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혜공
1. 개요
제나라의 제22대 군주. 제환공의 아들. 공자무휴, 제효공, 제소공, 제의공의 이복 동생. 제경공의 아버지. 그는 용식과 병융이 제 의공을 살해하고, 그를 추대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2. 재위 기간
제 혜공 원년(기원전 608년) 봄, 노나라 공자 축이 제나라에서 아내를 맞았다. 노나라의 실세 삼환(三桓) 중 계씨(季氏)의 우두머리 계손행보가 제나라에 예물을 바쳤다.
제 혜공 2년(기원전 607년) 여름, 제 혜공은 노선공과 평구에서 회맹했다.
제 혜공 3년(기원전 606년) 가을, 적적(赤狄)이 침입했다. 그것을 왕자 성보가 쳐서 그 추장을 죽이고 그 머리를 북문에 매달았다.[1]
제 혜공 4년(기원전 605년) 여름, 적적이 재침입하자 그것을 막았다. 가을에는 노 선공이 방문했다.
제 혜공 5년(기원전 604년) 봄, 노 선공이 제 혜공의 초대를 받았다. 제나라의 대부 고고(高固)가 그것을 말렸다. 그리고 그는 노 소공에게 딸인 숙희와 결혼하자고 했고, 가을 9월 숙희와 결혼하였다.
제 혜공 7년(기원전 602년) 여름, 제나라가 내(萊)나라를 쳤다.[2]
제 혜공 10년(기원전 599년) 여름, 제 혜공이 죽자 최저(崔杼)[3] ]는 혜공의 총애를 받아 국씨와 고씨는 그를 꺼려 그를 몰아내어 위(衛)나라로 갔다. 그리고 아들 강무야(姜無野)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제경공(齊頃公)이다.
[1] 왕자 성보는 제 환공 때부터 활약한 인물이다. 즉 이때는 노장이라는거다.[2] 내나라는 말이 나라지 사실은 동이족의 나라다. 노파심에 환빠들에게 말하자면 한민족과 아무 관련없다.[3] 이 양반이 경봉(慶封)과 함께 제나라의 국정을 농단했다. 그리고 경봉은 제경공(齊景公) 때 최저를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으나 경봉의 천하도 오래 가지 않아 경봉이 사냥 나간 틈에 고씨와 국씨 그리고 노포별 형제가 경봉의 일족을 주살하니 경봉은 제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 경봉은 초영왕이 오나라를 칠 때 동생이며 나중에 초평왕이 되는 웅기질(熊棄疾)이 경봉을 죽였다. 참고로 경봉의 존재 자체가 초 영왕이 오나라를 치는 명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