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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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
2. 일생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성고등학교 졸업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다. 1973년 MBC 공채 6기 탤런트로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대학 졸업 후 1986년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2] 를 받고 1994년에 극단 '성좌' 대표를 맡다가, 1995년 극단 '유인촌레파토리(극단 유)'를 창단했다. 1999년 소극장 '유시어터'도 세웠다.
1993년부터 서울시립대, 중앙대 등지에서 시간강사를 맡다가 1997년부터 중앙대 예술대학 전임강사로 재직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재직 도중 1999년 중앙대학교 극장장, 2000년 중앙대 멀티미디어센터 소장을 겸임하였다. 2007년에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로 복귀하기도 했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2004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하였으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장 대행을 맡아 당선을 도왔다. 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까지 맡았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초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임명되어 3년간 재임하였다. 2011년 장관 퇴임 이후에는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으로, 2012년에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3. 활동
TV 필모그래피 초기에는 의외로 반항아적인 역할도 꽤 했다. 80년대 모 드라마에서는 사회 잉여였다가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하게 되는 역할도 했고 전상국의 원작인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에서 동네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 등을 일삼다가 우연찮게 미국으로 이민가서 날라리로 살다가 입대하여 주한미군으로 귀국하여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였으며 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3] 에서 조광조[4] 와 인조[5] , <역사는 흐른다>의 이규직 연기가 대표적이다.
특히 연극 <햄릿>은 총 6번을 연기한 그의 대표작으로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햄릿>[6] 에서 다시 햄릿 역을 맡기도 했다.[7] 또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는 연산군 역을 맡아서 무대에 섰는데 이 연기는 1988년 임권택 감독 영화 <연산일기>에서도 잘 표현되었다.[8]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뮤지컬에도 다수 출연했는데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빌라도 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았다.
연기 커리어 도중 1990년부터 2년간 제2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고, 2000년 환경부 환경홍보사절과 2002년 산림청 산림홍보대사까지 맡았다.
1996년 KBS1 <역사추리>를 시초로 역사 다큐멘터리 MC로 변신을 시도하여 이듬해 <TV 조선왕조실록>을 거쳐 1998년 10월부터 역사스페셜 MC를 5년간 맡으며 대중들에게 친숙해졌다. 그 외에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특히 드라마 중 이명박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다.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컸다. 2003년 역사스페셜 폐지로 한창 시끄러워질 당시에는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후속작인 <인물현대사>에 대해선 "현대사를 다룬 프로 자체가 이념 문제가 개입될 여지가 있어서 출연 요청이 와도 안 받아들일 것"이라고도 했다.
유인촌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장관시절에 '찍지마' 사건 등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대부분 국민들에게 지적이고 예의바른 이미지가 매우 컸는데, 저 사건 이후로 이미지가 산산조각나 버렸다. 오히려 저런 점잖은 이미지가 컸기 때문에 대비되어서 더 안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 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남윤호[9] 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10]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여담
- 1999년 4월 여성동아에서 그가 유치진의 아들, 유치환의 조카라는 식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마음대로 억측한 소설. 아마도 유치진-유치환 형제가 진주 류씨인데 이 때문에 착각하여 그런 찌라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유인촌은 전주 류씨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11]
-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남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 형제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성향이고, 동생 유경촌 주교는 가톨릭 내에서 진보적인 인사로 사회교리를 전공하였고, 신부 시절에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를 역임했다. 유인촌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개신교(장로회)를 잠시 믿었다가 이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다[12] .
- 취미로 걷기를 즐겼는데, 그래서인지 2007년에 <거침없이 걸어라>를 냈으며 2004년에는 마라톤에도 흥미를 보여 하이서울 마라톤, 동아마라톤, 서울시 마라톤 동호회원 친선경기 등에 나오기도 한다.
- 장관을 하면서 재산 내역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2008년 당시에 약 140억이었다. 그 중에 현금만 55억으로, 상당한 액수로 논란이 되었었는데 배용준은 재산이 더 많은데 왜 나를 가지고 그러느냐며 얘기했다가 애꿏은 사람 붙잡고 늘어진 것에 사과했다. 애초에 소속사 없이 활동하는 배우였고 80~90년대는 정말 잘나가는 배우로 여기저기 찾는데가 많았으니 사실 그 정도 레벨의 연예인이 저정도도 못 벌었다면 이상한 점이다. 다만 이 일을 기점으로, 역사스페셜 등으로 널리 알려졌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에서 과격하고 다혈질적인 이미지로의 변화가 시작됐다.
- 홍대 클럽의 은인(?)이다. 카우치 사건이 터졌을 때 보수층 사이에서 홍대 클럽 폐쇄 여론이 대두되었다. 당시에는 연극배우였고, 대학가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편이었던 터라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을 데리고 클럽 드럭에 직접 방문하여 록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클럽 문화를 변호했다. 이 덕분에 클럽을 쓸어버리려던 이명박은 생각을 돌렸고, 보수언론도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의 행보가 어떻든 현재 인디씬이 살아남는 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 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고 지금 현재도 여전히 잘 적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서울 청담동에 유시어터 소극장을 세우고 운영하고 있다.
- 2004년에 동아일보 측은 동아연극상에 그의 이름을 딴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추가했다.
- 2008년과 2009년에 문학구장에서 개막전 시구를 두 차례 한 적이 있다. 2008년에는 날씨 때문에 관중이 적긴 했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만원 관중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 1년 사이에 터진 '찍지마 사건' 때문에...
- '네가 시골에 있으면 유인촌이다(You in 村)'이라는 아재개그가 있다.
5. 논란
아래와 같은 논란들로 인하여 현재 사람들에게 그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지 않다. 리그베다 위키에선 이 때문인지 정치인 시절의 내용은 규정에 따라 작성금지돼 있고, KBS 역사저널 그날 공식 유튜브 계정 등지에 올라온 역사스페셜 영상이나 그 외 유인촌이 출연한 영상매체 댓글도 유인촌을 욕하는 댓글이 대다수일 정도다. 유인촌이 나와서 싫어요를 누른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5.1. 찍지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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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가을에 있었던 국정감사 도중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마! XX 찍지마!"'''라는 반말+욕설을 내뱉고 보좌진들이 뜯어 말려 회의장을 나가면서도 '''"XX,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이라고 재차 욕설을 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15]
우선 당시 상황을 보면 민주당 이종걸 의원[16] 이 먼저 상당히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여서 원인제공을 일으키긴 하였다. '사기극', '삼켜먹어버렸다' 같은 건 그나마 정치판에서 그 동안 심심치 않게 쓰던 표현들이지만, 이도 적절한 언어 사용은 아니었고, 나아가 'MB 정권의 휘하', '졸개' 같은 상당히 과격하고 무례한 표현도 사용하였다.[17] 일반인들의 사적인 자리에선 용인될지 몰라도 국회의사당 같은 공적이고 예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쓰기엔 확실히 부적절한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유인촌 장관은 그런 발언의 당사자 이종걸 의원한테 되받아친 것도 아니고 그저 사진을 찍고 있던 엄한 기자들에게 반말 및 욕설을 해댔기에 큰 논란이 되었다. 즉, 국민들도 다 보고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 이종걸 의원 때문에 화가 났으면서 정작 애먼 기자들한테 화풀이로, 아예 직접적인 욕설까지 같이 써버리는 최악의 대처를 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이종걸 의원의 사전의 막말은 완벽히 묻혀버리고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찍지마 X발'만 남게 되어버린 것'''(...).
결과적으로 유인촌 장관은 이 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대차게 욕을 먹었고, 더불어서 유인촌을 데려온 이명박도 싸잡혀서 세트로 욕을 무진장 먹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유머와 합성물의 소재가 되면서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참고로 영상과 사진 속에서 유인촌을 말리며 화장실 가자고 하는 사람은 신재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인데, 2010년에 청와대의 지명을 받아 유인촌의 뒤를 이어 장관이 될 뻔 했으나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등이 밝혀져서 후보에서 물러나야 했다.
5.2. 블랙리스트
2017년 가을,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의 작성이나 실행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와서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기사. 일단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기사.
5.3. 그 외
위의 찍지마 사건 외에도 문체부장관, 문화특보 재직 동안 막말 내지는 반말, 망언 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더 있다. 2009년 한예종 협동과정 서사창작과의 폐지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학부모에게 세뇌라는 막말을 했으며, 이에 앞서 1인 시위하던 학생에게는 자전거 타고 지나가면서 "얼른 가 공부해라. 엉? 뭐하러 고생하고 있니?" 등의 비아냥 거리는 발언을 했다. 게다가 국립오페라단 폐지에 반대하는 단원들의 시위 현장에서는 단원들에게 "나랑 얘기하기 싫어?"라고 반말했다. 그 외에도 2008년 7월 "촛불 때문에 관광객 줄었다" 발언과 2009년 11월 17일 '대동아전쟁' 발언, 2011년 7월 22일 을미사변 '경복궁 담장'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2010년 문체관방위 때는 같은 배우 출신인 최종원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여 논란이 일었다.
6. 출연작
6.1. 드라마
- 강남가족
- 안국동 아씨 - 사도세자
- 전원일기 - 김용식
- 교동 마님 - 박진수
- 제1공화국 - 김신
- 여인열전 : 장희빈 - 숙종
- 사랑과 진실 - 강민호
- 조선왕조 오백년 풍란 - 조광조
- 첫사랑 - 지수
- 조선왕조 오백년 남한산성 - 인조
- 최후의 증인 - 오 형사
- 불새 - 김영후
- 도시의 흉년 - 서재호
- 세여인 - 오준수
- 상처 - 유기훈
- 역사는 흐른다 - 이규직
- 두 권의 일기 - 김정호
- 춤추는 가얏고 - 손윤오
- 야망의 세월 - 박형섭
- 일출봉 - 업산
- 맞수
- 새야 새야 파랑새야 - 전봉준
- 도깨비가 간다 - 한태우
- 도둑
- 이 여자가 사는 법 - 진이중
- 화려한 휴가 - 이정민
- 임꺽정 - 연산군
- 연어가 돌아올 때 - 한재헌
- 세 번째 남자 - 장인수
- 삼김시대 - 김대중
- 고백 - 오동규
- 장희빈 - 동평군
6.2. 영화
극장 개봉 당시에는 김병관이 맡았다. 극장판의 부관이 너무 간사해서 악역이라기보다는 잡졸로 느껴졌던 것에 비해 유인촌의 부관은 좀 더 악당으로서의 존재감이 강조되었다.
6.3. MC
- 밤의 히트쇼 (1981~1982, MBC)
- 역사추리 (1996~1997, KBS1)
- TV 조선왕조실록 (1997~1998, KBS1)
- 역사스페셜 (1998~2003, KBS1)
- 신화창조의 비밀 (2003~2005, KBS1)
- 명불허전 (2014~2018, OBS)
6.4. 연극
- 햄릿
- 문제적 인간, 연산
- 홀스또메르
- 느릅나무 밑의 욕망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페리클레스
6.5. CF
- 대림혼다 GLX125
- 삼성전자
- 대우전자
- 한일약품 화이투벤
- 남양유업 점프 A
- 제일제당 게토레이
- 시몬스
- BYC
- 에스원 홈세콤
- LG전자 테크폰
- 동국제약 인사돌
- 제일약품 케펜텍
- 금강제화
- 서울우유
- 광동제약 우황청심환
- 한국야쿠르트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 AIA생명
7. 수상경력
- MBC 방송대상 신인상 (1974)
-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 (1986)
-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1987, 1991)
- KBS 연기대상 대상 (1990)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1992)
- 대통령 표창 (1993, 2002)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1996)
- 동아연극연기상 (1998)
- 이해랑 연극상 (2002)
8. 저서
- 유인촌, 연기를 가르치다(DVD 포함) - 세종서적. 2005.
- 운명을 비켜 세워라: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이명박의 한 마디(지거, 류지원과 공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 거침없이 걸어라 - 중앙북스. 2007.
9. 관련 자료
10. 둘러보기
[1] 아버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출신이다.[2] 1986, 『Oedipus Complex 側面에서 본 Hamlet의 性格 硏究』, 중앙대학교 대학원[3]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 했는데 최수종은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4] 조선왕조 5백년 - 풍란[5] 조선왕조 5백년 - 남한산성[6] <햄릿> Spot.[7] 정동환, 전무송, 박정자, 손숙 등 연극계의 레전드들이 모여서 한 연극으로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배우들만 출연했다.[8] 유인촌의 연기 변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평론가상,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였고 본인이 대표작 중 하나로 뽑았다.[9] 이름은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유대식이다. 유인촌의 아들이란 금수저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유학갔다 들어오면서 아예 성까지 바꾼 후 데뷔해서 수년째 극단 여행자 소속으로 활동중인 연극배우인데, 워낙 숨기다 보니 남윤호가 유인촌 아들인 걸 연극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연출자가 남윤호를 한참 설득하고 나서야 이 연극에 부자가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자관계가 연극계에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극단에서도 대부분이 그때 다들 처음 알았다고 한다.[10] 아들은 젊은 페리클레스, 아버지는 해설자+나이든 후의 페리클레스.[11]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 문서 내 관계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12]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5년 11월 22일에 논현 2동 성당에서 동생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로부터 견진을 받았다. 같이 견진 받은 사람의 대모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박인환과 이형석과 더불어서 견진을 받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완전한 개종보다는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잠시 붙어다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13] 빅터 가버, Victor Garber[14] 참고로 이 배우는 캐나다에서 만든 디에프 상륙작전 영화에서 마운스 베튼으로 나왔다. 찌질하면서도 건방진 모습이 유인촌을 많이 닮았다는 평이다.[15] 일부 방송사에서는 삐~ 처리를 하거나 아예 소리를 안 내보냈다. 다만, 그냥 그대로 내보낸 방송사도 있었다.[16] 후일 더불어민주당 초대 원내대표로 활동했다.[17] 이종걸 의원은 이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 분노조절장애 점점 심해져', '문재인은 부산마이너리티라서 그런지 화법이 안 맞는다' 같은 막말들로 말이 많은 정치인이기도 하다.