는 투구로 불펜으로는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었다. 워낙 희소한 좌완 파이어볼러였기도 하고.
그러나 이혜천은 2000년대 초중반 한창 활동할 당시 WHIP가 1.4~1.6을 넘나들 정도로 원래 제구력이 썩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선발로 전성기를 맞았던 2006년이 WHIP 1.23으로 그나마 좋았을 뿐이다.
어쨌든 2008시즌 종료후 FA자격을 얻었고, 2008년 11월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대부분의 두산팬들은 ⅓이닝용 투수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2.2. 일본 프로야구 시절


[image]
야쿠르트 시절. 참고로 이듬해에 유니폼이 바뀌어서 저 유니폼을 입고 뛴 적은 없었다.
사실 이혜천의 영입은 임창용의 후광효과에 가까웠다. 임창용을 겨우 30만불로 데려와 어마어마한 가성비 대박을 친 것에 고무되어 KBO 뽕맛을 못 잊은 야쿠르트가 비슷한 투수를 찾아 한번 더 로또를 긁어본 것. 좌/우완이라는 차이를 빼면 이혜천 또한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낮은 스리쿼터에서 나오는 공끝이 지저분한 강속구 투수라는 점이 굉장히 비슷했다.
일본 진출 당시에 김성근 감독은 좌완 파이어볼러라는 이혜천의 장점을 높게 쳐서 잘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반 정도 맞았다.
주로 중간계투로 나왔으며 2009년 시즌에는 45경기 37이닝 1승 1패 1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3.65로 꽤 호투하였다. 팀 동료인 임창용 때문에 좀 빛이 바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계투와 마무리는 스포트라이트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이혜천이 시즌 초 부상을 입어서 많이 나올 수 없었지만 중반에 복귀하여 보탬이 되어주었다. 보직은 승리조~추격조와 원 포인트 릴리프정도를 오갔다. 셋업퍼까지는 못 했지만 좌완 강속구 투수라는 특성상 적당한 계투라는 역할 이외에도 원포인트도 요긴하게 쓰였다.
그 와중에 2009년 8월 2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모리노 마사히코와 빈볼 시비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한국말로 ''''뭐 이 X발놈아! 뭐!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X새끼야!'''' 라고 했고, 당연히 그대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영상
일본에서는 사구가 나올 경우 투수가 모자를 벗고 사과하는 관습이 있는데, 모리노는 아마 '이걸 왜 안 했냐'면서 뭐라고 했었을 가능성이 높다.[5] 이 경기 후 모리노가 당시 2군에 있던 이병규에게 '이혜천이 무슨 말을 한 거임?'이라고 물어봤고, 이병규는 이혜천에게 그대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하긴 한국말, 그것도 걸쭉한 욕 한 바가지였으니….
단순한 항의가 아니었던 티가 나는 게, 백인이나 흑인 선수도 아닌 동양인 선수인 데다 겉보기엔 사람 좋아 보였고 자기보다 한 살 적었던 이혜천을 만만하게 보고 모리노 마사히코가 이혜천 앞에서 기세를 올려 잡아보려 했던 것 같다.[6] 그런데 막상 이혜천이 달려들자 모리노는 말 그대로 '''쫄았다.''' 애초에 이혜천은 일본 진출 전 두산 시절에도 '''빈볼 시비 후 자기 모자를 찢어버리는 등''' 천사마의 면모를 보였던 사람이다.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2ch의 일본 네티즌들은 이혜천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거친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라는 식으로 반응했다.[7]
2010시즌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2010시즌 후 야쿠르트와 계약이 만료되고 국내 복귀를 전격 선언하였다.
여담으로 이 시기 부진한 이유가 빠칭코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단순한 소문으로 넘기기 어려운 것이 웬만한 야구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빠칭코 때문에 일본에서 부진했다는 설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최훈, 김정준, 이용균 등이 필진으로 참여한 2012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도 이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다루는 걸로 봐선 빠칭코와 뭔가 관련이 있는 듯.

2.3. 한국 프로야구 2기 시절



2.3.1. 두산 베어스 시절



2.3.1.1. 2011 시즌

2010년 12월 8일 두산과 계약금 6억원, 연봉 3억5000만원, 옵션 1억5000만원 등 총액 11억원에 계약했다.#
시즌 초에는 선발 두 경기 나왔다가 아주 탈탈탈 털리면서 그야말로 망했어요. 결국 중간계투로 내려갔는데 그마저도 아주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적으로 4월 28일에 두 번의 폭투로 0이닝 0피안타 1볼넷을 던진 후 강판당했다. 이에 힘입어 두산은 삼성 라이온즈에 11:0으로 패. 그 이후로도 꾸준히 불펜으로 나오지만 안정적인 느낌은 '''없다.''' 오히려 '''상대 타선 안정'''에 도움을 주는 등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두산 팬들은 이혜천을 핵폐기물 취급하며 혜르노빌이라고 깠다. 결국 2011년 8월 2일 2군으로 내려가 2011년 시즌 끝날 때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시즌 성적은 34이닝 1승 4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6.35. 그야말로 완전 폭망했다. 일본 유학 효과 같은 거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

2.3.1.2. 2012 시즌

12시즌에도 변함없이 상대 타선 안정에 도움을 주면서 이핵천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개막전 바로 다음날 경기부터 몸에 맞는 공 작렬. 넥센전에서 송지만의 발등을 맞혔다.[8] 4월 8일 경기에도 출전하여 여지없이 1피안타 1몸에맞는볼로 1실점, 그리고 4월 14일 롯데전에서는 그전 2경기동안 1득점했고 그 날도 경기 내내 무득점으로 끌려다니던 롯데 타선에게 순식간에 3안타와 1몸에맞는볼을 조공하며 리드를 날려먹었다. 이혜천의 등장으로 안정을 찾은 롯데 타선은 다음날 16안타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 승리조로 등판하며 불안하긴 해도 무실점으로 꾸역꾸역 막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혜천의 이름이 전광판에 새겨지면 두산팬들은 단체로 멘붕, 댓글란에 절망적인 메시지가 가득 차는 걸 볼 수 있다.
4월 19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한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본래 18일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으나 그 날 갑자기 최재훈이 각성하여 잠재력을 대폭발시켰기 때문에 인터뷰가 밀려버린 것. 물론 팬들은 '이혜천이 수훈선수얔ㅋㅋㅋㅋㅋ'등의 반응이었으나 의외로 차분한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덤으로 댓글을 보고 상처입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경쓰진 않지만 팬들에게 죄송해서 등장 테마곡을 <미안 미안해>로 바꾸려고 했다는 말을 하여 시청자들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이번 인터뷰로 이혜천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 팬들도 많은 듯. 요새 괜찮으니 좀 덜 까면서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4월 17일부터 4월 27일까지 6경기 5⅔이닝 무실점 4홀드를 기록했고 특히 4월 24일부터 4월 27일까지는 과감한 승부와 향상된 제구력으로 타자들이 타석에 서는 족족 아웃시켜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도 '이혜천사'로 불렸다.
4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팀이 4:6으로 앞선 7회초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선발 투수 김선우에 이어 등판했다. 이용규에게 볼넷을 허용했는데 포일이 나오면서 3루주자 홍재호가 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이혜천은 이날 이용규만을 상대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는데 김상현이 이용규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희생플라이를 쳐서 점수가 역전되었고 결국 팀이 이날 9:8로 졌기 때문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2군에 오래 내려가 있다가 콜업되어 6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중간계투로 출전하였다. 3:1로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첫 타자 장기영을 공 3개 던져서 삼진으로 잡아내며 모든 두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음 타자 정수성 타석에서는 '''헤드샷'''[9]을 선보이더니, 정수성이 친 내야 땅볼 타구를 잡아 '''1루에 악송구''', 정수성은 3루까지 내달렸다. 그리고 뒤이은 이택근 타석에서는 '''폭투를 기록''', 정수성은 홈을 밟는다. 그리고 박병호에게는 공을 던져서 '''발을 맞추며'''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냈다. 이 엄청난 참사에 두산 팬들은 포수 최재훈을 불쌍히 여기며 혀를 찼다. 그러나 오늘 이혜천이 '''딸을 본지라''' 평소에 비해 까임은 적었고 다음부터는 잘 하기를 기대한다는 약간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넥센 팬들은 점수를 낸 것에 기뻐하면서도 송지만의 사례를 기억하며 박병호의 사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6월 29일 롯데전에서는 8회 무사 상황에 등판해서 손아섭삼진으로 잡아내고 마운드를 홍상삼에게 넘겼다.
7월 1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이용찬의 뒤를 이어서 7회 1사 1루 상황에 등판해서 장성호를 잡아내고 최진행도루를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승리는 9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변진수가 차지했다.
8월 16일 넥센전에서는 원 포인트 릴리프서건창을 잡고 내려갔다.
8월 22일 넥센전에서는 초구 폭투로 실점하며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두산팬들은 이혜천과 양의지를 2군으로 내리거나 이혜천을 은퇴시키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중.
9월 8일 삼성전에서는 연장까지 가는 혈투 도중 10회까지 3이닝을 잇달아 던진 김강률이 11회 1루타와 번트안타를 맞아 무사 1, 2루가 되자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승엽에게 안타를 맞아 무사 만루를 만들었고 곧바로 홍상삼으로 교체되었다. 그런데 홍상삼이 무사 만루를 기적적으로 무실점으로 막아내어 이혜천은 실점을 기록하지 않았다.
9월 29일 vsLG 전에서 선발 투수로 출장하여, 3⅓이닝동안 8실점이라는 정신줄을 빼놓은 핵폭탄을 터트렸다.
고액 연봉에도 불구, 성적은 초라하고 출전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2012시즌 맹활약한 노경은과 비교해, '''야구는 노경은처럼, 인생은 이혜천처럼'''이라는 말이 두산팬 사이에서 돌았다. 어쨌든 일본 진출 후 복귀 2년간 성적은 '''실망 그 자체, 아니 연봉 주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그야말로 최악이다.''' 데뷔 초창기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
그리고 이 해 두산 구단은 차기 좌완 클로저를 뽑게 된다.

2.3.1.3. 2013 시즌

답이 안 나오는 제구 때문에 팬들도 더 이상 많은 기대를 갖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막 제대한 좌완 투수 유희관이 더 믿음직해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허나 팀내에 쓸 만한 좌완 불펜이 마땅치 않은지라 여전히 1군 철밥통을 차지했다.
4월 9일 무등야구장 KIA 타이거즈전에서 팀이 4:3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던 7회말 2사 만루에 최희섭을 상대하기 위해 등판했으나, 9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몸에 맞는 공을 내주고 노경은의 승리를 날려먹었다. 게다가 두산 타선이 8회초에 7점이나 뽑아내면서 더더욱 욕을 먹었다.
5월 18일 한화 이글스선발 투수로 나왔다. 결과는 '''1⅓이닝 5피안타 1볼넷 6실점(6자책)'''. 핵폭탄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판되었다. 3실점 뒤 승계주자 3명을 남겨두고 내려갔으나, 후속 투수로 등판한 51번 배팅볼기계가 승계주자를 모두 홈인시켜 총 6자책. 거기에 팀은 한화 이글스에 시즌 최다득점, 최다 안타를 안겨주며 14:2로 대패. 이혜천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또한 방어율도 1.42에서 8.22로 수직상승...[10]
이후 부상으로 6월 1일에 2군으로 내려갔고 그 이후 시즌 끝날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2.3.2.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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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2일 열린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 결과로 NC 다이노스로 이적. 이혜천 본인도 자신의 별명이 핵이라는 것과 핵품달이란 패러디를 알고 있으며 '''"진짜 '핵'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말을 남겼다.#[11]
12월 30일 스포츠동아의 단독 보도에서 2011년 두산 복귀 때 맺은 계약이 이면계약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두산 복귀시 맺은 1년간 연봉 3억 5천만원, 옵션 1억 5천만원이 4년간 적용된다는 것이며, 방출을 요구하자 두산 프런트는 계약금 2억원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혜천은 구단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1년 연봉인 3억 5천만원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혜천은 이면계약이라도 계약은 계약이니 3억 5천만원을 받아야겠다며 "팬들에겐 죄송하지만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 계약금 2억원을 돌려달라고 한 건 이혜천이 시즌 도중에 자신을 방출해달라고 하자 농담조로 한 거고 실제로 정식으로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두산 측과 이혜천은 합의를 봤는데, 내년 연봉 3억 5천만원 중 NC가 지불할 연봉을 제외한 금액을 두산이 보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NC 측에서는 5천만원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므로 두산측은 대략 3억원을 대신 지급해야 할 듯.
팬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계약은 계약인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말끔하게 처리하지, 두산 프런트가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년간 두산에서 삽질한 주제에 오히려 큰소리나 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두산 팬들 대다수는 이혜천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게다가 이혜천은 “NC로 이적한 것에 대해서 기분좋게 생각하고, 지옥에서 꺼내 준 김경문 감독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첫 출발부터 삐걱대 아쉽다. 최대한 빨리,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짓고 싶다" 라고 말했는데 두산 팬들은 3년간 기회를 그리도 많이 주고 고액의 연봉을 꼬박꼬박 지급했던 두산을 향해 '지옥'이라고 한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

2.3.2.1.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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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캠프 자체 평가전에서 1이닝 2피안타 2볼넷 1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방어율이 0인데 WHIP가 4.00인 괴랄한 스탯이 나온다.
시범경기에서도 그동안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며 핵폭탄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시범경기 최종 성적은 5경기 2.1이닝 2패 3홀드 ERA 15.43을 기록했다. 더 이상한 점은 홀드가 3개인데, 시범경기 홀드 부문 공동 1위다[12]
결국 불을 화끈하게 지른 탓인지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4월 15일 미세골절로 말소된 찰리 대신 1군에 등록 되었으며 18일 삼성전 7회초 1아웃 상황에 등판해 2타자를 상대로 범타처리를 시키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시켰다.
4월 19일 삼성전 6회초 1아웃 상황에 등판해 대놓고 몸을 빼는 채태인을 상대로 범타처리를 시켰지만 다음타석 최형우 상대로는 안타를 맞아서 바로 교체되었다.
4월 24일 SK전 9회말에 등판해 범타처리로 1아웃을 시킨 후 2볼넷을 줘서 또 핵실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최정과 박정권을 삼진으로 잡아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시켰다.
4월 25일 두산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된 찰리를 대신해 무사 주자 2,3루 상황에서 등판해 대폭발, 볼넷-2루타-내야안타-2루타를 연속해서 맞으며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3실점 (찰리의 승계주자 2명 제외)했으며 허경민과 김현수를 플라이로 잡은 후 2루타볼넷 허용하며 타자일순시켜주었다. 기록은 0.2이닝 4피안타 2볼넷 4실점 4자책 '''평균자책점 54.00'''
5월 1일 LG전 8회초 1아웃 상황에서 정의윤한테 2루타를 맞은 이민호 다음으로 등판해 이병규를 범타 처리 시켰으나 이진영한테 안타를 맞아 1실점하자 바로 강판 당했다.
8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 6회초 등판하여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나 싶었으나 1과 2/3이닝동안 6타자를 상대하며 1피안타 1폭투 4삼진 0자책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무슨 각성이라도 한건지 8월 7, 9, 11, 15일 4번의 등판에서 4.2이닝 '''평균자책점 0.00'''의 깔끔한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더 놀라운건 이 경기중 삼진은 5개를 뺏어냈지만 '''사사구는 한개도 없었다!!!'''
급기야 손정욱과 더불어 왼손 필승조(!) 역할을 하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10월 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후, 팀이 다음 이닝에 역전하며 본인이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2년 5월 10일 이후 '''882'''일 만의 승리. 시즌 방어율도 3.31로 그 명성에 비하면 아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10월 14일 삼성과의 경기에선 9회초 2대 1의 1점차 리드 상황에서 등판하여 0.2이닝 무실점으로 2012년 이후 오랜만의 홀드를 챙겨갔다. 사실 세이브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경기종료를 한 타자 남겨두고 김진성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김진성은 마지막 타자 최형우를 삼진으로 아웃시키고 세이브를 올렸다.

2.3.2.2. 2015 시즌

시즌 초 손정욱이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인지라 좌완 필승조가 사실상 이혜천 한 명이라는 희한한 상황이 되었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어 작년 후반기의 기세를 이어가며 좌완 원 포인트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며 홀드도 2개 챙겨갔다.
4월 18일 한화전에서 6회 투아웃에 이용규를 땅볼로 잡았지만 7회엔 강경학의 몸을 맞추고 김경언에게 안타를 맞으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이민호와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민호가 승계주자들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8경기만에 시즌 첫 실점이 발생했다. 결국 4월 23일을 끝으로 고양으로 올라갔다.
다시 7월 31일에 1군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8월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 뒤로 방어율은 계속 올라 6점대까지 올랐으나, 다시 방어율이 내려갔으며 결국 방어율 5.19로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이번시즌도 혜르노빌이었다는 소리이다.

2.4. 호주리그 시절


[image]
2015시즌을 끝으로 진갑용박명환이 은퇴하면서 최후의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혜천 역시 한국에서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호주프로리그(ABL) 소속 애들레이드 바이트의 선수로 뛰게 되었다. 선수등록 정보 2015년 11월 25일 등록되어 경기를 치르게 된다고. 이로서 OB 유니폼을 입어봤던 선수들은 모두 KBO 리그를 떠났다.

2.4.1. 2015 ~ 2016 시즌


현재 성적은 15경기 2승 0패 21이닝 방어율 3.00으로 호주에서도 8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탈탈 털리는 임작가와는 정 반대로 나름 팀의 구원투수로서 제 몫을 하고있다.
2016년 11월 6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와 재계약했다는 기사가 떴다. #

2.4.2. 2016 ~ 2017 시즌


2017년 1월 23일 현재 작가본능이 돌아왔는지 11경기에 등판해 승리없이 2패 13.1이닝 평균자책점 '''7.43'''의 처참한 성적을 내고 있다. 피안타율 .333, WHIP 2.10의 경이로운 성적으로 이대로라면 시즌 후 재계약이 가능할지 의문인 상황이었고, 방출되었다.

2.4.3. 2017 ~ 2018시즌


멜버른 에이시스에서 잠시 뛰었다. 이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3. 플레이 스타일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로우 쓰리쿼터 딜리버리가 특징인 좌완투수.[13] 강점은 구속과 구위, 그리고 내구성을 꼽을 수 있다. 최고 구속이 152km/h를 기록했을 정도로 빠른 공을 구사했으며, 슬라이더 역시 위력적이라 기량이 많이 떨어진 선수생활 말년에도 슬라이더는 꽤 준수했다. 써드 피치로 싱커를 구사했으나 일본에서는 포크볼을 구사했다고. 다만 구사율이 높지는 않고 실질적으로는 속구-슬라이더 위주의 투피치 피쳐라고 볼 수 있다. 내구성 역시 상당히 좋아 중간계투로 자주 출전하긴 하나 선발 투수로도 나올 수 있으며, 연투까지 가능한 고무팔. 베어스 시절 김인식 감독의 살인적인 혹사를 견뎌내고 해외 진출에 성공한 선수인만큼 내구성 하나는 매우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이혜천과 함께 노예의 쌍두마차였던 차명주2001년 84경기 91이닝을 던지는 등 살인적인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아작나버린 점을 보면 이혜천의 내구도가 더 부각된다. 2007년 허리디스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부상 전력도 없다.[14]

[15]
단점은 제구가 완전히 로또 수준이라는 점. 통산 BB/9가 4.64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진출 이전에도 BB/9가 4 밑으로 내려가본 시즌이 2006년과 2008년 딱 두 번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성기 시절에는 선발투수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로또 제구력은 아니었으나[16] 혹사 여파와 허리디스크 부상 이후 제구력이 더욱 나빠졌다. 물론 부상 이전에도 제구력이 나쁜건 매한가지라서 이는 이혜천의 한계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2002~2004년 3시즌간은 거의 불펜으로만 나섰다. BB/9가 3점대까지 내려간 2006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부분만 봐도, 제구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상 이후에는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나빠지면서 이전과 같은 기량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구위 하락은 눈에 보일 정도라서 2008년 시즌에 이전과 별다를바 없는 볼삼비와 BABIP을 기록하도고 평균자책점이 치솟았는데, HR/9가 안좋은 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걸 보면 그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 할 수 있을것이다.
투구 스타일이 좌완 사이드암에 가까운 데다 불같은 강속구에 불안한 제구력까지 갖춰지자(?) 좌타자 한정으로 상승 효과를 일으켰다. 좌타자들 입장에서는 그 제구 안 되는 빠른 볼이 (이혜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언제든 자신의 몸에 꽂힐 수 있는 공포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섰으니... 덕분에 국내의 내로라하는 좌타자들의 저승사자로 군림하기도 했다. 국내 시절 이승엽에게도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였으며, 양준혁은 현역 시절 이혜천이 선발 등판하는 날은 자원해서 라인업에서 빠질 정도였다.[17] 심지어 장성호는 이혜천을 껄끄러워하다못해 진심으로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이혜천을 한 번 상대하면 단지 그 타석뿐 아니라 며칠간 타격감이 흐트러진다고 한다.[18] 정수근이 박명환의 박명환야구TV에 출연 당시 술회한 바에 의하면, 타자는 투수에 대한 접근법이 보통 나오기 마련인데 이혜천한텐 '차라리 너 투구에 안 맞고 아웃될래'라고 말 할 정도로 제구가 좋지 않았다. [19] 2004년 6월 15일에는 만루상황에서 양준혁을 상대로 투땅을 유도해놓고 홈송구를 폭투로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런 덕분인지 자신의 공에는 자신감이 있는 모양. 카림 가르시아한화 이글스에 복귀한 이후 한 인터뷰에서 '''내 공에 위압감을 느끼나. 한국인 타자들은 내 공에 맞을까봐 좀 두려워하는 편인데 당신도 그렇나'''라고 질문하기까지 했다. 가르시아는 '''당신 공이 들쭉날쭉한 것은 알지만 전혀 위압감은 없다'''고 대답했고, 덧글은 이혜천을 까는 글로 가득했다. 이런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단적인 장면은 2008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로, 선발 김선우가 양준혁을 위시한 삼성 타자들의 눈야구로 조기강판되자 뒤이어 등판한 이혜천이 삼성 타자들의 선구안을 죄다 흔들어 놓고 정재훈#s-1이 등판하여 이혜천과는 반대로 정교한 제구력으로 셧아웃시킨 적이 있다.

4. 별명


  • 혜천대사
머리만 깎으면 스님같이 생겼는데다가 한때 진짜로 삭발한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대자대비하게 상대팀에게 점수를 준다는 의미에서. 이름 또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보다는 스님들의 법명처럼 보이는 이름이다보니 외모와의 시너지가 배가 되는 편.
  • 개구리
일본 진출전에도 제구가 좋은건 절대 아니었다.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어디로 방향을 잡을지 모르는 스타일. 심지어 백스톱을 출렁이게 하는 초대형 사고도 심심찮게 쳤다.
  • 달세
현 두산 베어스 김태룡 단장이 프런트였던 시절 '넌 어디서 살아, 전세냐 월세냐?'하고 물었더니 이혜천이 '저 달세인데요.' 했단다. 참고로 달세란 부산 사투리월세를 뜻한다. 그런데 막상 부산에서도 자주 듣기는 힘든, 이를테면 '하드코어 사투리'이다. 같은 부산 출신인 김 매니저가 워낙 오랜만에 듣는 찐한 사투리에 너무 웃겨 쓰러졌다가 정신을 수습한 뒤 팀내에 다 퍼뜨린게 별명이 되었다고.[20]
  • 11억 화염방사기[21], 이천, 혜르노빌, 혜쿠시마, 이혜천재지변, 천도사
그 폭발적이다 못해 파멸적인 투구 결과로 인한 별명.

5. 여담


스님같은 풍모와 달리 성격이 불같고 제구력도 그 성격에 걸맞게 들쑥날쑥하다. 긁히는 날은 신이고 털리는 날은 무지하게 털리는, 제구 안되는 빠른공 투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베어스 통산 좌완 투수 승수 2위[22]기도 하다. 물론 이건 옛부터 좌완투수 씨가 마른 베어스의 역사 덕분. 지명한 선수는 먹튀가 되고, 데려온 선수먹튀가 되고[23], 팀을 나가야 포텐셜을 만개하는 슬픈 전설.
이혜천 선수의 아버지는 소방공무원이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내골역 근처에 '밀양돼지국밥'이란 국밥집을 운영했었다.[24] 야쿠르트에 진출했을 때는 부산소방본부 테니스회에서 직접 가게 앞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혜천이 등판하면 맥주가 잘 팔린다는 증언이 있다. 잠실구장 이동식 맥주 판매원에 따르면 '''제구가 불안해 경기가 길어지고 박진감이 넘쳐서 잘 팔린다'''고. # 또 야구프로그램인 사사구에서 지금은 해설을 하고 있는 선배들인 이숭용정수근이 이혜천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를 상대하다가 사구를 맞으면 '에휴 네가 그럼 그렇지'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아래는 그 때의 대화.

정수근 : 제구력 좋은 사람은 티가 나고 제구력 안 좋은 사람은 그냥 줬나보다 그냥 제구가 안 돼서 -

이숭용 : 제구력 좋은 사람이 몸에 맞추잖아요, 그러면 안단 말야. 그런데 제구력 없는 사람이, 이혜천이가 맞추잖아. 인정해요.

임용수 : 이름 이야기는 왜 했어 -

이숭용 : 아니 나 선수 때

임용수 : 아 선수 때? 아 그래도 -

이숭용 : 혜천이가 맞추면 화가 나는 것보다는 어 그래, 니가 뭐, 이해한다.

정수근 : 혜천이, 그러니까 달세가, 별명이 달세거든. 달세가 맞춰. 그러면 자기가 놀래가지고 먼저 으아 죄송합니다! 에읶, 하고 화내려다가도 아 그래...

사구가 오면 잘못해서 선수를 맞히면 그때부터 어쩔줄 모르고 흔들려서 더 못 던졌다고...
정수근 말로는 이혜천이 삼성전에서 부진한 적이 있었는데, 마운드로 온 투수코치의 교체명령에 버티다가 교체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정수근이 경기 끝나고 이혜천을 구단버스로 끌고 가서 니가 뭔데 코치님한테 빨리 공 안주고 개기냐며 두들겨 팼다고 한다...
한국 귀환 이후 부진이 이어지자 본인도 자책하는 마음이 있는듯하다, 언젠가는 팬이 사인을 요청하자 '나는 이제 인기가 없는데...'하면서 후배 투수인 홍상삼을 불러 사인을 해주게 했다고. 아예 2군에서 올라오지를 않는 2013년 시즌에는 야구는 모르겠고 모두의 마블에서 순위권에 들어 점수만 1000만점대라고 한다(...). 그러다 뜬금없이 한국시리즈 기사에서 재활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원래는 오른손잡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소 여물을 만들려고 작두로 짚단을 자르다가 그만 오른손 약지가 반마디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결국 왼손으로 야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혜천의 오른손을 보면 약지 첫째마디가 다른 손가락에 비해 넓다. 이 사고로 1년 유급[25]도 했다고 한다.
박명환과 더불어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최후의 2인이 이혜천이다. 참고로 OB 유니폼을 '''입었던''' 타자는 2015 시즌중 진갑용이 은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박명환도 2015년을 끝으로 은퇴하면서[26] OB 베어스의 최후의 선수가 되었다.[27]

6.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해당 시즌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5위 내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OB
15
10⅓
0
0
0
-
0.000
1.74
5
0
7
9
2
2
1.065
1999
두산
'''77'''
(2위)
119
8
4
0
-
0.667
4.76
119
11
79
98
69
63
1.588
2000
'''78'''
(1위)
84⅓
5
6
1
'''11'''
(3위)
0.455
5.02
88
9
54
76
51
47
1.636
2001
53
(10위)
142⅔
9
6
3
6
(7위)
0.600
3.62
(6위)
152
17
75
107
(10위)
72
57
1.581
2002
'''78'''
(1위)
79
2
4
1
'''12'''
(3위)
0.333
4.67
72
7
55
75
46
41
1.494
2003
'''83'''
(1위)
55
5
3
0
11
(9위)
0.625
3.93
46
4
42
36
27
24
1.509
2004
'''79'''
(3위)
52
2
2
0
12
(10위)
0.500
5.88
52
5
34
35
35
34
1.596
2005
30
109⅓
7
4
0
3
0.636
3.95
105
10
61
59
58
48
1.454
2006
32
142
8
6
0
1
0.571
'''2.79'''
(4위)
119
4
68
104
(10위)
52
44
1.232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34
109⅓
7
5
0
0
0.583
4.69
110
14
56
83
59
57
1.399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야쿠
르트

42
37
1
1
1
12
0.500
3.65
42
3
18
27
15
15
1.568
2010
19
17⅔
0
1
0
5
0.000
5.09
11
4
8
18
10
10
1.019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두산
32
34⅓
1
4
1
4
0.200
6.35
31
2
21
30
27
24
1.412
2012
48
38⅔
1
3
0
7
0.250
7.45
42
2
26
25
33
32
1.629
2013
13
9⅓
0
1
0
0
0.000
11.57
16
0
12
7
12
12
2.464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NC
25
18
1
0
0
2
1.000
3.00
22
0
10
17
7
6
1.667
2015
29
17⅓
0
0
0
3
0.000
5.19
15
3
9
10
11
10
1.271
<rowcolor=#373a3c> '''KBO 통산
(15시즌)'''
'''706'''
(7위)
1019⅓
56
48
7
72
0.538
4.42
994
88
609
771
561
501
1.490
<rowcolor=#373a3c> '''NPB 통산
(2시즌)'''
61
54⅔
1
2
1
17
0.333
4.12
53
7
26
45
25
25
1.390
[1] 호주 ABL 등록명[2] 음력 1979년 2월 14일. 원래는 음력생일로 78년생들과 같이 입학했으나 후술하듯이 초등학교 때 유급을 하는 바람에 79년생들과 같이 다녔다.[3] 2004년 개성고로 개칭[4] 좌투좌타이지만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쓰리쿼터형이다.[5] 실제로 영상에서 슬로우 비디오 장면을 보면 모리노가 모자를 벗으며 "보시"라는 말을 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보시는 모자의 일본말이다.[6] 정작 일본 선수들은 흑인이나 백인 등의 선수와 시비 붙으면 도망부터 치고 본다. 왜냐하면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시 대부분 '''발리기 때문이다.''' 발비노 갈베스는 이런 의미로 상당히 유명했고 타이론 우즈도 일본에 가서 이런 성향을 이용해 고의로 망나니처럼 행동했다.[7] 2011년 임창용 선수 공식 프로필에 팀 동료인 포수 후쿠가와가 '신사! 혜천과는 완전 정반대!!' 라고 적은 걸 보니 같은 선수들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임창용도 절대 는 아니다.[8] 송지만은 이 부상으로 8월에나 다시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폼이 돌아오지 않아서 2군행. 결국 2012년은 고작 14경기만 출전하면서 완전히 시즌을 날렸고 시즌 종료후 무려 1억4500만원 연봉 삭감 크리...[9] 다행히 정수성이 피했다.[10] 5회초에 임태훈 바로 뒤에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안타를 맞아 승계주자를 모두 불러들였다. 본인 승계주자도 후속 투수 윤명준이 다 불러들인 게 함정이지만... 기록은 0이닝 3피안타 3실점(3자책).[11] 해당 기사 상단부에 실제 해품달을 패러디한 핵품달 짤방이 있었으나 이후 삭제되었다.[12] 여담으로 홀드 1위의 또다른 주인공은 KIA의 박성호.[13] 비슷한 팔 각도로 던졌던 좌완투수가 바로 랜디 존슨. 하지만 기량은 하늘과 땅 차이[14] 다만 이 부상으로 군 면제를 받긴 했다.[15] 2012년 5월 31일, 기아와의 홈경기 6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등판, 이용규에게 볼넷, 김선빈에게 2루타를 맞고 아웃 추가 없이 1분식, 그렇게 주자 2, 3루 상황을 만든 뒤, 김원섭과의 대결 중 1볼 1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피치아웃 사인이 나왔는데 제구가 안돼서 중앙으로 가버리며 S를 잡았다. 황당해 하는 김원섭의 표정이 압권. 엄밀하게 따져보면 타자가 황당해 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이 영상에서 포수인 양의지가 잘 잡아줘서 그냥 넘어간거지, 저 공을 놓치는 순간 3루 주자가 들어와서 1실점 할 상황이다. 괜히 이혜천의 제구 불안의 대표적인 예로 올라 온게 아니다.[16] 선발투수는 이닝을 많이 먹어줘야 하는 특성상, 제구가 나쁘면 투구수가 늘어나 이닝이팅을 잘 못 하기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의 제구력이 필요하다.[17] 실제로 은퇴 이후 대학교를 돌며 강의할 때에도 이혜천과는 다시 승부 하기 싫다고 말했다.[18] 장성호같은 선구안형 눈야구 타자는 공이 올 위치를 알아내고 타격하는 스타일인데, 투수가 이혜천이면 공이 와야 하는 위치에 오지 않으니까 계산이 완전히 꼬인다. 이 때문에 멀쩡한 투수를 상대해도 '아 이번엔 제대로 오려나'하는 불안감이 머리속에 들어차면서 며칠간 후유증(?)을 앓는 것. 이승엽도 미리 공의 구질과 로케이션을 추측하고 그 공이 올 위치에 먼저 타격하는 게스히터인데, '''이혜천은 몸쪽으로 올지 바깥쪽으로 올지 도저히 예상이 안 가는 유형이라 추측이고 예상이고 되는 게 없다.''' [19] 대구 야구장 원정 경기에서 최일언 코치의 투수교체 지시 때 뚱한 표정을 지었다가 게임 끝나고 구단버스에서 정수근한테 많이 맞았다는 이야기도 같이 풀었다.[20] 사실 월세(月貰)가 다달이 내는 거니까 달세란 말이 의미상으로 딱히 잘못된 표현은 아니긴 하다.[21] 이건 이혜천보다는 팀 동료 이현승에게 더 자주 붙는 별명[22] 통산 '''55승'''을 기록했으며, 유희관이 제대로 터지기 전까지는 베어스 통산 좌완 투수 승수 1위였다.[23] 다만 이현승은 2015 시즌에 마무리로 뛰면서 팀 우승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고,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에서도 선발되는 등 밥값을 톡톡히 해 줬기 때문에 2017년 현 시점에서는 단순히 먹튀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게 대부분의 중론이다.[24] 현재 해당 위치에는 중화요리집이 들어서있다.[25] 원래는 음력생일로 빠른 79년생이라 78년생들과 학교에 같이 입학했으나 해당 사고로 인해 유급하며 79년생들과 졸업하여 제 나이에 맞게 학교를 다닌 셈이 되었다.[26] 구단이 공식 발표는 안했지만, 정수근 해설위원이 해설중에 박명환 투수의 은퇴 사실을 밝혔다.[27] 비슷한 경우로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선수인 이진영이 있고, 해태 타이거즈 출신 중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선수인 임창용, 정성훈이 있다. 01시즌에 KIA로 바뀌기 전 해태까지 포함하면 김경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