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효공
1. 개요
제나라의 제18대 군주. 제환공의 아들. 이름은 소(昭). 공자무휴의 이복 동생. 제소공, 제의공의 이복 형. 어머니는 정희(鄭姬).[1] 그를 제 환공이 송양공(宋襄公)에게 맡겼고, 그 결과는 신의 한수여서 역아와 수초가 무휴를 군주로 올리고 전횡하자 제 환공의 부탁을 받은 송양공이 조(曹)나라, 위(衛)나라, 주(邾)나라와 함께 강소를 데리고 수초와 무휴까지 죽이고 그를 세우니 그가 바로 제 효공이다.
2. 치세에 일어난 일
제 효공 원년(기원전 642년) 5월, 송 양공의 도움으로 즉위를 공식 선언하였다.[2]
제 효공 2년(기원전 641년) 가을, 진목공(陳穆公)은[3] 제후들과 회맹했는데, 그것은 제 환공이 덕을 잊지 않은 덕택이다. 겨울에 노나라, 진(陳)나라, 채나라, 초나라, 정나라는 제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제 효공 3년(기원전 640년) 가을, 제나라는 적과 형나라에서 회맹하니 형나라는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4]
제 효공 4년(기원전 640년) 봄, 적족이 위나라를 칠 때, 송나라, 제나라, 초나라가 송나라 땅 수지에서 회맹했다. 가을에는 송 양공, 초성왕(楚成王), 채장후(蔡莊侯), 정문공(鄭文公), 허희공(許僖公), 조공공(曹共公)이 분땅에서 회맹했다. 이때 초 성왕이 송 양공이 무례한 언사를 했다는 이유로 가두었다.[5] 12월 계축일 노나라가 박 땅에서 회맹에 참여했고, 이때 송 양공이 풀려났다.
제 효공 6년(기원전 637년), 제 효공은 송나라를 쳐서 민읍을 포위했다. 여름에 진(晉)나라의 공자 희중이(姬重耳)는 호모와 제강의 계략으로 제나라를 떠났다. 이때 송 양공이 1년전 홍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터져 죽었다.
제 효공 9년(기원전 634년), 제 효공이 북성을 치자 위나라가 제나라를 쳤다. 결국 조에서 회맹했다.
제 효공 10년(기원전 633년), 제 효공이 여름 6월 경인일에 죽었다. 그러자 아우 강반(姜潘)이 개방과 함께 효공의 아들을 죽이고,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제소공(齊昭公)이다.
[1] 정나라 여자라는 뜻이다.[2] 송 양공의 도움으로 제나라의 정국이 안정되었다.[3] 진문공(晉文公)을 도운 진목공(秦穆公)이 아니다.[4] 왜냐하면 형나라는 적족에게 망했는데, 제 환공이 되일으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국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5] 정확히는 패자 자리를 다투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