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기동군단

 



'''제7기동군단'''
'''第七機動軍團'''
'''VII Maneuver Corps'''
[image]
'''공세기동 북진선봉!'''
'''창설일'''
1969년 1월 18일(동해안경비사령부)
1982년 8월('''제7기동군단''')
'''상징명칭'''
'''북진선봉'''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명령 체계'''
[image] 지상작전사령부
'''규모'''
군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군단장'''
[image] 중장 허강수(3사 23기)
'''부군단장'''
[image] 준장 이충훈(육사 44기)
'''참모장'''
[image] 준장 ㅇㅇㅇ(육사00기)
'''위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1. 개요
2. 상세
3. 편제
3.2. 예하부대
4. 과거부대
5. 출신 인물
5.2. 장교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3. 군단가
7. 사건사고
8. 여담

'''군단사령부령 '''
'''제1조(설치)'''
① 육군에 군단을 두며, 그 관할구역의 작전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하여 군단사령부를 둔다.
② 군단의 명칭은 대통령이 정하고, 군단의 예속(隸屬)은 육군참모총장이, 군단의 배속(配屬)은 합동참모의장이 정하며, 군단 관할구역은 직속상관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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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동군단'''[1]으로서 1980년대 초반에 창설된 부대이다. 베트남전 이후 72년 수도사단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이후 (구)제20보병사단을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고 7군단을 본격적인 기동 군단으로 편성하게 된다. 예하에 전차기계화보병, 그리고 자주포로 구성된 강력한 기계화보병 사단만을 두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의 군단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화력을 보유중인 최상급 기동전 제대다.
1969년 1월 18일 現 제7기동군단의 전신(前身)인 동해안경비사령부로 처음 창설되어,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하여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지역까지 방어하였다. 당시 동해안경비사령관은 한직이었다고 한다.[2] 동해안경비사령부는 1982년 8월 개편되어 7군단이 되었고 이듬해인 1983년 임무가 바뀌어 공격에만 주력하는 기동군단으로 선택되었다. 사령부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다. 이후 2016년 12월 1일을 기해 제8기동사단, 제11기동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3]을 배속받아 타 군단들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까지 자랑하게 되었다. 이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해당 사단들을 해체하여 여러 개의 기갑 여단으로 개편하려는 계획에서 통제의 용이성을 위해 임시 배속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2. 상세


유사시 북한군이 남침하면 주둔지에서 방어하며 조금씩 물러나 전력을 보충받은 후에 북진하는 여타 군단들과는 달리, 초전부터 주둔지를 떠나 북쪽으로 진격하여 기동전을 펼치는 군단이다. 그래서 포병여단 예하 대대는 다른 군단 지역으로 넘어가서 훈련하고 돌아온다. 때문에 하고 있는 훈련들도 대부분 기동전에 관한 것이며, 방어작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상급부대 지휘소연습에 참가할 시에는 방어훈련간에는 할 일이 없어서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할 것이 없기 때문에 온갖 잡다한 것을 상황보고에 끼워넣느라 고생한다. 물론 공격훈련 시에는 그야말로 단독주연으로, 혼자서 다 해내야 하기 때문에 7군단장은 매우 요직이며, 군단장 역임은 대장진급의 직진신호이기도 하다.[4] 사실상 오로지 공격뿐인 부대. 아예 경례구호부터가 '''북진'''이다. 방어가 주 임무인 다른 군단과는 달리 사령부 시설에 그다지 투자도 하지 않는다. 그 흔한 극장 하나 없으며[5] 사령부 건물도 다른 군단과는 구조도 다르다. 다른 군단 사령부 건물은 죄다 지하에 있어서 밖에서는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반면 제7기동군단 사령부만 유일하게 지상에 올라와 있다. 전쟁나면 버리는 건물이라 시설에 별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아시아의 다른 부대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강한 전투력을 지닌 부대이다.[6]기동군단의 특성상 예하 사단이 모두 기계화보병사단밖에 없으며 그 기계화보병사단들조차 엄청나게 중무장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한 전차의 과반수가 이 부대 하나에 몰빵되어 있다. 실제로 부대 단위만 군단이지 전투력으로 따지면 야전군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하다. 2017년의 한 기사에 따르면 유럽의 3강이라 불리는 독일, 프랑스, 영국의 전차를 모두 합쳐도 7군단 하나만 못 하고[7] '''전시''' 이스라엘의 기갑군단 규모가 '''평시''' 한국군 7군단과 맞먹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기괴할 정도로[8] 거대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부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항 중 하나는 이 군단의 보급 상황이다. 공격전을 수행하는 기동군단의 특성상 우수한 기계화 장비가 필요하기에, 기계화 장비의 보급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부대이다.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K-1A1 전차, K-21 보병전투차, K-2 흑표 전차를 전군에서 가장 먼저 수령한 부대이며, 개편 이전까지 다른 한 부대였던 수도기계화보병사단도 차순위로 해당 장비들을 수령하여 국군 중 가장 빠르게 신형 기계화 무기체계들로 무장한 부대가 되었다. 더구나 K-MLRS, K-9 같은 기계화/기동화 포병장비들 또한 이 군단의 예하 포병제대들에 우선 배치되어 있어 육군 군단 중 가장 화력이 강한 군단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개편 이후 기계화보병사단을 더 배속받아 총 5개 사단 체제로 확대됨에 따라, 다른 일반 군단들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게 되었다. 다만 이는 지상군 개편에 따른 한시적인 편제일 뿐이다.
예전에는 전략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7군단 예하 제7포병여단에는 '제1000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 미사일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다른 군단과 달리 제대로 된 관할 위수지역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7군단 지역이 수도군단 지역과 제6군단 지역이 겹치기 때문.
평시 담당구역이 없기 때문에 각종 훈련 참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연구 배당 등이 매우 잦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른 군단은 몇 년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 '군단급 FTX 연습'에 매년 참가한다. 홀수년에는 통제부대, 짝수년에는 실제 훈련부대로 참가하는데, 통제부대든 훈련부대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령부 작전과의 업무량이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이쪽 간부들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데도 몇 달간 못 보고 사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전처 간부와 행정병이 함께 늙어가게 된다. 행정병들은 매일 야근을 불려가서 야간점호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며, 작전처나 정보처 내무실들은 전원이 사령부에서 일하느라 점호시간에 아예 한 명도 남아 있지를 않아서 내무실 문을 잠궈놓기 일쑤다. 특히 훈련과 각종 보고가 피크를 이루는 3월-6월경에는 야간점호나 아침점호를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과 후 본부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방송은 누군가를 야근으로 부르는 전화가 왔다는 방송이며, 장교들의 인사이동이 있는 늦가을을 제외하면 일 년 내내 바쁘다.
사령부의 주요장교들은 소령급인데 소령에서 중령으로 올라서려면 그야말로 피와 살을 깎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특히 육군 주요보직은 보병병과가 차지하기 때문에 기갑병과는 진급이 쉽지 않은데 7군단사령부는 그나마 기갑 병과 간부들이 진급하기 쉬운 곳이다. 가끔은 한 처부에서 중령 진급자가 두 명이나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만큼 요직을 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실제로 소령들끼리 서로 작전장교를 맡겠다고 드잡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부대 안에 야생화된 흑염소 무리가 산다. (최소한 이준구 중장 이전의) 군단장이 사적으로 기르던 것을 방사했더니 야생화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름에는 낮은 지대-화학대- 쪽으로 내려가고, 겨울에는 높은 지대-통신단- 쪽으로 이동하며 사는 듯하다. 닭도 방사해서 키우고 있다. 토끼도 있다.[9]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따라 곧 제30기계화보병사단을 배속 받아 예하에 3개 기계화보병사단을 편제할 예정이었다.#[10] 그러나 8사단, 11사단, (구)26사단이 2016년 12월 1일부로 7군단 예하에 배속되었다. 당분간 군단 전투력만은 야전군 수준인 군단이 되어버렸다(...).
2018년 11월 30일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제8기동사단으로 흡수되어 해체되었고 2019년 11월 30일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통합되었다.
2021년 1월 1일 (구)제2보병사단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되어 7군단 예하부대가 되었다.[11]

3. 편제



3.1. 직할부대


  • 본부근무대
  • 제17항공단[12]
  • 제107정보통신단[13]
  • 제1강습대대[14]
  • 제2강습대대
  • 제7경비대대
  • 제17화생방대대
  • 제517방공대대
  • 군사경찰대대
  • 군악대
  • 보충중대
  • 통합의무실
  • 지원부대
    • 제7군수지원단(제1군수지원사령부)
    • 국군구리병원(국군의무사령부)
    • 양평종합훈련장[15]

3.2. 예하부대


  • 수도기계화보병사단(맹호부대)
  • 제2신속대응사단(노도부대)[16]
  • 제8기동사단(돌격부대)[17]
  • 제11기동사단(화랑부대)[18]
  • 제7포병여단(북진선봉)
  • 제7공병여단(태극공병, 북진공병)[19]

4. 과거부대



5. 출신 인물


7군단장을 역임한 인물은 거의 대부분 대장으로 진급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취임한 23대 군단장 김장수 중장 이래 2013년 지휘관인 30대 박찬주 중장까지 군단장을 역임한 8명 중 대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4명이다. 즉 확률이 높긴 하지만 7군단장을 역임했다고 해서 무조건 대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7군단장은 육군에서도 손꼽는 요직이다.[20] 그래서 여기로 들어오는 사람은 중장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며, 7군단장 대다수가 대장으로 승급했기 때문에, 7군단장 = 4성 장군 확정 코스라는 지금의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최근 대장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군단은 1군단5군단이다. 그리고 결국 휴전선과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군단장의 대장 진급 여부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무조건이 아닐 뿐,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배출한 군단장 보직'''이니만큼 '''진급코스 최상위 보직'''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육군 1차 대장 자리는 3개뿐인데(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21] 육군 중장은 20명이 넘는다. 4명이 한꺼번에 갈려도 중장의 상위 1/5밖에 진급을 못 한다. 그 와중에 최근 8명 중 4명이 대장 진급했다는 것은 확실히 엄청난 것이다. 이 이상 가는 보직자리는 합참 작전본부장이나 전략기획본부장 정도인데 이 자리들은 참모고 7군단장은 '''지휘관'''이다.[22]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1군단과 5군단에게 밀리는 추세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두고봐야 할 일. 7군단은 2010년대 들어서 30대 군단장 박찬주 이외에 대장 진급자가 없는 반면 1군단은 엄기학, 김용우, 서욱 3명의 군단장이 연속으로 대장에 진급했고 5군단 또한 4명의 군단장(김현집, 김영식, 임호영, 최병혁)이 대장으로 진급했다.[23] 게다가 34대 군단장 윤의철 중장은 교육사령관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대장으로 진급할 가능성이 대단히 낮아졌다.
문제는 최근에 보직한 군단장들 중에서 박찬주, 장재환, 윤의철 이 3명은 질적수준이 굉장히 낮아서 도대체 어떻게 장성급 장교까지 올라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썩어빠진 인원들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요직임에도 불구하고 대장 진급이 매우 더뎌져 가고 있다.[24]

5.1. 군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군단장.
'''역대 제7기동군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19대
이현부
예) 중장
육사 20기

[25]
20대
이유수
예) 중장
육사 20기
국방대학교
[26]
22대
이선민
예) 중장
학군 6기[27]
군단장

'''23대'''
'''김장수'''
'''예) 대장'''
육사 27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부, 국회의원(한나라당),
국가안보실[29]
'''24대'''
'''김병관'''
'''예) 대장'''
육사 28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30]
'''25대'''
'''김근태'''
'''예) 대장'''
육사 30기
제1야전군사령관
국회의원(새누리당) [31]
26대
김영후
예) 중장
육사 31기
군단장
병무청장
'''27대'''
'''박성규'''
'''예) 대장'''
3사 10기
제1야전군사령관
[32]
28대
이준구
예) 중장
육사 34기
군단장

29대
임국선
예) 중장
학군 17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33]
'''30대'''
'''박찬주'''
'''예) 대장'''
육사 37기
제2작전사령관
[34]
31대
장재환
예) 중장
육사 39기
육군교육사령관
[35]
32대
이종섭
예) 중장
육사 40기
합동참모차장

33대
이정기
예) 중장
육사 41기
육군항공작전사령관

34대
윤의철
중장
육사 43기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
[36]
35대
허강수
중장
3사 23기
군단장


5.2. 장교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 김동호 - 제7군단 참모장 역임
  • 박주경 - 제7군단 참모장 역임
  • 강인순 - 제7군단 작전장교 및 참모장 역임


5.3. 병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 강은탁(영화배우) - 2010년 10월 군번으로 군단 사령부 간부식당에서 근무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근무여건 때문에 사령부에 근무하는 본부대 병사임에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37] 당시 부대 내 병사 증언에 의하면 출연했던 CF 덕에 '질레트 퓨전' 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6. 기타



6.1. 근무환경


부대 내에 신막사와 구막사가 짬뽕되어있어 막사 생활환경은 복불복이다. 신막사 같은 경우에는 2010년도 안팎으로 지은 건물들이라서 타부대에 비해 시설이 매우 훌륭하다(궁금하면 진짜사나이 청룡대대편을 참고하자)
다만 교통편이 매우 열악하다. 외출, 외박 시간을 대부분 이천시내나 장호원, 태평리에서 보내는데, 외딴 시골구석이라 근처에 버스정류장은 배차 간격이 하루 3~4대 이런 식이다. 그렇기에 출발이나 복귀 시 부대에서 운영하는 부대버스를 이용하여 가까운 시내까지 가거나 콜택시를 이용한다.

6.2. 상승레스텔


'''상승레스텔
上昇레스텔
Sang Seung 레스텔
'''

'''위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경충대로 719-13

6.3. 군단가


1절 군단가 링크
'''<1절>'''
겨레의 부름에 젊음을 바쳐
조국수호 다짐한 피끓는 용사
필승의 함성 아래 굳게 뭉쳤다
나가자 앞으로 백두산까지
내 생명 백골되어 다할 때까지
북진선봉 주력되자 기동 7군단
'''<2절>'''
민족의 소망아래 목숨을 걸고
조국통일 맹세한 피끓는 용사
북진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진격이다 앞으로 두만강까지
원수의 붉은무리 멸할 때까지
민족통일 선봉되자 기동 7군단

7. 사건사고


  • 1992년 2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발생한 지휘관 헬리콥터 추락사건이다.


8. 여담


  • 위의 개요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빠르게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부대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2013년 중에 평일 06시에서 06:30에 기상하는 시범운영 부대 중의 하나였다.(그 외의 부대는 육군훈련소, 육군정보통신학교도 있다.) 이 기상시간의 변경은 추후 전 군으로 확산되어 동계나 하계 상관없이 평일 06:30, 주말 07시 기상으로 전군 정착이 되었다.
    • 2016년부터 권역화 동원훈련 부대로 선정이 되었다.
  • 7군단은 우리나라 군 통신체계 구성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부분이 있는데, 2010년대 초반 군 일반전화(흔히 말하는 전술전화망을 제외한)망을 IP기반으로 바꾸는 시범사업을 시행하여 구축한 부대이다.관련기사 이때, 시범사업 버프를 좀 받았는지 일부 전화기들은 화상전화(...)기능을 가지고 있다.
  • 이외에도 군 전술전화망의 경우도 광케이블 관련 장비도 시범용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현용으로 운용하는 전술망을 활용하여 차기 전술전화망과 호환되게 하는 신규 장비로 추정.
  • 군단 사령부에 작게나마 역사관이 존재한다. 부대개방행사 등을 할 때 입장 가능한데 우리나라 기갑사를 훑어볼 정도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방문을 권한다.
  • 예하 사단의 사단장 인사명령상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던 강인순 소장(육사 44기)이 훗날 7군단장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사실 강인순은 기갑 병과인 데다, 중령 시절에도 동기들이 대대장을 하고 있던 2005년 당시 이미 대대장 보직을 무사히 마치고 7군단 작전처 작전계획과장을 역임했는데 동기들보다 진급과 보직이 한 단계 이상 빨랐다. 그리고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보직을 무사히 완료한 후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 발령되었는데 이때도 동기들은 아직 사단장에 보직되어 있었으며, 2019년 현재 맡고 있는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으로 이 보직은 소장 보직이지만 사실상 중장(진)급이라 봐도 좋은 보직이다.[38] 하지만 1차 진급 때 물먹어서[39] 중장진급시 수도방위사령관이나 제1군단장, 제5군단장으로 갈 확률이 높아졌다.[40]결국 2차도 진급에 물먹었다.
  • 명칭이 비슷한 해군 제7기동전단과 딱히 관련은 없지만, 책임구역 내 지역방어 위주의 다른 부대와 달리 유연하게 운용되는 기동예비 부대라는 점은 똑같다.

[1] 90년대에 6군단이 기동군단으로 개편된 적이 있으나 다시 통상 군단으로 돌아왔다.[2] 1979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12.12 쿠데타를 일으킨 배경에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월권을 보다못해 이곳으로 보직이동을 시키려고 했던 것도 원인이었다.[3] 2018년 11월 30일 제8기동사단으로 통폐합[4] 그러나 대장 진급에 성공한 마지막 제7기동군단장은 박찬주 대장이다. 2014년 10월 제2작전사령관으로 이동하였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제1군단제5군단에서 대장 진급자들이 주로 나오고 있다.[5] 북진관이라는 다용도관에서 매주 상영한다. 좌석은 없다. 때문에 접이식 의자나 오락실 의자를 지참해서 관람한다.[6] 베트남 같은 신흥공업국 수준의 군대는 일개 국가의 군대가 모조리 다 몰려와도 이 제 7기동군단의 상대가 못 된다.[7] 물론 유럽이 NATO와 미국에 국방을 아웃소싱하다시피 하는 곳인 점은 감안해야 한다.[8] 물론 그 이유야 다들 알다시피 북한, 중국 등과의 대규모 지상전 때문이지만.[9] 이준구 중장-박성규 중장-김영후 중장 때에도 관사에 동물은 많이 있었다.[10] 본 기사에서는 30기보사를 배속시킬 예정이라고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3개 기계화보병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텐데 11, (구)26, 8사단이 해체될 예정임을 감안한다면 30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11] 작전권은 제2작전사령부에 있음.[12] 항공단 야전 군단 직할 배치 계획에 따라, 군단 직할부대로 편성.[13] 제771통신대대와 통신운용대대(제3151부대)가 있다. 특히 제3151부대의 경우 위성장비(위성 운용/정비)를 사용하는 통신대대이다. 참고로 위성장비는 스파이더망으로 잘 알려진 TMR(무선전송장비 운용/정비)이나 타 각종 통신 장비에 비하면 매우 비싼 장비로 사단급 이상부터 배치되는 장비이다. 자세한 내용은 통신병 문서를 참고.[14] 현재 대한민국 전군 유일의 공중강습부대이며 94년 개편 이전에는 제707특공공정연대였다.[15] 제61기계화보병여단에서 관리중이다.[16] (구)제2보병사단 해체 후 개편된 부대로 사단 사령부와 본부근무대 인원을 편제하고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사령부 자리에 주둔하고 있다. 소속은 7군단이지만, 작전권은 제2작전사령부에 있으며, 2021년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창설되었다.[17] 21년 1월 1일부로 기계화사단에서 명칭변경[18] 21년 1월 1일부로 기계화사단에서 명칭변경[19] 2013년에 진짜사나이에서 촬영된 적이 있다. 7공병여단 청룡대대#17공병여단 청룡대대#2[20] 상술되었다시피 대다수의 신형 무기체계가 가장 먼저 실전배치되는 곳이다.[21] 물론 총장을 1차로 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용우 장군과 서욱 장군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며 바로 육군참모총장직에 올랐다. 링크 [22] 대장 진급자들을 보면 중장 1차 보직으로 군단장, 2차 보직으로 육군참모차장 또는 합참 본부장을 맡았다. 2차 보직으로 교육사령관, 군수사령관, 국방대 총장을 맡았던 중장들 중 대장 진급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 재임 중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 케이스는 김현집 장군이 마지막이다.[23]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육사 37기 동기인 박찬주, 엄기학, 김영식이 대장으로 진급했을 때 엄기학과 김영식이 전방의 3야전군, 1야전군 사령관을 지낸 것에 비해서 7군단장 출신의 박찬주는 후방의 2작전사령관이 되었다.[24] 이는 지휘관 보직 중에서 7군단만이 요직이 아니라는 것도 크다. 1군단은 최대 규모의 포병여단과 제30기계화보병사단에 더해 3개 보병 사단까지 보유한 최대 규모 군단인데다 수도권 북부 전체의 방어는 물론 차후의 반격까지 행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다. 5군단은 분지 지형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 번 공략당하면 반격이 어려운 철원이 포함된 중동부전선을 책임지는 중책이다. 게다가 최근 군의 경계 실패 사례가 많아져 최전방 보직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또한 이외에도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같은 중책도 넘친다.[25] 군단장. 기계화보병의 아버지이지만, 부임한 지 얼마 못 가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26] 기갑출신 첫 3성장군, 기갑출신 첫 군단장'''.[27] 부산대학교[28] 이게 대단한 게 '''국방부 장관을 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예편 처리시킨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2007년 12월까지 재임해야 하지만 2006년 12월에 전역했다.[29] 대장까지 진급하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예편[28],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2013년 2월 신설된 국가안보실의 초대 실장에 임명되었다.[30]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거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 이 사람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공과를 한 학기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진로를 바꿔 육사에 지원해 수석으로 입학 후 수석 졸업까지 했다. 한국경제 기사 심지어 곧바로 육사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대를 한 학기 다녔다가 들어간 이유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워낙 입시 위주 교육만 받는 바람에 사회성이 부족하다 싶어 1년 쉬었다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新東亞 인터뷰 또한 손자병법에 통달한 전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2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오전 8시에 시작한 전술 강의를 오후 6시에 끝낸 것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2013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방산업체 로비문제가 불거져서 자진 사퇴하였다.[31]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이근안에게 고문당했던 민주화운동가/정치인인 김근태와는 무관한 동명이인). 전역 후 새누리당에 입당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자격을 상실했다.[32] 3사 출신 가운데 2번째로 대장에 진급한 동시에 이 출신 최초로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7군단장에서 교육사령관을 거쳐 제1야전군 사령관에 보임되었다.[33] 이 사람은 소장이었던 20사단장 시절 예하부대를 순시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노인을 발견하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조해내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기사 전문 2013년 4월 군단장 임기를 마치고 2작사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대장 진급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보직은 육군 본부 정책관이다. 학군 17기로 임관했는데 특이하게 임관하자마자 특전사 부중대장이 된 탓에 소대장 경력이 없다.[34] 2014년 10월 육군참모차장으로 이임하고 이후 까지 지냈다가 이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 발생했다.[35] 2017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으로 전군의 공관병 갑질 등의 전군의 대대적인 조사로 부대복지기금을 전용해 지휘관 관사 비품을 구매한 것이 발각되어 대장 진급에 차질을 빚고 김용우에게 시원한 물 한사발을 쳐먹었다.[36] 2018년 12월 7일 취임하였는데, 비합리적인 수준의 체력단련 강조와 동시에 특급전사를 강요하고 특급전사가 아닌 인원을 비하하는 등으로 군 안팎에서 논란이 발생하고 있어서 7군단의 간부와 병사들은 윤의철이 빠른 시일 내 떠나길 바라고 있는 분위기이다. 결국 2019년 후반기에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37] 군단 본부대 본청 간부식당 병사들은 진짜로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 간부식당 동기를 두었던 본부대 병사의 말이다. 꼭 본부대 취사병뿐만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취사병들도 대부분 저런 패턴이 많다.[38] 수많은 1군, 3군 사령관이 거쳐갔고 무려 전직 대통령도 거쳐간 자리이다.[39] 2019년 하반기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육사 44기 동기인 박정환, 강창구, 김현종 소장과 3사 23기인 허강수 소장, 학군 26기인 박양동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였는데, 이 중 허강수 중장이 7군단장을 맡았다.[40] 각 지휘관들인 김선호, 황대일, 안준석 중장은 모두 육사 43기이며 대장 후보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