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무(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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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적
2.1. 초반부
2.2. 중반부
3. 캐릭터 평가
4. 기타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등장인물. 배우는 장항선.

2. 작중 행적



2.1. 초반부


조선 개국 전부터 이방원의 충실한 심복으로 일해왔다. 정몽주 척살에 기꺼히 동참했으며 조선 건국후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고 내관들을 포섭한 민씨와 협력해 세자빈 유씨가 내시 이만과 눈이 맞은 걸 잡아내기도 했다. 제1차 왕자의 난때도 이천우와 콤비를 이뤄 대활약.
그렇게 자기들 세상이 온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이방원이 정도전의 사병혁파 정책을 이어가자 불만을 품고[1], 밤중에 방원의 사저를 찾아가 따지기도 한다. 사병 혁파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잠시 섭섭한 마음은 접어두고 자신의 사병을 아낌없이 동원해 반군에 맞선다.[2] 이때도 이천우와 콤비를 이뤘는데 처음에는 수적 열세로 고전했지만[3] 방원이 종친과 신료들의 지지를 모으고 도성밖 군사를 동원하면서 역전에 성공한다. 또 한번 큰 공을 세웠으니 더 이상 사병혁파는 없을거라 기뻐했지만 세자로 책봉되 권위가 더욱 강해진 방원이 변함없이 사병혁파를 진행시키자 노발대발 한다.
급기야 사병 명부를 접수하러 온 '''삼군부 군관을 붙잡아 곤장을 쳐버린다.''' 이에 방원은 조영무, 이천우, 이거이, 조온, 이저 들을 귀양보내기로 하고 밤중에 송별의 주연을 마련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부름을 받고 찾아온 조영무는 잠시 떠나 있어야겠다는 이방원의 말을 듣고 박포의 말[4]이 맞았다며 원망을 드러낸다. 그 뒤 술을 받고는 다시는 사나이의 의리를 운운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것만 보면 꼭 절연의 장면처럼 보였지만...

2.2. 중반부


귀양지에서 글을 배우고 서책을 읽는 등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던 중, 공신들 일부가 복직되면서 복귀하게 된다. 이 때 직접 찾아온 이숙번을 보고 화를 내며 따귀까지 날렸지만, 복귀 사실을 알고 감복한다. 이후 조사의의 난때 종군해 다시 공을 세운다.[5] 이후 이성계가 환궁하고 한양으로 천도하여 완전히 반석에 오른 조정에서 정승의 반열에 올라 죽을 때까지 영화를 누린다.
그렇게 신료들 중에서도 느긋한 분위기를 보이며 잘 사나 싶지만,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벌이는 풍파에서는 그 역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119화에서 태종이 양위 파동을 일으켰을 땐 옥새를 들고 나가는 지신사 황희에게 달려들어 메다 꽂아버리는 개그신[6]까지 연출하며 양위를 막으려 필사적이었고, 그렇게 양위 파동은 넘어가나 했으나 태종이 정승들을 불러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역모 혐의로 다스릴 것을 밝히자 하륜과 더불어 선처를 부탁하다가 좀 쉬어야겠다는 말과 함께 두 형제의 숙청 기간 동안 정승 자리에 물러나 집에만 처박혀 있어야 했다. 얼마 뒤 다시 복권되지만 민씨 집안의 몰락에 대해서는 상당히 착잡해했고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보이는 여러 과격 노선으로 인해 속을 태워야만 했다.
그래도 그 자신은 별다른 화를 입지 않고 잘 지내다가 사고를 치게 되는데, 우연히 들른 기방에서 본 태종의 궁녀 하나를 건드려 첩으로 삼은 것. 본인은 그 여인이 궁녀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한 일이었기에 이 사실을 알고 안절부절 못했고, 곧 신료들 사이에서도 이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된 가운데 당연히 사헌부에서는 내사에 착수하여 이를 태종에게 보고 하기에 이른다. 하필 이 때 하륜이 기록 중인 사초와 관련해 과거 기록시 잘못된 부분이 있는가 없는가 여부를 조사하란 태종의 의향으로 이전 이숭인, 이종학 장살 사건 등의 조선 개국기의 사건에 하륜과 조영무 등이 연루된 게 있어서 더 문제거리가 되던 참이었다.
국가 비상소집훈련 이후 삼정승이 모인 자리에서 태종이 이 일을 거론하며 '''"일국의 정승이 이 무슨 망신이야!! 좌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궁녀는 목을 베어야 할 것이야!!!"'''라며 불벼락이 떨어지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다음의 반응이 참으로 압권인데, 태종이 내놓을 거냐 안 내놓을 거냐며 다시 불호령을 내리자 그 때까지 우물쭈물거리던 안면을 싹 몰수하고 뻔뻔하게 '''"내놓지 못하겠사옵니다. 살펴주시옵소서!"'''라고 배째라를 시도한 것. 그러다 태종이 "못해?"라고 되묻자 손을 덜덜 떨고 , 태종은 그것을 보더니 "수전증에 걸린 게야 떨긴 왜 떨어!" 라고 핀잔을 주고는 "일국의 정승이 되가지곤 계집 하나 때문에 고집을 피우다니.."라고 말한 뒤 이 일은 같은 사내끼리 모른 척 하겠다며 정승으로서 체통을 지키라고 다시 한 번 잔소리를 하고 덮어주었다.[7][8] 여담으로 이 때 장면이 참 개그스러운데 조영무가 막 빌면서 "망극하옵니다.." 를 남발하자, 이방원은 "그저 할 말 없으면 망극하옵니다, 망극하옵니다" 만 남발한다고 깐다(...) 이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신료들에겐 천려일실(千慮一失: 천 가지 생각을 하면 한 가지 실수가 있다)이라며 안면몰수한다.
이후 고뿔(감기) 기운을 보이며 신료 회의에서도 힘겨워 하다가 병석에 눕게 되었고, 임종이 머지않은 가운데 하륜과 이숙번을 비롯한 여러 신료들의 문병을 받게 된다. 부귀영화 다 누리고 임금의 여자까지 거느려 봤다며 스스로의 생에 별 후회가 없지만 이거이와 민씨 형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던 것만은 후회된다고 하며,[9] 이숙번의 앞날고 순탄치 않을 것임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태종 이방원이 전의도 보내며 신경썼지만 결국 그렇게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 이후 하륜의 죽음과 이숙번의 귀양, 은근슬쩍 사라진 이천우의 퇴장으로 과거 이방원과 함께 했던 공신 세대는 모두 조정에서 사라지게 된다.

3. 캐릭터 평가


초반부와 중반 이후의 캐릭터가 상당히 다르다. 2차 왕자의 난 때까지는 이방원에게 충성하는 우직한 무장이었는데 사병혁파로 귀양간 후 조금씩 개그 캐릭터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조사의의 난이 평정된 후 더이상 전장에 나갈일이 없어지고 정승으로 유유자적 나이를 먹다보니 사람 좋은 영감님이 된다. 배우 장항선도 초기에는 위엄있는 어투에 저음으로 깔아서 내는 발성을 사용했으나 귀양지에서 성격이 바뀐 후로는 경망스럽고 높은 목소리를 낸다. 이는 조영무가 다시 조정에 복직하고 난 후 처신에 신경썼다는 점을 개그 캐릭터스러운 모습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공신들 중에서도 태종에 대한 충성심은 가장 깊었다. 방원과는 사돈지간인 이거이는 방원이 사병혁파를 추진한 이래 대놓고 반목하며 수시로 딴 생각을 했고, 방원의 사촌형 이천우와 이사촌 조온도 사병혁파에 반대하다 귀양갈 때는 진작 군사를 일으켰어야 했다고 이를 갈았다.[10] 이숙번도 현명한 주군을 선택했을 뿐 맹목적인 충성과는 거리가 있었던[11] 반면 조영무는 고려때부터 죽을때까지 무조건 충성이다. 방원이 사병혁파를 계획할 때에도 한밤중에 찾아가 명을 거둬 달라고 하지만 되려 험한 소리만 듣고[12] 쫓겨났으며 사병을 빼앗기고 귀양가는 순간에도 사사될 각오를 하고 방원이 남아의 의리를 저버린 것을 탓했지 반란을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태종 또한 조영무에게 공신과 충신으로 후하게 대접해주었고 사후 무인 출신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시호인 충무공 시호까지 받는다. 수시로 딴 생각을 하는 이거이는 가차없이 서인으로 강등시켜서 유배보내버린데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
개그캐로서의 면은 초반에는 그저 그렇게 보여주다가 중반부부터 제대로 보여주는데, 위에 언급된 "궁녀사건" 때 배째라 시전한 것을 포함해, 함흥차사로 누가 가야할까 하는 토론이 있을때 성석린을 깐족대며[13] 차사로 몰아넣는 장면이 있다. 순수한 면도 강조되어 귀양시에 이숙번을 보고 따귀를 때렸다가 이방원의 편지를 받고, 술까지 하사받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다. 양위파동 때에도 밤새워 불가를 외친 다른 신료들은 모두 정신을 차리고 꼿꼿이 앉아 있는데 혼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귀양지에서 뒤늦게 서책을 잡은 후 한 번씩 문자를 주워섬기는데, 이숙번 등과 무과 시험장에서 나누는 대화에서도 옛 고사를 들어 선비가 뜻을 못펴는 것이 빈곤함에서 나온다는 예시를 들며 무인들이 공부 안 하고 수준 떨어지는 게 고려가 무인을 박대 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데 바로 옆에서 듣던 이숙번이 예가 좀 이상하게 핀트가 안 맞는다는 식으로 깐다. 물론 본인도 모르는 옛 고사를 한자성어를 써가며 거론한 것을 추겨세우며 공부 많이 했다고 놀라기도 했다[14]. 그래도 나중엔 세월의 흘러감을 탄식하는 태종 앞에서 인생여구과극(人生如駒過隙)[15]같은 어려운 말까지 읊는 등 나름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조영무처럼 칼잡이부터 시작해서 정승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후 문자를 주워섬기는 기믹은 후일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를 통해 다시 한 번 등장했다. 글을 조금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계속해서 어려운 말을 언급하지만 가끔 틀릴때가 있어 지적을 받으면 또 머쓱해하기도 한다. 뒤늦게 학문을 배워서인지 모든 말에 어려운 말투를 넣기를 즐겨해 조금 자랑해주는게 조영무 식의 뽐내기의 포인트. 근데 조사의의 난때는 반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자 사령부에서 보고를 들은 태종에게 편히 지내더니 글줄이나 읽을 줄 알았지 한물 갔다고 까이고 본인도 이럴 줄 알았으면 손자병법이나 좀 읽어둘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장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로 들어온 관료들 만난자리에서 장기 잘 두냐고 물어보고 태종의 궁녀를 취한 후 장기 둘 줄 아냐고 물어보고 바로 장기교습 들어갔다. 장기 두는 모습이 처음 나오는 대목에서는 상호군 권희달과 내기 장기를 두며 억지를 쓰다가 화가 너무나도 난 나머지 따귀를 때려 내쫓아버리기도 한다[16]. 나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과 장기를 두려는 사람이 없다며 불평을 하거나, 이제 바둑으로 바꿔야 할까 보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이천우는 바둑으로도 당해낼 사람이 없을 거라 한다. 121회에서는 혼자서 장기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당시 이방원이 민씨 일가를 절단내는 상황인지라 그에 관한 본인의 생각이[17] 독백으로 나오다가 대뜸 혼자서 장기말을 움직이며 '장이야! 멍이야! 장 받아라!'를 외치다가 장기판에 있던 장기말을 냅다 쳐내는 개그를 선보인다. 배경 음악이 진중한데 반해 본인의 행동은 개그라는 게 더 웃기다.

4. 기타


유쾌하고 사람좋은 면은 모두에게 알려졌는지 그렇게 당했던 황희가 조영무가 죽자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던 분이셨는데..." 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1] 다만 이방원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즉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강경파 이거이와 달리, 조영무는 설마 하면서 온건한 의견을 내놓다가 차츰 불만이 생겨 크게 폭발시키는 타입이다.[2] 이 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싸운 공신들은 조영무와 이숙번 외에 이화, 이천우, 이저, 민씨 형제 등인데 이화 등은 모두 이방원의 친인척들이었고, 이숙번은 사병 혁파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즉 정안군의 인척도 아니고 그의 정책에 찬성하지도 않는데도 앞장서서 싸운 사람은 조영무가 유일. 사돈댁이자 사병이 가장 많았던 이거이는 계속 관망하다 전세가 방원 측에 기운 다음에야 참전했으며, 이천우조차 병력상 열세였던 초반에 일단 투항할까 하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3] 수적으로 불리했던 초반에 주력이었던 탓에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는 수십명만 남기고 죄 소모되어 후방으로 빠져 재정비해야 했다.[4] 여기서의 박포는 이방간과 함께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그 인물로, 작중에서는 처형당하기 직전 조영무를 비롯한 이방원의 여러 측근들에게 '나 다음은 당신들 차례' 라는 식의 말을 남겼다.[5] 처음에는 공성전이 반군의 수비에 막혀서 고전하여 파견했던 태종에게도 까이고 자신도 이럴 줄 알았으면 병법 공부 좀 더했어야 했다며 자책했지만 이후 박만에 대한 이간계가 성공하면서 기어코 성을 함락시킨다.[6] 백미는 바로 그 다음 씬. 황희가 쓰러지니 태종이 직접 옥새를 들고 쓰러져있는 지신사 황희를 일으켜 세우고 잡아끌며 미식축구 쿼터백마냥 정승들 사이를 가로질러 대전 밖으로 황희를 내보내고 같이 옥새를 전달한 다음 문을 닫아버리고 아니된다며 명령을 수행하려는 황희를 쫓아가려고 달라붙는 정승들을 전부 밀치며 저지한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지만 감히 주상 전하인 태종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어버버하는 대신들의 모습도 개그 포인트.[7] 애초부터 태종은 처음부터 이에 대한 상소문을 받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고 이렇게 짐짓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한 건 당시 실록을 편찬하던 하륜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그냥 튕기기.[8] 참고로 이는 《태종실록》 권23 12년 6월 6일 기미 3번째 기사에 실려 있는 실제 사건이다. 다만 본작에서는 대전 궁녀인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궁 밖에 나와 있었다는 설정이지만 실제로는 궁에 들어온 지 다섯 달 만에 출궁(出宮)되었기에 전직 궁녀라고 할 수 있는 상태였으며, 드라마에서처럼 배째라를 시전하지 않았고 오히려 태종이 승정원 관리를 보내어 사헌부에서 뭐라 해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는 전언에 스스로 파면을 청하며 납작 업드렸다. 이후 사헌부가 아닌 사간원에서도 처벌을 청했지만 태종은 "조영무가 교체되면 사람들이 말하기를‘이 궁녀 스캔들 때문이다.’라고 할 것이다." 라고 하며 끝까지 보호했다.[9] 특히 이거이의 경우 조영무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태종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토로했고, 따라서 태종이 이거이를 귀양보내기 전에 그 죄를 입증할 증인으로 삼았던 사람이 조영무였다.[10] 물론 이들도 귀양 후 관직과 공신의 지위를 회복시켜주는 등 충성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제공해줌으로써 뒷말이 나오지 않게 확실히 대우해줬다. 특히 이천우는 종친으로서의 대우를 확실하게 해줌으로써 그의 출신성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여 그 사이를 돈독히 했다.[11] 그래서 정도전과 이방원 사이에서 저울질 하기도 하고 이방원이 압도적 열세였던 초기에는 간을 상당히 본다.[12] 방원은 '무식한 군졸놈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게 누군데 감히 대들어?'라며 조영무의 목덜미를 잡아 방바닥으로 밀쳐내버렸다. 어지간히 충성심이 깊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릴만한 괄시다.[13] 우리는 전하의 신하이니 가면 죽을텐데, 그럼 누가가야겠소? 하면서 성석린을 쳐다보고, 그러자 모든 시선이 성석린에게 쏠린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성석린은 사색이 되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하지만 성대감은 태상왕 전하께 미움받을 일 한적 없어 적임자라는 조영무의 말에 조준도 맞장구치고 성석린의 입장은 민제나 권근조차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성석린 가고 싶진 않지만 생각해보니 자기 밖에 갈 사람이 없긴 없다고 본인도 인정하고, 결국 함흥차사로 가겠다 청한다.[14] 이 부분은 이환경의 삼빠 기질과 맞물려 오하아몽 고사의 표절로 까이기도 한다.[15] 인생은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 사이로 획 지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인생은 순식간에 훌쩍 지나가고 만다는 말로 장자(莊子), 송사(宋史)에 나오는 구절이다.[16] 실록 기사에 따르면 권희달과의 에피소드는 조영무가 억지를 쓴 것이 아니라 권희달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17] 이때 읍참마속을 운운했지만 상황 상 토사구팽이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