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방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대송의 황족
진강혜왕(秦康惠王)
趙德芳 | 조덕방
'''

'''시호'''
강혜(康惠)
'''작위'''
진왕(秦王)
''''''
조(趙)
'''이름'''
덕방(德芳)
'''생몰'''
959년 ~ 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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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 '''부황'''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
'''모후'''
효명황후(孝明皇后) 왕씨(王氏)
'''형제'''
등왕(滕王) 조덕수(趙德秀))
연의왕(燕懿王) 조덕소(趙德昭)
서왕(舒王) 조덕림(趙德林)

1. 개요
2. 생애
3.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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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북송시대의 인물로 태조 조광윤의 아들.
판관 포청천에서 팔현왕, 일명 팔왕야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이분이다.

2. 생애


조덕방은 태조 조광윤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조덕방은 넷째 아들로 그의 위로는 조덕수(趙德秀), 조덕소(趙德昭), 조덕림(趙德林)이 있었으나 조덕수와 조덕림은 요절하여 사실상 조덕방이 차남이었다.
조덕방은 태조 재위기인 개보(開寶) 9년(976년)에 귀주(貴州) 방어사로 제수되었고 태종 재위기에는 흥원윤, 산남서도 절도사, 동평장사, 검교 태위를 역임하다가 태평흥국(太平興國) 6년(981년)에 세상을 떠났다.
979년에는 조덕방의 형인 조덕소가 세상을 떠나고 2년 뒤에 조덕방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태종의 석연치 않은 즉위과정과 더불어 조덕소, 조덕방 형제의 죽음에 태종이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조덕방은 사후 태사(太師)로 추증되고 초왕(楚王)으로 추봉되었으며 휘종대에 진왕(秦王)으로 다시 추봉되었다. 시호는 강혜(康惠).

3. 후손


조덕방에게는 슬하에 3명의 아들인 조유서(趙惟敍), 조유헌(趙惟憲), 조유능(趙惟能)과 1명의 딸이 있었다. 송나라가 임안으로 천도한 이후 태종의 혈통이었던 고종은 황위 계통이 끊기게 되자 태조의 7대손이자 조덕방의 6대손인 조백종(趙伯琮)을 양자로 들여 조신(趙昚)으로 개명시키고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게 되니 이가 바로 남송의 중흥기를 이끈 효종이다. 광종영종도 조덕방 계열[1]이며, 남송의 황제로는 유일한 태종의 후손인 고종 이후부터는 태조의 후손들이 즉위하게 된다.[2]

[1] 영종까지의 계보는 태조 조광윤-진강혜왕 조덕방-영국공 조유헌-신흥후 조종욱-음회후 조세장-수왕 조자칭-효종-광종-영종으로 이어진다.[2] 북송의 황제는 태조 조광윤을 제외하면 모두 태조의 동생인 태종 조광의의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