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라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No.80 '''
'''이름'''
'''제리 리 라이스 시니어
(Jerry Lee Rice, Sr.)'''
'''생년월일'''
1962년 10월 13일
'''국적'''
미국
'''출신지'''
미시시피주 스타크빌
'''포지션'''
와이드 리시버
'''신체조건'''
188cm, 90kg
'''출신대학'''
미시시피 밸리 스테이트 대학교[1]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6순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지명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1985~2000)'''
오클랜드 레이더스(2001~2004)
시애틀 시호크스(2004)
'''제23회 슈퍼볼(1989) MVP'''
덕 윌리엄스
(워싱턴 레드스킨스)

'''제리 라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조 몬태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영구결번 '''
'''No.80 '''
1. 개요
2. 특징
3. 커리어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


미국의 前 미식축구 선수로 前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오클랜드 레이더스, 시애틀 시호크스 소속 와이드 리시버.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자, '''NFL 역사상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전설적인 쿼터백 조 몬태나스티브 영의 패스를 받아내는 타겟맨으로, 80년대의 팀이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핵심 역할을 해낸 선수. 당대 최고의 쿼터백이었던 조 몬태나, 스티브 영와 함께, 3번의 슈퍼볼 우승 등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선수.

2. 특징


좋은 체격과[2] 경이적인 내구력, 성실성, 전술 이해, 작전수행능력으로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에 최적화된 와이드 리시버중 하나.
사실 운동능력만 놓고 보면 라이스는 뛰어난 리시버라고 보긴 어렵다. 체격은 좋았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의 선수였으며 스피드도 그닥 빠른 편이 아니었다. 기존 문서에는 빠른 스피드를 지녔다고 서술되었지만 라이스의 공식 40야드 기록은 4.6~4.7초로 '''평균적인 리시버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순수한 리시버로써의 운동능력만 놓고 본다면 장신임에도 4.25초의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가졌던 천재 리시버 랜디 모스, 온몸이 근육으로 무장되었던 터렐 오웬스, 타이트엔드의 몸으로 4.3초대를 뛰었던 캘빈 존슨 등이 더 뛰어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선수들이 그렇듯이 제리 라이스는 이러한 상대적 열세를 뛰어넘고도 남을 X-factor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대단히 뛰어난 손의 소유자였으며, 조 몬태나라는 역대급 쿼터백과 빌 월쉬라는 명감독 하에서 뛰었던 행운, 그리고 '''그 어떠한 선수도 따라할 수 없는 근면함'''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미국의 흑인 스포츠스타들이 그렇듯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작은 마을의 벽돌공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침이면 뒷산에서 지구력을 키우고 아버지가 만든 벽돌을 공 삼아 캐칭능력을 키웠는데, 이는 그가 NFL 선수가 되어서도 꾸준히 했던 루틴으로 그의 근면함의 반증이기도 하다. 때문에 돌+아이들의 집합소이자 경기 '''내'''외적으로 사고를 많이 치는 포지션인 와이드 리시버지만[3] 매우 모범적인 선수로 정평이 났었고 많은 현역들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그가 선수로써 이룬 업적은 워낙 대단해서, 터렐 오웬스같은 자존심 강한 와이드 리시버들도 제리 라이스 앞에선 겸손해진다.

3. 커리어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밸리 스테이트[4]고라는 작은 대학[5]을 나왔다. 라이스는 아치 쿨리 감독의 스프레드 오펜스 하에서 쿼터백 윌리 토튼과 함께 강력한 콤비를 이뤘고 2학년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3학년과 4학년에는 무수한 NCAA 기록들을 세우면서 전국구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NFL 스카웃들은 라이스의 캐칭능력과 생산력은 높이 사면서도 공식 대시기록 4.71초의 느린 스피드에 그를 탑픽으로 뽑기를 주저했다. 여담으로 4.71초가 어느 정도냐면 '''쿼터백'''인 애런 로저스가 컴바인 당시 기록했던 시간과 동일하다. 결국 15개의 팀이 그를 지나쳤고 1라운드 16위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의해 드래프트됐다. 그리고 이 결정은 메가잭팟으로 돌아왔다. 포티나이너스와의 16년동안 라이스는 12번의 프로볼에 선정되었으며 그 중 10번 올프로 퍼스트팀에 선정되었고 팀은 3번의 우승을 추가한다.
NFL 선수로는 환갑에 가까운 42세의 나이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통산 '''1,549번 캐치, 22,895 리시빙 야드,197번의 리시빙 터치다운'''으로 3개 모두 2위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는 1위다. 리셉션 2위인 타이트엔드 토니 곤살레스가 1,295캐치(와이드리시버로는 1,102캐치의 마빈 해리슨이 2위), 리시빙 야드 2위 터렐 오웬스가 15,934야드, 리시빙 터치다운 2위 랜디 모스가 156개이다.
여기에 늦은 나이까지 높은 수준의 폼을 유지했는데, 전성기에서 한참 내려온 만 40세에도 1,000 리시빙 야드 시즌을 기록하고 프로볼에도 선정될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쿼터백의 경우 브렛 파브톰 브래디처럼 불혹의 나이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주력이 생명인 와이드 리시버가 그 정도 생산력을 보여준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4. 여담


  • 조 몬태나와 영혼의 콤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의외로 스티브 영과 함께 더 많은 스냅을 플레이하였다.
[[파일:attachment/ricekun.jpg
width=300]]| 라이스군
  • 아이실드 21에서는 라이몬 타로의 등번호 80번의 모티브가 되며, 히루마 요이치가 혼자 패스 연습을 할때 패스를 던지던 나무 타겟을 라이스군이라고 이름 붙였었다. 몬타가 들어오자마자 이제 진짜로 연습할 리시버가 생겼다며 거하게 박살내버린다. 지못미.
미식축구선수가 된 동기가 웃긴데,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지각해 교장선생님에게 들켜 그를 잡기위해 달려오는 교장선생님을 따돌리기위해 뛰었는데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교장선생님조차 잡지못했다. 교장선생님은 그의 담임선생에게 단 한마디를 했는데 "야단치는건 나중이고 저녀석 미식축구부에 입부시키시요!"란 말이었다.

5. 관련 문서



[1] 흑백분리정책 철폐 전 흑인전용대학으로 설립되었던 소위 HBCU(historical black colleges & universities) 중 하나이다. 물론 지금은 모든 인종의 학생들이 입학가능하나, 지금도 흑인 학생들이 많이 재학 중이긴 하다. FCS의 SWAC(Southwestern Athletic Conference) 소속으로, 팀명은 '델타 데블스'. [2] 188cm. 근년 들어 190cm이 넘는 덩치 큰 스타 리시버가 여럿 나오고 있지만, 와이드리시버의 체격은 180~185cm 정도가 가장 흔하다.[3]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터렐 오웬스와 댈러스 카우보이스데즈 브라이언트, 그리고 채드 존슨이 있는데 오웬스는 이기주의적인 성향으로 비난을 받았고, 브라이언트는 중2병적인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며 존슨은 자신의 등번호 85번의 스페인어인 '오초-싱코(OchoCinco)'를 자신의 성으로 바꿨다. 즉 '''진짜로 성을 갈았다!'''[4] 팀 이름이 '델타 데블스{Delta Devils}'이다. 영어로 로고를 검색{Mississippi Valley State Delta Devils logo}하면 볼수 있는데 상당히 힙합스러운 이미지라 색다름을 준다.[5] FCS 소속으로 풋볼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명예의 전당 디펜시브 엔드인 Deacon Jones를 위시한 몇몇 NFL 선수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