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계화보병여단

 





'''제1기계화보병여단'''
'''第一機械化步兵旅團'''
'''The 1st Mechanized Infantry Brigade'''
[image]
''''''
'''창설일'''
1946년 1월 15일(제1보병연대)
'''제1기계화보병여단'''
'''상징명칭'''
'''비호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수도기계화보병사단
'''규모'''
여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여단장'''
대령
'''위치'''


1. 개요
2. 상세
3. 편제
3.1. 여단본부
3.2. 군수지원대대 폭풍
3.3. 제17전차대대 돌파
3.4. 제102기계화보병대대 돌진
3.5. 제133기계화보병대대 재구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훈련
7. 사건사고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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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예하 '''제1기계화보병여단'''. 별칭은 '''비호부대'''.
참고로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도 있는데, 본디 1연대 수색대로 시작해 높으신 분들의 관심을 받아 연대급까지 증편된, 뿌리만 같은 별개의 부대다.

2. 상세


[image]
본디 국군의 모체인 조선경비대 연대들중 최초 창설된 '''1연대'''였으며, 시초라는 의미에서 제일(제1), 호(虎) 또는 비호라는 별명이 있다.
또한 1여단(제1보병사단)에 이어 7여단(제7보병사단의 전신)이 창설될 때 근간연대 중 하나였으며, 이후 7여단이 (구)수도사단으로 승격해 경기도 북부 동두천 부근을 맡다 6.25 전쟁이 발발해 동두천 전투, 의정부 전투를 치르나 모두 참패하고 서울까지 함락당하자 (구)수도사단은 해체되었다. 그 후 수도경비사령부가 재편된 신생 수도사단에 '수도'라는 명칭과 함께 예속돼 수도사단 밑에서 진천 전투를 시작으로 휴전 때까지 활약했으며, 월남에서 복귀한 이후 기계화부대로 변경되었다.
참고로 비호부대라는 별칭은 낙동강 전선(안강-기계 전투) ~ 대관령 전투 기간 동안 지휘관이었던 한신 장군(당시 대령)이 부대의 용맹함을 고취하기 위하여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쪽에서는 백호부대로 알려져 있는 듯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제36보병사단의 별칭이 백호부대이다. 하지만 1연대에 해당하는 내용의 제목이 백호부대인 것으로 보아 혼동하고 있거나 중국 측에서는 백호부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중국 쪽에서는 1953년 7월의 금성지구 전투에서 1연대를 격파하고 연대기를 노획하여 현재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해당 사진도 돌아다니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이를 확인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금성지구 전투 당시에 1연대 CP가 기습당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 당시에 연대기를 빼앗겼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단둥에 있는 항미원조기념관에 해당 부대기가 있다고 하는데, 링크된 블로그에 나와 있는 사진의 재현장면을 보면 백호(비호)기에 "우승"이라는 한자가 쓰여있어 정식 부대기라기보다는 사단 체육대회 등에 사용한 우승기 같은 것일 수도 있다.)단둥 항미원조기념관 백호부대(비호부대)기 내용이 있는 블로그
수기사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예하 대대가 한 주둔지에 모여 있다. [1] 여단의 사령부인 여단본부[2]와 예하 3개 대대가 한자리의 모여 있는데 어딜가도 이런 곳은 드물며 웬만한 부대는 1개 부대나 아니면 2개 부대 정도로 모여 있는데 4개 부대가 모여 있다는 건 거의 사령부 급 부대규모 수준이다. 덕분에 사단 예하 여단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최신식 막사를 갖추고 면회실 또한 최신식 시설로 있다. 특히 면회를 할 수 있는 부대 위수지역 안에 호수가 있는데[3] 거위와 오리 식구들이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여기가 군대인지 공원인지 모를 정도이다.[4] 겨울에는 이 호수에서 여단장이 동계체육활동으로 아이스하키나 동계체육활동을 개최한다. 사실 안 할 때도 있다.
바로 사단 본부가 근접해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덕분에 본부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실시하고자 한다면 바로 개천 건너있는 이 여단이 모르모트가 되는데 중고등학교 때 신물나게 들어온 지정학적 위치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된다.[5] 여기에 대대장이나 여단장님이 뭔가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답이 없다. 그냥 '시간이 진짜 빨리가니 축복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이롭다. 덧붙여서 소속부대가 예하의 전차대대라면 그 축복은 두 배. 절대 인원은 기보대대의 절반 수준이며 상당수가 하사 이상의 간부이기에 더욱 인원이 부족한 부대가 주둔지 넒이만큼은 기보대대 두 개 합친 정도! [6]
부대 내부에 재구공원이라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다.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고, 부대 개방행사 때나 들어가 볼 수 있다. 부대 장병들도 가지 않는 곳이다(산책을 좋아한다면 갈 수 있겠지만 싸지방 가기도 바빠죽겠는데 그런 데 갈 시간이나 있을까?). 그러나 아침 구보 코스 중 하나라서 하루에 한 번씩은 공원 앞을 지나친다. 체력단련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주 용도는 사단에서 하는 재구제[7] 행사를 지낼 때 사용하고 위치가 여단 연병장 사열대 국기게양대 뒤이다.

3. 편제


  • 여단 본부
  • 군수지원대대
  • 제17전차대대 돌파
  • 제102기계화보병대대 돌진
  • 제133기계화보병대대 재구

3.1. 여단본부


  • 본부중대
  • 통신중대
  • 의무2중대
전체적으로 인원이 적다. 본부중대의 경우에도 100명이 넘는 경우가 잘 없으며 통신중대의 경우 인원이 전투중대의 소대급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본부중대에서 보급 등을 모두 받으며 중대장도 초임대위가 주로 온다.
그 외 의무중대는 사단 의무근무대에서 파견을 나온 형식으로 되어있다.

3.2. 군수지원대대 폭풍


대한민국 육군 기계화사단 최초의 군수지원대대
  • 보급수송중대
  • 정비중대
여단본부와 건물을 같이쓰며, 대대급이지만 인원은 중대급이다.

3.3. 제17전차대대 돌파


1972년 창설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인원이 적어ASP파견을 가지 않는다. 대부분 병력이 전차승무원으로 행군 시 군장을 매지 않는것이 특징. 편재상 군의관이 없어 여단 직할대에 있는 의무중대를 이용한다. 이외에도 여단본부와의 교류가 다른 대대보다 많은 편

3.4. 제102기계화보병대대 돌진


국군의 최초 창설 부대, 국군의 모체 부대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ASP파견을 133대대와 번갈아 간다. 그냥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기보대대이다.

3.5. 제133기계화보병대대 재구


재구대대 2중대는 재구 중대라고 불림. 강재구 소령이 사망 전까지 중대장으로 있었다. 또한 기계화보병사단 예하부대 중 최초로 KCTC 훈련을 실시한 부대다. 참고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당시 여기 대대장으로 있었다.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재구대대에 대한 내용은 강재구 소령 문서 참조. ASP파견을 102대대와 번갈아 간다.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역대 제1기계화보병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예) 대령

여단장

00대

대령

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훈련



7. 사건사고



8. 여담




[1] 어느 대대는 국군의 모체부대, 어느 부대는 강재구 소령의 후예들, 어느 부대는 북한군을 전차로 깔아 뭉겐다는 부대.[2] 여단 본부 같은 경우 일반 부대원들보다 인원수가 적지만 엄연히 여단을 관리하는 부대로 별개의 관리 부대로 친다. 기보사단 예하 여단은 여단본부라 하고, 독립여단 지휘부는 여단 사령부라고 한다(다만 독립여단이어도 여단본부 명칭을 쓰는 예외도 있다. 자신을 휘하로 두는 군단과 아예 부대마크까지 공유하면서 그 군단의 직할대 정도 역할을 하는 모 여단이 그 예).[3] 비호호수라 불리며, 예하 모 대대가 관리하고 있다. 평일이나 휴일 직전에 제초작업 및 기타 작업을 한다.[4] 단 PX가 위수지역 안에 있지 않고 부대 안 위수지역 밖에 깊숙한 곳에 있어서 따로 물건은 사지 못한다고. 뭐 여차하면 면회하고 있는 군인이 부대 안에 들어갔다와서 사와도 되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대대 PX 전부 다 그렇다고 한다. 여단 자체PX는 없어서 17대대 PX를 이용한다고. 과거 2000년대 초반에는 호수 옆에 주말만 여단에서 운영하는 PX가 있었다.[5] 대신 본부와 교류가 워낙 많아 사단에서 검열 같은 거 나와도 그렇게 빡시게 보지는 않는다. 서로다 아는 사이라 그런 듯.......[6] 예전의 경우 여단장의 출퇴근길인 여단주도로의 유지보수도 전차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다(지금은 확인 불가). 눈이라도 오면 중대에서 열댓 명 차출되어 눈만 벗겨내는 데도 급급한 전차대대와 백 명 가까운 인원이 우르르 나와 눈을 삭제하고 각까지 잡아놓는 기보대대 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곤 했다. 가끔 대대 중 일부가 훈련나가면 잔류 중대는 주간에는 말뚝보초를 세우고 야간에는 두 번씩 초병 나가는 식으로 운영해도 누군가는 세 번 나가는 운나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훈련 때마다 포상휴가증은 쏟아지지만 이런 고질적 인원부족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7] 강재구 소령을 추모하기 위한 제사로 매년 한 번씩 하는 제사이다. 이날은 사단장도 꼭 한 번씩 와서 재구공원에 있는 재구상에 예를 표하고 가기 때문에 여단 장병들이 청소를 하게 되는데 나무를 깍든다든지 돌을 치우고(작거나 땅에 박힌 큰돌을 뺀다) 잡초를 뽑게 되는데 쉬울 거 같지만 여름에 하는 일이고 풀을 뽑거나 돌을 버린 걸 마대에 담아서 멀리 오르막길에 있는 탄약고 쪽에 버리라고 한다.(이짓을 재구중대가 다한다 제구제를 하기 전 일주일부터 하는데 힘들어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