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문
1. 개요
문장 혹은 명제의 일종. "가언문", "가언명제", 함의문라는 명칭도 종종 쓰인다. 영어로는 '''conditionals'''.[1]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자연 언어에서 널리 쓰이며, 한국어에서 쓰이는 대표적인 문형은 다음과 같다.
영어에서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형이 쓰인다.'''만약에 ( -)면, (……)다.'''
기호논리학으로 표현할 경우, 가장 '중립적으로' 쓰이는 기호는 '→'이다.'''If ( -), then (……).'''
이때 앞에 오는 'P'를 "전건(antecedent)", 뒤에 오는 'Q'를 "후건(consequent)"라고 부른다.$$P \to Q $$
논리학적, 언어학적, 철학적으로 많은 분석이 이루어졌으며, 여전히 여러 쟁점이 남아있는 주제.
2. 실질 조건문: 고전 논리를 통한 분석
'''Material conditionals'''
현대의 실질 조건문과 비슷한 형태의 분석은 메가라학파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실질 함의문(material implication)"이라는 명칭을 제안하고 명시적인 정의를 제시한 것은 버트런드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다. 『수학 원리』에서 실질 조건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이때 "P ⊃ Q"는 '''"P가 아니거나, Q다."'''로 정의된다. 즉 P ⊃ Q는 오직 P가 참이며 Q가 거짓일 때에만 거짓이며, 나머지 경우에는 참이다.$$ P \supset Q$$ [2]
즉 다음과 같은 논리적 동치가 성립한다.
$$ \left( p \supset q \right) \equiv \left( \neg p \vee q \right) $$
진리표를 사용할시 'P ⊃ Q'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조건문을 실질 조건문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곧 ''''P → Q'를 'P ⊃ Q'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만약 사과가 과일이면, 과일은 고체다"는 "사과가 과일이 아니거나, 과일은 고체다"와 같은 의미로 정의된다는 것.
2.1. 논리학적 특성
실질 조건문 연산자 '⊃'는 진리함수적(truth-functional)이다. 요컨대 연산항 'P'와 'Q'의 진리치가 결정될 경우 조건문 'P ⊃ Q'의 진리치 또한 자동으로 결정된다.
메타논리학적으로 연역 정리(deduction theorem)가 성립한다. (전제 집합이 공집합이라고 가정할 경우) 연역 정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가능하다.
요컨대 'P'로부터 'Q'를 증명할 수 있으면, 'P ⊃ Q'가 논리적 참임을 증명할 수 있다.만약 $$ P \vdash Q $$이면, $$ \vdash P \supset Q $$다.
2.2. 쓰임새
수학에서 등장하는 조건문은 실질 조건문으로 분석하는 것이 표준적이다. 『수학 원리』에서 '실질 조건문'이 등장하게 된 배경부터 그러하고, 수학에서의 참거짓은 모두 필연적 참 혹은 필연적 거짓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수리논리가 아닌 함수/수열에서의 조건문은 특별히 조각적 정의로 칭한다.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쓰이는 제어문 if는 실질 조건문을 따온 것이다.
실질 조건문 'P ⊃ Q'는 'P가 Q의 충분조건이다' 및 'Q가 P의 필요조건이다'로 이해할 수도 있다.
2.3. 역, 이, 대우
조건문을 '뒤집는' 방법은 수학(교과)에서 단골로 나오는 주제 중 하나이며, 이때 명제를 뒤집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원명제($$p\to q$$)의 순서를 뒤집는 방법($$q\to p$$)이 있고 명제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는 방법($$\sim p \to \sim q$$)이 있다. 전자를 역#s-2.1(逆, Converse)이라고 하고 후자를 이#s-2.2(裏, Inverse)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역과 이를 동시에 적용할 수도 있는데(~q → ~p), 이를 대우#s-4(對偶, Contrapositive)라고 한다. 아래는 뒤집은 명제를 나타낸 그림이다.
[image]
원 명제와 그 명제의 대우는 항상 진리치가 같다. 즉 원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반드시 참이다. 마찬가지로 원 명제의 역과 이는 항상 진리치가 같다, 반면 원 명제가 참이어도 그 역과 이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 때문에 전건 부정법과 후건 긍정법은 논리적 오류가 되지만 후건 부정법은 언제나 합당하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참조.
항상 참인 명제를 항진명제(tautology)라고 한다. 개별 문서가 있는 항진명제로는 퍼스의 항진명제가 있다.
3. "실질 조건문의 역설"
조건문은 영어의 '''"If -면, ...다"''' 같은 표현에 대응한다. 하지만 실질 조건문은 이런 자연 언어의 쓰임새를 포착하는데 실패하고는 한다. 다음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P = (태양계 행성이 5개이다), Q = (라멘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다)라고 하자. 위 조건문을 실질 조건문 P → Q로 분석할 경우, 위 정의에 따라 P가 거짓이거나 Q가 참이면 해당 조건문은 참이다. 그런데 태양계의 행성은 5개가 아니므로 P는 거짓이다. 따라서 Q의 참거짓과는 상관없이 위 문장은 참이 된다.'''"만약 태양계 행성이 5개라면, 라멘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외국인이 "만약 태양계 행성이 5개라면, 라멘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걸 한국어 모국어 화자가 본다면 대부분 그 외국인이 태양계나 라멘에 대해서 아는게 틀렸거나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또 다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상황: 철희라는 소년이 있다.
* (실질조건문으로 분석할 때) 참인 문장: "만약 철희가 소년이면 철희는 남자다.", '''"만약 철희가 소년이 아니면 철희는 남자이다.", "만약 철희가 소년이 아니면 철희는 소년이다.", "만약 철희가 소년이 아니면 철희는 여자다."'''
* (실질조건문으로 분석할 때) 거짓인 문장: "만약 철희가 소년이면 철희는 여자다."
철희가 소년일 경우, 전건이 "철희가 소년이 아니다"인 조건문 모두가 자동으로 참이 되는 것은 한국어의 용례와 상치된다.
구문론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허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에서 명시적으로 도입된 이래, 수학에서는 조건문을 실질 조건문으로 분석하는데 대부분 이견이 없다.[3] 여러 요인이 있지만, 특히 수학에서의 참거짓은 모두 필연적 참 혹은 필연적 거짓이기 때문이다.$$ \neg P \vdash P\to Q$$
하지만 위 예시들에서 볼 수 있듯이 수학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 실질조건문은 자연언어의 조건문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여겨지고는 한다. 그 때문에 조건문에 대한 다른 분석을 제시하는 비고전 논리학에서는 실질조건문을 $$ P \to Q$$ 대신 $$P \supset Q$$로 표현하며 명시적으로 구별한다.
3.1. 자연어 조건문을 실질조건문으로 분석하는 것에 대한 변호
P가 거짓일 때 참이되는 것이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학생에게 '체육대회에서 100m를 5초안에 뛸 수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 말이 거짓말이 되는 경우는 "단 한가지" 뿐이다. 즉, (2) 학생이 100m를 5초 안에 들어왔는데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안주는 경우만 '''거짓'''이다. (3) 학생이 5초안에 못뛰었을 때 선생님이 학생이 안쓰러워 아이스크림을 사준 경우 이는 선생님이 약속을 어겼다고 볼 수 없고 단순한 변심으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즉 위의 선생님의 약속(가언 명제) 자체는 여전히 '''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4) 5초안에 못뛰었을 때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는 경우 학생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고 이 또한 선생님이 약속(가언 명제)을 어겼다고 할 수 없다. 즉, '''참'''으로 인정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학생이 100m를 5초 안에 뛰지 못한 경우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떠한 약속도 하지않았으므로 선생님이 어떤 행동을 하든 약속이 거짓말이 될 수없다.[4]
이는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얼핏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영어로는 이해하기 쉽다.
- Don't go there or you may be in trouble. = If you go there, then you may in trouble.
- 과자를 먹든지, 안 그러면 아이스크림을 먹든지.
- 거기 가지 마. 안 그러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 네가 거기 가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4. 발전된 접근 방식
C.I.루이스는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에서 "P implies Q"를 실질조건문 "P ⊃ Q"로 분석한 것에 반발하여 보다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루이스는 1918년 현대 양상논리의 기초가 되는 공리계를 제시하였으며, "P ⊃ Q"보다 엄격한 "P ⥽ Q"를 도입함으로써 '실질조건문의 역설'을 해결했다. 이렇게 정의된 조건문은 '''"엄밀 조건문(strict conditional)"'''이라 불리며, 현대에는 "P ⥽ Q" 대신 "□(P⊃ Q)"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잦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 언어의 조건문을 엄밀 조건문으로 분석하면 상기한 문제들은 해결하지만, 조건문의 전건이 필연적으로 거짓일 경우에 한하여 그와 비슷한 문제가 재발한다. 따라서 엄밀 조건문 역시 자연어 분석에 적확하지는 않다는 견해가 많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영어 등 자연 언어에서 조건문이 크게 '직설법적(indicative) 조건문'과 '가정법적(subjunctive) 조건문'이라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분석을 달리한다. 그 고전적인 구별 예시는 다음과 같다:
해당 직설법적 조건문은 명백히 참이지만 ("오스왈드가 범인이 아니었다고? 그럼 누가 범인이지?"), 그 아래 가정법적 조건문은 참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매우 대담한 역사적 주장이다 ("설령 오스왈드의 암살 시도를 막았더라도 제2의, 제3의 오스왈드가 등장해 케네디를 쐈을 것이다.")* 직설법적 조건문: '''"만약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죽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케네디를 죽인 것이다(If Oswald didn't kill Kennedy, someone else did)"'''
* 가정법적 조건문: '''"만약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이 케네디를 죽였으리라(If Oswald hadn't killed Kennedy, someone else would have)"'''
이런 조건문들의 분석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더욱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등 보다 심화된 자료를 참고하라.
[1] 맥락에 따라서 "hypotheticals", "implication" 같은 용어도 쓰인다.[2] 이때 실질 조건문을 나타내는 말발굽(horseshoe) 기호 '⊃'는 집합론에서의 부분집합 관계를 나타내는 기호와 생김새는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3] 직관주의 논리에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수학철학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직관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고전수학을 상당부분 거부하고는 한다.[4] 만약 반대로 약속을 다르게해서 5초 안에 뛰면 아이스크림을 주고 못뛰면 안 주겠다라고 정한 경우 못뛰었을 때 아이스크림을 준 (3)이 약속을 어긴 케이스가 될 것이다. 이런 약속을 밑에서 보게될 쌍조건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