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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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논란
2.1. 통신사 할인 논란
2.2. 영화 0점 사건
2.4. 나운규에 대한 폄하
2.5. 기생충 비하
3. 교수채용 비리 및 뇌물수수 범죄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영화 평론가.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뇌물 수수 범죄가 확정된 전과자.
1957년 1월 26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나 상주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세간에는 기득권 영화에만 높은 평가를 주어서 어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소 이후 그 말에 걸맞게 각종 극우매체에 출현하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 판에서는 금지어나 다름 없는 인물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작자가 영화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더니 뇌물수수혐의로 감옥에 가질 않나, 세계 정상급의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명작에 0점을 줘서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대한민국 영화 심의계에 대한 조롱을 듣지를 않나, 대한민국 영화계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나운규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하는 등 논란만 일으켰다.

2. 논란



2.1. 통신사 할인 논란


2000년대 중반에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통신사(SK/KT/LG) 할인혜택을 대폭 축소하자, "이제 한국영화는 끝났다"면서 저주의 글을 언론에 기고하였다. 참고로 이때는 실미도 - 태극기 휘날리며 - 왕의 남자 - 괴물이라는 천만영화가 매년 터지던 시점이었다. 그야말로 작품성과 대중성이 조화된 걸작들이 쏟아지면서 한국영화의 최전성기라고 하던 시점이었는데, 조희문은 한국영화를 오로지 통신사 할인 같은 각종 쿠폰과 티켓가격 깍아주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품이라고 폄하하면서, 통신사 할인혜택이 대폭 축소되면서 이제 끝났다는 망언을 하였다.

2.2. 영화 0점 사건


2010년이창동 감독의 영화인 가 0점이라는 어이없는 점수를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래 정부투자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는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할만한 작품에 대해 제작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원할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인 조 위원장[1]이 독립영화제작 지원심사 과정에서 조 위원장 자신이 출연한 다큐물과 북한에 삐라를 살포하고 있는 반북 단체의 영화를 선정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정작 이 영화는 0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규정에 의하면 '''최하점수는 0점을 줄 수 없도록 되어 있었으며''', 조희문은 또한 이전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번 0점을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조 위원장의 0점 채점으로 인해 "시"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참여정부에서 장관직을 지낸 이창동에 대한 당시 정권의 반감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2] 그러나 시는 조희문의 심사를 비웃듯이 당당하게 '''칸 영화제 각본상'''을 타냈고, 조희문과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중견연기자 출신 유인촌은 구설수에 올랐다.#

2.3.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비하 발언


세계적인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연이 생겨 친한 사이인데, 이를 두고 조선일보에서 타란티노가 저질 영화를 찍는다며 헐뜯으면서 박찬욱까지 싸잡아서 비판한 경력이 있다. 나아가 올드보이는 미국 상류층이 싫어할 영화라고 발언하며 깎아내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2.4. 나운규에 대한 폄하


일제 강점기 때의 전설적인 민족주의 영화감독나운규를 두고 '아리랑(영화)나운규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일본인 감독 스모리 슈이치가 연출한 작품이다'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키노 1997년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희문의 주장을 조선일보가 대서 특필했지만, 근거가 희박하여 영화계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3]

2.5. 기생충 비하


후술하는 뇌물수수 범죄로 징역을 살고 출소한 이후에 각종 극우 매체를 통해서 한국영화계에 저주를 퍼붓고 있다. 특히 전세계가 호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영화)에 대해서 "'기생충'은 병든 영화 상 탔다고 박수칠 수 없다면서 터무니 없는 트집을 잡았다.

3. 교수채용 비리 및 뇌물수수 범죄


온갖 구설수 끝에 2010년 11월 8일 영진위에서 해임됐다. 이에 조희문은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며 해임취소 소송을 내는 등 저항하였지만 2011년 12월에 패소한다.
2014년 3월에는 한예종 교수채용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동년 7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됐다.
2016년 9월 만기 출소한 이후, 각종 극우매체에 출연하고 있다.

[1] 원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신인 공연윤리위원회 시절부터 심의위원이었다.[2] 근데 더 웃긴 건 훗날 조희문은 이명박 정부때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원장이 된다. 그런데 독립영화 지원사업 심사에 개입해서 특정 작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1년 만에 해임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후 조희문은 태도를 180도 바꿔 본인이 그렇게 아부하던 이명박 정부는 좌파정권이라며 비난하는 등 추한 모습을 보였다.[3] 1926년 개봉 당시 조선일보 광고에 스모리 슈이치가 감독으로 나와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당시 영화계에서 제작자로 유명하던 스모리 슈이치의 이름을 썼을뿐, 실제 연출은 나운규가 직접 했다는게 정설이다. 실제 1930년대에 조선과 일본에서 나온 각종 영화계 자료들은 하나같이 나운규를 아리랑의 연출자로 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