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曹幹
(216년 ~ 261년)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황족으로 조조의 아들이다. 일반적으로 조충이 막내 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조충은 196년생이므로 216년생인 조간보다 20살이나 많다. 다만 208년에 사망해서 조간이 태어나기 8년 전에 먼저 죽었다.
2. 정사
조조가 환갑인 60세를 넘어서 본 엄청난 늦둥이. 워낙 늦둥이라 조비보다는 30살 어리고, 조카인 조예보다도 10살 이상 어리다. 너무 나이 들어서 본 자식이라 조간이 겨우 5살인 220년에 조조가 죽었다.[1]
어머니는 왕소의(王昭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략》에서는 사실 그 생모는 진씨(陳氏)로 조간이 3살 때 죽어 왕소의에게 양육되었다고 기록했다.
태어났을 때는 고평정후(高平亭侯)에 봉해졌으며, 1살 때 뇌정후(賴亭侯), 홍농후(弘農侯)로 바뀌어 봉해졌다.
위략에 따르면 조조는 병이 깊어지자 막내인 조간이 걱정되어 조비를 불러 "이 아이는 3살에 어미를 잃었고, 5살에 아비를 잃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각별히 부탁한다."고 말하며 조간을 보살펴줄 것을 부탁했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왕에 오른 다음에 후한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는 제국이 되었다. 조간의 지위도 덩달아 올라가 연공(燕公)에 봉해지고, 7살인 222년에 하간왕(河間王)에 봉해졌다. 조비는 어린 조간을 곁에 두고 보살폈는데, 조비와 조간의 나이 차이가 무려 30살이나 되니 조간이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조비는 "나는 너의 형이다."라고 고쳐주고, 어린 동생을 가련하게 여겨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다른 형제들에게는 냉혹하게 대했던 조비도 조간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것이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상당히 잘 대해준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유언도 있지만 조간이 워낙 어리기도 하고, 조비는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후계자로 확정된 이후라 전혀 위협이 될 수도 없었던 만큼 조비도 굳이 가혹하게 대할 이유가 없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조비도 조간이 11살이던 226년에 죽게 되어 21세로 즉위한 조카 조예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고, 232년에는 조왕(趙王)에 봉해졌다. 조예 시대에 제후왕이 빈객과 만나고 왕래하는 것을 금지한 위나라의 국법을 어겨 감시가 파견되고 조예가 조서를 내려 경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비가 조예에게 조간을 특별히 부탁했기 때문인지 그 밖에 특별한 제재는 받지 않고 이후로도 평온하게 지냈다.
식읍이 계속 늘어나 최종적으로 5천 호의 방대한 식읍을 거느렸다고 하며, 261년에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3.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조간의 어머니 진씨가 조조가 낮잠 자다가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때려 죽인 일화의 첩으로 나오는데, 사실은 집안의 일을 바깥에 떠벌렸다는 이유로 죽인 것이다. 조간은 어려서 어머니가 죽은 것을 몰랐지만 조조의 호통에 놀라 크게 우는 모습으로 나오며, 조조는 장제의 처였던 왕씨에게 조간을 아들로 삼게 한다.
[1] 큰아들 조앙과 비교하면 생몰 미상이지만 170년대 초 출생임을 감안하면 '''무려 45세 차이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