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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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이다.
현대 인류 문명이 누리는 거의 모든 기술들의 근간인 전자기학을 정립한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받는다.
2. 생애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하였으며, 종종 비교되곤 하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등 괴팍한 물리학자들과 달리 매우 친절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한 예화로, 맥스웰의 어머니는 맥스웰이 여덟 살때 암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망한 그 날 어린 맥스웰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 정말 기뻐.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했는데[2][3] , 한 선교단체에서 '뛰어난 물리학자인 그가 신앙을 간증한다면 굉장히 설득력 있을 거다' 하고 간증을 부탁했으나, 맥스웰은 '전 신앙은 각자의 내면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1847년 열여섯 살에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고, 1850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으로 옮겼다. 185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수학 전공으로 졸업했다. 케임브리지 졸업시험(mathematical tripos)을 치르고 하인에게 결과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맥스웰은 자신이 당연히 1등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인이 돌아오자 "누가 2등했어?"라고 물었는데, 하인이 "너님이오"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수학 1등(Senior Wrangler)은 뛰어난 수학 지도로 유명한 수학자 에드워드 루스(Edward J. Routh)가 차지했다.
교육에도 열정적이어서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야간 학교 강사를 무보수로, 시간을 쪼개가며 꾸준히 해 주었다. 다만 그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정적이긴 한데, 이해는 안 된다.'고 평하였다.[4]
시골 마을의 지주기도 했는데, 매년 일정 기간은 마을로 돌아가 발전을 위해 힘썼다. 학교와 교회를 무료로 세우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좋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연상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병약한 그녀 옆에서 매일 저녁 책을 읽어주는 게 일과였다. 이 사랑과 일과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1879년 안타깝게도 위암으로 48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친구였던 의사에게 '그래,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라고 물어보았으며 사망 당일에는 조용히 기도하며 숨을 거두었다. 맥스웰의 어머니도 위암으로 사망했는데 이를 볼 때 가족력일 가능성이 있다.
흥미롭게도 그가 수학적 재능을 이용해 큰 도움을 주었던 마이클 패러데이 역시 독실한 종교인이자 훌륭한 인품으로 칭송받았다. 전자기학의 시작을 연 두 위인의 소소하지만 훈훈한 일화이다.
맥스웰의 가족으로는 아내인 캐서린 클러크 맥스웰(Katherine Clerk Maxwell)이 있다. 처녀 시절 이름은 캐서린 메리 듀어(Katherine Mary Dewar). 1824년생으로 남편보다 7살 연상이었다. 1858년 결혼했다. 캐서린은 가정에서의 내조뿐만 아니라 직접 남편의 과학 연구에도 조수로 참여했다. 말년에는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맥스웰이 직접 간호하는 일이 많았고, 맥스웰 본인이 사망하기 전에도 아내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다. 맥스웰이 사망한 뒤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캐서린은 1886년 12월 12일 사망했으며 남편과 같은 장소에 장례를 치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식은 없기 때문에 맥스웰의 직계 후손은 없다.
3. 전자기학의 창시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것들 중에 하나가 "달라보이는 현상들의 통합"이다. 뉴턴이 케플러, 갈릴레오 등의 업적을 기반으로 하늘과 땅의 운동을[5] , 아인슈타인이 로렌츠와 칼루차 등의 업적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을 통합했듯이, 맥스웰은 패러데이, 암페어 등의 업적을 기반으로 전기와 자기를 통합하였다.
과거 전기력과 자기력은 서로 전혀 다른 힘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외르스테드가 전기가 자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내자, 서로 다른 두 힘이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뒤, 패러데이가 '전기와 자기를 직접 설명하지 말고 전기장, 자기장과 전기력선, 자기력선으로 설명하자'라는 아이디어와 '전기와 자기는 서로 짝을 이룬다'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자기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다만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만으로는 전기와 자기를 완전하게 통합할 수 없었고, 그는 수학을 잘 몰랐기에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정리해 낼 수는 없었다. 이때 혜성처럼 맥스웰이 나타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더 추가함과 동시에 기존의 아이디어들과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으로 깔끔히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전자기학의 출발점이다.[6] 사실 출발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었다. 문자 그대로 시작이 반이 된 셈. 이외에도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일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는 피츠제럴드와 헤르츠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
한편, 맥스웰의 방정식에 포함된 장(Field)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추상적이었다.[7]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에테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물리학에서 추상적 개념이 도입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 그 외의 업적
14살 때 핀 2개와 실을 이용해 타원을 작도하는, 당시에는 아주 독창적인 작도 방식에 대한 논문을 냈다. 예전에도 데카르트 등이 같은 모양의 타원을 작도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나 맥스웰의 방식이 더 간편했다.
열역학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열역학에서 그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만 해도 열역학 퍼텐셜 사이의 관계식인 '맥스웰 관계식'과 일반적인 입자의 속도 분포에 쓰이는 '멕스웰-볼츠만 분포'의 2가지가 있다. 특히 후자는 통계역학의 언어로 열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완성한 것은 볼츠만이지만. 한편, 1876년에 열역학 제2법칙을 작살내는 가상의 악마를 가정한 사고실험인 맥스웰의 악마를 고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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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컬러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지만 영구 보존에는 실패한 프랑스의 알렉상드로 에드몽 베퀴에렐 이후 10년이 지난 뒤 제임스 C. 맥스웰은 컬러사진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1861년에 합성 컬러사진을 선보였다. 간단하게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필터를 앞에 끼고 사진을 찍은 것.[8]
이 외에도 회전혼합을 발견하는 등 색채학에도 기여했고, 헨리 캐번디시의 유고를 정리하는 작업을 맡기도 했다.
[1] Fellow of Royal Society의 약자로 왕립학회 회원임을 뜻한다.[2] 맥스웰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출신. 즉 기독교 중에서도 신교며, 북유럽의 대세 루터교와는 다른 계파. [3] 이 부분은 그의 선배인 마이클 패러데이와도 같다.[4] 어떤 분야의 천재라 해도 정작 그 지식을 남에게 가르치는 데에는 능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맥스웰도 그런 타입이었던 듯하다. 아인슈타인도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강의 실력은 형편없었다고 전해진다.[5]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지구에 있는 물체들은 다른 물리법칙을 따른다고 여겼다[6] 패러데이는 맥스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수학적 재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7] 전기장과 자기장이라는 게, 그냥 3차원 공간에 펼쳐져 있는 전기적 분위기, 자기적 분위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반면 뉴턴 역학의 개념들은 질량, 힘 등등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다수였다.[8]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컬러사진 - 사진으로 보는 총천연색 세상 (발명상식사전, 2012. 1. 10., 박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